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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과 거룩함
히브리서 12장 14절
2026년 7월 12일 주일낮 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교회 진천
예배하는 모습처럼 일상의 삶, 직장, 마을, 학교, 식당, 마트, 버스, 거리 등, 날마다 순간마다 각 신자가 만나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와 모습으로 살것인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인터넷 sns, 댓글 등에서 신자의 생각과 말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점도 중요합니다.
히브리서 12:14은 신자가 하나님을 뵙기 위해 반드시 추구해야 할 두 가지 핵심 요소로 '모든 사람과의 화평'과 '거룩함'을 강조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개역개정)
따르라 (Διώκετε, Diōkete): '추구하다', '사냥꾼이 뒤쫓다'라는 뜻으로, 단순히 바라는 것을 넘어 열렬하고 적극적으로 뒤쫓는 행위를 의미합니다.
화평과 거룩함은 가만히 있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부단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화평함 (Εἰρήνην, Eirēnēn): 공동체 내부와 외부를 모두 포함한 모든 사람과의 평화로운 관계를 말합니다.
당시 박해 상황에 처해 있던 공동체에 분열을 방지하고 연대할 것을 권면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은 당시 유대계 기독교인들이 직면한 사회적 고립과 배교(신앙 포기)의 유혹이라는 독특한 박해 상황 속에서 기록되었습니다.
당시의 박해 상황은 사회적 압박과 유대 사회로부터 퇴출되는 것이었습니다.
히브리서의 일차 수신자들은 로마 제국 전반의 피비린내 나는 네로풍의 폭력적 박해보다는, 유대교 주류 사회와 가문으로부터 당하는 종교적·사회적 박해에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었습니다.
히브리서 12장에서 언급되는 '네로풍의 피비린내 나는 박해'는 히브리서가 기록될 당시(또는 직후) 성도들이 직면했던 로마 제국 네로 황제 시기(AD 64년경)의 참혹한 기독교 대박해를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나옵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히 12:4)
역사적 배경: 네로 황제의 로마 대화재 책임 전가
사건의 발단: AD 64년 로마 시에 일어난 대화재로 민심이 흉흉해지자, 네로 황제는 자신에게 향한 방화 의혹을 피하기 위해 당시 소수 종교였던 기독교인들을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잔혹한 박해 방식: 타키투스 등의 역사 기록에 따르면, 네로는 기독교인들에게 짐승의 가죽을 씌워 사냥개에게 찢겨 죽게 하거나,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밤에는 네로의 정원을 밝히는 인간 횃불(화형)로 삼는 등 극도로 잔인하고 피비린내 나는 처형을 자행했습니다.
히브리서의 1차 수신자들(유대인 그리스도인들)은 가산의 탈취나 사회적 소외, 조롱 같은 고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또한 점차 다가오는 로마의 물리적·피비린내 나는 박해의 공포 앞에 직면해 있었습니다.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저자는 성도들에게 너희가 지금 힘들고 지쳐서 유대교로 배교하려는 유혹을 받고 있지만, **"아직 (예수님이나 앞서간 믿음의 선조들처럼) 목숨을 잃고 피를 흘리는 순교의 자리까지 이르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히 12:4).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2~3절)에서 십자가의 고난과 부끄러움을 참으신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한 이유입니다.
앞으로 들이닥칠 '네로풍의 잔인한 피 흘림(순교)' 앞에서도 믿음을 저버리지 말고 인내하라는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재산 탈취와 고립: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고백하면서 유대 사회로부터 '배신자'로 낙인찍혀 재산을 빼앗기거나(히 10:34), 경제적 활동에서 배제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0:34 KRV
[34]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줄 앎이라
히브리서 10:34에서 성도들의 '산업(재산)'을 빼앗은 주체는 당시 기독교를 박해하던 '로마 관원 및 이방인 군중(사회적 핍박자들)'입니다.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조직적으로 박해한 로마 당국(관원)과 이에 동조한 불신자 군중입니다.
