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봄 1
- 뱀사골에서 쓴 편지
남원에서 섬진강 허리를 지나며
갈대밭에 엎드린 남서풍 너머로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 한 자락이 따라와
나의 갈비뼈 사이에 흐르는
축축한 외로움을 들추고
산목련 한 송이 터뜨려놓습니다.
온몸을 싸고도는 이 서늘한 향기,
뱀사골 산정에 푸르게 걸린 뒤
오월의 찬란한 햇빛이
슬픈 깃털을 일으켜세우며
신록 사이로 길게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아득한 능선에 서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레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앞서가는 그대 따라 협곡을 오르면
삼십 년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이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내리고
육천 매듭 풀려나간 모세혈관에서
철철 샘물이 흐르고
더웁게 달궈진 살과 뼈사이
확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 소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
- 뱀사골에서 쓴 편지
남원에서 섬진강 허리를 지나며
갈대밭에 엎드린 남서풍 너머로
번뜩이며 일어서는 빛을 보았습니다.
그 빛 한 자락이 따라와
나의 갈비뼈 사이에 흐르는
축축한 외로움을 들추고
산목련 한 송이 터뜨려놓습니다.
온몸을 싸고도는 이 서늘한 향기,
뱀사골 산정에 푸르게 걸린 뒤
오월의 찬란한 햇빛이
슬픈 깃털을 일으켜세우며
신록 사이로 길게 내려와
그대에게 가는 길을 열어줍니다.
아득한 능선에 서계시는 그대여
우르르우르르 우레 소리로 골짜기를 넘어가는 그대여
앞서가는 그대 따라 협곡을 오르면
삼십 년 벗지 못한 끈끈한 어둠이
거대한 여울에 파랗게 씻겨내리고
육천 매듭 풀려나간 모세혈관에서
철철 샘물이 흐르고
더웁게 달궈진 살과 뼈사이
확 만개한 오랑캐꽃 웃음 소리
아름다운 그대 되어 산을 넘어갑니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승천합니다.

송악의 가을을 나는 사랑했기에 송악의 명월이라 이름했지요
명월은 세가지 원칙을 가졌어요
절대로 얼굴에 화장하지 않으며
절대로 남자 앞에서 치장하지 않으며
근본이 맑아야 마주 앉는 일
그 누구 이 원칙에 손을 댈 수 있으리요
명월은 세가지 원칙을 가졌어요
절대로 얼굴에 화장하지 않으며
절대로 남자 앞에서 치장하지 않으며
근본이 맑아야 마주 앉는 일
그 누구 이 원칙에 손을 댈 수 있으리요
고정희 시인이 옛 여인들을 빌려서 쓴 시 <황진이가 이옥봉에게> 라는 시의 한 부분입니다. 절대로 화장 안하기, 남자 앞에서 치장 안하기, 근본이 맑아야 마주 앉기. 생전에 고정희 시인이야 말로 이 세가지 원칙에 누구보다도 철저하지 않았나 싶은데요. 고정희 시인은 우리나라의 해방의 감격 못지 않게 정치적인 혼란이 컸던 1948년 전라남도 해남의 삼산면에서 태어납니다. 5남 3녀 중 맏딸이었죠. 본명은 고성애, 성스러울 성자에 사랑 애자를 쓴 그녀의 본명은 시인으로서의 정희 라는 이름보다 그녀의 인생을 더 잘 상징해주는 것 같군요. 그녀의 시와 사회적인 활동은 일반적으로 기독교적인 사랑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런 바탕은 우연이나 그녀 자신의 선택에 의한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고정희 시인의 아버지는 해방 전 노동운동을 하다가 고초를 겪기도 했고, 고향에 돌아온 뒤에는 농사를 지으면서도 독서에 열심이었던 독실한 기독교인이었죠. 고정희 시인은 그러한 아버지로부터 알게 모르게 큰 영향을 받아서 어렸을 때부터 일찌기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가난 만큼은 어쩔 수 없었죠. 8남매의 맞이였던 어린 고정희는 초등학교도 3학년때부터 간신히 다닐 수 있었습니다. 중 고등학교는 엄두를 낼 수도 없어서 검정고시로 대신했죠. 가정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포기하기 쉬웠을 것들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던 시절이었습니다. 더구나 그 남다른 어려움과 뛰어남을 장차 자신만의 성공에 쓰지 않고 모든 고통받는 여성들을 위해 썼다는 점이 훗날 그녀를 더욱 빛내게 할 시절이었습니다. 10대를 검정고시와 독학으로 보낸 그녀의 이야기

