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려오는 큰 파도
AD405년 이제 5세기가 확실한 이 시기에 東고트족이라고 불리는 게르만계 야만 족과 수에비, 알란, 부르군트(※서사시 “리베룽겐의 반지”에 나오는 주인공들) 라는 부족들이 대거 밀려 내려왔다. 이들은 정말로 게르만계 야만족들이 치를 떨 만큼 무시무시한 훈족에게 쫓겨서 밀려 내려오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사 시간에 훈족으로 인한 서양세계의 민족대이동이라는 것을 배운 적이 있다. 이 것은 계획을 세운 민족이동이 아니다. 이때 무려 40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야만족들이 아녀자들을 포함해서 떼를 지어 내려오며 약탈을 해댄 것이다. 예전
로마제국이 흥할 때 같았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것이다. 이미 라인-도나우 방어선은 망가진 지 오래되었다.
著者는 이들의 이동을 웅장하다고까지 표현했다. 그들은 메뚜기 떼이고 무적의 개미떼 같았다. 물론 훈족에게 밀려 내려오는 상황이기는 해도 말이다.
● 요격(邀擊)
이들의 지도자는 ‘라다가이소’라는 者다. 이때의 로마 상황은 참 난감한 상황이다. ‘스틸리코’ 혼자 이리 뛰고
저리 뛰는 형국이다. 40만명이 이탈리아 북부에 나타났다고 하자 병력을 소집해야 하는데 속주인 브리타니아, 에스파냐, 북 아프리카에서 아무도 오지 않았다. 자기 방어에도 바쁜 그들이 여력이 없었다. 갈리아에서 야만족 부대가 왔을 뿐이다. 그 속에는 일부 훈족부대도 있었다고 한다. 거기다 국내에서는 農場主(원로원 의원)들이 농장의 農奴들을 보내주지 않았다. 그래서 강제로 노예들을 징발하도록 하는 법을 발동했다. 노예들에게는
전쟁 후 노예 해방을 약속했다. AD406년 여름 겨우 3만 명을 채웠다.
● 로마제국의 실제전력
帝國의 전력은 4세기의 칙령으로 병력 수가 대폭 늘었지만 이를 감당할 재력이 없었기 때문에 점차 줄어들어 이 모양이 된 것이다. 전쟁에서는 아무리 잘 이겨도 자신의 병사들이 다소나마 희생되게 마련이다. ‘스틸리코’ 는 병사들이 죽으면 벌충할 방법이 없었다. 인해전술(人海戰術)을 사용하는 자들이 이런 상황을 노리는 것은
자명하다. 이런 조건에다가 훈련시간도 부족했다.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적이 함께 있을 때 한 방에 끝내는 것이다.
● 피에솔레 전투
40만명의 야만족은 북부 이탈리아를 다 털고 나서 순서대로 중부로 내려왔다. 처음 공격대상은 피렌체(Firenze, 영어-Florence/꽃의 도시)였다. 이 피렌체 앞에는 “피에솔레” 라는 언덕이 있다. 이 언덕과 피렌체 사이에 상당히 큰 평지가 있었는 데 이 곳이 야만족의 야영지였다. 북쪽에서 야만족의 뒤를 따라 내려오던 로마군은 적의 야영상태를 확인하고 피렌체 城과 연락을 취했다. 피렌체에는 식량과 인력을 요구했고 야만족에게 다 털린
피에솔레 주민에게는 인력을 요구했다. 목적은 적의 야영지를 목책(木柵)으로 둘러 쌓아 가두려는 생각이었다.
