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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영을 쫒아 행하는가
흑암의 권세에 대항하여 싸우는 전쟁은 일종의 영적 전쟁이다. 이 전쟁은 오직 영에 속한 사람만이 안다. 옛사람은 이것을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영 안에서 행하며, 그 영적 의미는 무엇인가? 다음의 두 가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신약 번역본에서는 사람의 '영'과 성령의 '영'이 종종 혼용되어 사람의 영으로 잘못 쓰였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은 사람에게 영이 있다는 것과, 이 사람의 영이 하나님을 담는 그릇으로서 성령의 거처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인도와 그분의 지시는 모두 영 안에서 이루어진다. 사람이 영의 기능을 모른다면 결코 하나님의 성령과 동역할 수 없다. 더욱이 성령께서 우리에게 나온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게 된다면, 결국 영을 좇아 행하지 못하고 혼을 좇아 행하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서 우리는 영의 생명이 무엇인지, 또 그 안에서 어떻게 행하는지를 알게 된다. 고린도전서 2장 11절은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라고 말한다. 그러므로 오직 사람의 영만이 사람의 사정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사람이 없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온 영만이 사람의 영의 중간 역할을 통해 하나님과 그분의 마음을, 믿는 이에게 나타내 보일 수 있다. 사람의 영은 성령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기관이다.. 성령은 사람의 영을 통해 생각 속에 진리를 나타내시고 하나님을 알도록 사람을 가르치신다. 또한 바울은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고전 2:12)라고 말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세상에도 세상의 영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그들은 세상을 물질적인 것으로만 생각할 뿐 세상에도 세상의 영이 있다는 것을 모른다. 우리 속에 하나님의 영이 일하시지 않으면 '세상의 영'과 '그릇된 영' 등 마귀의 명(命)을 좇는 영들이 일하게 된다. 하나님의 사정에 대하여 성령과 동역하는 방법을 모르고서야 어찌 악한 영들을 대적할 수 있으며, 어찌 그것들이 우리 영안에 들어오지 못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걸어 잠그고 세상적인 사상과 관념을 상관치 말아야 하듯이 세상의 영을 거절하고 그것의 영향이 영에 미치지 않게 해야 한다. 겉으로는 세상의 모양은 없으나 속으로 세상의 영을 가질 수가 있다. 고린도전서 2장과 3장에서의 바울의 말에 의하면 우리는 다음의 사실을 주의해야 한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고전 2:12-13). 바울이 여기서 말한 것은 이상적인 논리가 아니고 영적 세계 안의 '사실'이다. 성령은 신령한 것을 이해하는 자들에게 말씀으로 이러한 사실을 알려 주신다.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혼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러한 일은 영적인 사람이 분변함이니라"(고전 2:13-14, 원문 참조).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사실들과 관련하여 사람 안에 있는 영의 위치와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영적인 사람은 혼에 속한사람이 아님). 혼에 속한 사람이 타고난 생각으로 신령한 일을 추구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사도는 단언하고 있다.
바울이 말한 사람의 영에 대해 상세히 검토해 보면 사람의 영이 하나의 실체이고 사람 속에 있는 한 기관인 것을 알 수 있듯이 "너희가 내 영과 우리 주 예수의 능력으로 함께 모여서"(고전 5:4, 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그는 성령을 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영을 말한 것이다. "나의 영이 기도하거니와"(고전 14:14), 이 구절은 사람의 영의 활동을 말한다. "영 안에 불타서 주를 섬기라"(벧전 3:4, 원문 참조), 이 구절은 영의 성질을 말한다. "온유하고 안정한 영"(벧전 3:4, 원문 참조), 이 구절은 영의 태도를 말한다. 잠언은 '차가운 영'을 기록했고 에스겔은 '영의 불탐'을 기록했다. 요한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강건한 영으로 담대히 헤롯 왕을 만나고 유대인과 이방인들이 싫어하는 메시지를 전했다. 정사와 권세에 대항하여 영적 전쟁을 하려면 우리는 통제를 받는 영, 곧 강할 수도 있고, 뜨거울 수도 있으며 차가울 수도 있는 영이 필요하다. "자기의 영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 16:32, 원문 참조). 이렇게 해야만 하나님의 영과 동역할 수 있다. 영을 분별치 못하는 것이 오늘날 믿는 이들의 어려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혼에 속했으며 심지어 믿는 이들도 혼에 속한 사람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한다. 그들은 범사를 세상적인 안목으로 보고 땅에 속하기 때문에 그들의 안목은 땅에 속한다. 소위 영에 속한다는 사람도 자기 영을 다스릴 줄 아는 사람이 드물고 영의 냉담함과 열렬함도 그들의 다스림 밖에 있다. 흑암의 권세가 그들의 영을 간섭하거나 악한 영들의 유혹으로 영이 억압당하며, 혹은 영이 압박을 받아 성령과 지속적으로 동역하지 못하게 된다. 그들은 이러한 극한 위험이 처해 있는데도 이것을 모르고 있다! 그러나 성경이 발한 빛으로 이러한 어리석음이 제해질 때, 우리는 모든 것을 알게 되어 아무 어려움이 없게 된다. "이 세대의 영"(엡 2:2, 원문 참조)은 사람을 제촉하는 영이다. 영적 세계에서의 군병이 이미 우리를 침략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이 군병이 무엇이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알아야 한다.
