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박약회 대구광역시지회
 
 
 
카페 게시글
답사여행자료 스크랩 안동 민속촌 고건축박물관
이장희 추천 0 조회 99 14.05.28 14:32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민속촌(성곡동) 고건축박물관 

칠곡고택(漆谷古宅) 
안동 원촌리 칠곡고택(安東 遠村里 漆谷古宅)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이 집은 퇴계선생 10대손인 이휘면(치암 이만현의 부)의 고택으로 1831년 건립되었고 주손은 이장환이다. 이 고택은 도산면 원촌리의 원호정사 아래 안동댐 수몰지역 내에 있었으나 2006년 안동시에서 성곡동 고건축박물관 경내로 이건 하였다. 이휘면의 조부는 형조참판 이귀운이며 아버지는 아산현감 용곡 이정순이다. 용곡 이정순은 형제우애가 지극하여 동생 이주순이 결혼 후 요절하여 후사가 없자 자신의 막내아들 이휘면을 양자 보내어 청상에 홀로된 제수를 이 집에서 모시게 하였다. 이 집은 앞쪽에 정면 6칸, 측면 1칸 크기의 "一" 자형 사랑채를 두고, 뒤쪽에는 "ㄷ" 자형의 안채를 배치한 트인 "ㅁ" 자 형태의 살림집이다. 사랑채는 좌로부터 광과 문간, 사랑,대청, 작은사랑등이 배치되었고, 안채는 2칸통의 안방과 마루를 중심으로 좌측에는 부엌과 광을, 우측에는 상방, 고방, 작은방 등이 자리 잡고 있다.
원은제 칠곡고택(漆谷古宅) 내부 계남고택(溪南古宅)
안동 토계동 계남고택(安東 土溪同 溪南古宅) 경상북도 민속자료 제8호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이 건물은 건축 연대는 미상이지만 양식으로 보아 1800년대로 추정된다. 계남이라는 이름은 하계(下溪) 남쪽에 위치 한다는 뜻이다. 당호는 연하각(煙霞閣)이며,이만운(李晩運)이 경주부윤을 지냈기 때문에 계남 경주댁(慶州宅)이라 부른다. 이 집은 목조기와의 "ㅁ" 자형 홑처마집으로 정면 7칸, 측면 7칸의 규모이다. 큰사랑과 작은사랑이 따로 있으며 뜰아랫방에 따로 부엌이 있어서 2~3대가 함께 살기에 알맞게 구성되어있다. 원래는 마당끝에 행랑채가 있어서 몸채를 감싸듯이 배치되어 있었는데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안동댐 건설로 인하여 1975년 가까운곳 단천리로 이건하였다가 2008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고성이씨 성곡동재사(固城李氏 城谷洞齋舍)
이 건물은 원래 안동 고성이씨 법흥 탑동파의 조상 3대를 제사 지내고 묘소를 수호하기 위해 안동시 성곡동에 건립된 재사였다. 그 후 1998년 이시홍의 아우인 팔회당(八懷堂 이시항(1690~1749)댁에서 인수하여 팔회당을 기리는 재사로 활용하고 있으며 2008년 현 위치에 이건 중수 하였다.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4칸이며 형태는 튼 "ㅁ" 자형으로 "ㄷ" 자형의 안채와 "一" 자형의 바깥채로 이루어져 있다.
우향각(友鄕閣) 전경 우향사(友鄕祠) 우향각(友鄕閣)
우향각, 우향사(友鄕閣, 友鄕祠)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이 건물은 조선 성종9년(1478)에 시작되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향계(友鄕契)를 기념하고, 창립계원 13명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2004년과 2006년에 건립한 각(閣)과 사당(祠堂)이다. 우향계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선비들의 계회(契會)로 서로에게 덕업을 권하고 친목 도모와 풍화(風化)를 밝히기 위해 결성 되었다. 세종 때 좌의정을 역임한 이원(固城李氏)의 아들 이증(李增)이 안동에 낙향하여 안동권씨 3명, 흥해배씨 4명, 영양남씨 4명, 안강노씨 1명과 조직하고 계원 13명이 계첩을 하나씩 나누어 가진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당시 조정의 원로이자 문장가인 서거정이 장편의 7언 고시를 지어 축하 하였다.
서운정 서운정 성곡동 까치구멍집 앞에서 부터 감동재사, 청옹정, 박산정 고성이씨 감동재사
고성이씨 감동재사(固城李氏 甘洞齋舍)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안동지역의 재사는 다른 고장에 비해 그 수가 매우 많고, 규모도 큰것이 많은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혈연공동체를 중시하는 문화적 역량과 환경이 크게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재사는 보통 "ㅁ" 자 형태가 많고 규모가 작은것은 "一" 자형, "二" 자형, "ㄷ" 자형으로 된 것도 있다. 이 재사는 청옹 이후영의 묘제를 치르기 위해 건립된 재사로 "ㄷ" 자형의 건물이다. 원래 안동시 석동동 감성골에 있었으며 경내에는 재사 건물과 함께 뒤편에 이후영을 기리기 위한 청옹정이 있다.
청옹정
청옹정(淸翁亭) 경북 안동시 성곡동 이 건물은 조선 후기의 문신인 청옹(淸翁) 이후영(李後榮, 1619~1711, 임청각 이명의 후손)의 정자로 건립연대는 미상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집으로 "一" 자형의 간결한 형태이며 실용성과 아름다움을 잘 살린 건물이다. 이후영의 묘제를 위한 고성이씨 감동재사의 경내에 건립되어 묘제나 모임때 강당(講堂)으로서의 기능을 하였는데, 2008년 안동시석동동 감성골에서 이곳으로 이건되었다. 이후영은 숙종 10년(1684)에 문과에 급제하여 고성군수와 병조정랑을 역임하였다. 그 후 당쟁을 피해 향리로 돌아왔으며 학문과 덕행으로 중망을 받았다.
박산정(博山亭)
이 건물은 조선 선조 때 공조참의를 지낸 이지(李遲, 1560~1631)가 학문수양을 위해 1600년 초에 건립한 정자이다. 이지는 호가 박산정(博山亭)이며 김언기의 문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들과 함께 의병에 가담하여 활약하였으며, 어려움에 처해 있던 군사를 위해 사재로 도움을 주었다 이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홑처마 팔작집으로 중앙에 1칸 반의 마루를 설치하고 좌우에 1칸 반의 온돌방을 두었다. 원래 안동시 와룡면 도곡리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고지대인 상전마을로 옮겼다가 2005년 이곳으로 이건하였다. 이증 - 1. 이평 : 청도 2. 이굉 : 귀래정 3. 이명(임청각)-이굉(반구옹)-이용(어은)-이복원-이지(임청각파) 이적(탑동파).
박산정(博山亭) 내부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