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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 03
$#1. 병원 앞 벤치 (아침)
멍한 눈으로 벤치에 앉아 병원 건물을 바라보는 수연.
갑갑한 듯 얕은 한숨을 토해내곤 눈을 내리깔며 살짝 볼을 비빈다.
이때, 자동차 급브레이크 소리.
눈을 올리면 하경의 승용차가 수연 앞에 멈춰 서있고 운전석 문을 통해 수연을
바라보는 하경의 모습.
하경, 아무 말 없이 수연을 바라보고 수연, 어색한 몸짓으로 일어서서 목례를
한다.
하경, 무슨 말인 듯 건내려가다 고개를 돌려 승용차를 몰고 사라진다.
하경의 승용차를 바라보며 계속 볼을 비비고 있는 수연의 모습.
$#2. 스탭 의국
까운을 입고 있는 하경.
문을 열고 들어오는 현우
현우, 아무 말 없이 외투를 까운으로 바꿔입는다.
하경, 의국 문을 나서려다 현우 앞에 선다.
하경 어젯밤...
현우 (돌아본다)
하경 니가 나설 일이 아니었어.
현우를 빤히 바라보는 하경.
$#3. 간호사 스테이션 앞
상도가 부시시한 머리칼에 불만이 가득찬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다.
스테이션 한켠에서 재봉이 앳되고 조신해 뵈는 견습 간호사 은주에게 너스레를
떨고 있다.
재봉 (오징어 뒷다리를 씹으며 스테이션에 상체를 기대고 섰다) 언
니, 너무 예쁘다. 몇살이야?
상도 싸가지
재봉 (깜짝 놀단다) 예?
상도 (꼬나본다)
재봉 또 왜에...
상도 너만 먹냐?
재봉 (쫄쫄 빨던 침에 절은 뒷다리를 보이며) 이거라도 드실래요?
(씩 웃는다)
상도 그래. (거리낌없이 오징어를 가로채 씹는다) 너, 문순영 MR
정신과에 도로 갖다줘.
재봉 아니, 선생님. 우리 신경외과의 위상이 이렇게 땅에 떨어져도
됩니까? 그런 먹고 노는 정신과 놈들은 뭐한 답니까? 지들이
가져가라 그래야죠. 정신과 의국 몇 번이죠? 제가 해결하겠습
니다. (전화기를 집어든다)
상도 (오징어로 재봉의 얼굴을 툭툭 친다) 우리 병원을 통틀어서 먹
고 노는건 너밖에 없어, 이 싸가지야. 잔말 말고 갖다 줘.
재봉 왜요? 나 거기 가기 싫단 말예요. 그 아줌마가..
상도 씨, 자꾸 말시키면 내 상태가 달라진단 말야. 얼마나 참고 있
는데...
재봉 안 갈래.
상도 (갑자기 소리를 바락바락 지르며 길길이 날뛴다) 다, 너 때문
이야.
재봉 엄마야, 왜 또 이러시나?
상도 (고래고래 소리친다) 니가 판을 뒤집어 놨잖아! 저놈들이 큰소
리 쳐도 찍소리 못하게.
멀쩡한 머리를...
내가 그간에 평정해 놓은 레지던트계가 너 때문에 하루아침에
무너져 내렸어, 이 똥대가리야.
재봉 (대뜸) 다녀오겠습니다. (바삐 사라진다)
상도, 인상을 벅벅 긁으며 은주를 바라본다.
은주도 물끄러미 상도를 바라본다.
상도, 터프하게 머리칼을 뒤로 넘긴다.
상도 (노려본다) 견습 NP야?
은주 (몸둘 바를 몰라한다) 네, 선생님.
상도 (계속 씩씩대다가 들고있던 오징어를 씹는다) 몇 살이야, 언
니?
재봉 (부랴부랴 달려와) 근데 필름이 어딨죠?
상도 (오징어 뒷다리를 던지며) 니가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서도 한
치의 불안감이 안 드냐? 일루와봐, 일루와봐. (재봉이 다가오
면 뒤통수를 때리려 손을 든다)
재봉 맞어, 생각났다. (다시 복도를 달려가며) 에이 씨. 엇다뒀지?
상도 (다시 은주에게) 언니, 애인있어?
은주, 갑자기 깔깔대며 웃는다.
상도, 멍하니 은주를 바라보면
은주, 상도를 보며 계속 웃는다.
은주 선생님. 선생님, 쌍가마네. 장가 두 번 가겠다. 깔깔... 좋겠다.
$#4. 판독실
아침 컨퍼런스.
연신 뒷머리를 만지며 쌍가마를 의식하는 상도.
상도 (사진을 가리키며) 김소희 환잡니다. 수술은...
남준 수술 무리였어, 그지?
스탭들 사이에선 아무 말이 없다.
하경, 풀이 죽은 듯 눈을 내리깐다.
하경 ...네, 과장님.
남준 (사진 보며) 그래도 뇌압은 떨어졌네. 넘어가.
상도, 발판을 누른다.
상도 어제 들어온 신환입니다. 옥시피탈(뇌후반부)에 출혈이 있습니
다. Angio상으론 Moyamoya(뇌동맥 기형)로 생각됩니다.
남준 출혈있네, 수술하자.
옆의 하경을 보면 무심히 넋을 놓고 있는 하경의 모습.
현우에게 고개를 돌리는 남준.
남준 장선생이 맡지.
현우 ...
남준 왜?
현우 혈관 질환은 최선생이 나설 일인데...
남준 안 달려들잖아.
하경 (멍한 눈망울만 깜빡인다)
현우 (하경은 보지도 않은 채) 그게 찝찝합니다, 과장님.
남준 안 달려들잖아.
하경 (하경 본다) 최하경 선생, 장선생이 찝찝하단다.
하경 (현우와 눈이 마주친다. 이내 다부지게) 제가 해야죠, 당연히
남준 오케이. 그럴 줄 알았어, 우리 최선생.
다음.