사람의 영의 능력도 우리가 주의할 만한 것이다. 이 영은 느낌이 있다. 그는 그의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다만 그의 영이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전도하는 노정에서 그의 영이 제재당했다고 말한다. 왜 이러한 제재가 있는가? 우리는 이것을 알아야만 하나님의 인도를 분별할 수 있다. 소위 우리가 말하는 영적 체험은 대부분이 느낌에서 얻은 혼에 속한 것이다. 우리가 구하는 것은 혼적인 세계에서 느낄 수 있는 일들이지 영적 세계에서 알 수 있는 일들이 아니다.
바울은 그의 영 안에서 그가 '속박'받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성령의 확증으로 그에게 불의 시험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또한 그는 언제 그의 영이 자유롭게 되고 어느 때 억압과 고통에서 해방되었는지를 알았다. 우리가 몸의 느낌들을 아는 것처럼, 그는 영의 활동과 영 안에서의 성령의 움직임을 분명히 알 고 있었다. 우리는 귀와 눈으로 육신의 일들을 알고 영으로 영적인 일들을 알며 성령께서 지시하는 하나님의 뜻을 깊이 깨닫는다(롬 8:27). 이것은 성경 안의 말씀과 부합된다.
마리아는 "내 혼이 주를 찬양하며"(눅 1:46, 원문 참조)라고 말했다. 이것은 '찬양'이 혼적인 세계에 속한 일임을 말해 준다. 그러나 그녀는 "내 영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눅 1:47, 원문 참조) 이라고 말한다. 사도행전 19장 21절은, "바울이 영 안에서 … 예루살렘에 가기를 경영하니"(원문 참조)라고 말한다. 이것은 생각 속의 경영과 다르다. 이것은 영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행하기로 결정하는 것을 포함한다. 주 그리스도께서 '영안에서 분통히 여겨' 나사로의 무덤에 이를 때를 원문에서는 "그가 탄식하며 영 안에 분통히 여기거늘"(요 11:38) 이라고 말한다. 영 안의 이러한 분통함은 강렬한 승리를 낳고 흑암의 권세를 이기게 한다. 그분은 나사로의 무덤 옆에 서서 큰 소리로 "나사로야 나오라"(요 11:43) 라고 하셨다. 그분은 무덤을 향했을 때 사망의 왕을 제어하기 위해 영 안에서 분하게 여기시고 탄식하기까지 하셨다! 그분의 이러한 분통이 폭발함으로 나사로는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자유롭게 되고 생명을 얻게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흑암의 권세를 이기는 영적인 권위의 근원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말로만의 권위가 아니요, 육신에 속한 사람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권위도 아니다. 이것은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영적인 사람을 통해 나타난 그리스도의 권위이다. 혼적인 능력으로 이 세대의 임금과 싸우는 사람은 자기의 말이 헛되고 영적인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보게 된다(고전 4:20).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예언하는 자들의 영이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나니"(고전 14:32)를 보자. 예언하는 사람은 의지의 다스림을 받는다. 솔로몬의 말, 곧 '그의 영을 다스리는 자'를 주의하라. 그리스도 안의 새 창조로서, 영 안에서 주님과 연합된 당신의 영을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영을 다스리지 못할 때, 혼이 당신을 다스리는 것 같이, 당신의 영은 하나님의 척도에서 벗어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경우에 영적인 기쁨을 체험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 위험은 바로 대부분의 믿는 이들의 영이 의지의 다스림 아래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것 역시 오늘날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 있는 또 다른 위험이므로, 우리가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과거 대부분의 교회가 육체에 속했으나 이제는 영적인 사람도 적지 않게 되었다. 그 위험은 바로 영의 법을 모르는 것인데, 즉 이상(理想) 세계가 혼에 영향을 미치듯 영적 세계의 권세가 어떻게 영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모르는 것이다.
