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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요리에서 탕과 국은 밥과 함께 먹는 국물 요리입니다. 고기, 생선, 채소 등에 물을 많이 붓고 소금이나 간장, 된장, 액젓 등으로 간을 맞추어 끓이고 탕(湯)은 국을 높여 부르는 말이기도 하며, 흔히 일반적인 국에 비해 오래 끓여 진하게 국물을 우려낸 것을 이릅니다 국에 밥을 만 것은 국밥으로, 국수를 만 것은 국물국수로 부르고 국은 한국 요리에서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부식으로 가짓수도 많습니다. 한국에서 국은 크게 맑은장국, 토장국, 곰국, 냉국 등으로 구분되며, 재료로는 육류·어패류·채소류·해조류 등 모든 재료가 쓰입니다. 국 중 맑은장국은 소금이나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토장국은 속뜨물에 된장이나 고추장을 쓰며, 곰국은 쇠고기의 여러 가지 부위를 고아서 소금으로 간을 맞춥니다. 그리고 냉국은 오이나 미역과 같은 날로 먹는 채소에 양념을 한 후, 끓여서 식힌 냉수를 부어 차게 만든 국입니다. 국을 한자로 말하면 갱(羹)이라고도 하고 확(臛)이라고도 하며, 탕(湯)이라고도 하며 갱·확·탕은 어떤 관계이며, 어떻게 변화 되었을까요? 중국의 기원전 3세기경 시집인『초사楚辭』에는 갱은 채소가 섞인 고깃국이고, 확은 채소가 섞이지 않은 고깃국이라 하고『제민요술濟民要術』(6세기 초)에는 고기에 장, 파 등 여러 채소를 넣고 푹 삶아낸 것은 갱 또는 확이라고 했답니다『거가필용居家必用』(12세기)의 국은 대부분 갱이며, 탕은 음료용과 약용을 일컫는 말로 쓰입니다. 우리나라 책인 『훈몽자회 訓蒙字會』(1527)에는 확을 고기탕이라 하였으며『설문해자說文解字』(A.D. 100)에는 확을 육갱이라고 했습니다. 『동의보감東醫寶鑑』(1610)에는 약이성藥餌性 재료를 열탕에 달여 질병 또는 보강제로 사용하는 것을 탕이라고 합니다. 『임원십육지林園十六志』 정조지鼎俎志(1827)에는 향약초를 끓여 마시는 열탕을 모두 탕이라 부르고『시의전서是議全書』(1800년대 말경)에는 제사에 쓰이는 국을 탕으로 쓰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국은 일반 용어로 쓰고 확은 쓰이지 않습니다. 갱은 제물, 탕은 약이나 음료 또는 오래 끓인 뜨거운 국이 되기도 하고 특히 탕의 경우 의식동원의 의미를 나타내는 음식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귀한 재료를 정성들여 오래 끓인 제물인 국을 탕으로 진설하고 있습니다. 국은 언제부터 우리 민족이 먹기 시작 했을까요? 국은 육류, 어패류, 채소류, 해조류 등 모든 식품 재료를 이용하여 단순하게 끓이는 조리법으로써 역사가 오래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신석기시대부터 토기 사용으로 습열 조리가 가능하였으니 이때 국의 조리가 시작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국의 역사는 숟가락 사용과 함께 유추할 수 있고 청동기시대 길림성 유적에서 뼈로 된 숟가락과 낙랑고분의 청동 숟가락이 출토된 것을 볼 때 이 시기에 국의 상용화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으며 국에 관한 기록은 문헌상 삼국시대에 나타납니다.『삼국사기三國史記』 권17 「고구려본기5」 226년(동천왕 원년)에 “왕의 마음을 시험해 보고자 (왕후가) 시자를 시켜 반상을 드릴 때에 일부러 국[羹]을 왕의 옷에 엎지르게 하였다.”라는 내용이 있어 국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습니다. 통일신라시대에도 국 기록이 있습니다. 당대의 문장가 최치원이 쓴『답절서주사공서答浙西周司空書』에서 “헛되게 밥만 먹으니 국에 맛을 조화하기를 바라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라는 구절이 보이고 고려시대에는 여러 문헌에 국이 수록되어 있어 국의 다양화와 더욱 발달된 면모를 엿볼 수 있습니다. 『고려사高麗史』에 의하면 1016년(헌종 7) 왕자 탄생에 염분과 함께 어량漁粱을 하사하기도 하고 때로는 곽전藿田도 하사한 기록이 보이는데 곽은 미역을 말하므로 틀림없이 미역국이 끓여졌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이 밖에 이규보의 시에도 토란국, 냉국 등이 보이고 목은 이색의 시 속에도 나물국이 등장 합니다. 또한 『고려사』 제례의 제물에서는 1품에서 2품까지 밥과 갱이 각각 두 그릇 진설되었다고 합니다. 조선시대 음식 관련 문헌에서는 맑은장국, 토장국, 고음국, 냉국 등 다양한 종류의 국이 선보여졌고『증보산림경제增補山林經濟』(1766)에는 완자탕, 계란탕, 문어탕, 낙지탕, 오징어탕, 홍합탕, 모시조개탕, 맛살조개탕, 복탕, 게탕, 토란국, 토란줄기국, 미나리국, 두릅국, 소루쟁이뿌리국, 소루쟁이잎국, 아욱국, 원추리국, 삽주싹국, 칠향계탕, 연포국, 개장국, 잉어탕, 메기탕, 도미탕, 복어탕, 홍어탕, 뱅어탕 등 육류·어패류·채소류·산채류를 이용한 다양한 조리법의 국이 선보이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상고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반상의 기본 구성에서 국은 밥을 보완하는 제일의 찬물이며, 매끼 빠져서는 안 되는 중요한 음식으로서 형식을 갖춘 반상차림뿐만 아니라 단체급식이나 간단히 먹는 한 끼 식사에 빠지지 않고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등 전통성과 보편성을 띠고 있습니다. 그럼 지금 부터 우리나라의 탕과 국을 소개 하겠습니다
사진 : Google
갈비탕
갈비탕(영어: galbi-tang, short rib soup)은 소의 갈비부위를 주재료로 하는 탕이다. 갈비 부위를 오랜시간 끓는 물에서 우려낸 뒤에 국간장, 소금, 기타 양념으로 간을 하는데, 식성에 따라 당면을 넣어 먹기도 한다.