본문의 "빼앗기는 것"으로 번역된 헬라어 **'하르파게(ἁρπαγή)'**는 '폭력적인 약탈', '몰수', '강탈'을 뜻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 사회에서 기독교인들은 사회적 유대(황제 숭배 등)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고발당했고, 공식적인 '재산 몰수형'을 받거나 군중들의 폭력적인 선동으로 재산을 약탈당했습니다(참고 Gemini).
성도들이 이러한 재산 약탈을 당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갇힌 자들을 동정하고 그들과 연대했기 때문"**입니다.
33~34절을 보면, 성도들은 비방과 환난을 당해 구경거리가 된 이들의 친구(동역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감옥에 갇힌 기독교인들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찾아가 돕고 동정(공감)하면서, 자신들 역시 박해자들의 표적이 되어 재산을 몰수당하고 빼앗기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쁘게 감당할 수 있었던 이유는 **"더 낫고 영구한(영원한) 산업(하늘의 보화)이 있는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
땅의 일시적인 재산보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영원한 상급의 가치를 더 크게 보았기 때문에 박해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습니다.
히브리서 10:32~34 "너희가 비방과 환난으로써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고 혹은 이런 형편에 있는 자들과 사귀는 자가 되었으니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 앎이라"
헬라어 성경의 'ἁρπαγή(harpage)' 개념은 사도행전이나 당시 로마법에서 신앙적 소수자들에게 가해진 법적 몰수나 폭력적 강탈을 지칭할 때 사용됩니다.
* F.F. 브루스(F.F. Bruce)의 『히브리서 주석』: 당시 수신자들이 직면한 박해는 생명을 잃는 순교(12:4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까지는 이르지 않았으나, 사회적 격리와 법적 권리 박탈로 인한 '재산 몰수 및 약탈'이 주를 이루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존 칼빈(John Calvin)의 『히브리서 주석』: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고 갇힌 자들을 돌봄으로써 세상의 미움을 받아 집과 재산을 탈취당했으나, 하늘의 영원한 유산을 바라보며 이를 기꺼이 인내했다고 설명합니다.
계속되는 소외와 고난 때문에, 비교적 안전하고 합법적 종교로 인정받던 유대교로 돌아가려는(배교) 영적 위기에 처해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하라"는 것은, 박해자나 자신을 멀리하는 유대 공동체를 향해 증오나 폭력으로 맞서지 말고, 그리스도인으로서 평화를 유지하라는 권면입니다.
고난이 길어지면 공동체 내부에서 원망과 분열이 생기기 쉽기 때문에, 성도들 간에 서로 화목하여 믿음을 지켜내라는 뜻도 포함됩니다.
"거룩함을 따르라"의 의미는, 화평을 추구하되, 세상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교로 돌아가거나 로마 사회의 우상숭배적 문화에 동화되지 말고, 구별된 성도로서 정체성(거룩함)을 끝까지 사수하라는 명령입니다.
히브리서 12:14("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는 당시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 및 다신교적 우상숭배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정체성을 드러냅니다.
로마 제국에서 우상숭배는 단순한 종교 행위가 아니라 국가 축제, 비즈니스(조합), 일상 사교의 핵심이었습니다.
이를 거부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무신론자'나 '인류를 미워하는 자'로 낙인찍혀 사회적 갈등을 겪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도 교회 내부의 결속을 다지고, 외적으로도 가능한 한 모든 사람과 평화적 관계를 유지하라고 권면합니다.
로마의 종교 문화는 도덕적 청결보다는 신들을 달래는 '의식(Ritual)'에 집중되어 있었고, 성적 부도덕이 종교 행위에 동반되기도 했습니다.
반면 히브리서가 강조하는 '거룩함(하기아스모스)'은 세속 문화로부터 구별과 도덕적 순결을 뜻합니다.
로마인들과 '화평'을 구하되, 그들의 우상숭배와 부도덕에 동참하지 않는 '거룩함'을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로마인들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을 비웃으며 자신들의 화려한 신상과 황제의 권력을 과시했습니다.
세상의 권력자나 우상이 아니라, 오직 구별된 삶(거룩함)을 사는 자만이 참된 창조주 하나님(주)을 면전에서 보게 될 것임을 선언하며 박해 속의 신자들을 위로합니다.
