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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세계자본주의의 현실과 한국경제 위기
지난 1997년 이래의 경제위기에 대해 정부는 97년 12월 IMF(국제통화기금)로부터 '구제금융'을 받 는 조건으로 '이행각서'에 서명하고, 98년 내내 IMF의 요구에 맞추어 '구조조정'을 수행하였다. 즉 정 부는, 긴축정책, 자본시장 개방, 기업구조조정(재벌해체), 금융구조조정, 공기업민영화, 노동시장유연화 등을 추진하였다.
이러한 정부정책은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으로서, 그것은 '유 연화' '기업활동에 대한 규제완화·철폐' '공기업 민영화' '자본자유화(자본시장 개방)' 등을 축으로 하 고 있다. 동시에 그것은 기본적으로, 정리해고제·노동자파견제 도입을 모든 구조조정의 선결과제로서 설정하고 98년 2월에 관련법을 제·개정한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노동자의 대량실업 발생을 전제로 하 여 설정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한국경제를 위기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내줄 수 있을까? 이 문제는 현재의 경제위기가 우리나라에 한정된 일국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과 함께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유럽의 실업사태, 동남아시아의 경제위기, 일본의 디플레이션·금융위기,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중남미 경제 불안, 나아가 98년부터 불안한 예측을 동반하고 있는 '최후의 카드' 미국경제의 침체 조 짐 등이 모두 본질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현대 세계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으로서의 지구 적 차원에서의 자본주의의 구조적·내재적 모순의 심화이다. 그 모순의 내용이란 '과잉축적의 심화와 이윤생산 및 실현의 모순', 이로 인해 격화된 세계적인 자본간 시장쟁탈전, 초국적 자본의 각국경제 교란 심화 등이다.
이는 2차대전후 '황금기' 성장을 구가해온 세계 자본주의가 1970년대 중반부터 자 본주의의 구조적인 '과잉축적'2) 경향의 심화를 노정하면서 만성적인 불황과 고실업에 빠져든 이래, 70 년대말부터 레이건과 대처를 필두로 하여 세계 각국에서 소위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프로그램3)을 통해 극복해보려 했지만 오히려 모순을 더욱 심화시킴으로써 90년대 중반 들어와 전세계적인 동시공 황의 가능성을 키워온 과정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위와 같은 과정으로 인하여 현대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통합성과 불안정성을 동시에 강화시 키고 있다. 세계경제는 80년대를 경과하면서 자본의 '신자유주의'전략과 함께 엄청난 규모로 성장하여 전 지구적 규모에서 움직이고 있는 '초국적자본' 주도하에서 자본의 지구화(globalization)와 함께 시장 통합성을 증대시켜왔으며, 그것은, 세계경제의 상호의존성을 심화시키는 동시에 불안정성을 증대시켰 다. 즉 한 나라의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곧바로 다른 나라에 연쇄파급되는 구조가 강화되어 있는 것이 다.
이는 초국적 자본이 특정한 산업이나 특정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함으로써 산업간 및 지역간 불균등발전을 격화시키는 한편으로 거대한 자본투기에 종사하여 증권 및 외환의 매매차익을 쫓아 이 동하면서 각국의 시장을 교란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초국적 자본은 더욱이 다자간투자협정(MAI)을 통 하여 세계경제 지배의 제도화를 꾀하고 있다. MAI는 '자본과 상품의 지구적 규모에서의 자유화'를 목 표하고 있는데, 95년부터 OECD에서 비밀리에 교섭해오다가 97년에야 일반에 공개된 MAI 초안은 '초 국적자본의 권리헌장'이라고 이야기될 만큼 외국투자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보장하고 있다. 만일 환 경에 문제가 있는 제품의 반입을 정부가 규제할 경우, 그 제조원 기업은 해당 정부를 국제분쟁기관에 제소할 수 있고 그 정부는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노동자들은 지구적 차원에서 노동자들끼리 일자 리 경쟁을 벌여야 하기 때문에 노동조건이 최악으로 저하될 가능성이 있다. 파업이 있을 경우도 투자 자는 정부를 제소하여 노동자를 포함한 민중의 손해배상을 받아 이윤을 메꾸며, 고용을 창출하라는 등의 정부쪽 요구도 '투자규제요인' 지목을 받아 제소될 수 있다. 수도, 철도, 도로, 항만 등도 100% 외자소유로 할 수 있으며, 정부가 한번 조인하면 5년동안 철회할 수 없고, 철회통고시에는 그시점에서 투자가 진행중인 경우 15년 동안 효력이 유지되므로, 실질적인 효력은 20년이나 강제적으로 지속된다.