꼬리곰탕
이건 곰탕이 아닙니다 ㅋㅋㅋㅋㅋ
곰탕
곰국 또는 곰탕(-湯)은 소의 고기와 뼈를 진하게 푹 고아서 끓인 국 또는 탕이다. 쇠고기 부위 중 양지머리, 사태, 업진(업진살), 곱창, 갈비, 꼬리, 다리를 주로 사용하며, 무를 같이 넣고 끓인다. 고기가 완전히 익으면 이를 얇게 썰어 후춧가루, 다진 파, 소금(또는 간장)으로 양념을 해서 먹는다곰탕은 몽어유해에 따르면 몽골에서는 맹물에 고기를 넣고 끓인 것을 공탕(空湯)이라 적고 '슈루'라 읽었다고 한다. 슈루는 오늘날의 곰탕이나 설렁탕처럼 맹물에 고기를 넣고 삶는 조리법으로 끓인 국과 비슷한 것으로 여겨진다. 송나라 서긍이 우리나라를 여행하고 쓴 여행기인 '고려도경'을 보면 고려 사람들이 사신을 대접하기 위해 양과 돼지를 도살하는데 네 다리를 묶고 불 위에 내던지고 만일 다시 살아나면 몽둥이로 때려죽이니 배속의 창자가 온통 찢어져서 오물이 흘러 나와 이것으로 요리한 고기에 고약한 냄새가 있어 먹을 수 없었다.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통일신라시대까지도 육류를 즐겨 먹지 않았던 한민족이 고기 손질에 대한 기술이 얼마나 부족했는지 알 수 있다. 고려 이전까지 고기 손질에 대한 기술이 크게 발전하지 않았지만, 고려 말에 몽골인이 세운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며 몽골인으로부터 도살법을 배우게 되었는데 이로 인해 불교에서 신성시하는 동물인 소를 가장 즐겨먹게 되었다. 고려인은 도살법 뿐만 아니라 고기 요리법도 몽골인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종류 재료별 곰탕
꼬리곰탕 : 꼬리곰탕(영어: Korean oxtail soup)은 쇠꼬리를 주재료로 끓여낸 곰국이다
사골 곰탕: 사골(四骨)은 짐승, 특히 소의 네 다리뼈를 뜻하는 말로, 사골 곰탕은 보통 소의 다리 뼈를 고아 만든 곰탕이다
지역별 곰탕
서울 설렁탕
현풍 곰탕 : 현풍 지역 출신. 소꼬리, 발바닥, 소의 발과 내장으로 만들어진다.
나주 곰탕 : 나주 지역 출신. 육수에 굽은 고기를 넣는다
감자탕
감자탕(Gamja-tang, pork back-bone stew)은 돼지 등뼈(감자)로 국물을 낸 탕(湯)으로, 채소, 파, 붉은 고추, 간 들깨 등이 들어가 매운 맛이 나는 한국의 국물 요리이다. 뼈국으로 볼 수 있다. 전라도 지방에서 유래되어 전국 각지로 전파되었다고 한다. 감자탕'의 어원은 확실하지 않으나, 다음과 같은 설이 있다. 감자를 넣었기 때문에 감자탕이라는 설본래는 돼지 등뼈에 우거지 등을 넣고 끊여먹는 '뼈다귀탕'이었는데, 일제강점기부터 적극 보급되어 흔해진 감자가 들어가 감자탕이 되었다는 설이 있었고 감자탕의 주 재료는 원래 감자였고 그 탕의 국물을 내는데 사용한 것이 돼지 등뼈였는데, 양돈업의 정책적 육성으로 1960년대 말부터 돼지고기의 부산물이 크게 늘어나면서 등뼈까지 감자탕에 합세하여 지금의 감자탕이 되었다는 설이 있고 돼지 등뼈를 '감자뼈'라 부르거나 감저(甘猪)의 변형이기 때문에 감자탕이라는 설이 있다
대구탕
대구탕은 대구 삶은 국물에 대구 토막과 배추를 넣고 끓여 익힌 뒤 생굴과 파를 넣고 끓인 탕이다. 대구탕은 대표적인 경상도 음식에 속하며, 부산광역시 강서구 가덕도의 대구탕이 유명하다.
