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뚱한 집달팽이
ㅡ신이림 시인의 동시집ㅡ
몇일 전 신이림 시인이 보내주신 동시집 [엉뚱한 집달팽이 ] 읽으며
나는 모처럼 가을밭에 농익은 오미자의 맛을 보았다.그 향기에 푹빠져들고 말았다.
참 잘 쓴 글이다.
그냥 흘려버리기가 아쉬워
시평을 발췌하여 공유한다.
印默 김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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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시는
쓰는 사람의 것이 아니라
읽는 사람의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말대로라면
「엉뚱한 집달팽이」 집에 사는 이 동시들은 모두 제 것이 아니라 독자 여러분의 것이겠지요.
동시집을 엮으면서
사람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걸 새삼 생각했습니다.
한 편의 동시가 되어 준 모든 소재들
삽화를 그려 준 며느리 해설을 써주신 황수대 평론가 책을 만들어 준 청색종이 출판사
이런 고마운 이웃들이 없었다면
「엉뚱한 집달팽이는 세상에 나오지도 못했을 거예요.
모든 것이 여물어 가는 때
동시들이 세상에 나가게 되어
참 다행입니다.
덜 여문 동시들이 여러분을 만나
좀 더 단단해지기를 소망합니다.
2024년 가을
신이림
◇◇◇◇◇◇◇◇
●.평론
세심한 관찰력과 배려의 미학
황수대 (아동청소년문학평론가)
1.
시는 언어를 선택하고, 이를 적절히 배열함으로써 예술적 효과
를 기대하는 장르이다. 실제로 시인은 자기가 경험한 어떤 사물
이나 사건을 주관적 언어를 통해 표현함으로써 독자와의 소통을
시도한다. 그 과정에서 시인은 사상과 감정을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오랜 시간 고심해서 언어를 매만지는데, 이는 어떤 언어를
선택하고, 그것을 어떻게 조합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가 달
라지기 때문이다.
시에서의 언어는 그저 단순히 의사소통의 매개물이 아니다. 물
론 의사소통이 언어의 중요한 기능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실 언
어는 그 이상의 힘을 지니고 있다. 다의어와 유의어 등 언어에는
다양한 의미 현상이 존재한다. 같은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그것이
놓인 자리와 상황에 따라 의미와 정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시인
은 그와 같은 언어의 특성을 활용해 새로운 미적 가치를 생성하
거나 기존의 관념을 해체하기도 한다.
따라서 언어를 다루는 능력은 곧 시인의 자질과 직결되는 문제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신이림은 시적 재능이 무척 뛰어난 시인이다. 특히 언어를 갈고 다듬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그의 시는 공들여 쌓아 올린 돌담처럼 아름답고 견고하다. 거기에 자신만의 뚜렷한 철학과 가치관이 더해져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엉뚱한 집달팽이는 신이림의 세 번째 동시집으로 그와 같은 시세
계를 잘 보여 준다.
2.
신이림의 시는 하나같이 깨끗하고 말쑥하다. 감정의 과잉 없이
절제된 언어로 담백하게 표현해 마치 잘 그려진 한 폭의 동양화
를 보는 듯하다. 이는 그가 기본적으로 시의 본질, 즉 여백의 미학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또한, 신이림의 시는 전반
적으로 따뜻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이는 사물이나 세상을 바라 보는 시인의 심성이 순수하고 착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밤사이
도둑이 다녀갔다.
어지러운 발자국
몽땅 훔쳐 갔다.
새하얀 숫눈길만
남겨 놓은 채.
「도둑눈」 전문
이 시는 눈 내린 어느 겨울날의 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3연 6행의 짧은 분량이지만, 군더더기 없는 표현과 선명한 이미지가 인상적이다. 제목에서 보듯이 이 시는 밤사이 몰래 내린 눈을 "도둑"에 빗대어 표현하고 있다. 또한, "새"와 "숫" 같은 접두사의 사용과 "어지러운 발자국/ 몽땅 훔쳐 갔다.// 새하얀 눈길만/남겨 놓은채''와 같은 구조의 뒤바꿈을 통해 눈 내린 겨울날의 아침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데, 직접적인 감정의 표출 없이도 화자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나무가 꽃받침에
꽃봉오리 솥을 내걸었다.