히브리서 12:14에서 ‘주를 본다’는 것은 구원의 최종 완성인 종말론적 구원을 얻어 하나님(또는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임재 앞에 나아가 그분을 대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4)
영광스러운 대면 (지복직관, Beatific Vision): 성경에서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단순히 시각적인 인지를 넘어, 죄가 완전히 씻겨진 상태에서 하나님과의 완전하고 친밀한 교제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의 맥락(믿음의 경주를 달리는 성도들)에서 이는 배교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한 자들이 장차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서 얻게 될 궁극적인 구원의 영광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거룩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대속으로 거룩해진 신자가 삶 속에서 그 거룩함을 실제로 '추구(따름)'하지 않는다면 본질적으로 그분의 임재 앞에 설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① 성경 내적 근거 (Parallel Passages)
마태복음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예수님의 산상설교와 사상이 정확히 일치합니다.
내적인 정결(거룩)이 하나님을 뵙는 전제조건임을 보여줍니다.
요한일서 3:2: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 종말론적으로 주님을 대면하여 보게 될 소망을 확증합니다.
요한계시록 22:4: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그들의 이마에 있으리라" —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될 구원의 극치를 '얼굴을 보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② 학문적 주석 및 문헌적 근거 (Commentaries)
존 칼빈(John Calvin)의 히브리서 주석: 칼빈은 이 구절의 '주를 본다'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과 동일시했습니다.
거룩함 없이는 하나님과 연합할 수 없으며, 거룩함은 성도가 주님을 뵙기 위해 걷는 믿음의 경주의 필수적인 방향성이라고 설명합니다.
NICNT 주석 (개레스 리 코커릴, Gareth L. Cockerill): 코커릴은 여기서 거룩함을 일회성 선물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제공하신 정결함 안에서 **"교회가 지속적으로 살아가는 삶"**으로 정의합니다.
즉, 주를 뵙는 것은 믿음의 경주 끝에 도달할 하늘 성소(임재)로의 진입을 의미합니다.
WBC 주석 (윌리엄 레인, William L. Lane): 레인은 '주를 보는 것'을 구약의 제사장적 배경과 연결합니다.
부정(unclean)한 자는 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듯이, 화평과 거룩을 따르지 않는 자는 궁극적인 하늘 성소에서 주님을 대면(Vision of God)할 수 없다는 배교에 대한 강력한 경고로 해석합니다.
오늘날 우상숭배 문화는 종교적 대상을 넘어 현대 사회의 물질주의, 기술 전능주의, 그리고 미디어 중심의 팬덤 문화로 형태를 바꾸어 나타납니다.
전통적인 신상(神像)을 숭배하는 과거와 달리, 현대의 우상숭배는 일상적이고 세련된 방식으로 개인의 삶에 깊숙이 자리합니다.
현대적 우상숭배는, 자본과 물질주의 (Money & Materialism)로 돈과 소비재가 행복의 기준이 되는 현상입니다.
명품, 부동산, 금융 자산 등이 인간의 가치를 증명하는 새로운 신앙처럼 작용합니다.
미디어와 팬덤 문화 (Celebrity & Fandom)는 연예인, 인플루언서, 스포츠 스타 등을 단순한 선호를 넘어 절대적인 존재로 추종하는 문화입니다.
이들의 삶을 모방하고, 이들을 향한 비판을 무조건적으로 방어하는 양상을 보입니다.
중년 여성들이 유명 가수들을 추종하고 쇼를 따라 다니고 음반, 기념품 등에 과도한 돈을 쓰기도 합니다.
가족을 소홀히 합니다.
기술과 알고리즘 (Technology & AI)으로, 스마트폰, 소셜 미디어, 인공지능(AI)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뜻합니다.
기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과 함께,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정보에 주체성을 잃고 종속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능력주의와 자기 우상화 (Meritocracy & Self-Idolatry)로, 개인의 성공, 스펙, 외모 등을 극단적으로 가꾸며 자기 자신을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현상입니다. '내 힘으로 모든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신념이 강해지면서 타인을 향한 혐오나 소외를 낳기도 합니다.
