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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 찬미
대림 제3주일은 장미 주일이라고도 하며 기쁨 주일이라고도 합니다. 대림 시기를 보내며 우리는 제대
근처에 대림환을 만들고 자색, 분홍색, 흰색초를 세워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4개의 초는 각 주마다
하나씩 불을 밝혀 대림 제4주가 되면 모든 초가 불을 밝히며 이 세상의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립니다. 보라(자)색은 고행과 단식, 회개를 상징하며 우리에게 오실 예수님을 맞기 위해 잠시 인간적
욕망을 억제하며 회개하여 예수님께서 오시는 것을 준비하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주는
분홍색 초를 밝힙니다. 분홍색은 때가, 또는 분위기가 무르익었음을 의미하는 색입니다. 이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가 임박했으니 그간의 고행에서 잠시 벗어나 예수님을 만날 기쁨을 생각하며 잠시
휴식 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그때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의미가 담긴 초입니다. 다음 주에는 흰색 초가
밝혀질 것입니다.
어린 시절 복사로 제대에 봉사를 할 때 매년 11월 말 쯤 되면 제의방 수녀님이 창고를 열고 대림초를 세울
촛대를 꺼내달라고 저와 다른 복사들에게 부탁하시면 '이제 성탄이 가까워 오는구나!' 하며 앞으로 있을
큰 전례를 생각하며 가슴이 설레였던 기억이 납니다.
촛대를 꺼내고 나면 수녀님들의 손길이 무척 바빠지기 시작하죠. 푸른색깔을 띤 이름 모를 식물 한아름이
저에게 주어지고 저는 제단을 장식하는 봉사자들께 나르곤 했습니다. 그렇게 푸른 잎으로 아래를 둥글게
장식하고 마지막으로 네 개의 초를 꽂습니다. 그렇게 만든 것이 대림환이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호기심 가득했던 저는 그것은 왜 만들며 초 색깔은 왜 진보라, 보라, 분홍, 흰색인지를
여쭈어 보았던 일이 생각납니다.
그때 수녀님께서는 저를 귀엽게 바라보시며 미소 띤 얼굴로
찬찬히 설명해주셨었습니다. 이에 따르면 우선 둥근 모양을 하고
있는 '환'의 의미는 '영원'이라는 의미라고 하셨습니다. 즉, 하느님의
영원하심과 우리 영혼의 불멸성,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우리가
얻게 될 영원한 생명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환을 이루는 나뭇잎들은
승리를 상징하는 월계관을 의미한다고 설명하셨는데, 이는
예수께서 종말에 이루실 최종적 승리를 일깨워준다는 것입니다.
대림환 전체의 푸른색은 생명을 상징하며 희망과 미래를
나타내고, 푸른색을 이루는 것들은 대부분 나뭇잎인데, 이들은 주로
사철나무나 전나무 등 일년 내내 푸른 상록수의 잎을 사용합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생명이 우리 안에서
변치 않고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는 의미를 말씀하셨었습니다. 그 후 저는 가톨릭 전례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지금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에 밝혀진 빛은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리고 빛은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밝혀 줍니다. 따라서 초는 이
세상에 빛으로 오시는 그리스도 예수님과 그분께서 가르치신 진리, 그리고 그분의 정의로 세상을 밝히고
우리가 가야할 길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초는 자신을 희생하여 빛을 냅니다. 그래서 초는 우리를 위해
희생하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네 개의 초는 동, 서, 남, 북 네 방위를 의미하며 온 세상 어디에나 계시는 하느님을 상징하고, 또한 예수님을
기다린 구약의 사천 년을 의미합니다.
