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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elijah님
주 안에서 잘 지내시는지요.
님께서
인사와 함께
질문을 올려주신지가 여러 날이 되었는데
이제서야 답글을 통해 님을 대하게 되어서 미안합니다.
이제 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질문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님은 “2가지가 궁금한데요”라고 하였습니다.
그 첫째는, “엘리야와 에녹은 죽음을 보지않고 승천하였잖아요,
그렇다면 이들의 몸 상태는 어떤 상태인가요? 천국은 죄악된 육신을 가지고 가지못하는 곳이고요,
몸이 부활된 상태로만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렇다면 엘리야와 에녹은 부활체인가요? 예수님께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시는데 이들은 예수님 부활하기 전 사람이잖아요, 또한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야 우리가 부활되는 것 아닌가요?
부활상태가 아니라면 영혼과 육이 분리된 상태인가요?
분리된 상태는 죽은 상태인데 이건 아닌 것 같고.. 목사님의 명쾌한 답변 부탁드립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데려가심으로 죽음을 보지 않은 엘리야와 에녹의 죽음과 관련하여 그들의 몸상태가 어떤 것인지를 묻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들의 몸이 부활체인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고 잇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다른 질문은요
마귀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나요? 아니면 우리가 하는 말이나 행동 만 알수 있나요?“라고 하였습니다.
먼저 첫 번째의 질문에 대하여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님은 엘리야와 에녹을 가리켜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다고 알고 있습니다. 사실 이렇게 알고 있는 것은 님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이면 대체적으로 모든 사람일 것이라고 여기는데 그들 모두가 이렇게 알고 있으며 그래서 또한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반문적으로 묻고 싶습니다.
“과연, 엘리야와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한 사람일까요?”
제가 이렇게 반문하는 것은 말이죠. 승천에 대한 이해를 그리스도인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아서입니다. 승천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것이 있게 되는 과정을 이해하여야 하는데 “죽음-부활-승천”에서 말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어떤 사람에 의해서 있게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분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에 의해서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오직 한분 하나님의 아들이시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거치지 않은 승천이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죠. 승천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에 오는, 그래서 이것들을 거쳐서 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이 없는 가운데서 승천이란 있을 수도 생각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승천이란 예수님에게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님은 엘리야와 에녹을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다고 알고 있으면서 또한 이 두 사람의 몸의 상태를 “ ‘부활체’인가?” 하는 궁금증을 갖고 있습니다. 천국이란 몸이 부활된 상태에서 들어갈 수 있다고 들었기에 갖는 궁금증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의 부활이란 예수님의 재림이 있음으로써 있게 되는 것인데, 아직 그때가 오지 않았음으로 해서, 그리고 엘리야와 에녹 두 사람이 예수님이 아직 부활하시기의 전의 사람이고 해서 그렇다면 “부활체는 아닌가?”라고 의문이 되기도 하고, 이들의 상태가 부활 상태가 아니라면 영혼과 육이 분리된 상태인가? 하지만, 분리된 상태는 죽은 상태인데 이건 아닌 것 같은 혼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엘리야와 에녹 이 두 사람은 죽음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께서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않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이 두 사람을 엘리야의 승천, 에녹의 승천으로 각각 말하는 것은 왜일까요? 성경은 엘리야에 대하여 말하기를, “두 사람(엘리야와 엘리사)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이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다시 보이지 아니하는지라”(왕하 2:11-12)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보면 엘리야가 ‘승천하더라’라고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서 엘리야의 승천을 말하게 되었습니다.
반면에 에녹의 경우에서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4)라고 말하여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에게서의 ‘승천하더라’와 에녹에게서의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는 같은 개념에서 사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엘리야의 ‘승천하더라’는 눈에 보이는 공간적이요 또한 우주적 개념에서 말해지고 있는 ‘하늘’로 올리워졌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에녹을 ‘데려가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에녹을 ‘취하셨다’는 의미에서 하시고 있는 표현입니다.
