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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관을 찾아서⑨경주 동리·목월문학관 한국문학 두 거장 한자리에 | |
◇ 동리·목월문학관은 경주시 불국동 옛 석굴로 사무소 자리에 자리잡고 있으며 한국 문단의 두 거목 김동리, 박목월 선생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 경주 출신의 문단 거목인 동리·목월선생 기념관 건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동기를 제공한 공선섭(왼쪽) 전 리비아 대사와 기념사업회 장윤익 회장이 지난 시간을 회고하고 있다. ◇ 김동리 선생이 1974년 서울신문에 연재했던 ‘대왕암’을 스크랩한 묶음. 울산과 무관하지 않은 까닭에 유달리 시선을 사로잡는다. ◇ 김동리 선생의 서재에 들어서면 선생의 손때 묻은 원고지, 만년필 등 유품들이 손님을 맞는다. ◇ 동리·목월문학관을 향하다 보면 만나는 돌다리. 천년고도 경주의 정취를 그대로 간직한 이 돌다리가 우리를 김동리·박목월 선생과 연결해주고 있다. 만년필·원고지등 유품 1만8천여점 신문연재소설 ‘대왕암’스크랩 눈길 열정은 불가능도 가능하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한 사람의 이슬처럼 영롱한 열정이 모이고 모여 결국에는 소용돌이치며 굽이굽이 바다로 흘러 들어가게 되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다. 경주시 불국동(전 진현동) 550-1 외 4필지 옛 석굴로사무소 자리에 다소곳하게 터내림한 동리ㆍ목월문학관도 한 사람의 지역 출신 문인에 대한 애틋한 정이 싹튼 것이라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울산에서는 어렵잖게 오갈 수 있는 거리에 위치한 동리ㆍ목월문학관이 문을 연 것은 아직 늦추위가 머뭇거리며 서성이고 있던 지난 3월 24일이었다. 어느새 4개월이 지났다. 세월의 때가 적당히 녹아나는 돌다리를 지나 몇 개의 계단을 오르면 양 날개를 단 듯한 한옥이 모습을 드러낸다. 계단의 끝자락에 발걸음을 멈춰 바튼 숨을 몰아쉬며 주위를 휘둘러보면 오른쪽에 한 동의 한옥이 있고 눈을 높이 들어 마주 보이는 것이 동리ㆍ목월문학관이다.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한 건물 속에 문학적 깊이와 무게를 이야기하는 일 자체가 송구스러운 두 문단 거목의 문학적 업적을 기리는 전시관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유리문을 밀치고 들어서면 왼쪽이 동리문학관이고 오른쪽은 목월문학관이다. 한 집 두 가족인 셈이다. 동리문학관에 들어서면 먼저 김동리 선생의 동상이 반긴다. 유난히 고운 피부를 자랑하셨던 선생의 생전 모습을 그대로 표현해 낯설지 않다. 1913년 탄생 이후 1995년 83세를 일기로 돌아가실 때까지의 연보를 더듬은 다음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생각지도 않은 소설 〈황토기〉의 한 구절이 뒷덜미를 잡는다. 고개를 돌리면 사람의 움직임을 센서로 감지한 다음 넓은 화면을 통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황토기〉가 눈에 들어온다. 잠시 넋을 놓다 조금 더 안으로 들어서면 선생의 생전 모습을 떠올릴 수많은 유품들이 작은 목소리로 환영사를 쏟아낸다.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도장(낙관)류를 비롯해 책이며 원고지, 만년필, 커프스버튼 등이 지난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다. 유품들을 하나하나 둘러보다보면 유난히 눈동자를 크게 만드는 것이 있다. 1974년 서울신문에 연재되었던 소설 〈대왕암〉을 스크랩한 묶음이다. 울산과 결코 무관하지 않은 까닭에 반갑기 그지없다. 