얼른 보면 발상이 참 웃긴다. 3만이 40만을 가둔다니 말이다. 그물로 물고기 몰아넣듯이 살살 몰아 한 군데에 가두도록 하는 전술이다. 원래 그 쪽 지형은 여름에 엄청나게 덥고 습하다고 한다. 물 공급도 끊긴 채 야만족들은 쓰러지기 시작했다. 전투를 잘 하는 부대 같으면 인해전술로라도 뚫고 나간다고 생각 할 텐데 이상한 상황이었다. 특이한 것은 갈리아에서 온 야만족 출신 병사들이나 노예에서 차출된 각국 출신의 병사들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사령관의 지휘에 따랐다는 것이다. 8월 한 여름에 적을 한 달간 말려(?) 죽이다가 40만을 다
죽이려면 너무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일부러 한 쪽 포위망을 헐었다. 그 곳에는 “아르노” 강이 있었다. 미친 듯이 물로 들어간 야만족은 뒤따라간 로마병사들에게 사냥감이었다. 칼 아니면 물에 밀어 넣었다. 이 상황묘사는 정사(正史)로 기록된 것은 없고 북 아프리카의 主敎인 ‘아우구스티누스’ 가 전해들은 얘기라고 한다. 하지만 두 달 사이에 20만명이 죽어 나갔다는 사실은 맞는다고 한다.
8월 23일 남은 야만족은 항복했다. 목책과 해자로 몰아서 포위를 했다는 발상이 참 어이없다. 10만명은 南
프랑스로 달아났고 20만명은 죽고 그러면 항복한 者들은 10만명 정도가 된다. 적장 ‘라다가이스’는 잡혀와서 ‘스틸리코’ 앞에서 목이 잘렸다. “훈”족이 무서워 내려와 온갖 분탕질을 다 하던 용맹한(?) 자들이 제대로 된
로마 군을 만나면 이 지경이 되니 아무리 좀 허풍이 있다 해도 로마 군의 전투력은 가히 지상 최강이다. 망했다고 해도 이러니 말이다. 예전에는 이런 大勝을 거두면 신전에 올라가 신에게 고맙다고 했지만 이제는 교회에 가서 신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악순환이다.
참 나라가 어지러우면 하는 짓들이 이 모양이다. 처음에는 야만족의 공포에 질려 벌벌 떨며 ‘스틸리코’에게
고맙다고 하던 원로원들이나 자신의 책무가 뭔지도 모르는 ‘호노리우스’황제는 이제 “똥누고 나니 딴 마음”이더라고 ‘스틸리코’를 씹기 시작했다. 도망간 10만명을 두고 뭐라 하기까지 했다. 뭐 이런 인간들이 다 있나? ‘스틸리코’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앞으로 본국이라도 제대로 방어하려면 갈리아의 남부를 잘 다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 이 사람을 보면 조건은 달라도 중국 南-北 宋때의 장군 악비(岳飛)가 생각난다. 北宋 말 때 의용군으로 금/金 나라의 침공을 막고 南宋때 장군으로 크게 전공을 세웠으나 화친파인 간신 진회/秦檜에게 걸려 사형된 사람이다.)
● 갈리아의 현실
여름에 40만 명의 야만족을 “피에솔레”에서 묵사발을 만들었지만 겨울 12월에 게르만계 야만족이 대거 침입했다. 이 시기가 “민족대이동”이라고 역사책에 나오지만 참 엄청나게 밀려온다. 지난 번과 비슷하게 반달족, 수에비족, 알란족, 사르마티아족이 갈리아로 몰려왔다. 북해로 빠지는 라인 강 하류는 “프랑크족”이 차지 하고 있으니 중류 쪽으로 넘어 왔다. 원인은 훈족이다. 왕초도 없이 15만명이 밀고 들어오는데 예전 같은 방어력도 없는 옛 군단기지들은 맥 없이 넘어갔다. 현재의 프랑스 중부가 다 넘어 갔다. 피레네 산맥에 막혀서 중지 한 뒤 대충 그 자리에 눌러앉았다.
그런데 브리타니아도 예전에는 3개 군단이 주둔했으나 이제는 그 절반 밖에 없었고 본국(西로마)이 허덕이다 보니 이곳을 보살필 겨를이 없어 마치 버린 자식같이 되었다. 이에 화가 난 어느 병사가 선동을 해서 갈리아로 건너왔다. 그를 멋대로 황제로 옹립하고 ‘콘스탄티누스 3세’라고 불렀다. 알량한 군대라도 로마 군이니 갈리아 주민들은 해방군으로 생각했다. 갈리아 땅도 이제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갈리아 남부를 빼고는 쳐들어 온 야만족이 흩어져 주저앉았고 브리타니아에서 넘어온 로마 군과 지난 번에 깨진 ‘라다가이소’의 잔당이 남쪽에 있었다.