설렁탕
설렁탕(영어: Seolleongtang 또는 ox bone soup)은 소의 머리, 내장, 뼈다귀, 발, 도가니(무릎 뒤 오목하게 들어간 부위로 사람의 경우는 오금이라 부름) 따위를 푹 삶아서 만든 국 또는 우려낸 국물에 밥을 말아 먹는 음식이다. 뼈국으로 볼 수 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음식 중 하나이다. 먹을 때 소금, 후춧가루, 다진 파 등을 넣어 간을 맞춘 후, 깍두기, 김치를 곁들여 먹는다. 고기는 편육으로 만들어 놓고, 뚝배기에 밥을 담아 끓는 육수를 부은 다음 고기를 얹는다. 일반 식당에서는 보통 고기를 12~24시간 우려내지만, 가정에서는 보통 5~6시간으로 우려낸다. 회당 6시간 동안 3회로 끓이는 방법이 가장 적당한 방법이라고 하며, 오래 끓일 경우 영양성분이 오히려 줄어들 수도 있다. 풍부한 고단백의 건강식으로 알려져있는 음식이나, 동물성 지방이 많고, 칼슘 흡수를 방해하는 인이 많이 들어있으며, 간을 맞추기 위해 소금을 많이 치기 때문에 고혈압과 골다공증의 악화를 불러올 수 있으므로 섭취에 주의해야 한다. 뽀얀 국물이 전부 중성 지방(TG, triglyceride)이다. 설렁탕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가설은 조선 시대에 임금이 직접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는 마음으로 제사를 지냈던 선농단(先農壇)으로, 농경에 관계되는 신농씨(神農氏)하고 후직씨(后稷氏)에게 제사를 지내던 제단이다. 직접 제물을 찾아와서 조선 백성들과 함께 식사를 한 적이 하였는데, 조선에서 식량공급을 늘리기 위해 성종은 가장 적은 재료를 사용해 최대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있는 요리를 발명하라고 명했고, 그렇게 국밥을 '선농탕'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선농탕이라 불렸으나 자음동화 현상이 일어났다. 이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다. 이유는 조선 시대에 쓰여진 책에서는 이런 기록이 없으며, 1940년대에 쓰여진 책에서 이러한 설이 등장하였다. 단, 선농단에서 친경을 끝낸 후 잔치를 연 것은 사실이다. 또 다른 가설로 '곰탕'을 뜻하는 중세 몽골어 ‘슈루’ 혹은 ‘슐루’에서 온 말이라는 설이 있다. 그 외에도 우선 국물을 오랫동안 ‘설렁설렁’ 끓인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설렁탕과 유사한 음식인 사골곰탕은 가정에서 주로 뼈를 고아 만든 진한 국물로, 곰탕은 양지머리, 사태 등과 양, 곱창 등 내장을 넣고 끓이며 무, 다시마, 대파 등을 곁들여 좀 더 기름진 맛이 난다. 설렁탕은 뼈와 함께 쇠고기 살코기와 머리고기, 내장, 도가니, 족등으로 만들고 기름을 걷어 내어 좀 더 담백한 맛을 내며 뽀얀 우유빛을 낸다. 1930년대에는 10전, 1940년대에는 1949년 11월 4일자 서울신문에 실린 설렁탕 광고 기사에 의하면 100원(소), 150원(중), 200원(대)이었다. 2011년 전국 평균 가격은 6,700원으로 조사됐다 현진건의 소설 《운수 좋은 날》에서 주인공 김 첨지가 부인의 사망을 모른 상황에서 사 간 음식이 바로 설렁탕이다. 주인공 김첨지가 부인을 위해 설렁탕을 사주고 사망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설렁탕을 사왔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라는 대사가 유명하다.
알탕
한국의 탕 요리로 이름 그대로 어란이 많이 들어간 탕을 말한다. 매운탕하고 비슷하지만 주 재료가 생선이 아니라 알이라는데 차이가 있다. 보통 명태의 알인 명란(곤이)을 주로 쓰며 수컷 명태 정소인 이리 역시 주요한 재료이다. 다만 지역이나 재료의 유무에 따라서 다른 생선의 알을 쓰기도 한다. 레시피에 따라 생선 잡탕 찌개 비슷하게 되는 경우도 있는데 해산물을 강조하기 위해 홍합이나 조개로 시원한 맛을 내거나 새우를 넣는 경우도 있다. 미나리와 콩나물, 무는 기본적으로 들어가서 탕의 국물맛을 내는데 쓰인다. 두부를 넣는 경우도 있으나 서울 기준으로는 흔치는 않다. 생선의 고급 부위 중 하나인 알을 주 재료로 하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가격이 비싼 편이다. 생선 매운탕의 경우, 뼈, 지느러미, 생선 머리 등 먹지 못하는 부위도 부피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먹을 수 있는 부위인 생선 살 및 내장의 양을 생각해 본다면 먹을게 그리 많지 않다. 반면 알탕은 부 재료인 채소를 빼더라도 나머지 건더기가 전부 다 먹을 수 있는 알과 내장이다. 그렇기에 매운탕과 알탕을 주문했을 때 제공되는 양이 알탕이 보다 작더라도 먹다보면 알탕이 보다 푸짐하게 느껴진다. 기본적으로 고춧가루와 고추장을 넣는 매운탕이지만 맵지 않고 맑은 국물의 알탕도 존재한다. 매운거나 안매운거나 비가 와서 눅눅하거나 추울때 먹으면 정말 맛이좋고 술안주로도 많이 쓰인다. 만들 때 국물을 많이 하지 않고 양념에 전분을 섞은 다음 채소와 함께 찌면 알찜이 된다. 해물찜, 아구찜과 방법은 거의 같고 단지 재료가 알과 내장으로 바뀐 것 뿐이다.
광어(서더리)매운탕
우럭 매운탕
민어 매운탕
꽃게 매운탕
매운탕
매운탕(영어: Maeun-tang 또는 spicy fish stew)은 한국 요리로서 생선을 고추장, 고춧가루, 그리고 여러가지 채소와 함께 끓여낸 음식이다. 맵고 자극적인 맛이 특징이며, 주재료인 생선은 민물고기와 바닷고기 모두 사용된다. 생선을 적당한 크기로 토막내어 미나리, 쑥갓, 양파, 무, 고추, 마늘, 호박, 두부 등과 함께 끓인다. 매운탕의 간은 고춧가루, 마늘, 간장, 고추장 등으로 맞춘다매운탕을 판매하는 식당에는 수조를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아, 손님들이 수조에서 원하는 생선을 고르도록 되어있다. 매운탕에 자주 쓰이는 생선으로는 도미, 농어, 조기, 대구, 메기, 민어, 명태, 잉어, 송어, 동자개 등이 있다. 부재료로 여러가지 해산물이 들어가는데, 기호에 따라 게, 조개, 굴 등이 들어가 맛을 좀 더 풍부하게 한다. 매운탕은 한국의 술인 '소주'를 마실 때 함께 즐겨먹는 음식이다. 또한, 종종 횟집에서 회를 먹고 난 뒤 남은 생선으로 매운탕을 끓여 제공하기도 한다.매운탕의 유래는 생선국에서부터 시작된다. '고려사 김방경 열전'에 따르면 원나라 황제가 일본 출정을 앞둔 장수에게 "고려인이 좋아하는 음식을 내린다."라고 말하며 생선국을 하사했다는 기록이 있다.또한, '시의전서'에보면 고추장을 이용한 생선찌개와 관련된 내용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전후로 고추가 들어온 이후 지금 형태와 같은 매운탕이 등장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요리제법"에는 "붕어 2홉을 잘 씻어 꼬리와 주둥이 끝만 잘라 버리고 아가미 밑으로 내장을 빼고 정하게 씻어서 냄비에 담고 고기를 얇게 썰어 넣고 파 채친 것과 간장과 고추 이긴 것과 물을 치고 오래 끓여서 먹나니" 라고 붕어찌개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을 보아 지금의 매운탕 형태와는 조금 다르지만 생선을 이용한 찌개, 탕의 역사는 오래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조리법
기본적으로 고추장 등의 매운 맛을 내는 조미료를 넣고 끓인 물에 생선이나 어패류 등의 재료를 넣고 끓이는 음식이다.
