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브스튜디오 <냉장고 코코몽>의 민병천 감독

[정광철]

한국영화 최초로 핵잠수함을 소재로 한 <유령>(1999년)과 당시 최고의 CG 기술력으로 SF영화의 새 지평을 연 <내츄럴시티>(2003년)의 감독을 맡은 민병천(40세) 감독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도전정신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내츄럴시티> 이후 메가폰을 잡지 않았던 그가 5년 만에 새 작품을 들고 나타났다. 이번엔 영화가 아닌 TV애니메이션이다. 영화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장르를 바꾼 이유는 무엇인지, 첫 작품 <냉장고 나라 코코몽>(이하 코코몽)과 관련된 에피소드와 앞으로 계획에 대해 민 감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영화감독에서 애니메이션 감독이 됐는데 느낌이 어떤가? 영화나 애니메이션이나 만드는 과정은 마찬가지다. 약간 다른 점이 있다면 영화는 현장에서 촬영하기 때문에 즉흥적 요소가 많은데 애니메이션은 그런 게 없다. 난 즉흥적인 것을 좋아해서 그런 면을 요구하다 보니 <코코몽> 스태프들이 고생을 많이 했다. 애니메이션을 처음 제작하면서 약간 병폐가 있음을 느꼈다. 기존 애니메이션 감독들이 작품을 만들 때 틀린 걸 묵인하고 넘어가는 편의를 봐주고 있었다. 영화는 무조건 고치고 다시 촬영하면 되는데 애니메이션은 그러질 못한다. 아이들이 애니메이션을 보는 이유가 일상 탈출 때문이라고 생각하는데 애니메이션이 더 답답함을 주면 안 되지 않은가. 그런 잘못된 타성을 고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애니메이션으로 장르를 바꾼 계기가 있나? 1999년 <유령>이란 영화로 대종상 신인감독상 수상했고, 2003년 <내츄럴시티>를 감독했다. 두 작품 모두 국내 흥행에는 실패했지만 해외에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내츄럴시티>의 흥행 실패로 의기소침해진 난 집에 있는 날이 많았다. 그때 세 살배기 딸아이를 보면서 어린이를 위해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고 애니메이션을 시작했다. 대학에서 부전공으로 애니메이션을 배웠던 터라 관심이 많았다. <코코몽>의 소재는 딸 덕분에 얻은 셈이다. 딸아이가 싫어하는 음식이 있는데 거기에 좋아하는 동물 캐릭터를 결합하면 잘 먹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찮은 소재 같기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2004년 MBC TV드라마 <궁>의 비주얼 슈퍼바이저를 맡으면서 함께 일했던 동료 네 명과 본격적으로 <코코몽>을 기획하기 시작했고, 직원들을 더 모아 1년 뒤인 2005년에 올리브스튜디오를 설립했다.

3편밖에 방영(인터뷰 날짜 3월 12일 현재)하지 않았지만 시청률이 높게 나왔다. 소감은?
(TNS미디어 코리아에 따르면 3월 12일 EBS에서 방송된 3화는 가구시청률 2.77%로 이날 방송된 EBS의 모든 프로그램 중 1위를 차지. 4∼6세 타깃 시청률은 6.08% 기록) 우리도 놀랐고, EBS와 투니버스도 놀랐다. 개인적으로 유아용 애니메이션도 시청률이 잘 나온다는 걸 처음 알았다. <코코몽>이 잘됐으면 좋겠다. 우리만을 위해 하는 소리가 아니다. 해외에 나가 보면 한국 애니메이션이 정말 막강하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영화는 비교적 해외시장 개척이 잘 되는 반면 애니메이션은 그렇지 못하다. 그 이유는 전문 프로듀서가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방송국에서 프로듀싱을 해주지만 한계가 있다. 실질적으로 제작 라인에서 프로듀서들이 적극적으로 일해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는 실정이다. 요즘 유럽 업체들과 공동제작을 많이 하는데 그들의 조건에 맞춰줘야 하기 때문에 결국 우리가 처음 기획한 내용은 다 없어지고 유럽 애니메이션이 되고 만다. 재하청이 되는 셈이다. 우리 문화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미국시장에도 맞지 않기 때문에 수익구조가 없어진다. 하지만 <뽀롱뽀롱 뽀로로>는 그런 악순환 구조를 처음으로 부순 작품이다. <뽀로로>는 순수 국내 자금과 기술로 제작되어 해외로 판매된 작품으로, 우리나라 애니메이션 산업에 실질적으로 기여한 바가 엄청나다고 본다.