하경과 현우, 언뜻 서로를 마주본다.
이내 얼굴을 돌리는 둘.
그런 둘을 바라보는 준서
$#5. 병동 입원실
눈자위가 거뭇한 소희가 미소 지으며 하경을 바라보고 있다.
머리엔 중년 녀의 손수건이 씌워져있다.
소희 안 아파요, 선생님. 거짓말처럼 안 아파요. 고맙습니다.
하경 ...(머리수건 가리키며) 잘 어울리네요... 예뻐요.
소희, 미소지으며 수건을 만진다.
이때, 들어오는 중년 남, 우울한 표정으로 하경에게 고개 숙여 인사한다.
하경이 중년의 눈을 피해 나가려하면.
소희 선생님. 잠깐만요. (중년에게 눈짓을 한다) 포장했어요?
중년, 고개를 끄덕이며 조그만 선물꾸러미 두 개를 내민다.
그 중 하나를 집어 하경에게 건네는 소희.
소희 선생님, 이거.
하경 (당혹스럽다) 난... 받을 수 없어요, 김소희씨.
소희 비싼 거 아니에요. 엄마랑 나랑 쓰던 건데... 드리고 싶어서...
저한텐 소중한 거지만 선생님한텐 별로 부담 안될 겁니다.
어서요, 선생님.
하경, 문득 중년 남을 본다.
고개를 끄덕이는 중년 남.
하경, 선물을 받아든다.
소희 (천진한 눈망울) 살았잖아요, 저. 선생님 때문에... 살아있어서
얼마나 좋은 지 아세요?
중년, 소희를 바라보고 하경이 소희와 중년 남을 민망한 듯 바라본다.
$#6. 복도
하경, 병실을 나와 다른 병실 앞에서 수연과 마주친다.
수연, 목례를 하곤 소희의 병실 앞에 잠시 멈추어 서는 듯.
그러다 바삐 복도 끝으로 사라진다.
하경이 다른 병실로 들어가려 할 때 중년 남이 달려온다.
중년 남, 멍한 눈으로 하경을 바라본다.
중년 뇌 이식이란 거 말입니다. 어떻게 하는 겁니까? 내가 해 줄 참
입니다. 혈액형은 같습니다, 저 애랑...
$#7. 중환자실
인찬이 MR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인찬, 입술을 한번 지그시 물고는 뒤돌아 준섭을 바라보면 준섭이 싱긋 웃으며
인찬을 바라보고 있다.
인찬 일어나셨어요, 선생님? 심심하시죠?
준섭 안 심심해. 너 구경하는 거 참 재미나.
인찬 뭐가 그렇게 재미나세요?
준섭 꼭 연속극 보는 것 같다. 백색 까운 입고 왔다갔다. 연기자보
다 더 낫다, 니가.
어울려.
인찬 어울릴 게 뭐가 있습니까? 입으면 그게 그거지.
준섭 아니야, 이 녀석아. 넌 가운이 어울리고 난 환자복이 어울리
고.. 너 만나려고 내가 병치레를 하나보다, 인찬아. 고생한 보
람이 있다.
인찬 (가운을 벗어서 어렵사리 준섭에게 입힌다)
준섭 뭐해, 이 녀석아.
인찬 오늘 하루만 입고 계세요. 선생님은 하루만 입고 나면 그대로
폼이 날 겁니다. 전, 이 까운 적응하는데 4년이 걸렸습니다, 선
생님. 아직도 그리 편친 않구요.
준섭 야, 이놈아. 함부로 이런 걸...
벗겨, 얼른 (옷을 어렵사리 벗으려 한다)
인찬 입고 계세요.
인찬이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려 할 때
준섭 나 수술 안한다. (이미 까운의 한쪽 팔을 뺀다)
인찬, 걸음 멈춰서 다시 고개 돌린다.
준섭 (옷을 주며) 수술 안해.
$#8. 폐쇄 병동
문이 열리고 재봉이 사진을 들고 주변을 둘러본다.
순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스테이션으로 잽싸게 온다.
아무도 없다.
재봉 (조그만 소리로) 여보세요.. 아무도 없어요? 여기요.
간호사가 나온다.
간호사 네.
재봉 (간호사의 입을 막으며 조그만 소리로) 쉿. 박용식 선생님 어
딨어요?
간호사 (덩달아 소곤댄다) 아침부터 MR 기다리다가 조금 전에 나가
셨어요.
재봉 (봉투를 들이밀며 소곤댄다) 그럼 이것 좀 전해주세요.
순영 (소곤댄다) 그게 뭔데?
재봉 (소곤댄다) 문순영, MR이요,. (갑자기 뒤를 돌아보다 화들짝
놀란다) 악.
순영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놀랬잖아. 반갑다, 자기. 일루 와. (재
봉의 손을 잡아끈다)
재봉 아줌마, 저 지금 바쁘거든요. (나가려 하자)
순영 바쁘긴 쥐뿔도 아닌 게 뭐가 바빠. 자, 가자. (간호사에게) 우
리 나갔다 올게. 일 있으면 연락 줘.
재봉 (손을 뿌리친다) 이 아줌마가 미쳤나?
순영 (재봉을 쏘아본다) 뭐?
재봉 (실수한 듯) 아니, 그게 아니구요... 미친 게 아니라 단순히.. 뇌
기능이...
순영 아픈 상처를 건드리는구나. (가발 벗으며) 허재봉. (재봉의 양
손을 자신의 머리에 올린다) 이거 자기 가져, 난 필요없어. 자
기, 심심하면 열고 닫고 맘대로 갖고 놀아, 그때처럼...
재봉 (순영의 민머리에 가발을 씌워준다, 애교를 떤다) 에이, 그런
심한 말을 하세요? 뭐하고 놀까요? 절 갖고 노세요, 그냥.
순영 (재봉의 뒤통수를 어루만진다) 그래, 넌 내거야. 가자. 다 비켜,
문 열게.. (손바닥을 들어보이면)
재봉 가긴 어딜 가. 그냥 여기서 잠깐만 놀면 되잖아, 응? 자꾸 밖
으로 나댕기면 병이 안 났지.