이 MAI초안은 97년 5월에 조인될 예정이었으나 각국에서의 노동자·민중의 투쟁과, 각국 자본 및 정 부의 이해관계 충돌로 인해 98년 5월로 연기되었다가 다시 또 98년 10월 이후로 유보되었다. OECD에 서 이 교섭을 더 이상 진행시키지 않겠다고 선언했지만, 그 교섭이 중단되는 것이 아니고 이제는 WTO에서 다루기로 되어 있다.
한국경제의 위기는, 위와 같이 한편으로는 상호의존성·통합성을 증대시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상 호 격심한 경쟁과 불안정성을 심화시키는 모순적 운동을 하면서 과잉축적 경향을 심화시킴으로써 위 기를 내재화·만성화·구조화·항상화시키고 있는 세계경제의 흐름 속에서 발생한 것이다.
2. 정부의 '구조조정'정책과 문제점
정부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을 통하여 한국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는 방향을 취하고 있는데,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그것은 초국적자본 방식의 세계경제위기'극복'책과 완전히 맥락을 같이 하고 있 다. 이는 초국적자본의 세계지배전략의 하위 파트너역을 한국정부가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97년부터 시작된 IMF 관리체제하에서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적인 주제는 '구조조정'이었다. '구조조 정'의 핵심내용은 우선 IMF '이행조건'에 의해 제공되었다. 즉, 한국시장의 전면개방과 자본자유화, 규 제완화 및 철폐, 노동운동의 무력화를 기축으로 하여, 재정·금융 긴축, 민영화, 재벌해체, 노동시장유 연화, 자본시장 조기전면 개방 등이 IMF에 의해 요구되었다. 한마디로 한국경제의 전면적인 '구조조 정' 요구였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IMF의 요구들이, 세계적 규모의 축적위기를 초국적자본의 이윤보장 을 통해 극복해보고자 하는 자본의 신자유주의 전략의 반영임과 동시에, 한국경제를 그러한 초국적자 본의 논리에 걸맞게 재편하고 그에 저항하는 세력을 그러한 논리에 복속시키고자 한 것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한국에서는 김대중정권에 의해 저러한 일을 수행할 '임무'가 맡겨지게 된 셈인데, 98년 동안 김대중정권은 그 역할을 초국적자본이 보기에 '성공적으로' 수행함으로써 초국적자본과 IMF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더욱더 그들의 기대에 맞추도록 격려받고 있다.4)
주지하다시피 김대중정권은 'IMF 이행조건의 전면 조기이행'을 '경제위기 극복의 길'로 간주하고, 그 기조 아래서 '구조조정'에 착수하였다. 우선 '노사정위원회'를 꾸려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합의와 고통분담이 필요하다'고 하여 노동자·민중을 IMF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과정에 '참여'시킴으로써,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정 자체가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을 가치로 두기보다는 자 본의 이윤생산위기 극복을 가치로 두고 있기에 필연적으로(사회구조적으로) '고통전담자'가 될 수밖에 없는 노동자·민중의 저항 가능성을 봉쇄하고자 하였다. 그것은, 현시기에 정부·IMF에 의하여 추진 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내재적으로 대량의 정리해고와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훼손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역으로 말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여하튼 이에 따라 정부는 금융쪽을 필두로 하여 사적 기업부문, 그리고 공공부문에 이르기까지 '구 조조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 과정은 대량실업의 내재화와 노동자·민중의 생존권 압박으 로 점철되었다. '경쟁력 있는 부문은 지원하고 경쟁력 없는 부문은 과감히 퇴출시킨다'는 논리하에 국 내 독점대기업의 내실화를 꾀하는 '재벌개혁'과 '기업구조조정', 그것을 지원하고 뒷받침하기 위해 기업 구조조정과 동시에 그리고 선결적으로 착수한 '금융부문 구조조정', 그리고 국민대중의 기초적 생활에 서 필수적인 영역들을 포함하여 '민영화와 경영합리화'를 축으로 한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잇달아 동 시병행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노동시장 개혁'이라 하여 이를 포함해 이른바 '4대 경제구조개혁' 과제로 설정한 것이다. 정부는 우선 97년 12월에 금융관련 13개 법률을 제·개정하는 한편, 98년 1월 에는 '노사정위원회'를 구성해서, 노조쪽으로부터는 '노동시장유연화' 조치들5)에 대한 '합의'를, 그리고 재벌을 위주로 한 자본쪽으로부터는 소위 '구조개혁 5대 과제'6)에 합의하고 노동관련법 제·개정 및 기업관련 10개 법령을 개정했다.