대림 제1주의 보라색 초는 구약의 예언자들이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와 같이 메시아, 즉 구세주께서 오실 것을 예언한 사실을 밝히는
'예언의 초'라고 부르며, 대림 제2주의 연보라색 초는 예언서에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 것 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미카 5,1)."라고 기록된 대로 구세주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며, 마리아와 요셉이 인구조사를
위해 베들레헴으로 향하신 사실을 알려주는 '베들레헴 초', 그리고 대림 제3주의 분홍색 초는 천사들의 기쁜
소식, 바로 "두려워 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루카 2,10-12)."라는 선포를 듣고 구세주를 뵙기 위해
기쁨에 차 달려간 '목자들의 초', 마지막 대림 제4주의 하얀색초는 예수님의 탄생을 가슴 졸이며 기다렸고
아기 예수의 탄생과 함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라고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한 '천사들의 초'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 흰색초는 또한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세상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은 우리의 순결한 신앙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인간이 되어 태어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사야 예언자가 말했듯 우리의 모든 죄가 씻겨
순결하게 될 것입니다.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18)
대림환의 푸른 이파리들은 게르만족들이 동지가 가까워 오면서 침엽수와 상록수 나뭇가지들을 모아
모닥불을 피워 주위를 따듯하게 만들어 봄이 빨리 오기를 재촉하는 전통에서 유래했다고 하며, 초를
밝히는 것은 루터파 개신교 목사였던 요한 비헤른에 의해 1833년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가톨릭에서는 이
두 가지 전통을 받아들이고 가톨릭의 영성과 혼합해 1920년대 독일 가톨릭 교회에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으며, 1930년대 북미 가톨릭 교회로 전파되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대림 시기의 마지막 주간인 대림 제4주에 네 개의 초가 모두 밝혀지면 이후 대림환은 사라지고 성탄 전야
미사에서부터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성당을 장식하게 됩니다.
크리스마스트리에도 많은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의 기원에 대해서는 고대 이집트와 로마 제국 등지에서 성행하던 '나무 숭배' 풍습에서
기원을 두고 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 전통은 우리나라에서도 발견할 수 있죠. 마을의 고목에 치성을
드리던 조상들의 모습에서 큰 나무나 오래된 나무를 숭배했던 것은 전 세계에서 두루 발견할 수 있는
풍습인 것입니다.
기원후 8세기 성 보니파시우스는 이방신을 섬기고 사는 가장 악명 높은 지역인 헤센 지역에 선교사로
파견되었는데, 그 지역 원주민들은 특히 '토르'라는 천둥, 전쟁, 농업을 관장하는 신으로 모시고,
토르신의 나무라며 오래된 떡갈나무 앞에서 제사를 지내며 어린이를 인신공양 하려고 했습니다. 마침
성인이 도착한 날은 성탄 전날이었고, 성인은 그들이 사람을 제물로 바치며 신성시하는 떡갈나무를
보란 듯이 도끼로 베어 베드로 성인에게 봉헌한 경당을 짓는 데 사용함으로써 그들을 개종시키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작은 상록수인 전나무를 가리키며 "오늘 밤부터 이 나무가 여러분에게
신성한 나무가 될 것입니다. 이 나무는 평화의 나무입니다. 이 나무는 그 잎이 늘 푸르기 때문에 영원한
삶의 표징입니다."라고 설교하며 이 나무를 오늘 밤 오실 아기 예수님 나무라고 부르자고 제안하며, 전나무를
집에 가져다 놓고 사랑의 선물들을 나누고 친절한 행위를 하는 곳으로 삼자고 제안합니다. 그 후 그 지역
원주민들은 집에 전나무를 심고 보니파시오의 설교를 기억했다고 합니다.
우선 크리스마스트리에 쓰는 나무도 역시 상록수를 사용합니다. 특히 전나무를 많이 사용하는데 이런
이유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그후 기록상으로 1605년 독일 스트라스부르 연보 기록에 성탄 때 나무를 장식했다는 내용이 발견됐는데
이것이 크리스마스트리에 대한 첫 기록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당시 이곳에서는 성탄이 되면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를 주제로 하는 낙원극을 공연하고는 했는데 공연을 하는 동안 상록수 나무에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상징하는 사과와 예수님을 상징하는 미사에서 사용하는 제병과 비슷한 둥근 모양의
흰색 과자를 걸어 장식하고, 주위에 촛불과 횃불을 피워 나무를 잘 보이도록 빛나게 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 나무를 '낙원 나무'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이후 이 풍습이 독일 전역으로 퍼지며 12월 24일 아담과 하와를
기념하는 축제에 등장시킨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톨릭에는 없지만 동방 교회에서는 12월 24일이 아담과
하와의 축일입니다. 그런가하면 역시 독일에서는 크리스마스 즈음에 그리스도의 조상들을 나타내는 양초
피라미드를 세웠는데 이 두가지가 합해지면서 크리스마스트리의 원형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아담과 하와의 축일은 교회의 전례력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성직자들은 신자들이 이 축제를 보내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15세기부터는 성탄 전날 왁자지껄한 신비극을 금했고 이에 신자들은 낙원 나무를 무대에서
신자들의 집으로 옮겨왔습니다. 그러면서 성경의 여러 이야기들을 가지고 나무를 장식하기 시작했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성경의 두 가지 나무를 상징합니다. 먼저 에덴동산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서
아담과 하와의 잘못을 기억하게 합니다. 또 하나는 '생명나무'로서 하느님께서 아담과 하와가 열매를 따먹어
영원히 살지 못하도록 하신 나무로 우리게게 영원한 생명의 문을 열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나무이며,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고 못 박혀 달리신 '십자나무'를 기억하게 하는 나무입니다.