영에 속한 사람의 생활에 있어서 첫 번째 일은 거듭남이다.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요 3:6).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겔 36:26). 거듭남을 통해 우리는 새 영을 얻게 된다. 성경은 또한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기를 깨끗게 하자"(고후 7:1)라고 말한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의 영이 자주 새롭게 되어야 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 주님은 '혼 생명을 버려 사망'에 이르셨고 아버지께 '자기의 영'을 의탁하셨다. 우리는 혼에 속한 부분을 버려 그것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영원히 우리의 영은 하나님과 연합해야 한다.
혼과 영 사이의 혼합을 분리하는 것에 대해 히브리서 4장 12절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헌신한 성도들 중에도 혼과 영이 많이 혼합되어 있는 것을 자주 느끼지 않는가? 혼과 영이 분리되고 깨끗한 영을 가진 사람은 너무도 드물다. 말할 때나 일을 할 때 처음에는 영에서 시작하지만 점차적으로 부지불식간에 감정과 지력과 생각 등의 혼에 속한 부분으로 빠져들기 쉽다. 만일 우리의 영이 하나님과 순전하고 온전히 하나로 연합되었다면 혼의 활동에 대하여 우리의 영은 사람들을 대하든 우리 자신을 대하든 예리하게 느끼게 된다. 이럴 때 당신은 당신의 영의 활동을 저지하는 딱딱한 물질 같은 혼의 부분을 느끼게 된다. 당신의 생활 속에서도 혼의 여러가지 상태를 보게 된다. 때때로 당신이 하나님과 교통을 갖고 그분께 당신의 영을 열어드리면 빛으로 충만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명백한 원인도 없이 어떤 수건으로 가려지면 당신은 흑암에 떨어진다. 이것이 바로 혼의 활동이며 당신을 혼 생명으로 되돌아가게 하고 빛에서 나와 흑암에 떨어지게 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그리스도 안에서 언제나 영이 다스리는 위치에 있어야 한다.
바울은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의 온 영과 몸이 …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 라고 말했다. 즉 영안에 계신 하나님은 혼을 거룩하게 하시고 몸도 다스리시고 지배하신다. 어느 성경 해설가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사람의 영과 혼과 몸, 이 세 부분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사람의 영이 성령을 담는 그릇으로서 하나님과 연합하고 사람의 혼을 다스리는 것이다. 타고난 사람의 영이 동물적 혼의 억압 아래에 있기 때문에 그의 동기와 목적이 다 세상 적이다. 육신적인 사람의 영이 차지하고 있는 위치는 너무나 낮은데, 왜냐하면 가장 낮은 위치에 처한 육체가 이미 그의 온 존재를 다스리기 때문이다. 유다서 19절의 '영이 없는 자'는 사람에게서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고 성령을 담아야 할 기관인 사람의 영이 원래의 모습에서 변하여 하나님에게서 정하신 계획과 상반된 상태에 있게 된 것을 뜻한다."
이로 보건대, 사람의 영은 혼을 다스리고 그 혼을 통해 또 몸을 다스리는 가장 뛰어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영에 속한 사람은 합당한 위치에 있는 영으로 혼과 몸을 다스리는 사람이다. 영에 속한 사람, 즉 혼과 몸을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그의 영과 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리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처음부터 - 타고난 사람일 때 - 그의 영이 합당한 위치에 서 있지 않고 혼에 얽매여 혼의 속박을 받던 사람이기 때문이다. 때때로 사람의 영은 미약한 빛을 받아 속박을 벗고 자유롭게 되지만 그의 혼이 다시 억압하고 두꺼운 필름처럼 영의 빛을 가린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의 얼굴 표정에 영향을 준다. 사람의 영이 혼으로 말미암아 침체될 때 영이 정상적인 위치에서 다스릴 때 그의 얼굴을 빛으로 가득하다. 사람의 바깥 부분은 요한이 말한 바 영에서 나온 빛을 나타나게 하는 '등장'과 같다. 영의 본래 목적은 성령께서 거하고 하나님의 빛을 채우기 위한 것이다.