현대의 우상숭배는 **"인간이 만든 피조물(돈, 기술, 스타)을 창조주의 자리에 두거나, 인간 스스로가 신의 자리에 앉으려는 경향"**으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외형은 변했지만 본질은 과거와 동일하게 인간의 유한함을 가짜 위안으로 채우려는 심리에서 비롯됩니다.
균형의 강조 되는데, 세상과 평화롭게 지내기 위해 신앙의 본질을 타협(배교)하는 것을 경고하며, "화평"과 "거룩함"은 동시에 추구해야 할 가치임을 보여줍니다.
거룩함 (Ἁγιασμόν, Hagiasmon)은, 구별됨, 즉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 죄로부터 분리되는 성화의 과정을 뜻합니다.
종말론적 복으로, 성경에서 '주를 본다'는 것은 최종적인 구원의 완성, 즉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 속으로 들어감을 의미합니다 (마 5:8, 계 22:4).
거룩함이 구원을 얻는 '공로'라는 뜻이 아니라, 참된 믿음을 가진 신자에게는 반드시 거룩함의 증거(열매)가 뒤따라야 함을 역설합니다.
거룩함이 없는 신앙은 거짓된 것이기에 주님을 뵐 수 없다는 경고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고난과 박해로 인해 영적으로 낙심하고 배교의 위험에 처한 독자들을 향해 신앙의 경주를 독려하고 있습니다 (히 12:1-13).
외부적 시련 속에서 내부적으로 원망하거나 분열하지 말고 관계의 화평을 지키며,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영적 순결(거룩함)**을 유지하라는 권면입니다.
히브리서 12장의 핵심 주제는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기 위한 인내와 하나님의 징계(훈련), 그리고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향한 경외함’**입니다.
고난과 박해 속에서 신앙을 포기하려는 유대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끝까지 믿음의 경주를 달릴 것을 권면합니다(참고 Gemini).
히브리서 12장 주제는, 믿음의 경주와 인내로, 믿음의 선진들과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신앙의 경주를 끝까지 완주하라는 촉구입니다.
또한 징계의 유익으로, 고난을 하나님의 사랑 어린 '자녀 교육(징계/훈련)'으로 받아들이고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으라는 권면입니다.
영적 각성과 경외로, 구약의 시내산(율법)과 신약의 시온산(은혜)을 대조하며, 다가올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섬기라는 경고 및 권면입니다.
히브리서 12장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절 ~ 3절: 믿음의 경주와 예수 그리스도
앞장(11장)에 언급된 믿음의 증인들을 기억하며,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릴 것을 권면합니다.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 그리스도를 깊이 생각하고 바라봄으로써 낙심하지 말라고 강조합니다.
4절 ~ 13절: 하나님의 자녀 교육(징계)의 유익으로,
현재 겪고 있는 고난을 하나님이 아들에게 하시는 징계(훈련)로 이해하라고 설명합니다.
징계는 하나님이 우리를 친백성, 친자녀로 대우하신다는 증거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고 평강의 연단을 얻게 합니다.
14절 ~ 29절: 은혜를 저버리지 않는 삶과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말합니다.
14~17절: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고, 에서와 같이 영적인 축복을 한 그릇 음식을 위해 팔아버리는 망령된 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18~24절: 두려움과 심판의 상징이었던 시내산(구약의 율법)과 기쁨과 은혜의 공동체인 시온산(신약의 새 언약)을 대조합니다.
25~29절: 땅과 하늘을 흔드실 마지막 심판을 경고하며, 우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 나라를 받았으니 감사함과 경외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겨야 한다고 결론지어 권면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4절 말씀은 성도가 세상 속에서 추구해야 할 두 가지 핵심 방향인 '화평함'과 '거룩함'을 강조합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히 12:14)
것'
우리의 신앙생활 최종 목적은 주님 앞에 서서 그분의 얼굴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님을 보기 위해 우리가 이 땅에서 반드시 힘써 '따라가야 할(pursue)' 두 가지 이정표를 제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모든 사람과의 화평함과 하나님 앞에서의 거룩함입니다.