조리하는 방법은 지역마다, 사용한 재료마다 조금씩 상이하다.
바닷물고기 매운탕 만드는 법
1. 고추장을 푼 국물을 펄펄 끓인다.
2. 장국물이 펄펄 끓을 때 생선 토막을 넣고 익을 정도로만 끓인다.
3. 생선이 익은 후 생선 비린내를 제거하기위해 생강, 미나리, 쑥갓 등 향내나는 채소를 넣는다.
민물고기 매운탕 만드는 법
바닷물고기 매운탕과 기본적으로 같다.
그러나 바닷물고기보다 민물고기는 끓이면 끓일 수록 맛이 있으며, 고춧가루나 고추장만으로는 비린내를 제거할 수 없어 후춧가루나 생강을 넣어 비린내를 제거해야한다.
매운탕의 특징
매운 맛은 고춧가루ㆍ후춧가루 등이 주도하고 고추장은 조미료의 역할을 하는데, 그 비율은 정해져 있지 않고 자유롭게 배합한다. 재료가 다양한 만큼 정형화되어 있는 조리법은 존재하지 않고 자유롭게 재료를 조합하여 끓이는 음식이다. 민물고기 매운탕을 먹고 난 후 국수나 수제비를 넣어 끓여먹는 어죽도 인기가 있는 음식이다
만두국
만두국(표준어: 만둣국)은 한국의 국으로서, 간 고기와 기타 부재료를 채워 넣은 만두를 쇠고기 육수로 끓인 음식이다. 한국 궁중 요리에서는 만두국을 '병시(餠匙)'라 하였으며, 17세기에 쓰인 음식디미방(飮食知味方)에는 '석류탕'이라는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다. 주로 밀이 많은 북부지방에서 설날에 먹는다. 떡을 추가하는 것도 일상화되어 있으며, 이 경우 떡만두국으로 부른다.
떡국
떡국은 한국의 전통 음식이다. 장국에 일정한 두께로 얇게 썰은 흰떡을 넣고 끓여 만든 음식이며, 고기, 달걀 등을 고명으로 얹거나 만두 등의 재료를 곁들여 먹는다. 한국에서는 새해 첫날과 설날에 떡국을 먹는다. 새해 첫날에 떡국을 먹어 나이가 한 살 더 오른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슬기국
다슬기국은 다슬기를 삶은 물에 된장과 채소를 넣고 끓인 한국 전통향토음식 중 하나이다.다슬기국은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게 끓이는데, 강원도나 충북에서는 된장을 푼 물에 다슬기를 삶아서 다슬기살을 미리 빼 놓은 다음 그 국물에 부추와 어린 배춧잎(아욱)을 넣고 고춧가루, 다진파, 마늘, 소금 등을 넣고 다슬기살과 함께 한소끔 더 끓인다. 전북이나 경남에서는 다슬기 삶은 물에 다슬기살과 채 썬 부추, 호박잎, 애호박, 어슷 썬 풋고추 같은 채소를 넣어 소금이나 국간장으로 간을 한 뒤 끓인다. 경상도에서는 다슬기 삶은 물에 다슬기살과 데친 배추와 부추 등을 넣고 끓인 뒤 들깻가루, 쌀가루를 넣고 끓인 다음 국간장으로 간을 하여 끓인다.
멜국
멜국은 제주특별자치도의 향토음식이다. 멜국이라는 뜻은 멸치국이라는 뜻의 제주 방언으로 멜은 멸치의 제주 방언이다. 본래 제주 지방의 향토 음식으로 제주에서 잡히는 몸집이 큰 멸치를 사용하는데 육지 및 타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른멸치와는 다르게 살이 오르고 몸집이 좀 커보이는 멸치로 국물을 우려내어서 만드는 음식이다. 제주에서는 흔히 먹는 음식으로 알려졌으나 서울특별시를 비롯한 육지 및 나머지 지역에서는 생소하게 알려진 음식으로 한국방송공사의 김영철의 동네 한바퀴를 통해서 정식으로 소개되었다. 멸치의 시원하고 개운한 맛이 느껴지는 음식이다 제주에서 잡은 큰 멸치와 소금, 물, 배추를 넣고 그대로 끓여낸다. 멸치는 머리와 내장을 빼낸다. 너무 오래 끓이면 비릿한 맛이 나니 주의해야한다. 다진 마늘과 청양고추를 넣어서 먹으면 좋다.
몸국
몸국 또는 ᄆᆞᆷ국은 제주도의 향토 음식으로, 돼지고기를 삶으면서 생긴 국물에 모자반을 넣고 끓인 국이다. 원래 잔칫날에나 먹던 것으로, 제주도 음식 중 유일한 탕류이다. 맛은 기름지면서도 부드러우며, 제주도민들은 전통적으로 그 맛을 ‘베지근하다’라고 표현하였다. ‘ᄆᆞᆷ’은 모자반의 제주 방언이다제주도에서는 전통적으로 관혼상제가 있는 특별한 날에나 돼지를 잡았는데,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은 수육을 만들고 같은 국물에 내장과 순대(수애)를 또 삶은 것이라 매우 진하므로 국으로 끓여 먹었다. 몸국은 주로 바닷가 마을에서 만들었으며, 내륙 쪽 마을에서는 이 국물로 고사릿국, 또는 어린 무나 결구가 생기지 않은 배추를 넣은 국 등을 끓여 먹었다. 돼지고기를 삶은 국물에 다섯 시간에서 여섯 시간 가량 불린 모자반을 듬성듬성하게 썰어서 집어넣는다. 국물이 끓으면 솥의 뚜껑을 연 뒤, 찬물에 푼 메밀가루를 넣어서 국물을 걸쭉하게 만든다. 부추와 다진마늘을 넣고 소금으로 적당히 간하여 완성한다. 예식을 치르는 날 돼지를 잡고 수육, 순대 등을 삶는 일은 주로 남성이 맡았고, 몸국이나 고사릿국 등 국을 끓이는 것은 여성이 맡았다.