그래서 이 두 경우는 엘리야가 그를 따랐던 엘리사의 눈에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었다’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며, 에녹이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게 되었다’를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것을, 엘리야의 경우에서 우리말 한글개역성경은 ‘승천’이라는 용어로 번역을 함으로써 그의 승천을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보게 되는 ‘승천’과 같은 개념의 것으로 인식하게 되는 문제점을 안고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엘리야와 에녹의 경우에서 보게 되는 것과는 그 개념도 의미도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시는 부활이 있게 하신 후에 단지 ‘하늘’의 개념이나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셨다’는 것에서가 아니라, 예수께서 자신의 나라인 ‘하나님의 나라’로 가신 천상적 개념으로서 그 ‘하늘(천국)에 올라가셨다’는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교회와 우주의 통치를 행사하신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와 에녹이 세상에서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된 것은, 그래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게 된 것은, 예수님의 승천에서 보게 되는 그런 승천의 개념이 전혀 없습니다. 엘리야와 에녹을 하나님이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다시 있지 않게 하신 것은 이 일이 비록 하나님께서 그의 죽음을 보지 않게 하여서 하신 것이나 실상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보게 되는 것인 죽음을 당하므로 그들의 몸이 세상에 더 이상 있지 않게 된 자의 경우와도 동일한 것입니다.
그런 엘리야와 에녹은 ‘죽은 자’ 가운데서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자의 상태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부활에 이르지 못한 자입니다. 따라서 죽은 자 가운데 있는 상태에서 부활을 거치지 않았으므로 엘리야와 에녹이 하나님에 의해서 데려감을 당하므로 세상에 다시 있지 않았다는 것이 이들의 승천을 의미하고 또한 그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니 말이죠. 님이 엘리야와 에녹을 죽음을 보지 않고 승천하였다고 알고 있으면서 또한 이 두 사람의 몸의 상태를 “부활체인가?“ 하며 갖고 있는 궁금증은 ”부활체가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엘리야와 에녹을 비롯하여서 우리의 부활체란 님이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예수님의 재림 때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재림이 있지 않은 때의 시기에 있는 엘리야와 에녹, 그리고 우리가 부활체로 있다는 것은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체의 몸으로 우리가 있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엘리야와 에녹 두 사람은 예수께서 그리스도로서의 부활을 하시기 전의 사람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시는 일이 아직 오지도 않았는데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다시 있지 않게 된 이들 두 사람의 몸을 부활 상태의 몸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엘리야와 에녹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들을 하늘로 올리시고 또한 데려가시므로 각각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게 됨을 통하여 이들에 앞서 죽은 자의 상태에 있는 모든 자들과 더불어 같이 죽은 자로 있으며, 이들 후에 또한 뒤따를 모든 죽음에 있는 자들과 함께 합니다. 예수께서 죽음을 당하시고 또한 죽은 자 가운데서 삼일만에 부활하시며 승천하여 하나님 우편에 앉아 교회와 우주를 통치하시고 재림하셔서 모든 사람을 자기 앞에 불러 모아 의인은 오른편에 악인온 왼편에 각각 두시고 심판하시고자 죽은 모든 자들을 부활시키실 때까지 죽은 자로 있습니다.
이 죽은 자로 있는 것에는 그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그것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올리운 엘리야도, 하나님이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다시 있지 않은 에녹도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말입니다. 모든 사람은 의인이 없으며, 따라서 단 한 사람도 의인이 없는 죄인인 사람의 육신은 죄 때문에 죽음을 당하여 죽음에 갇혀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그 죄에서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에, 그래서 죄에서 용서하여 주셨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이 죽음에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 곧 영생에로 옮겨졌으며 또한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영이 우리가 죽은 후에도 우리의 썩을 몸을 다시 살리실 것이지만, 그래서 우리가 육신의 완전한 구속(救贖)을 입는 부활을 입을 것이지만, 그렇게 해서 주님과 함께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 주님이 입은 영광에 참여할 것이지만, 그때가 올 때까지는 엘리야와 에녹은 우리와 함께 그리고 모든 자들과 함께 죽음에 있게 됩니다.