히브리서 12:14은 오늘날 신앙인에게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는 명령을 주며, 이는 개인의 삶과 공동체 모두에서 균형 있게 적용해야 할 가치입니다.
갈등이 많은 사회 속에서 평화를 추구하고, 동시에 세속화된 문화 속에서 거룩을 지키는 삶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직장·가정·학교에서 갈등 상황이 생길 때, 복수나 미움 대신 대화와 이해를 선택하는 태도를 갖는 것입니다.
예: 직장에서 부정직한 요구를 받았을 때, 두려움 없이 거절하면서도 상대방을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거룩함: 소비문화와 유혹이 많은 시대에 정직·절제·순결을 지키는 삶입니다.
예: 물질적 이익보다 신앙적 원칙을 우선하는 선택입니다.
공동체의 삶에서, 화평함은 교회나 모임에서 서로의 연약함을 덮어주고, 긍휼과 온유로 관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죄나 잘못된 가르침을 묵인하지 않고,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교정합니다.
사회적 적용으로, 화평함은 다문화·다세대 사회에서 차별과 분열을 넘어 모든 사람과 평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으로, 사회적 불의와 부정에 동참하지 않고, 정의와 진리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균형으로, 화평만 강조하면 죄를 묵인하게 되고, 거룩만 강조하면 율법주의에 빠질 수 있으니, 두 가치가 십자가 안에서 조화되어야 합니다.
실천 방법으로, 말씀 묵상, 기도, 정직한 삶, 공동체 안에서의 권면과 격려가 필요합니다.
결과로 하나님 동행하고, “주를 보게 되는” 삶을 살아갑니다.
히브리서 12:14은 개인적으로는 정직과 절제, 공동체적으로는 사랑과 진리, 사회적으로는 평화와 정의를 실천하는 것입니다(참고 Copilot).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을 따르십시오.
(수평적 관계)
화평은 가만히 있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추구하고 쫓아가야(pursue)' 하는 대상입니다.
'모든 사람'에는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나와 성향이 맞지 않는 사람도 포함됩니다.
가정과 일터, 교회 안에서 갈등이 생겼을 때 내가 먼저 자존심을 내려놓고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하기에, 십자가로 하나님과 우리를 화해시키신 예수님의 사랑을 의지해야 합니다.
지금 내 마음속에 미움이나 벽을 쌓고 있는 '그 사람'은 누구입니까?
누구에게나 언제 어디서나 '그 놈'이 있습니다.
식당에서 조차 '그 놈'이 있습니다.
아내와 음식점에서 식사하는데 너무 크게 떠드는 '그 놈'이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게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주님께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끝까지 잘 견디고 잘 먹고 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앞으로는 음식점에서 그런 민폐 손님을 만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해야겠습니다.
아기가 울면 데리고 나가야 하는데 그냥 식사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나나 내가족이나 손자 손녀가 민폐 손님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거룩함을 따르십시오 (수직적 관계).
거룩은 세상과 구별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가치관, 유행, 죄악된 습관으로부터 나를 지켜 하나님께 구별하여 드리는 삶을 뜻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행동, 스마트폰을 볼 때의 시선, 돈을 쓰고 말을 하는 습관에서 하나님의 백성다운 깨끗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화평을 핑계로 죄와 타협해서는 안 되며, 거룩을 핑계로 타인을 정죄해서도 안 됩니다.
최근 내 영혼을 더럽히고 있는 영적 영양가는 없고 자극적이기만 한 '세상의 문화'는 무엇입니까?
의미 없이 쇼츠를 이어보며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식당에서 사람들이 큰 소리로 월드컵 이야기로 떠드는 것을 들었습니다.
참기 힘들었지만 식사를 마치고 나왔습니다.
화평과 거룩은 주님을 뵙는 통로입니다
화평함과 거룩함은 구원을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구원받은 성도에게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할 '증거'입니다. 이 두 가지가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한다고 경고합니다.
이번 한 주간, 나를 만나는 이들에게는 화평의 통로가 되고, 하나님 앞에서는 거룩한 예배자로 서서, 매일의 삶 속에서 살아계신 주님을 경험하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 자손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