닭볶음탕
닭볶음탕 또는 닭도리탕은 형태상 조림에 가까운 한국의 요리이다. 토막 낸 닭고기를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파, 마늘 등의 양념으로 볶거나 약간의 국물을 남기고 졸여 만든다. 부재료로는 주로 큼직하게 썬 감자, 양파, 당근 등이 같이 들어간다. 20세기 초에 평양 등 관서 지방에서부터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이름을 놓고 논란이 많은 음식이다. 일각에서는 닭볶음탕이나 닭도리탕 대신 '닭감자탕', '닭매운탕', '닭감자조림' 등으로도 부르고 있다. 1925년 《해동죽지》(海東竹枝)에는 평양의 요리로 '도리탕(桃李湯)'이라는 음식이 나오는데, 고추장이나 고춧가루로 양념을 하지 않았고 감자가 없을 뿐 지금의 닭도리탕과 거의 일치한다. 1924년에 초판이 발행된《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도 도리탕이 나오는데, "송도(松都)에서는 '도리탕'이라고 하고 양념으로 파와 후춧가루, 기름과 깨소금, 마늘 등을 넣고 만든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닭도리탕'은 1980년대에 도리가 일본어 '새(일본어: とり 토리)'에서 온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어 1980년대 후반에 '닭볶음탕'이라는 말을 새로 만들고, 1990년대부터 이를 보급하면서 국립국어원은 순화 교시로 '닭볶음탕'이라는 말만 쓰도록 하고 있다.
'도리'가 일본어라는 주장
이에 관해 국립국어원에서는 "닭도리탕의 '도리'를 일본어 '鳥湯(とり)'로 본 것은 국어원에 들어온 일본어 어휘를 잘 아는 사람들 다수의 인식에 따른 것으로, 단어의 어원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견해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닭도리탕의 '도리'가 일본어 'とり'에서 온 말이라는 견해가 우세하든 그렇지 않든 존재하고 있는 한, 그것을 '닭볶음'과 같은 우리말로 바꾸어 쓰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닭볶음인 도리탕은 일제강점기 때 발달한 음식이고 일본인들이 닭을 발음할 수 없어 일본말로 도리탕이라고 했을 것이다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어가 아니라는 주장
국립국어원의 견해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해동죽지》는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최영년(崔永年)이 우리나라 민속놀이와 명절풍습, 명물음식 등을 한문으로 기록한 책인데 필요한 경우 한글로 토를 달았기 때문에 도리가 일본말이라면 '조(鳥)'라는 한자를 놔두고 굳이 일본어 발음인 '토리(とり)'를 다시 한자인 '도리(桃李)'로 음역했을 이유가 없으며,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 나오는 도리탕 역시 송도 사람들만 굳이 닭볶음을 일본말을 섞어 도리탕이라고 부른다고 해석해야 할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이 요리는 간혹 조리 전에 간단히 볶아 기름을 녹이는 과정을 제외하면 볶음이라는 과정과 관계없이 탕으로 시작해 탕으로 끝나는 요리이므로 볶음이라는 말을 이름에 넣으면 조어적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 등을 들어 닭도리탕의 '도리'는 일본어인 '토리(とり)'가 아니라 비슷한 조리법의 '두루치기'처럼 조리방식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일 것이라는 견해가 제기되고 있다. 그에 더해 '도리'는 '둥글게 베다'라는 뜻의 순우리말 '도리다'의 어간으로 '닭을 도려 만든 탕'이라는 의미이며, 따라서 '닭도리탕'은 원래의 순우리말이므로 표준어로 다시 되돌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삼계탕
삼계탕(蔘鷄湯, 문화어: 인삼닭탕)은 한국 요리 중 하나로 닭 한 마리를 통째로 인삼, 대추, 생강, 마늘 등의 재료와 함께 고아 만든다. 한국에서는 주로 삼복(초복, 중복, 말복)날에 먹는다. 삼계탕은 여름철의 대표적인 보양음식이다. 한편, 삼계탕은 계삼탕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병아리보다 조금 큰 닭을 이용한 것은 영계백숙이라고 하며, 닭 한 마리를 넣지 않고 반토막을 내어 넣은 것을 반계탕이라고 한다. 백숙과 매우 비슷하다.삼계탕의 역사는 길지가 않으며, 복날에 삼계탕을 먹는 문화도 60년대 이후에 와서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조선시대에서 복날에 서민들은 주로 개고기를 넣은 개장국(보신탕)을 즐겨 먹었고, 양반들은 개고기 대신 쇠고기를 넣은 육개장을 즐겨 먹었다. 단, 삼계탕의 원형으로 보는 닭백숙은 조선시대에서도 이미 존재하였다. 특히 고기가 귀했던 시절 그나마 흔한 닭고기를 이용하여 널리 이용하였던 고기 요리의 하나였다. 삼계탕의 시작은 일제강점기 시절 여러 부자집들이 닭백숙이나 닭국에 백삼가루를 넣어 만들면서 시작되었고, 이것이 1940년대 후반에서 이를 식당에 파는 경우가 늘어났고, 1950년대 전후로 계삼탕이라는 별개의 요리로 정착되었다. 처음에는 인삼가루를 사용하였으나, 1960년대 이후에 냉장고의 보급으로 인삼의 장기보존화가 가능해지면서 인삼을 말린 것을 넣는 것으로 바뀌었다. 현재의 삼계탕으로 불리게 된 것은 1960년대 즈음부터였다. 이후 현재에는 개장국을 밀어내고 복날 음식의 중심이 되는 요리가 되었다. 