마귀는 인류를 오랫동안 관찰해 왔기 때문에 이 모든 것에 대해 다 알고 있다. 집회에서 당신이 신령한 노래를 부르고 승리로 환호할 때, 당신의 영은 다스리게 된다. 하나님의 빛 안에서 흑암이 온전히 소멸되었기 때문에 당신은 당신 앞에 모든 낡은 관점들이 새롭게 된 것처럼 세상을 보게 될 것이다. 마귀는 이것을 알고, 성령을 소유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다가와 힘을 다하여 그들의 영에 억압을 가하고 모든 곤란과 근심을 일으킬 것이다. 당신의 영이 이러한 무거운 짐으로 억압당할 때, 당신은 즉시 혼 안에 떨어져 당신의 간증과 즐겁게 불렀던 찬송을 그치게 될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마귀의 궤계를 모르기 때문이다.
당신의 영이 계속 승리하고 주님과 연합하려면 악한 자의 공격을 알지 않으면 안된다. 이것이 바로 생각 속의 영적 전쟁이다. 이제 우리는 승리가 무엇이고, 그것이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승리 안에 행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사람의 영은 성령의 거처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안에서 하시는 모든 일은 다 우리 영으로부터 나온다. 성령은 먼저 당신의 영 안에서 일하시고 그것이 혼에 미치고 몸에 이르게 하시지, 결코 밖에서부터 안으로 일하시지 않는다. 마귀는 우리가 아직 이것을 모른다는 것을 알고서 바깥에 있는 일을 가지고 와서 영을 억합한다. 때때로 마귀는 초자연적인 힘을 줌으로써 자극과 감정을 일으켜 사람의 몸을 다스린다(하나님의 자녀에게도 이렇게 행한다). 만일 당신이 성령의 모든 일이 당신의 영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안다면 당신은 원수의 일을 분별하고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영 안에서 하나님을 알 수 있고 당신의 영이 지성소로서 성령께서 일하시는 곳이며 더불어 간증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6). 우리는 거듭날 때 성령께서 하시는 첫 번째 일이 바로 사람에게 새 영을 주는 것임을 보았다. 사람이 '영으로 태어날' 때만이 그리스도의 영, 곧 맏아들이 영을 받게 된다. 그때 우리는 영 안에서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된다. 그때 당신은 하나님이 당신의 아버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 다음으로는 성령을 한 인격체로서, 거룩하게 하시는 분으로 영접하게 된다. 이때 성령은 당신의 영을 충만하게 하실 것이고, 당신의 영을 성령의 처소로 삼으시며 그분의 일하시는 초점으로 삼으실 것이다. 바로 이곳에서 성령은 당신을 그리스도와 연합되게 하여 "주와 한 영"(고전 6:217)이 되게 하신다. 사람의 중심이 되는 영 안에서 성령은 참된 진리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영을 매이게 하는 혼을 분리하신다. 만일 당신이 진리에 순종하고 그 요구에 응한다면, 영은 맑아질 것이고 혼으로 싸이지 않아 부활하고 승천하신 주님과 더욱 깊고 친근하며 온전한 연합을 갖게 될 것이다. 당신이 진실로 그리스도와 한 영이 될 때만이 비로소 그분은 당신을 통하여 모든 영적인 대적을 패배시키고 그분의 권위를 사용하실 수 있다.
