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신진련
여행, 거꾸로 한 살 외
섬으로 가는 표 한 장 주세요
붕장어 꼬리처럼 긴 좌석이면 좋겠어요
고래 등에 침목을 깔고
해벽 끝을 지나
표정이 닳은 얼굴을 벗고 달려가고 싶어요
가다 지치면
등대 빛이 화로처럼 피는 간이역에서
구름 귀퉁이 오려 토핑으로 올린
커피 한 잔 마실 거예요
낯선 시간을 타고 섬과 섬 사이를 돌면
다시 돋아나는 스무 살 지느러미
파도를 튕겨 올리는 물방울 무지개는 피었다 지겠지만
섬으로 가기 딱 좋은 날이죠
낮과 밤이 서로를 꽉 물고 놓지 못하는 해거름은
어울리지 못한 당신과 나눈 마지막 키스처럼
왜 그리 서둘러 짧은지
돌아오는 표가 없다고요
괜찮아요
나의 고래는 아직 헤엄치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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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덕
새들이 폐곡선으로 난다*
어떤 새는 위로
어떤 새는 아래로
높았다 낮아지는 까만 발바닥들
저쯤이 하늘의 언덕일 것이다
날갯짓이 목마르게 가빠지는 오르막
굴곡진 길이 서툰 어린 새가
겨드랑이에 땀이 차도록 날개를 퍼덕이듯
나도 조그만 걸음으로
낮은 언덕부터 넘는 연습을 했다
키보다 높은 언덕 위로 새들이 날 때마다
무릎까진 옛 아이의 우는 소리가
회돌이로 귀를 빠져나가는
지상의 폐곡선
곡선이 자라 언덕길이 되는 내일은
등에 자란 깃이 지치지 않게
더디 날자
언덕에 잠시 멈춰
날아온 길을 느리게 되돌아보는
텃새처럼
*영화 「새는 폐곡선을 그린다」를 변주
신진련
2017년 《시와소금》 신인상 으로 등단했으며 시집『오늘을 경매하다』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