원래 삼계탕은 삼계탕이 아닌 계삼탕으로 불렸었다. 그 뜻은 삼보다 닭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예전에는 닭이 몸에 좋았다고 생각했다는것을 알 수 있다. 삼계탕은 그와 반대로 닭보다 삼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오늘날처럼 산삼, 인삼 등을 몸에 좋은 음식으로 손꼽히는것을 보면 왜 삼계탕으로 불리는지 알 수 있다. 삼계탕의 조리법은 내장을 꺼낸 닭의 뱃속에 깨끗한 헝겊으로 싼 찹쌀·마늘·대추 등을 넣고, 물을 넉넉히 부은 냄비나 솥에 푹 삶아 고기가 충분히 익었을 때 건져낸다. 인삼을 헝겊에 싸서 국에 넣고 푹 고아 인삼의 성분이 우러나게 하여 소금으로 간을 맞추어 국물만을 마시거나, 국물에 양념한 고기를 넣어 먹기도 한다. 그러나 인삼을 찹쌀 등과 함께 섞어서 닭 속에 넣어 고면 닭 뼈에 인삼의 영양분이 스며들어 인삼의 영양분이 감소된다. 인삼 이외에도 옻나무, 엄나무, 전복 등을 넣어 먹기도 한다. 참고로 이들 중 대추는 삼계탕의 나쁜 성분을 흡수하므로 먹으면 안 된다는 말도 있는데, 사실이 아니므로 먹어도 된다. 삼계탕에 자라, 전복, 잉어 등 몸에 좋고 값비싼 재료를 넣은 "용봉탕"(龍鳳湯)이란 것도 있으며, 한 그릇에 닭을 세로로 반을 쪼개, 양을 반으로 줄인 "반계탕"(半鶏湯)도 있다. 삼계탕에 재료로 닭은 영계(軟鷄)[3], 인삼은 6년근을 넣는 것을 정석으로 보고 있으나, 실제 많은 음식점에서는 이런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재료비가 비싸지기 때문에 웅추(雄隹)[4] 나 4년근 인삼을 쓰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4년근 인삼은 인삼의 유효 성분인 사포닌이 6년근과 큰 차이가 없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의견이 있다. 일부 업체에서는 1~2년근 인삼을 쓰거나 비슷한 맛이 나는 황기로 대체하기도 한다. 인삼 등의 약재를 사용하고, 속에 재료를 일일이 채우고 오랫동안 고아서 먹는 음식이란 특성상 가격이 비싼 편으로 2010년 서울 강북 지역 기준으로 1인분당 11,000~13,000원선이 보통이다. 오랫동안 고아서 먹기 때문에 가정에서 요리하기 쉽지 않은 음식이었으나, 오늘날에는 통조림이나 레토르트 식품으로 포장되기도 하고, 닭의 속재료인 찹쌀, 대추, 인삼 등을 하나로 묶어 포장한 제품도 나와있다. 더불어 압력솥을 이용하면 조리 시간을 단축할 수 있기 때문에 오늘날에는 가정에서도 어렵지 않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되었다. 삼계탕은 맛이 자극적이지 않아 외국인의 입맛에도 잘 맞기 때문에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선호하는 한국 요리 중 하나로 꼽고 있다. 한국의 몇몇 식품 회사들이 동남아시아에 삼계탕 전문점을 운영하기도 하고, 2014년 8월 초 부터는 농림축산식품부에서 삼계탕을 미국으로 수출할 계획을 밝히기도 하였다. 삼계탕은 몸이 차고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이나 편식하는 사람,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 등에게 효과가 좋다. 대략 한 뚝배기에 1,000kcal라고 한다.
미역국
미역국은 미역을 넣고 끓이는 국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아이를 낳은 산모가 쌀밥과 함께 미역국을 먹는데, 미역에는 칼슘과 아이오딘이 많아 피를 맑게 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하는 등 어린이와 산모에게 도움이 된다. 또한 미역국은 생일을 기념하여 끓이기도 하며, 삼칠일이나 백일에도 흰밥과 미역국을 끓여 삼신에 올린다. 조선시대 여성의 풍습에 "산모가 첫 국밥을 먹기 전에 산모 방의 서남쪽을 깨끗이 치운 뒤 쌀밥과 미역국 세 그릇씩 장만해 삼신상을 차려 바쳤는데, 여기에 놓았던 밥과 국을 산모가 모두 먹었다"고 했다. 현대에 와서는 산모 뿐 아니라 남편과 자녀 모두 미역국을 같이 먹는데, 이는 탈 없는 출산을 함께 기원하고 축하한다는 가족공동체의 마음이 담겨 있으며, 특히 성장한 자녀가 자신의 생일을 기념하여 먹는 미역국은 임신, 출산, 양육으로 고생한 어머니의 은혜를 잊지 않으며 우러르는 경의와 감사의 표현이다. 출산에 앞서 사는 미역은 그 값을 깎지 않으며, 국에 넣는 미역 줄기는 끊지 않는데 이유는 값을 깎으면 난산일 수 있으며 미역을 자르면 아기의 운세 또한 꺾인다는 믿음 때문이다. 또 흔히 '미역국 먹다'(문화어: 락제국 먹다)는 말은 시험에서 떨어지다는 관용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다. 흔히 미역의 촉감이 미끌거리고 길을 가다 미끄러져 낙상한다는 어상의 유사성으로 인하여 미역국이 시험 낙방을 연상시킨다는 해석과, 1907년 대한제국 군대 해산 사건의 해산(解散)이 주는 부정적 의미가 임산부가 아이를 낳는 해산(解産)을 떠올리게 하여, 해산 후에 미역국을 먹는 표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침으로써 지금과 같은 '미역국 먹다' 라는 표현이 시작되었다는 해석이 있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 자녀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해에는 미역국을 끓이지 않으며 수능 치는 날 미역국을 팔지 않는 식당도 존재한다. 이외에도 고시를 준비하는 사람들 역시 미역국이 고시 낙방을 떠올리기 때문에 먹지 않는 경향이 있다.