이때, 재봉 뒤에서 정신과 레지던트.
레지1 허재봉 선생만 괜찮다면야 저흰 문제 없지요. 제가 퍼미션 내
드릴까요, 허선생?
재봉 (레지1을 치며) 야... 아.
순영 자기야. (가발을 벗으려 하자)
재봉 (징징댄다) 왜 자꾸 가발은 벗어, 무섭게.
가자.
재봉, 순영의 팔짱을 낀다.
$#9. 병원 밖, 일각
순영이 폴짝폴짝 뛰고 있다.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 놀이를 하는 순영
순영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 삼천리 무궁화 이 강산에...
쭈그리고 앉아 고무줄을 잡고 있는 처량한 재봉.
$#10. 병원 복도, 공중전화
준서가 전화를 하고 있다.
준서 너 편한대로 해라. 난 의국에서 지내면 된다. (짜증스레) 승미
야! 우리 전화로까지 이러지 말자, 응? (매정하게) 야, 나 바뻐,
그만해 끊어.
준서, 전화를 끊고 뒤돌아서면 동석모가 섰다. 준서, 까딱 인사를 하곤 가려하는
데...
동석 모 담당의 변경 신청한 건 아시죠?
준서 압니다, 곧 바뀔 겁니다. (고개를 돌리며) 하지만 그런다고 동
석의 상태가 달라지는 건 아닙니다.
동석 모 (냉정하게) 알죠, 물론. 하지만 선생님에 대한 신뢰도엔 영향을
미치겠죠.
준서 ...글쎄요, 그럴까요?
준서, 동석 모에게 얼굴을 돌려 자신있는 미소까지 지어보인다.
$#11. 사회 복지과
변호사가 소파에 앉아 차트며 서류들을 보고 있다.
그 앞에 앉아 준서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
변호사 하선생님.
준서 예.
변호사 저 믿으세요.
준서 네?
변호사 제가 이 병동에 소송 건만 1년에 열 건이 넘게 처리합니다. 그
런데 소송에서 한번도 져본 적이 없습니다.
준서 다행이군요.
변호사 근데 말이죠, 그 중 3분의 2는 환자 측과의 합의가 성사된 케
이스지요. 그 얘긴, 그게 가장 좋다는 겁니다, 변호사 입장에
서.
준서 합의할 건덕지가 없습니다. 의료상의 실수는 없었으니까요.
변호사 선생님들 실력이야 제가 알죠. 그럼요, 헌데 무식하지 않습니
까, 우리나라 사람들... 예후만 나쁘면 그저 의사 물고 늘어지
고.. 근데 드러운 건 그게 소문이 나봐야 이사한테 황이거든요.
준서 자료 대롭니다. 수두증 때문에 수술을 했고 성공적으로 뇌척수
액을 제거했습니다. 수두증은 치료가 된 겁니다.
변호사 핵심은 그게 아니라 10살짜리 꼬마라는 거죠, 환자가...
선생님, 판사도 아이를 키우고 있거나 키웠던 적이 있지 않겠
습니까?
준서 환자가 아이든 어른이든 전 제가 할 바를 다했습니다.
변호사 아유, 그러시겠죠. 물론, 근데 말이죠, 그걸 누가 알아줘야죠.
무식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꼬나본다) 보호자한테는 상냥
하게 대하고 계시죠?
준서 상냥하게요? 상냥하면 재판에 이길 수 있는 겁니까? 참 단순
하네요, 재판. (냉소하곤 일어선다) 제가 뭘 준비해야 되는 건
지 간단하게 설명해주시지요.
변호사 선생님, 대인 관계는 어떠시죠?
준서 ...
변호사 하도 쌀쌀맞으셔서... 증언해줄 의사 한 분 정돈 확보하실 수
있으십니까? 유능하고, 권위도 있고, 경험도 뒤지지 않은 분으
로.. 하선생을 잘 도와줄 수 있는 분이어야겠죠? (준서의 눈치
를 보다가) 판사는 제가 맡고 의사는 선생님이 맡고.
준서 알겠습니다.
준서, 바삐 나간다.
변호사 (고개를 흔든다) 곧 죽어도 의사놈이라고 드립다 뻣뻣하네.
$#12. 진료실
등을 지고 앉아있는 현우
하경과 중년 남의 대화를 무심한 표정으로 듣는다.
하경 그거 그런 거 아닙니다. 산 사람 뇌를... 그러는 거 아니잖습니
까?
중년 남 제가 연구대상이 된다잖습니까. 조직검사하고 피검사하고... 또
뭘하면 됩니까?
하경 (소리친다) 그만 좀 하세요. 그 기분은 모르는 바는 아닙니다.
중년 남 (소리친다) 모릅니다. 선생님은 모릅니다...
하경 ...
중년 남 (우울하게) 삼십도 안된 애 입에서 살아있어 좋다는 말을 들으
면 선생님은 어떠세요. 가슴이, 머리 속이, 몸 속까지 깡그리
텅 비워지는 소름끼치는 그걸.. 느끼십니까? 아십니까? 그걸
모르시잖습니까, 선생님들은?
하경 ...
중년 남 절망적일수록 나날이 살리고 싶어지는데 어쩝니까?
현우 (등진 채)예배당에 가세요.
하경과 중년 남, 현우를 본다.
현우 (뒤돌아 앉으며) 아시죠, 소용없다는 거?
중년 남 ...
현우 또한 백번을 기도해봐야 죽음 앞에선 우습다는 것도 아실거
고.. 가서 하나님한테 욕설이라도 하세요. 이렇게 멍청하게 행
동하는 것보단 오히려 그게 낫습니다. (다시 몸을 돌린다)
중년 남 ...(멍하니 냉정한 현우의 뒷통수를 바라보다 일어서며, 하경에
게 인사를 한다) 미안합니다, 선생님.
