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공을 세운 후 받는 시호 ‘충무’를 높인 말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의 승리로 받게 돼
임진왜란 발발은 음력으로 1592년 4월 13일이며 양력으로 환산하면 5월 23일이다. 바로 이날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는 조선을 침략하기 위해 조총으로 무장한 왜병으로 부산 앞바다를 공격했다. 길었던(7년) 왜란 중 가장 혁혁한 무공을 세우고 전사한 충무공 이순신의 위국충정을 역사는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제는 ‘충무공 이순신’이란 명칭을 확실히 알고 써야 할 때가 됐다. 일반적으로 충무공과 이순신을 동일한 인물로 알고 있는 것은 옳으나 다른 사실도 알아야 한다. ‘충무공’은 시호(諡號)이고 ‘이순신’은 장군의 성함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를 보면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받은 분이 12명이나 된다.

1.지용수(池龍壽·?~?)
고려 충목왕 때 현릉직으로 시작해 공민왕 때 안우 등과 함께 홍건적을 격퇴했으며, 홍건적에게 일시 함락된 서울(개경)을 수복해 1등공신이 됐다.
2.박병묵(朴炳默·?~?)
고려에서 평장사를 역임했고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받았다.
3.최필달(崔必達·?~?)
강릉최씨 충무공파의 시조다. 고려 태조를 도와 고려 건국에 기여한 공으로 918년(태조 1)에 삼중대광 삼한벽상 찬화공신에 훈봉됐다.
4.조영무(趙英茂·?∼1414)
고려 말 조선 초의 무신이다. 중국에서 귀화한 지수(之壽)의 고손으로 할아버지는 순후(珣厚)이고, 아버지는 세진(世珍)이다.
5.남이(南怡·1441~1468)
세조 때의 무신이다. 이시애의 난과 건주여진 정벌 등에서 공을 세워 세조의 총애를 받았으나 세조가 죽은 후 역모로 몰려 처형됐다.
6.이준(李浚·1441~1479)
조선전기의 종친으로 이시애의 난을 토벌한 공신이다. 세종의 4남인 임영대군(臨瀛大君)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문무를 겸비한 까닭에 세조의 총애를 듬뿍 받았고, 1463년(세조 9)에 구성군으로 봉해졌다.
7.이순신(李舜臣·1545~1598)
본관이 덕수이고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로 그 충무공이다.
8.김시민(金時敏·1554~1592)
왜란 때 진주성 전투에서 3800명의 병력으로 2만여의 왜적을 격퇴하고 전사했다
9.이수일(李守一·1554∼1632)
자는 계순(季純), 호는 은암(隱庵)이며 충주 출신이다. 주부(主簿) 오(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생원 자침(自琛)이고, 아버지는 증 영의정 난(鸞)이며, 어머니는 참봉 우담령(禹聃齡)의 딸이다.
10.정충신(鄭忠信·1576~1636)
왜란 때 권율 휘하에서 종군했고 만포첨사로 국경을 수비했다. 이괄의 난 때 황주, 서울 안현에서 싸워 이겼고 정묘호란 때 부원수가 됐으며 조정에서 후금과 단교하려는 데 반대해 유배됐다.
11.구인후(具仁?·1578~1658)
광해군의 폭정에 반감을 품고 반정모의에 참여했고 정묘호란으로 인조가 강화도로 피란했을 때 후금군을 막아 싸웠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군사 3000명을 이끌고 남한산성에 들어가 왕을 호위했다
12.김응하(金應河·1580∼1619)
건주위를 치려고 명나라에서 원병 요청을 하자 참전했다. 명나라 유정이 패하여 자결하자 수만 명의 후금군을 맞아 싸우다 중과부적으로 패해 전사했다.
우리 역사에는 이순신(李舜臣)이 3명, 이순신(李純信)이 1명 등장한다.
이순신(李舜臣·?~?)은 조선시대 중기의 왕족이다. 본관은 전주.종실(宗室)로 보성군의 서손이자 춘양군(春陽君) 이내(李徠)의 서자이며 여러 관직을 지내고 등림수(登臨守에 올랐다
이순신(李舜臣·1545~1598)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그 충무공이다.
이순신(李純信·1554~1611)은 조선 중기 왕족 출신의 무신이다. 충무공이 마지막 전투에서 적의 유탄(流彈)에 전사하자 대신 전쟁을 독려해 승전으로 이끈 명장이다.
이순신(李舜臣·1607~?)은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무과에 급제했다. 황해남도 봉산 출신이다. 자는 인숙(仁淑), 본관은 여주다.
위의 역사적 사실로 볼 때 충무공과 이순신을 항상 같은 인물로 보는 것은 역사적 오류를 범할 소지가 많으니 반드시 구별해 써야 할 것이다.
박희 선문대 교수·문학박사(한국한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