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장선생님이 밤새 텐트 치고 여학생 기숙사 앞 지키는 까닭은
강원 한 고교, 기숙사 근로 조건 놓고 사감과 학교 측 이견 커
도 교육청 중재로 협의…조리실도 같은 문제로 급식 한때 차질
A고교 여자 기숙사 앞에 설치된 텐트 [촬영 양지웅]
(춘천=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강원도 내 한 고등학교 기숙사 앞에는 한 달 넘게 텐트 하나가 설치돼 있다.
낮에는 텅 비었지만, 밤이 찾아오면 교장선생님이 안으로 들어가 밤새 기숙사 정문을 지키고 있다.
교장이 편안한 관사를 마다하고 텐트에서 한뎃잠을 이어가는 까닭은 무엇일까.
일의 시작은 한 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달 초 A고교 기숙사에서 일하는 생활지도원(사감)들은 밤샘 근무 중 충분한 휴식 시간과 독립된 휴게 공간을 학교에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은 월∼목요일 하루 10시간씩 한 주에 총 40시간을 일하고 있다.
오후 6시부터 이튿날 오전 9시까지 기숙사를 지키면서 오전 1∼6시는 휴게시간으로 정해 학교와 근로 계약한 것으로 확인됐다.
생활지도원들은 새벽 휴식 시간에도 상황이 발생하면 오롯이 쉬지 못하기 일쑤며, 독립된 휴게공간을 보장받지 않아 그림자 노동이 생긴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학교와 여러 차례 협의를 진행했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다.
결국 이들은 오전 1시부터 6시까지 5시간 동안 기숙사를 떠나게 됐다.
기숙사(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연합뉴스TV 제공]
심야 시간대 기숙사 관리에 구멍이 생기자 학교 관리 책임자들은 고육지책으로 본인들이 학생들을 지키기로 했다.
남자 기숙사는 교감이, 여자 기숙사는 교장이 해당 시간대 생활지도에 나선 것이다.
교감은 기숙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지만, 교장은 남성인 까닭에 여자 기숙사에 상주할 수 없기에 결국 입구에 텐트를 치고 밤을 보내고 있다.
학교 스스로 생활지도원 요구를 들어주기에는 한계가 있음을 확인하자 도 교육청도 중재에 나섰다.
긴급 대체 인력 투입과 정원 확대 등 여러 방안을 살피고 있지만 당장 합의를 이끌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학교는 비슷한 문제로 한 달여간 급식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다.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기에 세 끼를 모두 제공해야 하지만, 조리 종사원 수가 규정보다 부족해 이를 문제 삼고 나섰기 때문이다.
학교는 점심 급식만 제대로 제공할 수 있었고, 아침과 저녁은 김밥이나 빵 등 대체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학교 측은 조리 종사원들과 긴 시간 협의를 이어간 끝에 추가 인력 보강을 해결책으로 제시, 15일부터 정상 급식을 세 끼 모두 제공하기로 했다.
강원도교육청 [촬영 양지웅]
이러한 문제는 기숙사를 운영하는 학교들이 잠재적으로 안고 있다.
A고교 역시 기숙사 생활지도원과 조리 종사원들의 희생과 양보가 일정 부분 이어졌기에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이 정확한 규정에 따른 근무를 따지고 나선다면 다른 기숙학교에서든 언제든지 비슷한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게다가 신경호 교육감은 학력 향상 정책 중 하나로 기숙학교 부활을 공언하고 나서, 관련 규정 개선이 필요한 상황이다.
신 교육감은 지난 달 19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이 면학할 수 있도록 기숙사를 운영할 계획"이라며 "점심은 물론 아침과 저녁까지 3끼를 제공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도 교육청은 이를 위해 도내 모든 고교를 돌며 현장의 요구를 들었으며 구체적인 운영 실태와 수요 조사에 들어갔다.
이를 통해 지역 내에 사는 학생이라도 기숙사에 들어가 공부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울 방침이다.
다만 기숙 학교를 문제 없이 운영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교육공무직(학교 비정규직)이 필요한 실정이다.
당시 신 교육감은 "학교에서 멀리 떨어져 살지 않더라도 등하교 시간 절약과 절제된 생활 등을 위해 기숙사에 들어가고자 하는 학생들이 있다"며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충분한 학습 공간을 마련해주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