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국가과학기술위원회는 지난 2000년 '인간의 수행능력 향상을 위한 기술의 융합'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20년간 과학기술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했다. 바로 나노기술(NT)·생명공학기술(BT)·정보통신기술(IT)·인지과학(CS)의 융합을 통해 인간의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극복한다는 것이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금, 상상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로봇 팔다리를 장착해 힘이 몇십 배 세지고, 장기가 손상되면 미니돼지의 장기로 대체하는 세상이 다가왔다.
생각만으로 전자제품을 작동시키고, 전선이나 무선통신 대신 손으로 모든 정보를 전달할 수 있다. 바야흐로 인간이 생물학적 한계를 넘어서는 '휴먼 2.0'의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이제 막 열리는 신(新)시장을 장악하기 위해 세계 각국의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달 23일 한양대 안산캠퍼스. 한 학생이 무게 20㎏짜리 철근 두 개를 가슴 높이로 들어 올리고 그대로 자세를 유지했다. 10여분이 지나도 숨소리 하나 변하지 않는다. 옆에선 40㎏짜리 짐을 지고 계단을 쉼 없이 오르락내리락한다.
대학 역도 선수들의 힘자랑이 아니다. 기계공학과 한창수 교수가 개발한 입는 로봇 '헥사(HEXAR)'를 장착한 평범한 학생들이다. 뇌과학과 로봇기술의 융합으로 육체의 새로운 진화가 시작된 것이다.
▲ 지난달 23일 한양대 안산캠퍼스 첨단로봇연구실에서 기계공학과 한창수 교수(사진 가운데)가 개발한 로봇 헥사를 입은 연구원이 20kg 철근 2개를 들어 올리고 있다. 로봇 다리를 장착하면 30~40kg의 등짐을 짊어지고도 아무런 힘을 들이지 않고 계단을 오를 수 있다./김용국 기자 young@chosun.com
◆일본에선 입는 다리 로봇 대여 시작
사람이 움직일 때는 뇌에서 운동신호가 발생해 신경을 통해 근육에 전달된다. 이때 근육에는 미세한 전류의 변화가 발생한다. 입는 로봇은 이 변화를 컴퓨터로 해석해 근육 대신 로봇 팔다리가 신호대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한창수 교수는 "완전히 로봇의 힘만으로 수백㎏을 들어 올리는 것이 아니라, 20~40㎏의 물체를 사람이 수㎏ 정도의 적은 힘으로 들어 올리게 하는 근력 지원 도우미 로봇"이라고 설명했다.
입는 로봇 개발은 선진국에서 1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미국에선 국방성의 지원을 받아 버클리대와 사르코스(SARCOS)사 등이 군사용 입는 로봇을 개발했다. 다친 동료를 등에 지고도 평상시보다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반면 일본에서는 혼다사와 쓰쿠바대 등에서 재활용 입는 로봇을 개발했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 로봇의 힘으로 자유롭게 걷게 하기 위한 것이다. 쓰쿠바대에서 창업한 사이버다인(Cyberdyne)사는 지난해 여름부터 로봇 다리 하나는 15만엔, 두 다리는 22만엔에 대여하고 있다. 이스라엘 아르고(Argo)사는 최근 로봇 다리와 지팡이로 이뤄진 재활용 입는 로봇 '리워크(ReWalk)'를 개발해, 휠체어 신세만 지던 환자를 걷게 하는 데 성공했다. 아르고스는 내년부터 2만달러에 시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일본 혼다사가 2008년 인간형 로봇‘아시모’의 보행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한 보행보조 로봇 다리. 혼다는 2년 내 로봇 다리를 자동차 조립 공정에서 다리를 굽히고 일하는 작업자용으로 상용화한다는 계획이다./혼다 제공
◆국내에선 산업용으로도 주목받고 있어
입는 로봇은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현재 휠체어를 사용하는 고령자나 장애인은 전 세계에서 1억3000만명 정도로 추정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활용 입는 로봇 시장은 2014년 이후 연평균 69%씩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서강대 전도영 교수는 "휠체어 기술이 급속히 발달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앉아있으면 건강이 좋아질 수 없다"며 "입는 로봇을 입고 서서 걸으면 장기나 순환기 모두에 도움을 준다고 의료진은 보고 있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대체하는 효과뿐 아니라 노년층과 장애인의 전반적인 건강관리 비용을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말이다. 현재 전 교수팀은 노인이나 환자가 입는 로봇을 장착했을 때 한쪽으로 몸이 쏠리는 문제를 개선하고 있다. 전 교수는 "기업이 참여하면 임상시험을 거쳐 2~3년 내 상용화가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국내외에서는 산업용 입는 로봇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한창수 교수는 "작업현장에서는 인간의 자율적 판단이 들어가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완전자동화가 불가능하다"며 "입는 로봇을 입으면 인간의 숙련 기술을 로봇의 힘으로 업그레이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한양대는 산업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로봇의 동작을 더욱 부드럽게 하는 연구를 하고 있다. 국내 NT리서치사는 소방관용 상체 입는 로봇을 개발 중이다. 지식경제부는 산업용 입는 로봇을 산업원천기술개발사업의 하나로 지원하는 방향을 모색하고 있다. 현대자동차와 포스코는 자동차 조립공정과 제강공정에서 입는 로봇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입는 로봇 개발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2013년 이후 연 30% 시장 성장 예상돼
해외에서도 산업용 입는 로봇 개발이 한창이다. 일본 혼다사는 2008년 인간형 로봇 '아시모'의 보행기술을 바탕으로 보행보조 로봇 다리를 개발했다. 로봇 다리는 자동차 조립 공정에서 다리를 굽힌 상태에서도 아무런 부담 없이 오랫동안 일할 수 있게 해준다. 혼다는 1~2년 내 상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미국은 군사용으로 개발된 입는 로봇을 산업용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입는 로봇은 아직 누구도 시장을 장악하지 못한 블루 오션(blue ocean)이다. 내년부터 시제품이 나올 것으로 예측되지만, 상용화까지는 2~3년이 더 걸릴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입는 로봇 기술 수준은 선진국 대비 60~70%로 2~4년의 기술격차가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지만 한창수 교수는 "특허에서 일본과 미국을 이어 3위를 하고 있어 집중적인 지원만 이뤄지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며 "배터리 기술, 경량화 소재 기술 및 인체 의도를 감지하기 위한 센서 기술 등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수퍼맨이 전 세계 공장을 누빌 날이 머지않았다.
첫댓글 오....아이언맨이 곧 실용화되는 것도 시간문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