<뽀로로>가 해외에 진출하면서 한국 애니메이션의 위상도 크게 높아졌다. 그런 작품이 많이 나와야 한다. 지금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에서 1990년대 초반 한국영화 중흥기의 에너지가 느껴진다. 우리나라 애니메이션도 프로듀싱만 잘해서 터트리기만 하면 봇물 쏟아지듯이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점령할 거라고 본다. 그만큼 실력 있는 사람도 많다.

제작하면서 재미있었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주인공을 선정하는 데 힘들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캐릭터와 어른들이 좋아하는 캐릭터가 서로 달랐다. 주인공을 결정하기 위해 인기투표를 한 결과 어른들은 닭과 파가 결합한 파닭을 가장 좋아했으나 아이들에게는 꼴찌였고, 아이들은 새우튀김·강아지가 결합한 오몽과 노른자·토끼가 결합한 아로미를 가장 좋아했다.

하지만 아로미를 주인공으로 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성별에 관련이 없어야 하는데 아로미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극을 리드할 캐릭터가 필요했다. 여러 캐릭터를 시험해봤지만 여의치 않아 아예 주인공을 새로 만들기로 해 소시지와 원숭이를 결합한 주인공 코코몽이 탄생하게 됐다. <코코몽>은 투니버스, EBS와 공동 제작했는데 그 과정이 궁금하다. 또 캐릭터 라이선싱은 어떻게 진행하고 있나? <코코몽> 데모 영상을 만들어 주위에 보여주니 반응이 좋았다. 하지만 제작비가 부족했던 터라 EBS에 공동제작을 제안했지만 회사 방침상 우리가 원하는 제작비를 지원할 수 없다고 했다.

그러던 차에 투니버스에서 공동제작을 제안해와 35%의 투자비를 지원받았고, EBS로부터 3%를 지원받았다. 지금은 미국이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와 협력하여 우주를 배경으로 한 애니메이션 <투바투바>를 제작하고 있는데, 이 작품에는 EBS가 30%를 투자했다. 출판과 해외 라이선싱 사업은 우리가, 나머지 국내 라이선싱 사업은 투니버스가 맡고 있다. 현재 애경, CGV, 이브자리와 계약을 맺었다. 출판은 기획출판과 캐릭터 출판 부문에서 대대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내셔널지오그래픽과는 어떻게 만났나?
3년째 방송 프로그램 국제박람회인 프랑스의 MIPTV, MIPCOM과 미국의 키즈스크린 서밋(KIDSCREEN SUMMIT) 행사에 참가하고 있는데 거기서 얻은 결실이다. 작품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으며, 이들 작품을 모두 갖고 나갔다.

해외 행사에서는 평소 만나기 어려운 거물급 인사도 만날 수 있기 때문에 4개씩 두 팀으로 나눠 최대한 많이 홍보했다. 현재 제작 중인 작품은 마야(MAYA) 체제로 제작되는 <코코몽>과 <아라라섬>, 맥스(MAX) 체제인 <투바투바>와 <바나클루>가 있고, 그 밖에 SBA(서울산업통상진흥원) 우수 지원작으로 선정된 <데이플라이>, 스페인 BRB 사의 투자를 받게 될 <코니>, EBS와 공동제작 중인 <한반도공룡시리즈>, 환경 애니메이션인 <이투크와 쟈크>가 있다. 이들 국제박람회는 각각 어떤 특징이 있나? MIPTV(4월)가 씨앗을 뿌리는 곳이라면, MIPCOM(10월)은 수확물을 거두는 곳이다. 키즈스크린