문학관 안쪽에 재현한 선생의 서재는 앉아 있기만 해도 소설이 쓰여질 듯하다. 동리문학관은 한국근대소설사의 시금석으로 일컬어지는 선생의 샤머니즘과 토속성을 주조로 민족적 정체성을 탐구한 작품세계를 더듬기에 부족함이 없다. 하루 온종일 머물러 있어도 시간이 모자랄 정도다. 건너편에 있는 목월문학관도 ‘나그네’의 시인 박목월 선생의 동상이 먼저 반기고 그 안으로 작품세계며 유품 등을 전시해 배치는 동리문학관과 엇비슷하다. 시와 소설의 차이가 있을 따름이다. 청록파 시인의 한 사람으로 식민지시대 민족의 얼과 혼을 향토적 서정과 시공간을 초극하는 상징적인 자연을 노래한 시인의 담백한 시정신을 만나게 된다. 선생의 혼이 그대로 배어 있는 유품들 앞에서는 그저 숙연해진다. 시상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원고지며 훈장 등을 살피면 살필수록 개관식에서 박동규 교수가 유족 인사를 대신해 한 “시 한 편, 소설 한 편으로 영원히 사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던 한 마디가 귓가에 맴을 돈다. 다행히 파견 나온 경주시 공무원의 도움으로 자료실까지 둘러볼 수 있는 행운을 안았다. 자료실에 들어서자 10여개의 서가에 빼곡이 꽂힌 책들이며 어느 때 것인지 시기를 짐작하기 어려운 도자기 등 유품이 보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손때묻은 책과 도자기, 그림 등 유품이 무려 1만8,000여점으로 1년에 한 차례 정도 바꿔 전시할 계획이라는 관계자의 설명이다. 동리ㆍ목월문학기념사업회 장윤익(전 경주대 총장) 회장을 만난 것도 뜻하지 않은 복이었다. 기념사업회 사무실에서 장 회장은 “홍보가 크게 되지 않은 상태에도 전국의 문인들이 찾아오고 있다”며 “앞으로 동리ㆍ목월문예창작대학을 개설, 다른 문예대학과 차별화할 수 있도록 주말특강형식으로 꾸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뿐만 아니라 문학관 입구의 한옥은 신라인의 숨결관으로 꾸며 김대성 등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한다는 틀을 짜놓고 추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동리ㆍ목월문학관이 건립되기까지는 그야말로 우여곡절이 많았다고 회고하는 장 회장. 기획예산처에서 제외시킨 예산을 바로잡기 위해 정ㆍ재계 인사를 수없이 만났다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동리ㆍ목월문학관은 최근 불국사 주차장이 기존 위치에서 600m 아래로 옮기면서 문학관을 찾는 관광객의 발걸음이 줄어들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동리ㆍ목월문학관을 개관할 때만 해도 관광객들이 불국사를 거쳐 올 수 있도록 횡단보도 등이 설치돼 있었다. 당연히 별도의 주차장이 마련돼 있을 리 만무하다. 현재 주차장에서 동리ㆍ목월문학관 가는 길도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그나마 아스팔트길을 15분 정도 산책 삼아 걸어가는 여유도 부려볼 수 있다. 그렇지만 도로 사정이 마냥 여유를 부릴 수 없게 하는 까닭에 모처럼 작고 문인의 문학세계에 빠져들고 싶었던 마음을 다잡지 않으면 안 되는 불편을 겪어야 한다. 주차장에서 동리ㆍ목월문학관까지 가기 위해서는 사람 다닐 길이 없어 대형 버스가 무시로 오가는 석굴로를 두 눈 부릅뜨고 오르내려야 한다. 이에 대해 문학관 관계자는 “승용차의 경우 10대 정도는 주차할 수 있어 그리 큰 문제는 아니라”면서도 “나이 드신 분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시는 것을 보면 송구스럽다”고 어려움을 털어놨다. 이연옥 기자 |
첫댓글 천주산님 고맙습니다. 이번 가락기행에 좋은 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 저 돌다리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