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MZ와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5대 과제
이로운넷, 정범진 편집위원, 생명평화민주주의연구소이사장, 2023.03.18.
1. ‘DMZ와 접경지역’에 대한 환상을 거두어야 한다.
DMZ는 관할권도 없는 중(重)무장지대, 생태계 훼손도 심각. DMZ는 글자 그대로 Demilitarized Zone, 즉 비무장지대이지만, 실제로는 각종 중화기로 무장한 중무장지대이다. 한국전쟁 이후 70년의 시간이 흘러 생명의 놀라운 복원력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군부대가 주둔 및 활동하는 공간은 생태적 훼손과 오염 역시 심각하다.
특히 민간인 통제선 이북지역 군부대 주둔지 및 접근도로, 국방개혁 2.0에 따라 발생한 군 유휴지 주변의 생태적 훼손과 오염, 주민들에 의한 불법 영농과 수렵 및 채취 활동 등에 따른 생태계 파괴는 제대로 된 실태조사 자체도 부재하다. 막연한 생태계의 보고라는 환상은 이제 거두어야 한다. 아울러 유엔사의 허락없이는 누구도 접근할 수 없으며, 모든 사업이 불가능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남북이 GP를 거점으로 대치하고 있는 철원지역은 최단거리가 620m에 불과하다. 현재 파악된 것만 해도 남측 비무장지대에는 GP가 60~80여 개, 병력은 약 1,800여 명이 주둔하고 있고, 이들은 모두 기관총과 유탄발사기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북측 비무장지대는 이보다 더 중무장지역이다. GP는 150~160여 개, 병력은 약 10,000여 명이, 기관총‧박격포‧고사포‧대전차포 등으로 무장하고 있다.
분단의 부담은 오롯이 지고, 고령화와 빈곤화의 늪으로. 비무장지대를 제외한 한국의 접경지역은 3개 광역시도 15개 시군에 걸쳐 있으며, 약 3백만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다. 1인당 GRDP(지역내총생산)가 2천900만 원으로, 전국 평균(3천727만원)의 77.8% 수준이고, 인구소멸 위험지수(20~39세 여성 인구를 65세 이상 인구로 나눈 값)가 위험진입(0.2 이상 0.5 미만)은 강화군·옹진군·연천군·철원군·화천군·고성군 등 6곳, 위험주의(0.5 이상 1.0 미만)는 파주시·포천시·양주시·동두천시·춘천시·양구군·인제군 등 7곳이나 된다(경기연구원, 2021).
출산율 저하 및 인구절벽으로 인한 병역자원의 감소는 ‘국방개혁2.0’을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접경지역의 군(軍) 경제에 대한 의존도는 지속적으로 낮아지고 있지만, 이의 공백을 메울 수 있는 전망은 보이지 않는다. 가장 먼저 학교가 사라지고, 마을이 사라지고, 행정구역으로만 남아 있는 곳도 이제 곧 머지않아 소멸될 운명이다. 접경지역은 남북의 분단과 대치로 인한 이중삼중의 규제와 제약으로 발전은커녕, 고령화와 빈곤화가 악순환되고 있는 대표적인 지역이다.
DMZ와 접경지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5대 과제
① 산업의 생태적 전환 필요 : 유기농 전환, 재생가능에너지로 자급
현시기 지구공동체에는 기후 위기로 대변되는 생명의 위기가, 인류공동체에는 양극화로 대변되는 불평등의 심화가, 여기에 더해 한반도공동체에는 70년 이상을 상시적 전쟁위험에 시달리는 삼중고의 위기가 짓누르고 있다. 남과 북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의 사회적 실천은 이 삼중고의 위기를 극복하는 것으로 귀결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못하다. 한반도에서 삼중고의 모순이 가장 집약적으로 나타나는 곳이 DMZ와 접경지역이다. 우리가 미래의 대안사회(생태문명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바로 이곳에서부터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해법의 주요한 고리는 사람이 먹고 사는 문제, 즉 산업의 생태적 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 접경지역의 주요 산업인 농업을 유기농으로 전면 전환하고, 지역에서 소요되는 에너지는 재생가능한 에너지로 100% 조달해야 한다. 유기농 전환을 촉진하고,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농가기본소득’을 생각해볼 수 있다. 유기농으로 전환하는 모든 농가에 월 50만 원, 연 600만 원 정도의 농가기본소득을 지원한다면 산업의 생태적 전환은 물론 농민들의 빈곤 탈출에도 큰 마중물이 될 것이다. 접경지역 전체 농가가 20만 가구가 안 되는 현실을 감안하면, 거기에 소요되는 예산도 연간 1조2천억 원정도로서 우리 경제 규모로 감당하기에도 충분하다. 당연히 유기농 전환으로 인해 전 사회가 얻는 이익은 이에 비할 바가 아니다.