서밋(2월)은 작품의 반응이 어떤지 바로 알 수 있다. MIPTV는 그곳에서 계약이 이뤄지기도 하지만 미미한 편이다. 전 세계의 모든 방송국 관계자들과 프로덕션 단계의 작품이 모두 모이므로 홍보 효과가 굉장하다. 평소에 만나기 힘든 거물급 인사와도 사전에 약속만 잡으면 만날 수 있어 대략 10분 동안 자기 작품을 홍보할 수 있다.
MIPCOM은 MIPTV와 거의 비슷한 형식이지만 연말과 가까운 10월에 열린다는 점에서 중요한 행사다. 각 방송사에서는 다음해 작품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콘텐츠 제작사들과 판권, 방영권에 대한 실질적인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이다.
키즈스크린 서밋은 작품이 난자당하는 곳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코코몽>을 가져가면 이 작품이 북미지역에서 반응이 좋을지, 나쁠지 평가가 바로 나온다. MIPTV와 MIPCOM은 주로 유럽 쪽 대행사들과 계약이 이뤄지는 반면, 키즈스키린 서밋은 북미 방송사들과 직접 계약한다. 때문에 MIPTV와 MIPCOM은 계약 성사율이 높지만 진행 과정이 늦는 반면, 키즈스크린 서밋은 성사율은 낮지만 빠르게 진행된다.

극장용 애니메이션도 계획하고 있나? 그렇다. <김철수를 찾아라>라는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계획하고 있는데 지금 시나리오만 4년째 쓰고 있다. 지구 온난화에 관한 내용으로, 냉장고 문을 하도 열어서 지구 온난화가 시작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을 보니 공익적 내용이 많다. 특별히 의도하는 건가? 우리 회사의 모토다. 사회에 이바지하는 회사가 되고 싶다. 장기적 목표는 기독교 테마파크인 바이블 랜드를 건립하는 것이다.

영화배우 윤찬 씨가 회사의 기획이사로 참여하고 있다. 어떤 인연으로 만났으며, 어떤 도움을 받고 있나?
처음에 알게 된 건 10년 전 015B 뮤직비디오 촬영 때 윤 이사가 주인공으로 캐스팅되면서 부터다. 그 이후 여러 작품을 함께 하면서 오랜 신뢰가 쌓여 서로 존중하는 사이가 됐다. 회사를 설립하면서 옆에서 도와주고 아이디어를 낼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는데 윤 이사가 생각났다. 그래서 영화 <댄서의 순정> 이후 쉬고 있던 윤 이사에게 제안해 같이 일하게 됐다. 나이도 올해 40세로 동갑이다.
윤 이사는 기획·총괄을 맡고 있으며 나의 단점을 보완해준다. 나는 추진력이 강한 편인데 그것은 장점이자 단점이다. 한번 기획한 건 무조건 해야 하는 성격이다. 그러다 보니 빠트리는 게 많다. 반면에 윤 이사는 작은 것 하나하나도 일일이 짚고 넘어가는 꼼꼼한 성격이다. 내가 미처 챙기지 못한 부분까지 세심히 챙긴다. 그런 성격을 알기 때문에 함께 일해보자고 제안했다.

앞으로 올리브스튜디오를 어떤 회사로 키울 계획인가?
극영화든 애니메이션이든 분야가 조금 다르지만 병행하려고 한다. 일차적 목표는 제대로 된 가족영화를 만들고 싶다.
방학 때 가족들이 함께 볼 수 있는 영화가 별로 없는 것 같다. 한국의 월트디즈니 같은 회사로 만들고 싶다. 곧 영화도 제작할 예정이다.
물론 윤찬 이사도 참여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