성령의 거처인 사람의 영에 관한 빛 안에서 로마서 8장은 놀랍게도 다음 사실들을 기록한다. "영을 좇아 행하라", "영 안에 거하라",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이 구절들에서 우리는 이러한 사실들 배후에 배의 키처럼 사람에게 선택권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당신은 영을 따라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지 아니면 육체를 좇아 행할지를 결정하는 데 순간순간 의지를 적극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이것은 결코 어떤 위치에 이른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을 할 것인지를 매순간 선택해야 하는 위치를 말한다. 그러므로 당신은 무엇을 순종해야 할 지 끊임없이 결정해야 하기 때문에 영이 무엇이고 육체가 무엇인지를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린도전서 15장 45절은, "첫 사람 아담은 산 혼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생명 주는 영이 되었나니"(원문 참조) 라고 말한다. 첫 사람 아담에게서 얻은 생명은 혼에 속하고, 마지막 아담에게서 얻은 생명은 영에 속한다. 먼저 난 것은 육체와 혼에 속하고, 나중에 난 것은 영에 속한다. 그러므로 육신의 몸과 영적인 몸이 있다. 교회가 들림 받기를 예비하려면 먼저 이 영의 생명을 알아야만 한다. 성령의 생명이 이 영의 생명을 통해 죽을 몸을 살릴 수 있다. 하나님은 교회가 그리스도 예수의 다시 오심을 예비하게 하시려고 세상에서 괴로움과 좌절과풍우를 경험하게 하시고 교란을 당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많은 시험을 거치고 많은 고통의 눈눈물을 흘려야만 힘을 다해 전진할 수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행하시는 일들을 깊이 이해할 수 있다.
만일 우리의 영이 합당한 위치에 서서 혼과 몸을 다스리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하며 주님과 한 영이 되었다면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롬 8:11). 지금은 마귀가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들의 몸과 생각을 얻으려는 때이다. 주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사탄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그러나 내가 너희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눅 22:31-32)라고 말씀하셨다. 주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사탄이 너희를 밀 까부르듯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사탄이 그를 밀 까부르듯하는 것을 허락하셨다. 베드로는 자기를 신뢰하고 잘난 체하며 모든 사람이 그분을 버릴지라도 자신은 주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주 예수님은 사탄이 베드로를 밀 까부르는 것을 허락하여 자신에 대한 그의 신뢰를 실패로 돌아가게 하셨다. 주님은 빌라도의 심판대 앞에서 베드로가 오순절을 체험하도록 예비하셨다.
베드로가 자신에 대한 신뢰를 버리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어찌 그를 사용하실 수 있겠는가? 하나님은 베드로가 배를 떠나 주님께로 건너갈 담력을 주었던 그의 미친 듯한 야심을 제하신다. 만일 당신이 부지런히 성경을 읽어 본다면 사탄이 하나님의 자녀를 사로잡을 수 없다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울도 하나님의 자녀 중에 하나였지만 "(내가) 너무 자고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고후 12:7)라고 고백했다. 사탄의 자극과 주님의 정결케 함이 있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죄와 사탄을 이길 방법을 터득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주님의 재림을 예비할 수 있는 것이다.
영을 좇아 행하는 그 기초는 무엇인가? 골고다이다. 우리는 반드시 로마서 6장이 말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사탄이 죄를 통해 우리를 속박하기 때문에 우리는 죄를 이기는 것이 사탄을 이기는 기초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십자가를 거점으로 삼아 그리스도와 함께 죽어야만 사탄을 이기는 위치에 거할 수 있다. 로마서 6장은 죄와 사탄을 이기는 기초이다.
실행에 있어서 당신은 영을 덮는 구름속의 음영을 제해야 한다. 만약에 당신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우면 예민한 영의 빛을 상실하게 된다. 이 빛이 당신의 생각을 비추고 당신이 해야 할 일을 알려 준다. 당신의 영이 혼과 몸을 다스리는 완전하고 온전한 승리 안에 있다면 당신의 생각은 성령의 인도를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영의 인도를 받는 사람들은 다 하나님의 아들들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어떻게 죄를 피하는지를 알지만 어떻게 장애물을 피하는지는 모른다. 마귀는 사람의 영에 어두운 그림자가 있을 때 그의 계략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여러모로 사람의 영에 많은 장애물을 두어 그림자가 드리우게 한다. 억압을 당하는 영은 어떤 것도 흘려보낼 수 없다. 