재생가능에너지로의 전면 전환은 늘어나는 군 유휴지 활용을 적극 권장한다. 군 유휴지에 영농형 태양광 단지를 조성하고, 길러진 유기농 작물은 학교와 군부대에 급식으로 제공한다. 여기에서 생산된 전력은 마을주민과 군대가 함께 사용한다. 이것은 접경지역 산업의 생태적 전환과 함께 접경지역의 3주체인 민(民)‧관(官)‧군(軍)이 지역사회에서 공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② 군(軍)의 생태안보 역할 강화
유사 이래 전통적인 군대의 역할은 공동체에 대한 군사적 안보를 확보하는 것이다. 특히 적대적으로 대치하고 있는 우리와 같은 분단사회에서 군의 역할은 더욱 군사적 역할이 중요시된다. 하지만 오늘날 군사안보 중심의 이 개념은 변화를 넘어 확장이 요구된다. 군의 역할이 전통적인 군사안보 중심에서 대형화된 재난과 생태 위기에 대한 예방과 구호 활동으로, 즉 인간안보, 생태안보 영역으로의 확장을 요구받고 있다. 아울러 일상적인 훈련과 주둔, 전쟁 시 발생하는 군 활동의 탄소발자국 계량 및 저감 운동도 당연히 요구된다. 앞에서도 언급한 군부대 주둔지 및 인근의 생태계 훼손 및 오염은 심각한 수준이다.
2022년 처음으로 그것도 일부만 공개된 한국군의 탄소배출량은 '388만 톤'으로 국내 전체 온실가스 배출량의 1.7% 수준이다. 자동차 250만 대가 일 년 동안 1만 5천 km를 달려 내뿜는 탄소량과 같다. 지난 2020년 중앙 정부 부처와 지자체 등 783개 공공부문의 탄소배출량이 370만 톤인데, 군의 탄소 배출량이 공공부문 탄소배출량 전체보다도 많은 셈이다. 하지만, 국방부 청사 등 군 일부 시설을 제외하고는 군사 분야 대부분이 온실가스 관리 대상에서 빠져있다. 안보나 국방과 직결되는 시설은 이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한 지침 때문이다. 군에서 버려지는 음식물 쓰레기 양도 실로 어마어마하다. 2019년 기준 군 장병 1인당 연간 음식물 쓰레기 발생량은 육군 182kg, 해군 135.3kg, 공군 182.9kg, 해병대 181kg 등으로 국민 1인당 발생량인 132kg을 훨씬 뛰어넘는다. 군 내에서의 생태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③ 군(軍) 유휴지의 지방 정부 귀속
2022년 현재 ‘국방개혁 2.0’으로 발생하는 3개 광역시도 접경지역 내 군 유휴지는 2,933필지, 7,213㎢, 그중 오염지는 464㎢에 달한다. 군 유휴지는 군병력 축소에 반비례해 계속 증가하는 추세이다. 이들 유휴지는 대부분 지역 내 요지에 위치하고 있다.
하지만 「국유재산관리법」 등의 제약으로 해당 지방정부로의 귀속은 더디기만 하다. 매각의 경우 최고 입찰가를 낸 당사자가 취득하므로 재정이 열악한 지방정부는 재력 있는 외지인을 당하지 못하고, 이런 경우 대개는 난개발로 이어져 지역공동체를 파괴하는 원인이 되기도 하다.
발생한 군 유휴지는 관련 법령 등을 개정하여 지방정부가 공익적 목적으로 활용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경우 우선적으로 지방정부로의 귀속을 고려해야 한다. 아울러 군 유휴지의 생태계 훼손 및 오염에 대한 처리는 국방부가 부담해야 한다. 미군기지 반환 후 수 년이 경과한 뒤에도 계속 문제가 되고 있는 오염 실태 보고는 반면교사라 할 수 있다.