브리타니아에서 넘어온 자칭 황제 ‘콘스탄티누스 3세’를 그냥 둘 수 없어서 쫓아 가서 두들겨 주기도 했으나 ‘스틸리코’의 휘하 병력이 3만명 뿐이니 갈리아로 파병을 해서 자칭 황제를 아예 죽여놓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갈리아 땅에서는 자칭 황제가 닥치는대로 야만족을 깨고 있어서 주민들은 어쩔 수 없이 그를 지지했다. 참 환장할 상황이다. 西로마는 황제, 고관들 모두 사치하고 主敎들마저도 호사를 떠는 마당에 ‘스틸리코’ 하나만 공평무사하고 부하를 생각하고 능력있는 지도자 역할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그의 밑에 야만족이나 노예출신 병사들이 버티고 있는 것이다.
● 오랑캐로 오랑캐를 무찌르다.
지금의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어디엔가 웅크리고 있는 ‘알라리크’는 ‘스틸리코’에게 두 번씩이나 늘씬하게 두들겨 맞고 처자식도 포로가 되어 개선식에 나왔었다. 역사가 ‘기번’이 말하듯 ‘스틸리코는‘ 처자식들을 몰래 풀어주고 ‘알라리크’와 협상을 한 것 같다고 주장한다. 그의 복안(腹案)은 ‘알라리크’를 갈리아에 보내 어중이 떠중이들을 청소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다.
오래 전 “포에니” 전쟁 때 한니발에게 번번이 얻어터지는 이유가 騎兵 때문이라 는 것을 알고 카르타고의 옆집인 騎兵국가 “누미디아”를 끌어들여(종전에는 카르타고 편) 한니발에게 유일한 패배를 안긴 경험이 있다. ‘카이사르’는 점령한 갈리아 족장들에게 자치권을 주고 세금만 내면 무방하다는 정책이었는데 기이할 정도로 반란 없이 “로마化의 우등생”으로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 위에서 以夷 制夷라고는 했지만 이런 정책이 얼마나
오래 갈 것인가? 언 발에 오줌 누기가 아닐까? ) 근본적으로 병력이 부족한 지경이 된 西로마 제국에서 이런
변칙적인 방법으로 적을 견제하고 밀어내는 방법을 쓰기는 하지만 길게 보면 앞날이 훤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AD408년 ‘스틸리코’는 ‘알라리크’와의 협상을 공개하고 원로원의 승인을 요청했다. 큰 돈을 갹출해야 하는 원로원 의원들은 떨떠름하지만 다수의 의결로 승인했다. 하지만 그들은 새삼스럽게도 “천한 것”에게 휘둘리는 기분이 들었고 야만인과 이런 협정을 맺은 것을 두고 의심하기도 했다. 황제라는 者를 비롯 해서 자신들은 뭔가 대책을 전혀 내지도 못하면서 뒤에서 험담하고 증오하는 전형적인 망해가는 사회의 꼴을 보이고 있다.
첫댓글 망해가는 제국에서 고군분투하는 스틸리코의 모습이 눈물겹네.
당시에 살던 사람들은 황제라는 자들이나 백성들이나 그게 나라가 망해가는 현상인지 잘 모르지요. 세월이 지나 후세에 역사를 정리하면 그 때가 망하는 때인데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 우리나라도 지금은 제가 뭔가 되는 듯 뭔가 한 건 하는 듯이 보이겠지만 세월이 한 참 지나면 뭔 짓을 했는 지 알겠지요. 그리 오래 전도 아닌 13년 전 광우병 사기 때 촛불 들고 자신들은 뭔가 사회를 혁신하는 것으로 착각한 어리석은 군중들이 지금 되돌아 보면 뭔 짓을 했는 지 알겠지. 그래도 그들은 자신들을 합리화 하겠지. 자신들이 촛불을 들었으니 광우 소고기 가 수입되지 않았다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