중년 남, 쓸쓸히 나가면 하경이 현우의 뒷통수를 노려본다.
현우 (그대로) 최 하경. 한마디 하실 때가 됐는데...
하경 한 대 갈겨버렸으면 좋겠다, 너.
현우 난 나 못 때려. 왜냐하면... (돌아본다) 난 늘 니가 해야하지만
차마 못하는 일을 알아서 해결해주니까... 난 최하경의 해결사
다.
현우, 하경을 쏘아본다.
하경 또한 현우를 쏘아본다.
이때, 들어오는 준서.
둘 사이에서 벌어진 눈싸움 앞에 어찌할 바 모른 채 섰고...
$#13. 신경내과 의국
상희가 컴퓨터 앞에 앉아 작업을 하고 있으면 소희가 열려진 문을 노크한다.
상희, 돌아보면.
소희 (손을 뒷짐진 채) 저, 죄송하지만 한 수연 선생님 좀...
상희 (돌아서서 하던 작업을 하며) 여긴 환자분이 함부로 올 곳이
아닌데요.
소희 네. 죄송합니다. 한 선생님을 통 뵐 수가 없어서... 이것 좀 전
해주시겠어요? (손을 내밀면 습지에 쌓인 조그만 선물이다)
상희 책상 위에 두고 가세요.
소희 네. (책상 구석에 조심스레 선물을 올려놓는다) 그럼 꼭 좀....
소희, 인사를 꾸벅하고 나간다.
상희, 고개를 돌려 선물을 본다.
손을 뻗어 선물을 만지작대는 상희.
$#14. 판독실
수연, 필름을 들고 인찬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인찬 어떻게 한 겁니까, 네? 김소희씨 수술 거부할 때, 수연씨, 어떻
게 설득한 거냐구요. (간절한 눈빛이다)
수연 아니오, 선생님. 제 주제에... 그런 거 아니에요. 저 때문에 수
술 받은 거 아니에요. 선생님. 저, 잘은 모르지만 의사가 환자
를 설득한다는 거... 그거 우리들 착각 같아요.
사람들은 자기들 세상에서 알아서들 결정하고 해결하고... 김소
희씨도 그랬어요. 전 아무 것도 아니에요. (힘없이) 게다가 수
술해도 소용없었잖아요, 소희씬.
수연, 문득 문 쪽을 바라보면 소희가 문 앞에 두 손을 모으고 서있다.
수연, 놀란 눈으로 소희를 바라보고 소희, 그저 아무말 없이 서있다.
그저 그렇게 목석처럼 하염없이 서있다.
$#15. 스탭 의국
준서와 현우.
준서 현우야...
현우 뭔데 그렇게 미적대냐?
준서 너, 다음주에 시간 좀 돼?
현우 무슨 질문이 그러냐? 다음 주 언제?
준서 에이, 아니다. (일어선다)
현우 ...재판 잡혔어?
준서 (고개 끄덕)
현우 같이 가줘?
준서 내가 애냐? 같이 가주게? 됐다. (문을 나선다)
현우 다냐, 그게?
준서 (고개 돌리며) 하경이랑 작작 좀 싸워라.
준서 나간다.
$#16. 농구장 앞, 잔디밭
학생들이 농구를 하는 모습.
준서가 쭈그리고 앉아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하경이 그 옆에 와 앉는다.
하경 뭐냐? 왜 궁상떨고 앉았냐?
준서 가, 임마. 오빠, 사색 중이니까.
하경 얘기해봐, 너. (짜증스레) 답답하잖아.
준서 ...재판 잡혔어.
하경 그래서, 긴장돼서 그래?
준서 긴장은 임마. 쇼무대 서냐? 긴장을 하게...
하경 뭐 도와줄까? 말만 해.
준서 까불고 있네. 넌 그 수술할 때 여기 있지도 앉았잖아.
하경 ...오라. 그럼 현우 도움이 필요하겠구나. 그거였구나, 너.
준서 ...아니다. 누가 누굴 돕냐? (잔디밭에 벌렁 눕는다)
하경 준서야, 좀 사나이답게 임마. 할말 있으면 까놓고 하고.. 답답
해, 너.
준서 현우처럼 사나이답게?
하경 (일어서며) 야, 야. 일어나. 그만 퇴근할란다, 나.
준서 하경아...
하경 ...
준서 조금만 같이 있자.
하경, 준서를 바라보다 웃어보인다.
하경 좋다. (준서의 옆에 같은 자세로 눕는다)
하늘을 보고 누운 둘의 모습이 부감으로 보인다.
준서 생각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이렇게.
하경 (준서의 손등을 잡는다) 잘 될거다, 준서야.
$#17. 스탭 의국 창가
준서와 하경을 바라보는 현우, 까운을 벗고 양복 상의를 걸치며 의국 문을 나선
다.
$#18. 소희의 병동
침대에 가로 누운 소희.
중년 남, 소희 손을 잡고 앉아있다.
중년 남 왜 그러니? 또 아파?
소희 안 아파요.
중년 남 아프지 마라. 너 아프지 않다니까 참 좋더라.
소희 (중년 남의 얼굴을 어루만진다)
중년 남 이 녀석, 사람들 보는데 남사스럽다.
소희 알고 있었죠?
중년 남 ?
소희 나, 알아요.
이때 병실로 들어오는 수연.
소희 앞에 선다.
소희 (수연을 바라보는 눈에 눈물이 맺힌다. 조용히) 나 좀 살려줘
요.
중년 남 (놀란다) 소희야.
소희 (벌떡 일어서며 소리친다) 살려줘, 살고 싶단 말야. 억울하단
말야. (환자들을 보며) 나도 이 사람들처럼 수술 받았는데 왜
나만 죽어. 살려줘요, 나 좀.
중년남 선생님, 얘 왜 이럽니까? 아니라 그러세요 (소희 보며) 너, 아
니야.
소희 당신들이 살려줘야잖아.
