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퓨전 레스토랑의 시원이라 할 수 있는 ‘시안’이 ‘와인’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작은 접시에 담아내는 예술, 타파스’라는 컨셉트로 레스토랑을 오픈했다. 뉴욕, 파리를 거쳐 청담동에 상륙한 신인류의 선택.
시안’의 전화번호 뒷자리는 ‘1998’이다. 이는 청담동에 퓨전 레스토랑 시대가 열렸던 해이자 ‘시안’의 설립 연도다. 청담동을 한꺼번에 먹어치울 듯 퓨전 레스토랑이 난립하던 1998년 당시엔 ‘시안’도 한낱 애송이에 불과했다. 그렇게 6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이제 적당히 교통정리가 되자 시안은 ‘512’라는 국번처럼 청담동 메인스트림에 제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IMF 이후 계속되는 경기 침체를 눈 뜬 장님으로 보아넘길 수는 없는 일. 나름의 생존 전략으로 1층에 ‘타파스 라운지’를 오픈했다.
타파스란 한두 사람이 입가심을 할 수 있을 정도인 소량의 음식을 작은 접시에 세팅해 내, 배가 부르기까지 다양하게 미식 체험을 할 수 있는 스페인식 음식 문화다. 미국 뉴욕이나 프랑스 파리에서는 이미 대중화했지만 국내에선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시안 타파스 라운지’는 그중에서도 ‘와인’과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두 가지 아이콘을 더 얹었다. 와인은 경기 침체 속에서도 30% 이상의 시장 성장률을 보이고 있는 만큼 매력 있는 소재이고, 프랑스령 베트남 시대를 연상시키는 어둡고 그윽한 오리엔탈리즘은 특유의 몽환적인 분위기로 어디든 조용한 곳에서 안정을 취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아지트 역할을 하고 있다.
Mood & Interior 공간은 거실, 침실, 테라스로 분리돼 있는데 가장 눈길을 끄는 곳은 입구 왼편 별실이다. 앤티크한 샹들리에를 중심으로 와인핑크색 시폰이 흘러내려 둥글게 펼쳐진 소파까지 와 닿는다. 마치 미술품에 등장하는 르네상스 시대 부인들의 내실처럼 은밀하고 달콤하다. 이런 분위기는 계단 아래쪽에 있는 침실 섹션으로 이어지는데 기다란 복도를 따라 좌우로 도열한 조그만 공간들에선 조금 전까지 밀어를 나누었을 연인들의 소곤거림이 남아 있는 듯하다.
거실 섹션은 좀더 남성적이다. 천장을 뚫을 듯 곧게 뻗은 서가와 2층까지 이어진 와인 셀러는 영국풍 사교 클럽을 연상시킨다. 특히 대리석으로 마감한 테이블과 와인 컬러의 벨벳 의자가 보수적이면서도 멋 부리기 좋아하는 귀족의 감성을 자극한다. 입구 오른쪽은 바(bar)다. 바텐더와 노닥거리는 공간은 아니다. 한쪽엔 이미 코르크가 개방된 와인병이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으니 평소라면 병째 시켜야 맛볼 수 있는 귀한 와인도 잔으로 판매될 수 있는 여지가 엿보인다.
Wine & Food 백과사전을 연상케 할 만큼 묵직하고 두툼한 와인리스트. 그중 다섯 가지를 꼽아 소믈리에의 테이스터 잔에 따라내는 ‘와인 플라이트’는 굳이 ‘로마네 꽁띠’가 아니더라도 ‘입으로 느끼는 오르가슴’이라 할만큼 충만하다. 천사의 날개인 듯 가볍고 부드러운 ‘샤르도네’로 시작해 묵직한 보디가 페로몬을 자극하는 ‘카베르네 소비뇽’으로 이어질 때면, 발끝에서부터 후끈한 열기가 가슴에 와 퍼진다. 여기에 작은 접시에 정성스럽게 세팅한 음식 서너 가지가 이어지면 퓨전 퀴진의 자존심은 풀먹인 깃처럼 빳빳하게 세워진다.
재오픈한 지 겨우 한 달 남짓하건만 이미 ‘동 빼리뇽’ 엉덩이에 여봐란듯이 명함을 붙여두고 간 손님도 적지 않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 대부분은 와인이 좋아, 그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좇아 모여든 사람들이다. 그리고 타파스의 메뉴는 그들의 주머니를 염두에 둬 비교적 저렴하다. 물론 와인 가격만 따진다면 이곳도 어쩔 수 없는 청담동이구나 싶지만 와인 한 병을 비워버릴 만큼 주당이 아니라면 트러플 감자 퓌레가 곁들여진 블랙타이거 새우구이와 플레이트에 담긴 다섯 가지 와인으로 금요일 밤의 낭만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혹 당신이 대식가라 이것만으로 불안하다면 아예 단품 메뉴를 접어두고 와인과 식사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세트 메뉴 쪽에 관심을 보이는 편이 낫다. 세트는 애피타이저에서 디저트까지 여섯 가지 퓨전 풀 코스에 엽채류, 과일류, 해산물, 갑각류, 가금류 등 다양한 재료를 이용한다. 여기에 요리가 나오기 전에 화이트 와인이 한 잔 그리고 식사 중간에 레드 와인이 한 잔 제공된다. 가격은 3만5,000원, 5만원, 6만5,000원 세 가지다. 두 사람 이상 주문시에만 가능하다는 단점이 있지만 지정된 와인 외에 다른 것으로 바꿔 마실 수 있는 융통성에 흐뭇해진다.
Infomation 02-512-1998 12:00~02:00(연중무휴) valet parking 10명 관자샐러드 7500원, 새우샐러드 1만1700원, 쇠고기립아이 1만500원, 돼지안심숯불구이 7500원, 블랙타이거 새우구이 1만3500원, 스패니시 살라미 1만2000원 |
editor 이귀랑 photographer 이내정
기사제공 : 프라이데이 (http://wfriday.patzzi.com)
2003.12.08 17:01 입력 / 2003.12.09 13:29 수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