엘리야와 에녹이 그러한 것을 ‘승천하더라’, 그리고 ‘하나님이 데려가시므로’라고 하는 우리말 개역성경의 문구로 인해서 이들을 ‘승천한 자’로 말하며, 이 승천을 예수님이 승천하신 것과 같은 승천의 개념이나 그러한 성격의 것으로 알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엘리야와 에녹을 각각 하늘로 올리우게 하시거나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데려가시므로 더 이상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고, 따라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게 하시는 일을 행하신 것은 그 시대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행하신 특별한 방법인데, 이는 이스라엘에 나타내신 계시적 사건으로서의 표적을 행하시는 것에서였습니다. 그러니까 누구에게나 있게 하시는 일반적이고도 보편적인 일이 아니었으며, 오직 엘리야와 에녹에게서만 보게 되는 특별한 것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이러한 일을 통하여 이스라엘에게 나타내어 알게 하여 주시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야와 에녹이 하나님에 의해서 데려감을 당한 것 - 한글개역성경에서 기록하고 있는 용어인 ‘승천’이란 말로 이하의 글에서 그대로 사용하더라도 여기서 이 용어가 쓰이고 있는 구절의 문맥에서 뜻하고 있는 의미에서 하고 사용하고 있는 것임을 질문하신 님과 이 글을 읽는 회원[독자]들께서는 이해하고 보시기 바랍니다 - 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어진 ‘이적’이었으며, 이는 또한 그 시대에 ‘표적’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먼저, 엘리야의 승천은 엘리야가 선지자로 활동한 시대에 그의 뒤를 잇는 엘리사에게 엘리야 선지자와 함께 하게 하심으로 엘리야 선지자에게 임한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사 선지자에게 그대로 이어져 엘리사가 엘리야의 뒤를 잇는 선지자로서의 활동을 계속해서 지속적으로 해 나가게 하시는 것에서 있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활동은 홀로 행해진 반면에 엘리사는 당시 있은 선지 생도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양육하는데 상당한 정성을 쏟았으며 그런 그는 엘리야 선지자가 “내가 네게 어떻게 할 것을 구하라”라고 하였을 때 “당신의 영감이 갑절이나 내게 있기를 구하나이다”라고 할 때 “네가 어려운 일을 구하는도다 그러나 나를 네게서 취하는 것을 네가 보면 그 일이 네게 이루려니와 그렇지 않으면 이루지 아니하리라”하고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고 있을 때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으며 엘리야를 회리바람(회오리바람)에 휘감아 하늘로 데려감으로 있게 되었습니다(왕하 2:8-12). 따라서 엘리야의 승천은 그가 행했던 선지자의 활동이 엘리사에게로 넘어가 이제 그에 의하여서 선지자의 활동이 전개되어 나가게 하시는 일을 하나님께서 주도해 나가시는 것으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엘리야의 뒤를 이어 엘리사에 의하여서 선지자의 활동이 시작되는 시점에 있게 됨으로 엘리야 선지자는 더 이상 세상에 남아 있지 않게 하시는 것에서, 그리고 엘리야 선지자를 통해서 나타내셨던 하나님의 능력이 이제는 엘리사 선지자에게로 잇게 하시는 것에서 엘리야 선지자가 아직 살아 활동하던 때에 엘리사 선지자가 동행하는 가운데서 엘리야 선지자를 하나님께서 아직 죽음을 보지 않은 가운데서 데려가시는 일을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엘리야를 회리바람으로 데려가시는 것에서 그를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에 따라서 엘리사 선지자는 그의 스승인 엘리야 선지자를 더 이상 세상에서는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의 승천이 이런 것이기에, 이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음을 당하신 후 제삼일만에 부활하시고 또한 승천하신 것에서의 승천과는 그 개념도 성격도 전혀 다릅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엘리야의 승천은 사실상 여느 하나님의 백성이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를 데려가시는 일을 하신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엘리야는 엘리야 선지자가 보고 있는 대로 죽음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회리바람을 통하여 하나님에 의해서 데려감을 당하였으나, 그 일은 그렇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세상으로부터 그를 데려가시는 방법을 취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그는 사실상 죽음을 보지 않은 자가 아니라 그 하나님이 취한 방법을 통하여서 죽은 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부활에 이를 때까지 ‘주 안에서’ 잠 자는 자로 있습니다.
