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굴이 수십개에서 수백개, 아니 그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있슴에도 국방 당국에서는 모른체 하고 있다고 아우성이고,
북에서는 수백대의 장사정포를 땅굴로 요세화해서 휴전선 부근에 추진 배치하여 서울 불바다는 손가락 하나에 달렸다고
협박하면서 핵폭탄에 탄도미사일의 성능을 극대화시키는 등 외에 소형화 된 비행체, 드론이 하늘을 무방비로 만들고
해이해진 대한민국의 보안으로 간첩, 위장 탈북자들까지 득시글 대는 현실이 무섭기까지 하다.
*현시국의 안이한 대북 정책에 편치 못한 마음으로 이글을 옮긴다.
대통령의 최측근이 적국의 간첩이다! 영화에도 안 나올 법하지만, 실제 그런 大간첩이 있었다. 이집트 대통령실장 아슈라프 마르완이다.
그는 1970년대부터 20여년간 '에인절(angel)'이라는 코드명으로 아랍의 主敵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에 협력했다.
그는 자발적 스파이였다. 1970년 런던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에 전화를 걸어 '정보 제공 의사가 있다'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대사관은 깜짝 놀랐다. 그는 3개월 전인 9월까지 14년간 집권한 가말 압델 나세르 이집트 대통령의 사위이자 보좌관이었다.
그는 대사관과 접촉할 당시에도 나세르의 후임인 안와르 사다트 대통령의 보좌관이었다.
그가 전임 대통령 사위로서 어쩌다 적의 편에 서기로 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이스라엘은 마르완을 각별히 관리했다. 그의 실체를 아는 사람은 총리·국방장관 등 극소수였다. 6개월이 흘렀을 무렵, 간첩으로서 그의 가치가 급등했다.
1971년 5월 그가 前 정권 세력의 쿠데타 시도를 막으며 사다트의 신뢰를 얻어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영전한 것이다.
이스라엘 침공 방안 등 동맹국과 긴밀한 논의가 그를 통해 오갔다. 사다트는 '忠臣'을 감히 의심하지 못했다.
1973년 10월 5일 마르완이 급히 모사드 국장 즈미 자미르와 접선해 말했다. "내일 전쟁이 개시됩니다."
놀란 자미르는 서둘러 골다 메이르 총리에게 보고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총리는 전쟁 대비에 주저했다. '이번에도 군사 훈련일 거야'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0월 6일 이스라엘은 기습 공격해온 이집트에 대패했다. 백전백승의 군사 강국 이스라엘의 사상 처음이자 마지막 패배다.
메이르 총리의 판단 잘못 탓이 컸다. 무엇이 그의 판단을 흩트린 걸까. 군사훈련이다.
사다트는 '측근 관리'는 못했어도 對이스라엘 군사훈련만큼은 철저했다.
그는 휴전선을 앞두고 대규모 군사훈련을 실전처럼 꼬박꼬박 했다.
이스라엘은 1973년 8월 실시한 이집트 훈련이 실전인 줄 알고, 비용이 수백만 달러 드는 예비군 동원령을 발령하는 '헛수고'를 한 적도 있다.
이런 경험 때문에 메이르 이스라엘 총리는 막상 진짜 전쟁을 알리는 첩보를 입수하고서도 대수롭잖게 여겼다.
군사훈련이 간첩의 기밀 누설도 무력화한 것이다.
이는 군사훈련이 평소에는 큰일 아니어도 결정적 순간엔 국가 安危를 뒤흔든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작 북한의 핵과 전쟁 위협에 시달리는 우리는 어떤가.
가상 위협국의 훈련에 방심은 금물일뿐더러 스스로 군사훈련을 연기하거나 취소하는 결정은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평창올림픽 때문에 연기를 결정하고 재개 시점조차 불분명한 한·미 연합 훈련을 우리는 너무 가볍게 대하고 있지 않나. 출처 : http://news.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