수연 (담담하다) 우린 못해요. 소희씨가 하세요.
소희 저 사람들처럼 나도 살려달라고... 왜 난 안돼.
수연 저 분들 만큼은 의지가 없잖아요, 소희씬. 저 분들이 쉽게 살
아가는 것 처럼 보이세요? 내가 보기엔 소희씨만큼 쉽게 세상
을 살려는 사람은 없습니다. ...소희씨. 의지만으로도 살아남는
사람들 많아요.
소희 (수연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잦아드는 목소리) 나, 그런 거 몰
라. 죽음을 기다릴 자신이 없어요. 자신 없어요.. (고개를 들어
수연을 올려다 본다) 살릴 수가 없다면 차라리 죽여줘요, 지
금. 난 기다릴 자신이 없어, 무서워.
수연의 옷깃에 얼굴을 파묻고 우는 소희
소희에게 몸을 맡긴 채 중년 남을 바라보는 수연.
중년 남 내가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멈춘 듯 그 자리에 감도는 정적과 소희의 울음소리.
수연의 손이 소희의 머리를 가만히 어루만지면 (F.O)
$#19. 의국 안 (아침)
1층 침대에서 자는 상도와 2층에서 자는 재봉.
인찬이 세수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들어온다.
인찬 (상도를 흔들어 깨운다) 선생님, 그만 일어나세요. 저 회진준비
하러 갑니다.
이중창으로 코를 고는 상도와 재봉.
전화벨 소리.
상도, 눈을 감은 채 전화기를 잡더니 2층 재봉의 곁으로 올린다.
그리곤 다시 골아 떨어진다.
재봉, 눈을 감은 채 전화기를 잡더니 아래로 집어던진다.
상도의 얼굴로 날아드는 전화기.
상도의 괴성.
$#20. 병동 스테이션 (아침)
상도, 이마엔 반창고를 붙이고 인상을 긁으며 스테이션에 와 선다.
은주가 간호사실에서 나온다.
은주, 상도를 보면
상도, 뒷머리를 만지작댄다.
상도 (인상을 긁으며) 수간호사 선생은?
은주 과장님 진료실 가셨습니다, 선생님.
상도 901호 김응찬씨, 채혈 누가 했어? 당신 아니야?
은주 제가요? 잠깐만요. (노트를 뒤적인다) 그러네요. 제가했는데요,
선생님? 아, 그 분이 김응찬이구나.
상도 (차트 던지며) 이 친구야! 그 환자 ABGA(동맥채혈) 하랬지,
Vein Sampling(정맥채혈)을 하랬어? 학교 졸업했으면 그 정돈
기본 아니야? 내가 왜 일개 간호사 때문에 바보 취급 당해야
돼, 응? 병리과 놈들한테 내가 얼마나 망신을 당했는지 당신
알아?
은주 (난감해 한다) 어떡하죠, 그럼? 제가 가서 제가 그랬다 그럴까
요, 선생님?
상도 ...내가 심한 욕 한마디하지. 당신은 간호계의 허재봉이야. (당
당하게 뒤돌아 선다)
은주 근데, 선생님...
상도 (혹시나 해서 다시 쌍가마를 덮는다) 또 뭐?
은주 (진지하게) ABGA가 뭐예요?
상도 (한심하단 듯) 하.. 너, 대학 나왔니? 에 비 쥐 에이. Aterial
Blood Gas Analysis! 동맥채혈.
은주 (이마를 친다) 맞어? 에터리얼 블러드 게스 아날리시스! (진지
하다) 선생님, 제가 학교 다닐 때요. 한가닥 했거든요. 그래서
미처 공부할 시간이 없었어요. (눈을 감고 외운다) 에터리얼
블러드 가스 아날리시스! 에이 비 쥐... 에이...
상도, 기막힌 표정으로 은주를 바라보고 있다.
은주, 문득 눈을 번쩍 뜨더니 상도에게 펜을 내민다.
은주 선생님, 스펠링 좀 적어주세요. (자신의 손바닥을 내민다)
$#21. 소희 병동
조그만 가방을 가지고 들어오는 중년 남.
중년 남 뭐가 들었게 급하게 이걸 찾니?
소희 (미소짓는다) 그간에 조금씩 모아놓은 게 있어요.
중년 남 소희야, 괜한 짓 마라. 신변을 정리하려 든다던가... 그런 거.
그냥 살아온 대로 그렇게 살면 안되겠니?
소희 아저씨.
중년 남 그래.
소희 난 후회 없어요, 아저씨 사랑한 거.
근데 언제까지 나 참을 수 있겠어요?
중년 남 ...난 걱정마라. 끄덕없다.
소희, 중년 남의 손에 자신의 손깍지를 끼고 웃어 보인다.
$#22. 복도
인찬이 상기된 표정으로 준섭 처를 바라본다.
인찬 사모님, 수술비 때문에 그러세요?
준섭 처 그렇지만은 않다... 그래, 돈도 없다, 우리.
인찬 그것 때문이라면 걱정 마세요.
준섭 처 그 때문만은 아니라잖니.
인찬 여긴 병원입니다, 사모님. 돈 있으면 쉬었다가 돈 떨어지면 나
가는 무슨 호텔 방이 아닙니다. 나, 의사예요. 의사 지시 없이
는 한 발짝도 못 나갑니다. 여기선 선생님이 더 이상 제 선생
님이 아닙니다. 제가 선생님의 선생님이고 제 말을 전적으로
따라야 합니다.
준섭 처 인찬... 담당 선생님한테 허락 받았다.
인찬 (눈꼬리가 올라간다) 장현우 선생님이요?
$#23. 중환자실
개인회진을 돌고 있는 현우.
간호사를 대동하고 약품지시를 하고 있다.
다시 무의식 환자 앞에 선 현우, 꼬집어보려다 환자의 몸을 흔들어본다.
물끄러미 환자를 보는 현우.
현우가 카덱스 보고 옆 환자로 가려는데, 발갛게 달아오른 인찬이 서있다.