봄볕은 모락모락
불을 지피고
봄바람은 살랑살랑
부채질하고
어느새 뜸이 든
향긋한 밥,
배고픈 벌과 나비
여기저기서 찾아든다.
-「무료급식」 전문
시인은 어떤 시적 상황을 통해 자신의 사상과 정서를 표현한다. 이 시는 그 대표적인 예로, 어느 봄날 시인이 목격한 장면을 형상화하고 있다. 이 시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나무"이다. "나무가 꽃받침에/ 꽃봉오리 솥을 내걸었다." "배고픈 벌과 나비/여
기저기서 찾아든다."에서 보듯이, 나무는 단순히 자연물이 아니다. 배고픈 벌과 나비를 위해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내어 주는 존재이다. 즉, 희생과 나눔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이는 신이림 시가 전반적으로 따뜻하게 느껴지는 까닭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알게 해 준다.
3.
신이림의 시에는 유난히 자연을 노래한 작품이 많다. 또한, 거미와 달팽이, 쑥부쟁이와 질경이 등 작고 소소한 생명체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는 자연에 대한 시인의 관심과 애정이 남다르며,관찰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말해 준다. 그 때문인지 신이림의 시
는 애초 관념과는 거리가 있다. 시적 상황이 매우 구체적이고 생동감 넘치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그의 시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그저 단순히 배경으로만 그치지 않고, 곧잘 어떤 대상에 대한 은유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소나기 오는 날
우리 집 마당에서는
수백 마리도 넘는 물개구리들이
팔딱펄떡펄떡펄떡 뜀뛰기를 한다.
타닥타닥타닥타닥 달리기도 한다.
풀쩍풀쩍 높이뛰기도 한다.
선수들은 운동장 가득인데
구경꾼은 나와 백구
딱
둘뿐.
-「빗방울 운동회」 전문
이 시는 집 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묘사하고 있다. "수백 마리도 넘는 물개구리들"에서처럼, 이 시의 출발은 마당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마치 "개구리"가 뛰어오르는 모습과 닮았다는 생각에서 비롯된다. 이는 연상작용을 통해 다음의 "팔딱펄떡팔딱펄떡 뜀뛰기" "타닥타닥타닥타닥 달리기" "풀쩍풀쩍 높이뛰기"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데, 다양한 의태어를 사용해 빗방울의 모습
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다. 이는 실제로 경험하지 않고는 쓸 수
없는 것으로, 신이림의 세심한 관찰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
여 준다.
나무젓가락을
둘로 쪼개면
뚝!
나뭇가지 부러지는
소리가 난다.
그 소리의 울림을
따라가면
쿵!
한 그루 나무
쓰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나무젓가락」 전문
그런가 하면 이 시는 신이림의 자연관이 어떤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해 준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나무젓가락을 소재로 해서
오늘날 전 지구적 관심사인 생태 문제를 담아내고 있다. 특히 이
시는 의성어를 중요한 시적 장치로 활용하고 있는데, 이들이 놓
인 자리가 예사롭지 않다. 시인은 "뚝!"과 "쿵!"을 의도적으로 점층식 구조 즉, 의미가 작은 소리에서 큰소리 순으로 배열하고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시적 효과를 높이는 데 크게 한몫하고 있다.
목적성이 강하면 으레 목소리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 시는 그러한 문제점을 잘 극복함으로써 여느 작품보다 올
이 크다.
4.
시는 함축과 리듬, 이미지 같은 다양한 요소들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같은 소재라도 시인이 그것을 어떻게 인식하고 표현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수준 및 감동의 크기가 달라진다. 그 때문에 시인은 내용이나 형식에 있어 작품의 완결성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데, 그러한 노력은 작품을 통해 고스란히 독자에게
전달된다. 이는 신이림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그의 시
를 읽다 보면 그가 얼마나 진정성 있는 자세로 창작에 임하고 있
는지를 알 수 있다.
