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천주교회 역사는 1533년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베트남에 도착하였을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곧이어
그리스도교 정신에 반대하는 왕실 법령이 발효되면서
1615년까지 그리스도교 신앙은
이 나라에 뿌리를 내릴 수가 없었다.
하지만 1615년 예수회 선교사들이
베트남 중부지역에 항구한 선교기반을 마련하면서
서서히 신앙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
1627년 예수회의 알렉산드르 드 로드(1591-1660) 신부가
북부 지역에서 선교를 시작하였다.
그는 그 지역에서 약 6,700명에게 세례를 주었는데
이로 인하여 1630년 베트남에서 추방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로드 신부는 다시 베트남으로 돌아왔지만
1645년 베트남에서 재 추방 되었다고 한다.
그는 나중에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가 세워지는
파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 전교회에서 교육받은 사제들이
곧바로 베트남에 도착하면서
베트남의 천주교 신앙은 급속도로 전파되었다.
1798년부터 1853년 사이에
베트남에는 두 개의 정치세력이 호각지세(互角之勢)를 이루면서
내전이 발생하였다.
이로 인하여 64명의 천주교인들이 순교하였다.
1900년 교황 레오 8세는 이들을 복자품에 올렸다.
1833년 왕실은
모든 천주교인들에게 신앙을 버리도록 명령하였고
이를 증명하기 위하여 모든 신자들에게
십자가를 발로 밟고 지나가라고 명하였다.
그로부터 50년 동안 약 30만 명의 신자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행된 박해로 많은 고난을 당하였다.
1847년 프랑스 전함들이 선교사들과
천주교 신자들을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베트남에 정박하였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명분이었고
사실은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화하려는
야욕을 드러낸 비극의 시작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1862년과 1874년 그리고 1884년
3차례에 걸쳐 베트남과 조약을 체결하면서
베트남 왕국의 통제권을 장악하였다.
그러나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는
1883년까지 여러 지방에서 계속되었다.
주교와 사제들은 모두 유럽 사람들이었는데
이들은 전부 붙잡혀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살해되었다.
1841년 프랑스 정부가 전함들을 보내 개입 하겠다고 위협하여
박해의 기세는 많이 수그러들었지만
1848년 새로운 황제가
선교사들의 목을 베어 오는 사람들에게는
두둑한 상금을 주겠다고 선포하여
2명의 사제 아우구스티노 쇠플러와 요한 루이스 보나르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1855년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박해가 다시 가혹하게 시작되면서
그로부터 몇 년 동안 수많은 신자들이 대거 순교하였다.
이로 인하여 수천에 달하는 베트남 천주교 신자들이 살해되었고
4명의 주교와 28명의 도미니코 수도회원들이 순교하였다.
기록에 의하면 1857년부터 1862년 사이에
115명의 베트남 출신 사제들과 100명의 베트남 출신 수녀들
그리고 5천 명가량의 베트남 천주교 신자들이 순교하였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수도원과 성당 그리고 학교가 파괴되었고
약 4만 명의 천주교 신자들이 토지와 재산을 빼앗기고
자기 고장에서 추방당하였다.
이 시기의 순교자들 가운데 28위가 1909년 복자품에 올랐다.
1862년 프랑스 식민지 군대가 사이공과 여타 지방들을 점령하자
베트남 정부가 항복하면서 체결된 조약에 의하여
베트남은 프랑스와 스페인에 배상금을 지불하였고
천주교 신자들에 대한 오랜 박해도 마침내 종식되었다.
그리하여 안남 또는 통킹의 순교자들이라고도 불리는
96위의 베트남 순교자들과 11위의 스페인 선교사들
그리고 10위의 프랑스 선교사들이 순교자로 시성되었다.
안드레아 둥락 안 짠(785년경-1839) 성인은
베트남 사람으로, 철저히 신앙 교육을 받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베트남에 활동하던 천주교 선교회에서
선교 사제로 일하던 도중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박해가
베트남 신자들에게 내려졌을 때 체포되었다.
당시 파리 외방전교회와 관련된 사제들은
박해의 특별한 표적이 되어
다른 신자들보다 더욱 혹심하게 고문당하였다.
그는 후에 성인이 된 베드로 티 신부와 함께 체포되어
그의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감옥에 갇혔으며,
그들은 감옥에서 심한 고문과 인간 이하의 처우를 받으면서도
고통을 서로 나누며 위로하였다.
그들 가운데는 후에 시성 된 테오판네 베나르 신부,
토마스 티엔 짠.임마누엘 풍반 레, 예로니모 예르모실라 주교,
발렌티노 베리오초아주교,
그리고 그 밖에 100여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드레아 둥락 신부는
1839년 12월 21일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교회와 역사,번역 송영웅 바오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