아파서 몸져 누운 날
모두가 톱니바퀴처럼 제자리로 돌아간 이 대낮에
이심전심이나 텔레파시도 없는 이 대낮에
당신이 내 집 문지방을 들어선다면
난 아마 생애 최고 같은 5분을 만나고 말거야
나도 최후의 5분을 셋으로 나눌까
그 2분은 당신을 위해서 쓰고
또 2분간은 이 지상의 운명을 위해 쓰고
나머지 1분간은 내 생을 뒤돌아 보는 일에 쓸까
그러다가 정말 당신이 들어선다면
나는 칠성판에서라도 벌떡 일어날꺼야
그게 나의 마음이니까
그게 나의 희망사항이니까
하며 왼 손가락으로 편지를 쓰다가
고요의 밀림 속으로 들어가
다시 잠이 듭니다
모두가 톱니바퀴처럼 제자리로 돌아간 이 대낮에
이심전심이나 텔레파시도 없는 이 대낮에
당신이 내 집 문지방을 들어선다면
난 아마 생애 최고 같은 5분을 만나고 말거야
나도 최후의 5분을 셋으로 나눌까
그 2분은 당신을 위해서 쓰고
또 2분간은 이 지상의 운명을 위해 쓰고
나머지 1분간은 내 생을 뒤돌아 보는 일에 쓸까
그러다가 정말 당신이 들어선다면
나는 칠성판에서라도 벌떡 일어날꺼야
그게 나의 마음이니까
그게 나의 희망사항이니까
하며 왼 손가락으로 편지를 쓰다가
고요의 밀림 속으로 들어가
다시 잠이 듭니다
상한 영혼을 위하여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아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상한 갈대라도 하늘 아래선
한 계절 넉넉히 흔들리거니
뿌리 깊으면야
밑둥 잘리어도 새순은 돋거니
충분히 흔들리자 상한 영혼이여
충분히 흔들리며 고통에게로 가자
뿌리없이 흔들리는 부평초 잎이라도
물 고이면 꽃은 피거니
이 세상 어디서나 개울은 흐르고
이 세상 어디서나 등불은 켜지듯
가자 고통이여 살 맞대고 가자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
가기로 목숨 걸면 지는 해가 문제랴
고통과 설움의 땅 훨훨 지나서
뿌리 깊은 벌판에 서자
두 팔로 막아도 바람은 불듯
영원한 눈물이란 없느니라
영원한 비탄이란 없느니라
캄캄한 밤아라도 하늘 아래선
마주잡을 손 하나 오고 있거니
상한 영혼들도 마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한 고정희 시인은 그녀 자신이야말로 여성에 관한 것이라면 무엇이던지 해내고 써낼 듯 했습니다. 그런 그녀가 기독교 신문사와 기독교 아카데미의 출판 간사, 가정 법률 상담소의 출판 부장을 거쳐서 이제 막 출범한 여성 신문의 초대 편집 주간이 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겠죠. 그녀는 여성 신문을 맞자 마자 독자 1면에 독자에게 보내는 고정적인 편지란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편지들을 통해서 줄곧 모든 여성들의 자매애를 호소하고 강조했죠. 남자를 움직이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우주의 축을 옮기는 일이야 말로 오직 여성들의 자매애 라는 것이었죠. 그 강조는 시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녀는 여성 문제에 관해서라면 시인의 자질에 대한 비난이나 오해도 전혀 상관없다는 듯 상징이나 은유같은 것에 별로 개의치 않는 직접적이고도 구호적인 글을 썼죠. 문학이란 것을 현실과 괴리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그녀의 시적인 재능이 낭비되고 잘못 활용된다는 생각으로 안타까워 하기도 했죠. 하지만 그녀에게 시는 현실과 동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었습니다. 현실을 얼마던지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는 도구이자 힘이었죠. 그러한 그녀의 여성관과 문학관은 필리핀에 다녀온 후 더 확고해 집니다.