그리고 에녹의 경우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않은 것에서 있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에녹이 그 당시에 그가 하나님께 지닌 믿음이 지닌 결과에서 보게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에녹은 365세를 향수 하였는데, 일생동안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았습니다. 특히 그의 65세 이후부터 계속된 300년간은 그가 하나님과 동행한 삶이 아주 두드러진 시기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그 시대의 사람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없는 타락한 부패의 삶이 얼마나 악한 죄 속에서 살는 것인지를 실히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노아의 때에 그와 그의 식구들 외에는 모든 사람들이 항상 악할 뿐인 죄악이 관영한 삶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홍수 심판으로 임하신 것에서 보게 되는 것과 다름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오직 악한 죄뿐인 사람들에 대하여 그들의 죄를 심판하시는 표적으로서 에녹을 하나님과 동행하는 믿음의 의에 있게 하시고 그러한 에녹을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더 이상 있게 않게 하심으로 사람들이 더 이상 그를 보지 못하게 하시는 것에서 하나님과 동행한 믿음에 의한 의를 세상에 드러내시는 표적을 삼으셨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에 의한 하나님의 의’를 보여주시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의로 죄악된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었습니다. 이로 인해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에녹을 하나님께서 데려가신 이적은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에게 표적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의롭다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니 ‘믿음으로’만 이며, 다른 것으로서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으니 하나님의 의가 사람들의 죄를 심판하시는 유일한 기준이 됩니다. 에녹이 하나님께서 데려가시므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은 것은 이러한 것으로서 있게 하신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그는 엘리야 선지자에게서와 같이 ‘주 안에서’ 잠 자는 자로서 부활의 첫열매가 되실 그리스도의 부활을 기다림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부활을 일으키실 하나님의 능력을 입게 됩니다.
따라서 에녹의 경우에서도 엘리야의 승천에서 보는 바와 같이 이것을 예수님의 승천에서 같이 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에 따라서 엘리야도 에녹도 그들의 몸은 부활체로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그와 함께 하시는 ‘주 안에 있는 자’이지요.
한편으로, 하나님께서 에녹을 데려가시므로 더 이상 세상에 있지 않게 하심은 오직 땅엣 것을 바라보고 사는, 그래서 오직 이 세상뿐인 듯이 살아가는 그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늘의 것을 바라보게 하시는 세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표적이 되게 하시기도 하였습니다. 즉, 에녹을 데려가심으로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취하여 더 이상 이 세상에 있지 않게 하심은 이 땅의 세계가 전부가 아닌 하늘의 세계가 있음을 말해주는 표적으로 삼으신 것이며, 에녹을 죽음을 보지 않은 상태에서 데려가심으로 하늘의 세계에서 영생을 말해 주시고 있는 계시적 의도도 있다고 할 것입니다.
이제 두 번째 질문에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님은 첫 번째 질문과는 다르나, 다음과 같이 두 번째 질문을 하였습니다.
“마귀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나요? 아니면 우리가 하는 말이나 행동만 알 수 있나요?“라고 하였습니다.