겨우겨우 찾은
네잎클로버
벌레가 잎을
반이나 갉아먹었다.
에이, 속상해.
하다가
아니지,
벌레가 행운을 반이나 남겨 두었네.
생각 하나 살짝 바꾸니
고마워지는 벌레.
-「반반」전문
이 시는 행운을 의미하는 네잎클로버를 소재로 하고 있다. 이시에서 화자는 어렵게 네잎클로버를 발견하지만, "벌레가 잎을/반이나 갉아먹은 것을 알고는 속상해 한다. 그러다가 "아니지./벌레가 행운을 반이나 남겨 두었네." 하고 생각을 바꾼다. 그러
자 조금 전까지 밉게만 느껴졌던 벌레가 새삼 고맙게 느껴진다.
이처럼 이 시는 화자가 사고의 전환을 통해 깨달은 바를 형상화하고 있는데, 실로 공감되는 바가 크다. 사실 네잎클로버는 그동안시에서 단골로 등장한 탓에, 소재 면에서 그다지 새로울 게 없
다. 그런데도 이 시가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은 시인이 지닌 철학
적 깊이 때문이다.
물
고 기
두 마 리
시
간 이 살
은 다 발
라 먹 고
뼈 만
남
겨놓았
다, 바 위 에
-「화석」전문
제목에서 보듯이 이 시는 화석을 노래한 것으로, 그 형식이 무척 독특하다. 바위에 새겨진 물고기 형상을 본떠 시행을 배열함으로써 또 다른 재미를 준다. 이런 유형의 작품들은 종종 지나치게 형식미에만 치우쳐 오히려 시의 품격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하지만, 이 시는 내용과 형식의 적절한 조화로 그와 같은 우려를 해소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이 시집에는 「돌탑」과 「인터뷰」
등 시적 효과를 위해 의도적으로 형식의 변화를 주고 있는 작품이 몇 편 더 실려 있다. 이는 신이림이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자신만의 시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알게 해 준다.
5.
누구나 시를 쓸 수는 있지만, 그렇다고 누구나 좋은 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기본적으로 좋은 시는 발상과 표현이 새롭다.
또한,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보여 준
다. 앞서 살펴본 것처럼 신이림의 시는 좋은 시가 갖추어야 할 조
건을 두루 충족하고 있다. 더욱이 그의 시는 "염소는 뒤에서 고삐를 잡아 주면/ 길을 잘도 찾아간다.// 울 엄마는/아직도 모른다/ 내가 염소라는 걸."(「언제쯤 알까」)처럼 아이부터 어른까지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 많다.
흔히 시는 언어를 통해 시인의 내면세계와 존재 의미를 드러내
는 하나의 도구라고 말한다. 따라서 시를 읽는 행위는 곧 독자가
그와 같은 시인의 사상이나 감정을 공유함으로써 세상을 이해하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탐색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시는 일상어와 달리 정보 전달을 넘어서는 어떤 힘을 지니고
있는데, 이것이 우리가 시를 읽는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우리 동네 분수대에는/밥 주는 동전이 산다.// 소원 하나씩 품에 안고/ 물속에 잠들었다가// 연말이면 물에서 깨어나/배고픈 사람들을 찾아간다.// 따끈한 밥이 되어 / 따끈한 국이 되어."(「소
원분수대)는 4부에 수록된 작품으로 신이림이 지향하는 세계가 어떠한지 잘 보여 준다. 부디 이 시에 등장하는 동전처럼 이 시집이 따끈따끈한 한 그릇의 "밥"과 "국"이 되어 많은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고 넉넉하게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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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이림
1996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
2011년 황금펜아동문학상 동시 당선
동화책 「염소 배내기」 「싸움닭 치리」 「소리로 만나는 어머니』 외
동시집 발가락들이 먼저 춤추는 자귀나무』
한국불교아동문학상 수상
sideway56@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