1990년 8월 고정희는 아시아 종교 음악 연구소의 초청으로 필리핀 마닐라에 다녀 오게 됩니다. 그리고 1년동안 아시아의 시인, 음악가들과 함께하는 '탈 식민지 시와 음악 워크샵'에 참석하죠. 그 1년은 고정희 시인에게는 또다른 충격의 시간이었죠. 우리보다 더 어렵고 고통받는 여성들의 삶을 아주 가까이에서 직접 보고 들었기 때문이었죠. 필리핀 여성 운동가들과 시인들과의 만남 또한 한국에서의 여성운동과 시 창작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고정희는 보다 급진적인 여성운동과 문학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밥과 자본주의> 라는 연작시를 쓴 고정희는 한국에 돌아오면서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여성운동, 여성문학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방법의 하나로 새로운 문체를 만들어 써야 한다는 '문체 혁명'을 생각하게 됩니다. 하지만 준비보다 마음이 너무 앞선던 그 '문체 쇄신론'이 결국 그녀의 목숨 마저 앗아갔다고 해야 할까요. 고정희는 1991년 6월 8일 '또 하나의 문화' 월례 모임에서 '여성주의 리얼리즘과 문체 혁명' 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합니다. 하지만 정작 문체 혁명에 대한 부분이 너무 없어서 동인들의 지적을 받게 되죠. 마음이 불편해 졌거나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죠. 고정희는 지리산에 갔다 와서 더 이야기하자고 이야기 한 뒤 복잡한 마음이 들 때마다 그랬듯이 이번에도 훌쩍 지리산으로 향했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아침 후배 기자와 지리산 등반에 나선 그녀는 거센 물살에 휩쓸리면서 끝내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났죠.
사십대 문턱에 들어서면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도 안다.
선택 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려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죽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녁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바라볼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다
기다릴 인연이 많지 않다는 것도 안다
아니, 와 있는 인연들을 조심스레 접어 두고
보속의 거울을 닦아야 한다
씨뿌리는 이십대도
가꾸는 삼십대도 아주 빠르게 흘러
거두는 사십대 이랑에 들어서면
가야 할 길이 멀지 않다는 것도 안다.
선택 할 끈이 길지 않다는 것도 안다.
방황하던 시절이나
지루하던 고비도 눈물겹게 그려안고
인생의 지도를 마감해야 한다.
죽정이든 알곡이든
제 몸에서 스스로 추수하는 사십대
사십대 들녁에 들어서면
땅바닥에 침을 퉤,뱉아도
그것이 외로움이라는 것을 안다.
다시는 매달리지 않는 날이 와도
그것이 슬픔이라는 것을 안다.
이렇게 40대를 노래했던 시인, 가야할 길이 멀지 않고 선택할 끈이 길지 않다고 그렇게도 마음 급해 하더니 끝내 죽음과도 급하게 만났습니다. 수유리에서 안산에서 혼자 살면서 낮동안에는 여성들을 위한 일에 매진하고 밤부터 새벽까지는 시와 글을 쓰면서 수도승이나 글쓰는 노동자처럼 살았던 고정희 시인. 그녀의 환한 미소를 되살리는 데는 그녀를 기리는 문학상 못지 않게 80년대부터 훨씬 나아질 아니 앞으로도 더욱 나아질 여성들의 삶이 필요하리라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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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의 봄 고정희 지음/문학과지성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