보신탕
개장국(문화어: 단고기국)은 개고기가 들어가는 탕의 일종이다. 흔히 보신탕(補身湯)이라 불리는데, 이 이름은 이후에 붙은 것으로, 영양탕 또는 사철탕, 개장 등으로도 불린다. 이 음식은 정력 증강에 좋다는 믿음이 있다. 개고기와 함께, 된장이나 고추장을 풀어 국물에 파, 부추, 토란 줄거리, 고사리 중 한두가지를 가해 삶은 다음, 국물에 고기를 넣어 양념을 하고 밥을 말아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경상도 지방과 중국 교포들은 개장국을 끓일 때 옛 방식대로 방아잎을 넣어 개고기의 냄새를 없앤다고 하기도 한다. 옛 풍습에 따라 더위가 가장 심한 삼복(초복 ·중복 ·말복)에 먹는 음식 중 하나이다. 개장국에 따라 나오는 반찬은 김치, 풋고추, 오이 등이다. 개장국에서 유래한 요리로는 육개장이 있다. 이는 개장국에 개고기 대신에 쇠고기를 넣었기 때문에 그러한 이름이 붙여졌다. 보신탕은 원래 몸을 보하기 위해 먹는 탕을 일컫는 말이며 굳이 개장국을 일컫지는 않았다. 1984년 서울시는 올림픽 유치를 앞두고 개장국을 혐오식품으로 지정해서 판매를 금지했다. 보신탕, 영양탕, 사철탕이란 이름은 이때 혐오식품 단속을 피하기 위해 생긴 말이다. 따라서 이러한 호칭은 대한민국에서만 통용되는 말이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일반적으로 개고기가 단고기라고 불리기 때문에 개장국이라는 호칭과 함께 단고기탕이라는 호칭으로도 불린다.
뼈해장국
선지 해장국
황태 해장국
해장국
해장국(解酲국)은 술기운을 풀기 위해서 먹는 국이다. 원래 해장국은 '술로 쓰린 창자를 푼다'라는 뜻의 '해정'(解酊)이라는 뜻이었는데, '해정'이 '해장국'으로 와전된 것이라고 전해진다. 그러나 흔히 쇠뼈를 넣고 고아 끓인 국물에 북어나 콩나물을 넣고 술 마신 다음날 먹던 국을 '해정국'이라고 했다. 또 원래는 '술국'이라고 했는데, 유식한 사람들이 '성주탕(醒酒湯)'이라고 하던 것이 '해장국'(解腸湯)으로 불리게 된 것이란 얘기도 있다. 해정국은 지금의 해장국과는 많이 달랐다. 현재의 해장국은 1883년 인천항이 개항하면서 시작됐다. 인천항 개항과 동시에, 외국인의 출입이 잦아졌다. 이들은 주로 쇠고기의 안심, 등심 등 주요 부분을 많이 먹었다. 내장, 잡고기, 뼈 등이 남게 되었고, 인근 식당에서는 이것을 이용하여 국을 끓였다. 이 국이 노동자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고, 이들이 술 마신 다음날 해정하며 먹던 것이 유래가 되어 지금의 해장국으로 전해내려 온 것이다.
해장국 종류
뼈다귀 해장국 - 고기가 붙어있는 돼지의 등뼈 등을 고춧가루, 파 등과 함께 넣어 맵게 끓인 국이다. 여기에 감자를 넣고 끓이면 감자탕과 같다.
선지 해장국 - 얇게 썬 울퉁불퉁한 소나 돼지의 굳은 피와 다른 종류의 재료가 함께 들어간다.
콩나물 해장국
황태 해장국
다슬기 해장국
병천 순대국 (충청남도 천안)
백암 순대국 (경기도 용인)
양주 순대국 (경기도 양주)
순대국
순댓국은 순대와 돼지 부산물 등을 넣고 끓인 국의 한 종류이다. 1924년의《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는 순댓국이 돼지 삶은 물에 내장을 넣고 기호에 따라 우거지와 함께 끓인 국으로 되어 있다. 1931년《동아일보》기사에도 순대국은 돼지 삶은 물에 무, 우거지, 콩나물, 소고기 등을 넣은 음식으로 나와 있다. 이들 순댓국에는 이름과 달리 순대가 들어가지 않았다. 1946년 손정규의《우리음식》에는 돈장탕(豚腸湯)이라 하여 돼지고기, 선지, 찹쌀이나 녹말가루, 숙주나물, 배추김치 등을 잘 섞어 양념한 뒤 돼지 창자에 넣고 끝을 묶어 삶아서 그 삶은 물에 잘라 넣어 먹는 음식이 기록되어 있다. 이는 오늘날의 순댓국과 거의 같다.
섭국
섭국은 강원도 영동지방의 향토음식으로 속초시 및 양양군과 고성군 지역에서 즐겨먹는 음식이다. 섭국이라는 이름은 강원도 지방 방언으로 홍합으로 끓여낸 국물요리로 홍합국을 뜻하며 섭이라는 말은 홍합의 강원도 지방 방언이다. 강원도 영동지방은 동해와 접한 특성 때문에 해산물이 풍부하여서 해물요리가 많은 편인데 그 중에서 섭국은 홍합으로 끓여낸 강원도식 향토 국물요리로 주로 속초, 양양, 고성 지역에서 즐겨먹는다 고추장으로 맵게 양념하여 끓여낸 국물에 홍합이 들어간 요리로 시원하고 얼큰한 맛을 낸다. 재료로는 섭(홍합), 된장, 고추장, 부추, 팽이버섯, 파, 고추, 다시마, 찹쌀가루, 계란이 들어간다 만드는 법은 먼저 홍합은 물에 씻어서 소금기를 제거하고 홍합살을 따로 발라놓으며 팽이버섯은 밑동을 잘라 손으로 찢어놓고 파와 고추는 어슷하게 썰어낸다. 멸치와 다시마를 우려내어서 육수를 만들고 육수가 우려나면 멸치와 다시마를 건져내고 된장과 고추장을 풀어 양념을 해준다. 여기에 홍합살을 넣고 찹쌀가루나 밀가루에 묻힌 부추를 넣고 걸쭉하게 끓여낸 뒤 팽이버섯, 고추, 파 등을 넣고 마지막에 계란을 넣는다.