따라서 과거 집으로 가져온 '낙원 나무'인 크리스마스트리에는 선과 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상징하는 사과를
매달았고, 예수님의 성체를 상징하는 제병 모양의 빵 또는 과자를 달아서 장식했습니다. 그것이 나중에 사과는
붉은 색깔의 방울로, 빵과 과자는 은색 방울로 대체되었습니다.
또한 미국을 시작으로 전세계로 퍼져나간 크리스마스트리로 가장 인기 있는 나무가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구상 나무라는 사실을 아는 분은 많지 않습니다. 과거 1898년 한국에 파견된 에밀 타케 신부님이 평소
식물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1907년 채집한 구상나무 표본을 미국 하버드대 아놀드 식물원에 보냈습니다.
그 후 이 나무는 오직 한국에서만 서식하는 나무로 알려지게 되었고, 최고급 조경수로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워낙 뛰어난 재질과 아름다운 무늬로 인해 고급 가구 제작에 많이 사용되며, 그 이후 크리스마스트리로도
각광받게 됩니다.
오래전부터 가톨릭 신자들은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트리를 고를 때 숲 속 가장 깊은 곳 빛이 닿지 않는
곳에서 상록수인 나무를 골라 베어 옵니다. 그 이유는 이사야 예언서에서 볼 수 있습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이사 9,1)."
어둠 속에 있던 나무는 빛을 향해 나옵니다. 그렇게 이 나무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주님의 탄생을
축하하고 알리는 상징이 됩니다.
그리고 그 나무의 가장 높은 곳에 별 또는 천사를 장식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하고 동방의 세 박사가 헤로데에게 말했죠.
그리고 천사 가브리엘은"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루카 1,28)."하고
마리아에게 인사를 건네며 예수님의 잉태를 알립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하느님과 같아지고자 한 교만이 우리에게 죽음이 들어오게 했음을 기억하고, 죽기까지
겸손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모든 것을 오로지 주님께 의탁하기를 바라며 빨간 방울을 나무에 겁니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될 줄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세 3,5)."
죄의 노예가 되어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게 된 우리에게 당신을 내어주시어 우리를 영원히 사는 존재가
되게 문을 열어 주신 예수님의 성체를 기억하며 은색 방울을 나무에 장식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요한 6,51)."
캔디 캐인 이라고 부르는 지팡이 모양의 사탕 장식은 목자의 지팡이를 상징합니다. 우리의 목자로 오신
예수님의 이끄심을 의미합니다.
"나는 착한 목자다. 착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내놓는다(요한 10,11)."
캔디캐인의 붉은색 줄은 우리를 위해 흘리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맺으신 새 계약의 피를 상징합니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20)."
종은 기쁜 소식을 알립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라는 예언서를 읽으시고,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라고 선언하십니다.
여러 모양의 천사들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탄생 순간에 하느님께는 영광을 우리에게는 예수께서
주실 평화를 찬미했습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 14)"
또한 밝히는 불들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예전에는 촛불을 장식했으나 이제는 전등으로
대체했죠.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빛이 세상에 왔다(요한 1,9)."
아기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자마자 고난을 겪으십니다. 헤로데의 위협을 피해 이집트로 도망을 가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일어나 아기와 그 어머니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여, 내가 너에게 일러줄 때까지 거기에 있어라. 헤로데가
아기를 찾아 없애 버리려고 한다(마태 2,13)."
도망가다 지친 성가정이 잠시 쉬기 위해 동굴에 숨습니다. 그때 아기 구세주께서 자기가 사는 동굴에 들어온
사실을 알고 어떻게든 돕기로 합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해 동굴 입구에 거미줄을 쳐서 안이 안 보이도록 합니다.
그래서 성가정을 쫓던 헤로데의 병사들은 동굴에 숨은 예수, 마리아, 요셉을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쳤다고 하죠.