이들 귀속된 군 유휴지는 접경지역의 생태사회로의 전환을 위한 중요한 거점이 될 수 있다. 당장 소유권의 전환이나 귀속이 어려우면 장기로 지방정부에게 임차하여 유기농 단지나 영농형 태양광 부지 등으로 활용하고, 군의 수요가 제기되면 반환하는 것도 활용도를 높이는 방안이 될 수 있다.
지난 2월에 국회에서 개최된 한 세미나에서는 “반환된 미군기지의 이전 및 개발에는 국고지원 규정이 있으나, 우리 군의 이전 및 개발에는 이러한 규정이 없는 점을 지적하고, 이에 대한 국고 지원을 모색하는 방안” 등이 논의되기도 했다.(홍익표 외, “군부지 이전‧개발을 통한 공익사업 활성화 방안”, 2023년 2월 22일)
④ DMZ에 대한 주권 회복
현재 군사분계선 이남 DMZ에 대한 관할권은 유엔사가 행사하고 있다. 한국의 대통령도 이북을 방문하려면 유엔사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DMZ와 관련된 어떤 사업도 유엔사의 허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심지어 지난 정부에서 이북에 대한 인도적 지원의 일환으로 의약품 수송을 위해 DMZ 통과가 필요했으나, 유엔사는 이를 불허했다. 이유는 의약품이 아닌 수송용 트럭 출입이 국제 제재에 위배 된다는 어처구니없는 것이었다.
유엔사의 이러한 행태는 자신들이 주장하는 ‘평화유지와 회복’이라는 유엔사의 본래 존립 취지는 물론 대한민국 헌법의 영토조항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다. 유엔사가 비록 정전협정에 토대해서 권한을 행사한다고는 하지만 그 정전협정 내용도 들여다보면 허점투성이다. 유엔사는 우리 국토의 DMZ를 점령하고 있는 반국가단체라는 주장도 일각에서는 제기되고 있다.
이 모순은 시급히 해결해야 한다. 사실 유엔사는 출범 당시부터 유엔의 결의와는 무관했다. 실제 과거에도 그렇고 현재도 유엔사는 미군이고, 미군이 유엔사의 모자를 쓰고 있는 것이다. 당연히 미국의 국익을 우선시한다. 지금까지 유엔사가 보여준 모습에 비춰볼 때 자발적으로 유엔사가 이 관할권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윤석열 정부도 이 문제를 앞서서 제기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이것은 국제 사회를 대상으로 지구촌 평화 애호세력과 우리 시민사회가 나서서 관할권 행사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방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보인다. DMZ에 대한 주권회복은 우리 후손들에게 통일된 자주 독립 국가를 물려 주는 첫걸음이자, 오늘날 경제 규모에서 세계 10대 국가로 성장한 우리의 국격에도 걸맞다.
⑤ 대북 제재의 해소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이유로 국제 사회가 이북에 대해 부과하고 있는 제재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촘촘하고도 강력하다. 제재가 갖는 특성은 시간이 경과할수록 그 강도와 피해는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특히 제재가 가해지는 상황에서 발생한 전 지구적 차원의 코로나19사태는 국경 봉쇄라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졌고, 당연히 현 시기 이북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매우 어려울 것으로 짐작된다.
외부의 제재, 자발적 봉쇄, 잇따른 자연재해는 만성적 식량난이라는 악순환을 강제한다. 춘궁기를 앞두고 이북에서의 아사자 발생 소식은 진위를 의심케도 하지만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역사는 제재만으로 어떤 한 국가나 체제가 붕괴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남북 간의 정상적인 교류와 협력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유엔이 가끔 단서를 달아 인도적 지원 등을 허용하고 있지만, 이북은 특히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그마저도 수용하지 않고 있다. 대북 제재를 받지 않는 영역에서의 교류와 협력, 또는 제재를 우회해서 할 수 있는 사업은 극히 제한적이거나 그마저도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긴장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으로 교류와 협력에 나서야 하지만, 그 교류협력을 강력하게 저지하고 있는 대북 제재의 존재는 한국 사회가 처한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우리의 지혜로운 선택, 역사적 결단이 더없이 중요한 시점이다. 결론은 하나다. 강대강 대결국면의 종착역은 공멸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다. 남북은 상호 공히 긴장을 고조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제재는 풀고, 머리는 맞대고, 흉금을 터놓고 이곳 접경지역을 새로운 생태사회의 근거지로 만들어 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출처 이로운넷(https://www.eroun.net) 기사 내용을 정리하여 게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