영이 자유롭게 되는 것이 부흥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왜냐하면 오직 영이 자유롭게 될 때만이 계속적으로 무언가를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영의 계속적인 승리를 유지하는 한 가지 조건은 바로 우리 안을 들여다보지 말고언제나 밖으로 영을 흘려보내는 것이다. 흑암의 권세가 자주 외부에서 사람의 영을 압제하여 적극적으로 밖을 향하지 못하게 하고 도리어 자기 속을 들여다보게 한다. 원수는 여러모로 사람을 참소하고 자주 자기 자신에게 매이게 하여 그를 공격하는 힘을 무력하게 하기 때문에 믿는 이는 마땅히 밖을 향하여 흑암의 권세를 대적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기도집회에서 나에게 기도하라고 요청한 사람이 없는데 어떻게 내가 항상 밖을 향해 악한 자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라고 말할지도 모른다(당시 기도집회에서는 특정한 사람들만 기도할 수 있었던 것으로 추측됨 - 역자 주). 이러한 사람은 기도하는 생명 안에 세상과 같은 큰 영역이 있음을 모른다. 당신의 영은 승리의 기도로 확고하고 견고하게 밖을 향할 수 있고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해 모든 흑암의 권세를 대적할 수 있다. 이럴 때 당신의 영은 밖을 향할 수 있다 만일 당신이 외부의 세력을 대적하지 않는다면 외부의 세력은 도리어 당신 속에 들어와 당신을 압제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유창하게 간증을 하지 못한다. 부흥 집회 기간에 사람의 영은 아주 강하고 쉽게 열어 간증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쫓기고 자극을 받으며 반대를 당하고 모든 어려움을 빈번히 당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가련한 우리의 영은 매이고 속박을 받게 되고 억압을 당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능력도 잃어 자기가 해야 할 일들까지도 깨닫지 못하게 된다! 우리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더 능력 있는 일을 하기 위해 이 누적된 장애물에서 영이 자유로울 수 있도록 하나님께 간구해야 한다. 비록 당신이 기도집회에서 기도할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은 당신이 영 안에서 그분과 연함하도록 부르신다. 당신의 기도 안에서 모든 흑암의 권세를 쫓아내기를 원하신다. 이것은 어떤 일보다도 가장 능력 있는 일이며 여러분 누구에게든지 열려 있다. 기도집회의 문이 당신에게 닫혀 있는 것은 도리어 당신에게 다른 사람이 맛보지 못한 기도를 맛보게 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영 안에서 어떻게 행하는지를 안다면,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바울이 육신으로는 고린도인들과 함께 있지 않았지만 그는 그들에게 "영으로는 (너희와) 함께 있어서"(고전 5:3) 라고 말하고 또 믿는 이들에게 "(그들이) 한 영으로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과"(빌 1:27), "너희도 영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어"(엡 2:22), 평안 안에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4:3). "영 안에서 기도하며", "영 안에서 교통하고" 라고 말했다. 모든 것이 영에 달려 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영 안에서 연합된다면 흑암의 권세는 그 앞이 서지 못하게 된다. 교회는 해와 같이 빛나고 달과 같이 맑으며 군대같이 엄위 할 것이다.
당신의 기도와 영의 관계를 아는가? 흑암의 권세가 거대한 검은 구름같이 기도집회를 뒤덮는다, 그때 당신이 영 안에서 어떻게 이러한 권세가 이겨야 할 지룰 모르기 때문에 당신은 실패한다. 사탄은 당신에게 하나님께서 기도를 청종치 않는다고 말하면서 당신을 시험한다. 우리가 이러한 두꺼운 장벽을 뚫고서 통과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어떤 사람은 '주 예수님께서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경계를 뚫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셔서 백성을 위해 간구하고 계시고 그들을 위해 새롭고 산 길을 여셨다. 이 유일한 길은 피로써 성취하신 길이다. 그분은 흑암을 뚫고 지나가는 길을 열어 놓고 계신다'라고 말했다. "피로 말미암아 지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 피로써 성취하실 길.
만일 당신이 당신의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안에 감추어졌음("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 골 3:3)을 깨달았다면 당신은 결코 육체를 따라 행하지 않고, 영 안에서 보좌에 계신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하나님의 뜻안에서 생활할 것이다. 당신의 영은 반드시 "주와 합하여 한 영"(고전 6:17) 된 하늘의 위치에 직접적인 것이든 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이 전한 것이든 흑암의 권세로부터 온 것들이라면 무조건 대적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오직 당신의 영을 하나님 앞에서 깨끗하게 하는 이 한가지 일만 하기로 결심해야만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그분 자신의 길 안에서 그분 자신의 계획을 성취하셔야만 한다. 우리의 할 일은 다만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하나님은 영이심)과의 교통을 방해하는, 영을 가리는 구름들을 거절하는 것이다. 이럴 때 당신은 원수의 권세를 이길 수 있는 권위와 능력을 갖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