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시 79:9절
제 목 : 하나님이 일하시는 근거는 무엇인가
일 시 : 2024. 9. 25.
시편 79:9/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라고 했습니다.
기업가들이 일하는 목적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서입니다. 가능한 한 많은 이윤을 남겨야 기업이 활성화되고 계속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기업이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때문에 이윤을 남기지 못하는 기업은 퇴출됩니다.
그러나 자선사업가들이 일하는 목적은 가난한 자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 가능한 한 더 많은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목적에 공감하고 동참하는 후원자들과 기부자들과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며 그들의 일에 동참시킵니다. 기업가들과는 정반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의 목적은 더 많은 사람들을 억압하고 통제하고 그들의 자유를 빼앗는 것입니다. 공산주의가 몰락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북한 주민들이 계속해서 탈북하는 이유는 억압과 통제와 굶주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그 때가 언제인지를 모르지만 북한은 반드시 몰락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도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일 하시는 목적은 죄로 인하여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고 그들을 건지시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누리시는 자유와 평화를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즉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죄와 고통과 죽음에서 건지시고 구원하시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오늘은 그 부분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우리의 삶의 목적과 목표와 동기를 정립하는 시간을 갖기를 원합니다.
잠언 16:3/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고 했습니다. 공동번역은 잠16:3/무슨 일을 하든지 야훼께 맡기면 생각하는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렘33:2-3/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며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가 이와 같이 이르시도다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처럼 하나님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시던 때부터 지금까지 일하시는 분이십니다. 또한 새로운 일을 만들며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어리석은 자들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자신이 다 함으로 하나님의 전능하신 손을 멈추게 합니다. 그러니 내가 모든 일을 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요한복음 5:17/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라고 했습니다. 일은 누가 합니까? 주님께서 일하십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주 예수님께서 일하시는 분이라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기도해야 합니다. 내가 기도하면 주님이 일하십니다. 왜냐하면 기도하는 일은 나의 일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내가 일하면 주님은 쉬고 계십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기도는 열심히 하는데 응답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 몰라서 그렇습니다.
1. 하나님이 일하시는 근거가 무엇입니까?
시편 79:9/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여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라고 했습니다. 표준새번역은 시79:9/우리를 구원하여 주시는 하나님, 주의 영광스러운 이름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주의 명성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를 건져 주시고,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십시오./라고 했으며, 현대인의 성경은 시79:9/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주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를 구하시고 우리 죄를 용서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인이 바라는 구원은 세 가지 구원입니다. 그래서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며 라고 부르면서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를 건지시며, 우리 죄를 사하소서 라고 했습니다.
날마다 구원을 받아야 하고, 구원이 필요한 우리에게 세 단어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며, 건지시며, 우리의 죄를 사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잠시 잠깐이라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세 단어의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도우시며란 아자르 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둘러싸다, 즉 방어하다, 또는 돕다, 구원하다라는 뜻입니다. 둘러싸서 방어하면서 돕는다는 뜻입니다. 원수의 공격과 위협으로부터 방어하심으로 구원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건지시며란 나짤이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움켜 빼앗다, 방어하다, 구원하다(자신을), 구출하다, 해방하다, 탈출하다, 회복하다 라는 뜻입니다. 원수의 손에서 빼앗아서 구원하다, 해방하다, 회복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과거에 다윗이 양을 치다가 곰과 사자가 와서 양의 새끼를 물어 가면 끝까지 쫓아가서 곰과 사자의 입에서 양을 빼앗아 오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사하소서란 카파르 라고 하는데 기본어근 (역청으로)덮다, 상징적으로 속죄하다, 용서하다, 달래다, 지워 버리다, 진정시키다, 속죄하다, 화목하다(화목을 이루다), 화목이라는 뜻입니다. 죄를 덮거나 속죄하여 없애 버림으로 용서하거나 화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목적과 동일합니다. 죄를 없애 버림으로 다시 하나님과 화목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 가지의 구원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먼저 진노하시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하며, 더 나아가서 원수의 손에 빼앗긴 우리가 거기에서 구출되고 해방될 뿐만 아니라 원수가 시시때때로 우리를 공격하는 위험과 위기에서 우리를 방어하심으로 구원해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도우시며란 원수의 공격으로부터 구원이며, 건지시며란 원수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며, 사하소서란 죄에서부터 구원입니다. 만약 이 세 가지의 구원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결코 평탄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2. 문제는 무엇을 위하여, 무엇에 근거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두 가지의 근거에 의해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오늘 말씀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1)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입니다.
