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후 가족과 떨어져 돌봐줄 사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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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세례를 받은 문씨는 암에 걸린 이후 기도를 더 자주하게 된다고 했다. 이 신부는 대화 내내 문씨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김유리 기자 |
전자레인지에 돌린 즉석밥에 먹다 남은 김치찌개, 그리고 김 한 봉지.
위암 투병하는 문홍관(플로렌시오, 47)씨의 밥상이다. 늘 그렇다. 반찬은 김 아니면 김치다. 가족도 직장도 없는 문씨는 두 평 남짓한 고시원에서 홀로 암세포와 싸우고 있다.
2일 경기 고양시 국립암센터에서 만난 그는 한 눈에도 병색이 짙었다. 언제부턴가 속이 자주 쓰려 동네 병원을 찾던 문씨는 의사에게서 큰 병원에 가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밀 검사를 하는 데 필요한 30만 원이 없어 차일피일 병원에 가는 것을 미뤘다. 결국 지난 5월, 위암 3기 진단을 받았다.
“수술하면서 위 전체를 잘라냈어요. 지금 제 몸에는 위가 없이 다른 장기들끼리 연결돼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잘못 먹으면 금세 탈이 납니다.”
위암이어도 많은 경우 위의 일부분이나 절반 정도만 떼어내지만 문씨는 위 전체를 제거했다. 소화 능력이 많이 떨어지기 때문에 식단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금씩 자주 먹으면서 단백질과 비타민을 충분히 먹어야 하지만 그의 유일한 수입인 기초생활수급비 48만 원으로는 역부족이다. 고시원비를 빼고 나면 생활비가 부족해 밥을 굶는 날도 있다.
“암 투병을 하면서부터는 그동안 다니던 인력사무소에 나가지 못해 형편이 더 어려워졌어요. 항암 주사와 약이 무척 독해서 도저히 바깥 활동을 할 수가 없거든요.”
6년 전 허리디스크가 온 이후로 문씨는 일용직 근로를 하며 생계를 이어왔다. 하루벌어 하루 사는 처지에 암까지 생기면서 문씨의 생활은 더 어려워졌다. 하지만 그 무엇도 가족들을 보지 못하는 고통에 비하면 차라리 견딜 만했다.
외도하던 부인과 이혼한 것은 2001년. 아내와의 관계에는 마침표를 찍었지만, 아이들에게는 좋은 아빠로 남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는 아이들과 함께 만날 때면 문씨에게 일부러 싸움을 부추기곤 했다. 엄마 아빠 사이에서 상처받는 아이들을 보며 문씨는 자신이 떠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해주는 것도 없이 아이들 마음만 아프게 할 수는 없었다.
“중간중간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 노력해봤지만 쉽지 않더라고요. 일단 허리가 성치 않으니 고정적인 직장을 잡을 수가 없는데 어떻게 아빠 노릇을 하겠어요.”
문씨는 위암 발병 소식도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투병하고 있었다. 구토나 어지럼증을 동반하는 항암 주사를 맞으러 온 이 날도 문씨는 혼자였다. 남편이나 아내, 혹은 자녀와 같이 온 사람들 옆에서 문씨는 4시간 동안 독한 주사를 맞았다.
“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라도 얼른 암을 이겨내 건강해지고 싶습니다. 마음 편히 치료에만 집중할 수만 있다면 더 바랄 게 없을 것 같아요.”
김유리 기자 lucia@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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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견인 이승익 신부(국립암센터 원목실) |
살면서 가장 외로울 때가 아플 때입니다. 가족이 곁에 있어도 견디기 힘든 암 투병을 문홍관씨는 어려운 환경에서 홀로 하고 있습니다. 독자분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홍관씨의 손을 잡아주시길 바랍니다.
성금계좌(예금주 : 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문홍관씨에게 도움을 주실 독자는 12일부터 18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을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519)에게 문의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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