인찬 수술비 제가 냅니다.
$#24. 중환자실 앞, 복도
현우와 인찬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현우 나한테 허구헌날 꼬집히는 저 환자, 일명 식물인간. 그 말 참
우습다, 난. 식물하고 인간은 종이 다르잖아. 그게 인간인가,
식물인가.
인찬 ...
현우 저 사람 죽어갈 때 살려놨더니 보호자가 엎드려서 절을 했어.
하지만 지금은 저런 식으로 살릴 줄은 몰랐단다. 원망하더라.
인간이 아니거든. 만약 그네들 동의 없이 내 맘대로 저 사람
살려놓은 거라면? 나, 저 사람, 보호자, 지금 어떤 상태에 빠져
있을까? 연상이 되나? 선택권은 보호자와 환자에게 줘라. 의사
라는 거 대단할 게 없어. 아는 바를 설명해 주는 거, 그것 뿐
이다.
인찬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는요. 가난 때문에... 돈이 선택권을 쥐
고 있단 생각은 않습니까?
현우 돈 또한 그들 선택의 일부라면 난 존중할 거다, 돈의 선택.
인찬 ...(현우를 노려보다가) 그 잔인한 결단력이 존경스럽습니다. 징
그럽기까지 한 그 결단력 말입니다.
인찬, 돌아서 복도를 걸어나간다.
$#25. 여자 화장실
세면대에서 흐르는 물소리.
세면대 옆에 놓여진 소희의 핸드백.
또르륵 또르륵 구르는 플라스틱 빈 약통과 그 아래 떨어져 있는 한두개의 알약.
그리고 그 옆에 힘없이 놓여진 소희의 손
$#26. 복도
하경, 숨을 헐떡이며 복도를 뛰어가는 모습.
거친 하경의 숨소리.
$#27. 병실
신경외과 전 직원이 모여있고 현우가 소희의 위에 올라서서 인공심폐술을 하고
있다.
하경, 숨을 헐떡이며 들어선다.
현우 (다섯번을 한 후에 상도를 본다)
상도 (옆에 모니터를 본다) ...맥박이 없습니다.
하경 더 힘껏 눌러봐, 현우야.
남준 (재봉에게) 에피네프린(EPINEPHRINE 부신에서 나오는 호르
몬제) 1밀리 넣어.
재봉 예, 과장님.
재봉이 링겔관에 주사약을 투여한다.
의사들 뒷켠에서 입술을 굳게 문 채 서있는 중년 남의 못.ᄇ
이때, 간호 보조원들이 밀고 오는 이동 전기충격기.
하경, 기계를 재빨리 집어든다.
하경 (현우를 밀치고 들어온다) 내가 할게.
전기 충격기가 콘센트에 꽂힌다.
하경 200주울.
쾅... 소희의 몸이 솟구친다.
하경 (모니터를 보곤 다시) 300주울.
남준, 얼굴을 쓸어내린다.
하경, 기계를 던지고 소희의 가슴에 올라가 심박을 한다.
하경 (숨을 헐떡이며) 소디엄 바이카보네이트(Sodium bicarbonite
중탄산나트륨)
상도 이미 투약했습니다, 선생님.
하경 그러니? 아트로핀(atropine 경련 완화제) 3밀리 넣어.
상도 그것도..
하경 (넋이 나간 듯) 그래? 괜찮을 거야, 그럼.
하경,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볼을 타고 흐른다.
소희의 복부를 밀어올리며 심폐소생술을 하는 하경의 처절한 모습.
힘없이 병실문을 나가는 중년 남.
남준 됐다, 그만해라.
하경, 남준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계속 심박을 하고 있다.
남준, 가만히 하경을 보고 있다가 밖으로 나간다.
하경의 모습을 지켜보는 직원들.
현우 하경아.
하경, 가만히 멈춘다.
하경의 팔을 잡아주려는 준서.
현우, 하경을 바라본 채 준서의 손을 제지한다.
하경, 힘없이 내려와 문을 향해 천천히 걷는다.
수연이 그 앞에 서서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소희를 바라보고 섰다.
수연을 바라보는 하경의 눈빛이 죄스럽다.
지나쳐 힘없이 나가는 하경.
수연, 굳은 듯 그 자리에 섰다.
현우 내가 손을 댈 순 없는 환잔 거 같은데... 한수연씨.
수연, 현우를 바라보다 소희에게 다가간다.
마치 편안히 수연을 바라보듯 눈을 뜬 채 숨을 거둔 소희.
소희의 눈에 가만히 손을 가져다 대는 수연.
눈이 감겨지고..
수연이 그저 한참을 바라보다 머리 수건을 가지런히 매만진다.
수건 위로 떨어져 번지는 한방울의 눈물.
$#28. 복도
말없이 걸어가는 하경.
준서가 뒤따른다.
준서 하경아, 최하경. (하경을 잡느다)
하경 놔.
준서 어딜가는지 모르지만 같이 가자.
하경 그럴 필요없어. 나, 수술 있어.
준서 미쳤어, 너?
하경 비켜, 한방 맞기 전에...
하경, 터덜터덜 걸어간다.
$#29. 여자 갱의실
수술복과 모자를 쓴 채 탈의장에 부착된 조그만 거울을 뚫어지라 보고 선 하경.
마스크를 쓴다.
쾅, 거세게 닫히는 탈의장 문.
$#30. 비상계단 앞
비상계단을 지나치는 수연.
문득 보여지는 중년 남의 옆모습.
계단에 쭈그려 앉아 얼굴을 무릎 깊이 파묻은 채 꼼짝 않고 있다.
중년 남 옆에 함께 쭈그려 앉는 수연.
들썩이기 시작하는 남자의 어깨.
수연, 얼핏 남자를 바라보다 비상구 간판의 푸른 등만 바라본다.
$#31. 수술실 복도
수술복의 하경이 코너를 돌며 수술방 앞에 선다.