그 거미줄을 상징해서 장식하는 것이 틴실입니다. 또한 깊은 숲 속에서 오랜 세월 지내는 동안 나무에 걸쳐진
거미줄을 상징하며,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고 산 우리의 신앙의 세월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현대의 크리스마스트리는 실제로 중세의 낙원 나무를 이어온 가톨릭의 전통으로서, 도대체 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는지를 깨닫게 해 주며, 주님의 탄생으로 우리가 받아 모실 수 있게 된 영원한 생명을
주는 생명나무인 예수님을 깊이 묵상하도록 이끌어 줍니다. 따라서 가톨릭 신자가 보는 크리스마스트리는
그저 장식이 아닌 우리의 신앙인 것입니다. 이것이 믿지 않는 이들과 우리의 차이이겠죠.
이제 우리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모두 장식했습니다. 그리고 창문 가까이 모두가 볼 수 있는 장소를 택하여
자리를 잡아줍니다. 창문에 불을 켜 두는 관습, 또는 트리나 전구를 창에 밝히는 이유는 영국이 성공회를 설립한
후 가톨릭 미사를 봉헌하지 못하도록 박해했을 때,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들이 혹시라도 성탄 저녁에 숨어 다니는
가톨릭 사제가 지나갈 때 이곳은 안전하게 미사를 봉헌할 수 있는 곳이라고 알리기 위해서 켜 둔 등불이 그
시작입니다. 영국인들이 불을 켠 이유를 물을 때 아일랜드 가톨릭 신자들은 마리아와 요셉을 초대하는 것이라고
말했고, 영국 군인들은 그것을 미신이라며 우습게 보고 지나쳤다고 합니다.
그리고 호랑가시나무(Ilex opaca)와 붉은 열매를 엮어 환을 만들어 집의 현관에 걸어 둡니다. 이는 이 나무의
이파리에 난 가시 때문입니다. 이 가시와 붉은 열매는 모세가 보았던 불타는 떨기나무를 상징합니다.
"저 떨기가 왜 타 버리지 않을까?(탈출 3,3)." 이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하고, 그리고 가시나무로 관을 엮어 그분
머리에 씌우고 오른손에 갈대를 들리고서는,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유다인들의 임금님, 만세!" 하며 조롱하였다고
기록한 성경 말씀대로 갓 태어난 왕이 장차 쓰게 될 가시관을 예견합니다. 또한 마리아의 순결을 상징합니다.
불타는 덤불이 재가 되지 않았듯 출산을 겪고도 처녀성은 유지되었다는 것입니다.
주님! 성탄을 기다리는 우리가 세상에 넘쳐나는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 안에서 참으로 구세주로 이 세상에
오신 아기 예수님을 느끼고 크리스마스 장식들을 보면서 당신 만을 바라보는 삶의 큰 가치를 느끼게 해 주시고,
크리스마스 장식을 하면서 당신의 이름으로 세상에 봉사함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 공감하게 이끌어주시고
크리스마스 장식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당신 구원의 사랑이 얼마나 숭고하고 아름다웠는지 깨닫게 하소서.
크리스마스 장식 안에도 우리를 가르쳐 주시는 당신의 은혜에 감사와 찬미 만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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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주 오래전 그러니까 이민 오기 전에 구역장님과 같이 대림환을 만들어 각 가정에서 초를 밝히던 기억이 납니다.
성당에서만 바라보던 대림환이 아닌 내 집에서 대림 주간에 초를 밝히던 첫 경험이어서 그랬는지 마음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오늘 님의 글을 읽으면서(언제나 그랬지만...ㅎㅎ) 제가 가지고 있었던 추억에 말씀이 얹어지고 구세주의 탄생을 기다리는 등불을 밝히는 트리를 장식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짝이는 불빛속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고 싶습니다.
+ 예수님 찬미
가톨릭 2000년의 역사는 우리 모두를 친절하게 기도로 안내해주는 많은 전통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누구나 한 번은 가고 싶어하는 유럽 여행, 여행지에서 무수한 성당과 그 성당의 아름다운 장식들 그리고
방문하는 박물관 안에 전시된 대가들의 미술작품 등을 볼 수 있습니다.
위대한 작가의 그림, 또는 선택 관광으로 주어지는 시간에 듣는 가슴 뭉클한 실내악 등 여행객들에게는
아름다운 추억과 경험으로 지나가겠지요. 그러나 가톨릭 신자들에게는 그 성당이, 그 그림이, 그 음악이
기도가 된다는 사실에 우리가 믿는 가톨릭이란 종교의 위대함이 묻어난다고 하겠습니다.
그 전통 안에 자리한 성탄트리.
이 또한 우리를 기도로 안내한다는 사실을 알고 트리를 본다면 성탄 기간 내내 기도로 보낼 수 있겠지요.
율리타 님께서도 트리를 장식하며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설레임과 함께 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