여기서 이름이란 단순히 하나님께 대한 외적 호칭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 또는 그분의 신격(神格)을 대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곧 하나님 자신입니다. 따라서 본문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라는 뜻입니다. 사람을 비롯해서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이 세상에 존재하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데 있으며, 하나님의 구하심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주의 이름의 영광스러운 행사를 위하여 라는 말씀은 우리에게는 도움이나 용서받을 만한 자격이나 공로가 전혀 없음을 인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살아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결과이며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전10: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했습니다.
2)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입니다.
원문에는 주의 이름을 증거하기 위하여 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냥 이름을 위하여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위하여란 마안이라고 하는데 본래 의미는 …에 유의하다, 목적론적으로는 …하기 위하여, -때문에, …할 목적(의도)으로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유추적으로 볼 때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란 주의 이름을 증거할 목적으로 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증거할 목적으로 모든 구원을 이루시고 행하십니다. 때문에 구원받기 위해서, 또는 구원받은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아니고 또는 하나님의 이름을 증거하는 삶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살아간다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신 목적도 바로 그것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 15:26-27/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27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증언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셨고 우리와 함께 거하십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이름을 증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과 하나님의 이름을 증언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시편 79편 앞부분을 보시면 하나님의 백성, 즉 선민 이스라엘이 왜 고난을 당하는지, 어떤 고난을 당하는지 그 이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편 79:1-7/하나님이여 이방 나라들이 주의 기업의 땅에 들어와서 주의 성전을 더럽히고 예루살렘이 돌무더기가 되게 하였나이다 2 그들이 주의 종들의 시체를 공중의 새에게 밥으로, 주의 성도들의 육체를 땅의 짐승에게 주며 3 그들의 피를 예루살렘 사방에 물 같이 흘렸으나 그들을 매장하는 자가 없었나이다 4 우리는 우리 이웃에게 비방 거리가 되며 우리를 에워싼 자에게 조소와 조롱 거리가 되었나이다 5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영원히 노하시리이까 주의 질투가 불붙듯 하시리이까 6 주를 알지 아니하는 민족들과 주의 이름을 부르지 아니하는 나라들에게 주의 노를 쏟으소서 7 그들이 야곱을 삼키고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함이니이다/라고 했습니다. 왜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에게 비참하게 살해당하는 끔찍한 이런 일을 당합니까? 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방민족에게 멸시를 당하고 짓밟힘을 당합니까? 두 가지 때문입니다. 본문인 9절을 통해서 그것을 말씀합니다. ① 첫 번째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며, ② 두 번째는 주의 이름을 증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③ 세 번째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하나님의 이름을 증언하지 않았다는 것은 곧 자기자신을 자랑하고 자기자신을 들어내고 자기자신을 나타내었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리고, 내 이름을 들어내지 말고 주님의 이름만 들어내는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 가지의 방법으로 구원하시지 않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세 가지의 구원의 은혜가 없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지 않기 때문이며, 주님의 이름을 증언하는 일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자의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증언하지 않는 것이며 결과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들어내지 않고 자신을 들어내는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을 통해서나 또는 인류역사를 통해서 볼 때, 하나님께서 세 가지 방법으로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기 때문이며,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들어내는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두 가지의 일이 우리의 존재목적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살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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