심호흡을 하곤 수술방 버튼을 누르려는데 현우가 막아선다.
현우 옷 벗어. 과장님 지시야.
하경 ...
현우 교체됐어, 나랑.
하경 장현우 선생.
현우 너, 수술 잘해. 알아. 하지만 너 지금 부상당했어. 니 치료가
더 급해. 이 수술, 우리에겐 루틴이지만 환자한테 전쟁이야.
너, 빠져.
하경 장현우, 말해봐. 이런 일 한두번이니, 나?
현우 ...
하경 그랫 실수한 적 있니?
현우 ...그래, 없다.
하경 난 이 버튼을 누르고 이 방에 들어서는 순간, 저 환자가 치르
는 전쟁만 생각해. 내 발이 버튼에 닫는 순간, 내 부상도 아물
어.
현우 ...
하경 비켜줄래?
가만히 하경을 바라보는 현우의 눈빛.
현우의 발이 수술실 버튼을 누른다. 드르륵 열리는 수술실 문
현우 (비켜선다) 널 믿는다, 최하경
하경 (가만히 바라본다) 고맙다.
$#32. 신경내과
힘없이 걸어오는 수연.
상희가 흘깃 수연을 바라본다.
상희 NS 업무까지 보느라 바쁘신 한수연 선생님, 시간 있으면 거기
책상 위에 사진 좀 집어줄래?
수연, 상희를 쏘아보다가 힘없이 필름 봉투를 집는데 그 아래 놓여졌던 소희의
선물이 바닥에 떨어진다.
쨍그랑.
상희 어머, 야, 그거 김소희가 너 주라고 갖다놨는데 조심하지.
수연, 놀라서 선물을 집어들어 포장지를 펼치면 천사문양이 양각으로 조각된 머
그잔이다. 깨어진 천사의 날개를 들어보는 수연.
상희 (슬쩍 보더니) 싸구려네. 다행이다, 얘.
수연, 상희를 향해 필름 봉투를 던진다.
상흐, 놀란 눈으로 수연을 바라본다.
수연 선생님, 그러지 마세요, 오늘만은요.
수연, 어금니를 물며 횡하니 나온다.
$#33. 수술실
삐삐거리며 모니터에 심박의 흐름이 보인다.
하경, 메스를 들고 있다.
상도가 어시스트를 하며 하경의 모습을 숨죽여 바라본다.
하경의 손에서 가늘게 떠리는 메스.
댔다가 재빨리 뗀다.
흐르는 땀.
하경 땀 좀...
간호사, 하경의 땀을 닦아준다.
다시 메스를 들이대다가 재빨리 테이블에 놓으며 역시나 재빠르게 일어서서 나
가며.
하경 (씩씩하게) 5분만 쉬자. 불만있는 사람.
그저 하경을 바라보는 수술 스탭들.
하경 없지? (미련없이 옷을 벗으며 나간다)
태동과 상도, 수술실 스탭들, 근심스런 표정.
$#34. 갱의실
하경, 거울 앞에 서서 짧은 복식호흡을 한다.
하경 (거울에 대고 강단있게) 시시하게 굴지 마라. (다부지게 입술
을 닫는다)
$#35. 수술실 안
간호사에 의해 끼워지는 장갑.
하경, 자리에 와 앉는다.
하경 메소 (상도가 건넨다) 고상도.
상도 네. 선생님.
하경 우리 음악 듣자.
상도 네? 그럴까요? (밖으로 소리친다) 13번.
간호사E (소리친다) 네.
상도 언니, 여기 뮤직.
메스를 든 하경의 눈매.
하경 오케이 잘해봅시다, 우리.
흥겨운 록큰롤 플레이.
$#36. 중환자실
잠든 준섭의 머리맡에 선 인찬.
준섭의 손등을 어루만지며 속삭인다.
인찬 1초라도 더 살 수 있다면 살아야 합니다. 제가 할 겁니다. 선
생님.
$#37. 로비
깨어진 커피잔을 어루만지며 앉아있던 수연.
참았던 눈물이 흐른다.
현우E 옷 벗어.
수연, 눈을 똥그랗게 뜨고 얼굴을 들면 현우가 섰다.
커피잔을 뒤로 감추는 수연.
현우 까운 벗고 울어. 사람들 돌아다니는 길목에서 의사가 산파하
나? (손수건을 내민다) 얼굴 닦아라. 그 까운을 벗던가...
수연 (손수건을 받아든다)
현우 단순해져라, 제발들. (가려다가) 그리고.. 최하경 선생, 좋은 의
사다.
현우, 멀어져간다.
$#38. 갱의실
재봉이 수술복 차림으로 소파에 누워 잠을 자고 있다.
태동이 들어와 발로 재봉을 툭툭 친다.
태동 일어나!
재봉 (눈이 뻘개서 일어난다) 아, 왜요?
태동 (담배 한 대 물며) 최하경 선생 다 끝났단다. 상도가 너 부른
다.
재봉 (짜증을 낸다) 내가 무슨 마징가 제트야? 이리 굴리구 저리 굴
리구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에이!
태동 (뒷통수를 친다) 이게 어따대고 신경질이야. 신경외과가 아무
한테나 신경질 부리는 과야? 그렇게 신경 거슬리게 하는 게
신경외과야? 응?
비켜, 임마. 신경 곤두서. (소파에 눕는다) 아이고, 신경을 썼더
니 신경통이 도지네.
$#39. 갱의실
수술복 차림으로 지친 듯 이마에 팔을 올린 채 소파에 누운 하경.
상념에 잠긴 듯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하경.
힘없이 수술복을 벗는다.
$#40. 수술실
상도가 수처를 하고 재봉이 옆에 서서 보조를 한다.
재봉, 눈에서 눈물이 난다.
상도 야, 너 왜 울어?
재봉 하품하면 눈물 나잖아요.
상도 간호사 언니, 이거 끝나고 허재봉 눈하고 입도 꼬매버리자.
이때 들어오는 현우.