이 질문에서 우선 분명히 해 두면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에 대한 것인데, 우선 마귀(사단)를 추종하는 자, 곧 마귀와 함께 마귀의 왕국(사단의 왕국)을 이루고 있는 죄 아래 있는 죄인에 대한 것입니다. 이들은 마귀의 시험을 받아 하나님께 범죄하여 타락한 첫 사람 아담의 후손으로 오는 인류인 모든 사람을 말하는 그 사람을 염두에 두고서 말하는 것일 때 이들에 대해서 마귀가 이들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며 이들이 하는 말이나 행동을 알 필요와 그 이유가 있나요? 없습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마귀를 좇는 자들이며, 마귀의 지배를 받는 자들로서, 세상 끝날에 마귀와 함께 영원한 불 속에 내던져질 자들입니다. 이들은 처음부터 끝까지 마귀가 생각하는 그 생각을 좇아서 사는 자들입니다.
다음으로, 님이 말하고 있는 “마귀는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나요? 아니면 우리가 하는 말이나 행동만 알 수 있나요?“에서의 ‘사람’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믿는 자들을 염두에 두고서 하는 말일 때, 그래서 예수님의 속죄의 피를 따라 어디든지 가는 자는 의식하고서 하는 말일 때, 마귀는 이들이 어떤 생각 속에서 사는 자들인지를 너무나도 잘 압니다. 마귀는 각 그리스도인이 그 마음에 품은 생각 하나 하나를 일일이 다 아는 것에서 알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까 어떤 한 그리스도인이 지금 무엇을 먹을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무슨 좋은 일을 할 생각을 하고 있는지....하는 따위의 이런 사람의 생각을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무슨 생각에서 무슨 일을 하면서 살든지 간에 지금 이들의 생각에서는 주님과 주님의 영광스러운 나라가 가득찬 것을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또한 마귀는 그 사람들의 육신이 어떤 본능적인 욕망으로 가득차 있는지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마귀는 할 수만 있으면 그리스도인을 넘어지게 하려고 합니다. 십자가의 영광에 들어가려고 하는 그리스도를 막아 못하게 함으로써 넘어지게 하려고 하였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좇는 자들을 또한 넘어뜨리려고 하는 것이 마귀입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피의 구속을 말하는 복음에 서는 믿음에 있는 것이 아닌 다른 복음을 좇는 믿음에 있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영이시오 그리스도의 영이 아닌 다른 영을 좇게 하며,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의 이름을 믿는 것이 아닌 다른 예수의 이름을 믿게 하는 것에서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을 예수님에게서 떠나있게 하고자 활동하는 것이 마귀입니다. 마귀는 오직 이 일을 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으로 이 일을 위하여 세상 끝날까지 활동하는 악한 영입니다.
이런 마귀는 그리스도인을 육에서 나오는 죄성에 의한 본능적인 욕망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게 하여 여기에 마음을 빼앗기게 합니다. 마귀는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를 좇게 하나 그것은 거기에 영생이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란 종교를 이용하여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충족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니까 이들의 마음은 실상은 온갖 탐욕으로 가득차 ‘자기를 위하여’ 예수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마귀는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생각이 이렇게 항상 악할 뿐인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이러한 그들의 생각이 마귀의 생각을 좇아 하나가 되어 움직이도록 미혹하는 일을 합니다.
따라서 마귀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를 사람들마다 갖는 생각 하나 하나를 일일이 꿰뚫어서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함께 하여 성령을 좇는 자의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이며 또한 육에서 나오는 마음의 모든 생각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마귀가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다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에 대한 그릇된 이해를 갖고 있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상으로 답글을 마치겠습니다.
님의 닉네임이 elijah이신데, 저 옛날 이스라엘의 굽은 심령에 하나님의 구원을 전하여 곧게 펴나가는 일을 한 선지자 엘리야를 떠올리게 합니다. 엘리야와 같은 선지자 한 사람을 보내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증거케 하신 하나님께서 님의 입에 두신 것도 이것이랍니다.
그러한 님이시기에 주의 복음을 깨달아 바르게 잘 알아가실 수 있기를 주께 구합니다.
주 안에서 평안을 빕니다.

첫댓글 ...???
목사님 답글 잘 읽어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궁금증이 해결되네요. 자세히 다시한번 정독해보고 정리해 볼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