해물탕
해물탕은 한국 요리로서 해산물을 고추장, 고춧가루, 국간장, 조미술, 다진마늘, 생강, 후춧가루 등으로 맛을 낸 육수에 넣고 재료를 섞어 여러가지 채소와 함께 끓여낸 음식으로, 칼칼하고 시원한 국물맛이 일품인 요리이다. 주재료인 해산물은 꽃게, 오징어, 낙지, 모시조개 등이 있다. 한류와 난류가 만나는 동해안 강릉지역에서 풍족한 어패류를 이용하여 만들어 먹던 음식으로 손님 초대 요리나 술안주에 적당한 요리이다. 라면을 넣어 먹기도 한다
북어국
북어국(표준어: 북엇국)은 북어(말린 명태)를 주재료로 하는 국이다. 쇠고기를 썰어 넣어 장국으로 끓이기도 한다. 육수(肉水)에 북어를 찢은 북어채, 다진 마늘, 편썰기한 무를 넣고, 대파를 어슷하게 썰어넣어 끓여낸다. 일반적으로 달걀을 넣고 휘저어서 곁들이며, 육수 없이 끓일 때에는 북어채를 볶아서 끓이기도 한다.해장국의 하나로, 숙취를 푸는데 좋다. 북어 대신 황태를 넣고 끓인 경우 '황태북엇국' 또는 '황태해장국'이라고 한다. 기호에 따라 콩나물을 넣거나, 두부를 썰어넣고 끓이기도 한다.
육개장
육개장(문화어: 소단고기국, 영어: Yukgaejang 또는 spicy beef soup)은 쇠고기와 고사리, 숙주나물 등 여러 채소를 푹 삶아 끓인 매운 맛이 도는 국의 한 종류로서, 개장국에서 유래하였다. 고춧가루로 간을 하며, 후추나 소금, 설탕, 참기름, 간장 등도 양념으로 첨가한다. 쇠고기 대신 닭고기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으며 이런 육개장은 '닭육개장' 또는 '닭개장'이라고 부른다. 대구에서는 특히 닭개장으로 많이 불린다고 한다. 육개장의 기원은 개장국에 바탕을 둔 조선왕조 궁중음식에 있으며, 곰탕의 하나로 보기도 한다. 뜨겁고 맵기 때문에 특히 여름에 몸을 보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육개장을 먹을 때는 밥을 같이 먹는 편이다. 육개장은 흔히 "육계장"으로 잘못 표기하는 경우가 있다. 닭고기로 대체한 닭개장 역시 "닭계장"으로 적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기이다. 오랫동안 선조들은 삼복 때 보양음식으로 개장, 즉 보신탕을 즐겼다. 개가 귀한 개장 철에는 마을 어른들이 개를 대신하여 병들거나 나이 든 소를 공동 도축해 국을 끓였는데 이것이 육개장의 출발이다. 육개장은 개를 대신한 쇠고기 국이라는 뜻이다. 육개장이 맵고 진한 양념을 하는 것도, 본래 개장국에서 개고기의 심한 냄새를 없애기 위해 진한 양념을 넣은 것에서 유래되었다. 현재까지 기록으로 보면 육개장은 19세기 후반에 생긴 문화로 추정된다. 1920년대 육개장은 '대구탕반(大邱湯飯)'이란 이름으로 서울에서 외식으로 큰 인기를 얻었다.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 1920년대의 잡지인 <별건곤>에서 대구의 향토음식으로 육개장이 소개되었다. 육개장에 들어가는 재료는 기본적으로 고사리, 숙주나물 등의 나물과 소고기가 들어가고, 양념으로 고춧가루가 들어간다. 여기에 토란대(토란줄기), 버섯류, 대파, 양파 등도 사용되기도 하며, 후추, 소금, 설탕, 참기름, 간장 등의 양념을 더하기도 한다. 고춧가루의 경우 물에 넣고 끓이면 거품이 올라와서 지저분해지기 쉽기 때문에 고추기름을 대신 사용하기도 한다. 경우에 따라 숙주나물은 콩나물로, 토란대는 고구마순으로 대체하기도 한다. 드물지만 기호에 따라 달걀이나 당면을 넣는 경우도 있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육개장에 면류를 넣는 변형도 있는데, 소면 사리를 말아 먹는 "육국수"와, 육개장 국물과 같이 칼국수 사리를 내는 "육칼"이 있다 스님의 육식과 오신채 섭취가 금기시 되는 한국 불교에서는 사찰음식으로 고기와 파,양파 등을 넣지 않고 두부와 산나물 등으로 대체한 "채개장"이 있다. 육개장은 장례식장에서 주로 먹는 음식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육개장의 붉은 국물색이 조문객들에게서 잡귀를 쫓아내는 것, 많이 찾아오는 조문객들을 위해 대접할 음식을 선택할 때 쉽게 상하지 않는 음식으로 고춧가루와 소금이 많이 들어간 육개장을 주로 사용한다는 것의 두 가지 유래가 있다.
재첩국
재첩국은 한국 요리에서 민물조개인 재첩으로 만든 맑은국으로, 경상도 지방의 토속음식이다. 재첩은 낙동강 하류, 김해, 명지, 음궁, 하단 지역 주위의 강가와 부산의 수영강 인근과 섬진강 부근에서 채취된다. 재첩국은 토감한 재첩에 6~ 7 센티미터로 자른 부추와 파를 넣고, 다진 마늘을 넣어 끓여 만든다. 소금으로 간을 하며 시원하고 깔끔한 맛으로 해장국으로 사랑받는다. 재첩국을 포장에 담아 상업화한 것도 구입이 가능하다.
첫댓글 오늘은 탕과 국을 소개 했습니다 다음시간에는 한국의 찌개를 소개 하겠습니다
오늘 이 추운 날씨엔 뜨끈한 국에 밥 말아 먹는게 최고!!!
뜨끈한 국밥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