현우 끝났냐?
상도 예, 아주 환상적으로 끝났습니다, 선생미. 뚜껑만 덮으면 오늘
은 쫑입니다.
현우 하선생은 갔어?
상도 네, 선생님.
현우 알았어.
현우, 나가면
상도 (재봉에게) 야 썩션!
재봉, 졸린 듯 눈을 깜빡대다가 썩션기를 무심하게 들이댄다.
상도 (놀라서) 어... 어.. 조심해!
재봉, 눈을 번쩍 뜬다.
상도 이 나쁜 놈아. 너 혈관을 건드리면 어떡해? 피 터졌네. 이 놈
을...
재봉 어?
상도 야, 빨리 최하경 선생님 불러, 빨리! 야, 장선생님 아직 안 갔
지? (간호사에게) 언니, 장 선생님.
간호사 (큰소리로 다급히) 장현우 선생님.
$#41. 수술실 복도
현우를 부르는 소리에 현우, 뒤돌아 본다.
재봉E (울먹이는 소리) 선생님, 피 터졌어요.
$#42. 차 안
하경의 시점에서 보이는 도로.
그 옆 버스 정류장에 수연이 섰다.
$#43. 버스 정류장
창문이 내려지며 하경이 얼굴을 내민다.
하경 타요.
수연 괜찮습니다, 선생님. 전 그냥...
하경 부탁인데.. 나랑 쐬주 한잔 합시다.
물끄러미 하경을 바라보는 수연.
$#44. 수술실
현우 컷하자. Seissor
상도 (가위를 주며) 다시 시작해야 되죠, 선생님?
현우 (매섭게) 말 걸지마. 이제부터 너희들 나한테 한 마디도 하지
마.
상도 네. (재봉을 보며 눈을 치켜뜬다)
$#45. 병원 앞 - 포장마차
수연, 졸린 듯 고개를 떨군다.
수연과 하경, 이미 취했다.
하경 너, 술 잘 못하니? 의사는 술 잘 먹어야 돼, 야. 무슨 재미가
있니, 의사가? 난 술 없으면 의사 안 한다. 술만이 의사를 지
탱시켜준다고 난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우울하게) ...이거
먹고 내일이면 또 잊어버리잖니, 우리. 죽음은 또 다시 일상
속에 묻혀버리잖니. 너, 그거 안 되니? 난 되는데...
수연 저도 돼요, 뭐. 저도 의사잖아요. 저두요.
하경 그래, 맞다. 너 의사지?... 나도 의사고.. (수연을 물끄러미 바라
본다) 나, 너 참 부럽다. 너의 그런 시절이 난 부럽다.
수연 선생님.
하경 어?
수연 장현우 선생님이요... 선생님 좋아하나 봐요. (그리곤 탁자 위
에 픽 쓰러진다)
하경, 우울하게 잠든 수연을 바라본다.
한잔의 술을 말없이 넘긴다.
$#46. 의국
재봉이 나가 떨어진다.
상도의 진지한 표정.
상도 일어나.
재봉이 일어나면
상도, 주먹으로 얼굴을 때린다.
다시 일어서는 재봉.
다시 날아드는 상도의 주먹.
상도 넌, 새끼야, 살인자야. 우리가 들고 있는 게 뭔 줄 알어? 칼.
(다시 주먹을 날린다) 그래서 의사 아니면 살인자. 그 중에 넌
살인자야.
꺼져! 너 같은 새낀 텄어. 얼른 가, 새꺄.
재봉, 고개를 숙이고 있다가 까운을 벗어서 옆에 놓고는 머리를 숙여 가볍게 인
사하고 밖으로 나간다.
상도 (당황한다) 야 싸가지... 어? 진짜 가냐? (문밖에 서서) 야, 싸
가지. 가지마. 저 자식 증말 싸가지네. (다시 들어와 앉는다)
새끼가 삐져가지구... 아고 싸가지가 완전히 삐질이네... 이씨,
안 되는데...
상도, 전화기를 든다.
$#47. 병원 입구
병원을 나서는 재봉의 모습.
이때, 주머니에서 삐삐가 울린다.
잠시 삐삐를 들고서 멍하니 선다.
미련을 떨치듯 삐삐를 멀리 집어던지는 재봉.
바닥으로 떨어져 깨지는 삐삐.
깨어진 삐삐를 밟으며 입술을 굳게 닫고 걸어나가는 재봉.
$#48. 거리
길가 보도블럭 턱 위에 쪼그리고 앉은 둘.
하경의 무릎을 베고 눈감은 수연.
하경 갈 수 있니?
수연 네. (비틀대며 상체를 일으킨다)
하경, 핸드백에서 소희의 컵을 꺼낸다.
수연의 깨진 컵과 같다.
하경 이거, 소희씨가 준거다. 난 받을 수가 없어. (수연에게 내민다)
수연, 가만히 바라보다 컵을 받아든다.
가물대는 수연의 눈.
$#49. 현우의 차 안
신호등 앞에 서는 현우의 차.
건너편에 선 택시가 보인다.
이내 택시가 떠나고 그 자리에 쪼그리고 앉은 하경의 모습.
고개를 들고 일어서는 하경의 시선이 현우의 차창에 꽂힌다.
횡단보도를 비틀대며 걸어와 현우의 차창 앞에서 웃어보이는 하경.
현우, 길가에 그대로 차를 세우곤 급히 내려서며 하경을 부축한다.
하경 장현우, 내가 저 차를 탈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비틀대는 하경의 양 팔을 잡고 선 현우.
하경 (현우의 팔을 뿌리친다) 난, 니가 싫어... 미쳐버리게 싫어.
그리곤 그대로 현우의 품에 쓰러지는 하경.
하경을 품에 안은 채 아무 말 없이 선 현우.
도로 중앙에 세워진 차 뒤로 울리는 뒷 차들의 경적소리.
그 속에서 현우와 하경이 흔들림없이 안고 서있다.
포즈.
제 3 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