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를 떠난지 14개월 만에 다시 돌아가 110일을 지내고 돌아왔다. 오랫만에 가서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15년간 연락이 없던 백문경 장로와 만난 것이다. 치과의사로서 60살 까지 자신을 위해서 살고 60부터는 봉사하는 사람을 살겠다고 15년 전 호주 내륙 오지의 원주민들을 위한 이동 치과 치료를 시작했던 백 장로가 수년 간 페북을 하지 않다가 우연히 페북에 들어와서 내 소식을 보고서 연락한 것이었다. 그는 시드니에 하나 밖에 없는 별난 목사인 내가 할 일 많은 시드니를 놓아 두고 어디를 가느냐고 했다. 사실 냉정하게 생각하면 그렇기는 하다.
또 다른 인상적인 만남은 이경희 목사와의 만남이다. 한국인들이 별로 없는 Central coast에서 우리가 운영하고 있는 Group Home 주변을 샅샅이 정밀수색하다가 근처에 있는 Warnervale Regional Uniting Church에 한국인 여 목사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다. 만나보니 요즘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신학적으로나 삶으로나 훈련이 철저히 되어 있고 균형이 잘 잡혀 있는 사람으로 견적이 나왔다. 이 뜻은 적어도 신앙 세계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들고 나와도 알아듣고 대화가 가능하다는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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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도 Uniting church답게 Community mind를 잘 갖추고 있고 무슨 사연이 있는지 요즘 세상에(호주에서 교회를 새로 짓는 일은 화재가 나지 않는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회 건물도 새건물이었다. 더욱 좋은 일은 이 목사의 남편이 대학 때부터 운동(?)으로 단련되어 사회 봉사 활동에 최적화 되어 있는 보기드문 커플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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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주에서 25년을 살면서 한국 목사 보다는 호주 목회를 하는 한인목사들과 더 가깝게 지내왔다. 호주 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목회에서는 철저하게 메뉴얼대로 목회를 해야해서 한국식 뜬구름 잡는 목회나 얼렁뚱땅 분위기 잡는 목회는 전혀 통하지 않는다. 기본에 충실해야 하고 항상 평가를 받는 입장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외국인으로서 성공적인 결과를 내기를 무척 어렵다.
나는 호주 목회를 하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마치 월남전에서 첨병의 역할 같은 느낌을 받는다. 첨병은 정글에서 수색정찰을 나갈 때 전혀 알 수없는 환경에서 조심 조심 살펴가며 본대가 전진할 길을 개척해야 하는 역할이다. 그렇기 때문에 첨병의 역할은 그만큼 위험하고 힘들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 항상 그렇듯이 이번에도 약간의 긴장을 느끼게 되는 순간 50년 전 월남에서 헬리콥터를 탈 때의 기억이 났다.
작전을 끝내고 부대로 돌아가기 위해 무전을 치면 헬기가 날아오지만 헬기가 내릴 만한 평평한 공간이 있어야 했다. 그러나 사방이 탁 트인 개활지는 적에게 노출될 위험성이 있어 불안하기 때문에 헬기가 내릴 만한 정글에 대기 하고 있다가 헬기가 내리면 재빨리 타야 하는 것이다. 어떤 때는 헬기가 적당한 착륙지를 찾지 못해서 우리가 있는 정글의 주위에서 맴돌기도 하고 반대로 부대가 헬기가 내릴 곳을 찾아서 신속하게 이동을 해야만 하기도 했다. 하여간에 헬기가 뜨면 극도로 긴장해서 신경이 곤두서게 되어 있었다.
작전을 나가서 헬기를 타면 항상 초긴장을 해야 하지만 한 번은 헬기가 착지할 때 지상이 불안전해서 높지는 않지만 완전히 땅에 닿지 않은 상태에서 뛰어내려야 할 때도 있었다.
전혀 알 수 없는 남의 나라 전장에서 헬기에 탈 때보다는 내릴 때는 긴장이 아니라 무심한 무아경에 빠지게 된다. 좋은 의미에서 감정이 없는 상태가 완전히 공포로 얼어서 기계가 된다는 의미이다. 즉 내 의지나 감정이 전혀 없는 명령대로만 움직이는 로보트 같은 상태인 것이다. 그럴 때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게 된다.
물론 그 시간은 길지 않다. 내려서 주변을 살피고 조금 있으면 정상적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인간이 안전히 얼면 아무 것도 판단하지도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배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여러가지를 재고 또 재어야만 할 시기이다. 다시 호주로 돌아와서 일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지만
길지 않을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생각하고 또 생각해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