급박한 '국가부도위기' 상황을 연출하게 한 장본인이었던 외환고갈 상황이 IMF에 의하여, 그리고 정부의 소위 '외자유치' 노력에 의하여 급한 불이 어느 정도 꺼진 98년 4월을 거치면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은 날개를 단 듯 본격화되게 된다.
그 내실이야 어쨌든 외자를 끌어들여서 부도위기를 모면했고, '노사정위원회'를 통해 노동자들이 정리해고제 등을 양보하는 대신 재벌로 대표되는 독점자본은 자체'개혁'을 약속함으로써 '전사회적인 합의' 속에서 경제 적 구조재편을 수행하고 있는 듯한 외양을 갖추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의 실내용들이다. 가장 직접적인 결과는 실업률의 급격한 상승과 실질적으로 4 백만명을 훌쩍 넘는 실업자의 대량생산이다. 또한 '경쟁력과 효율성'을 최고가치로 두고 실시되고 있 는 구조조정의 양상은 79개 비은행금융기관에 대한 영업정지와 인가취소 조치, 5개 은행에 대한 퇴출 명령, 50여개 이상 기업에 대한 퇴출명령, 공공부문 통폐합과 슬림화 등으로 나타났고, 거기에 종사하 던 노동자들의 대량 해고로 이어졌다.
이러한 정부의 정책은 IMF 이행조건에 서명하고 그것을 100% 이행하겠다고 선언한 이래 기정사실화되어 있다. IMF 관리체제는 '위기'에 대한 자본의 처방이고, 특 히 위에서 설명한 초국적 자본의 처방이다. IMF는 바로 위기의 '본질'이자 본질적 원인을 제공한 세계 적 차원의 '신자유주의'의 담지체이다. 그것은 IMF이행조건을 100% 이행하겠다고 공언한 김대중정권 의 '위기극복 전략'이기도 한 것이다. 98년 한해동안 공식적인 실업률은 8%에 근접하였으며, 비경제활 동인구로 산입되어 실업률 통계에서 빠진 실업자 및 실질적 취업자라고 보기 어려운 단시간·비정규 직 노동자까지 합산한 추정으로는 20% 가까운 470여만명이 실업상태에 있다.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 조조정은, 금융권의 5만여 노동자가 노동시장에서 ?겨나거나 불안정고용상태에 처한 금융구조조정, 소위 '기업구조조정'이라 하여 5대 재벌 구조를 재편하는 과정에서 벌어질 기업 인수합병과정에서의 해고사태, 공공부문 '합리화' 과정에서의 감원·해고 등을 동반하고 있다. 99년에도 제2금융권의 '제2차 빅뱅'과 5대재벌을 비롯한 기업 구조조정의 본격화 및 공공부문 합리화의 가속적 추진이 정부에 의해 예고돼 있다. 사태가 이러하기 때문에 민주노총은 지난 12월31일 '노사정위원회' "불참"을 선언하고 이 와 같은 구조조정에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밝혀놓고 있는 상황이다.
더욱이, '외자유치'의 적극화는 '외환고갈'로 인한 위기였기 때문에 얼핏 당연한 듯 보이지만, 실은 '신자유주의적' 맥락에서 볼 때만 당연한 일일 뿐 커다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외국자본의 적극적 유치는 초국적자본의 국내경제 지배 심화를 의미하고, 그것은 결국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이 외자에 의해 좌우되게 되는 상황의 심화를 의미하는 것이다. 경제상황의 '호전'이라는 것이 결국은 대량실업 과 노동자·민중, 즉 국민 절대다수의 희생을 전제한 것이라면 그것이 어떤 의미를 가질지 생각해 보 아야 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즉 '외자유치'란, 들어오는 외국자본의 입장에 서 보면 '자본수출'이다. '자본수출'은 그 목표가 '이윤' 아니면 '이자'에 두어져 있으며, '산업자본'과 '대 부자본' 두 가지 형태로 '수출'된다.
그리하여 '유치'되는 자본은 '산업자본 형태로의 유치'(직접투자)와 '대부자본 형태로의 유치'로 구성되어 있는 것이다. 이자건 이윤이건, 그것은 '잉여가치'를 구성하고 있 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 유입되건 들어오는 외국자본이 목표하는 바는 '잉여가치'이다. 정부는 자본시 장 개방과 적대적 인수합병 허용, 정리해고 허용 등의 조치가 외자를 유치하는 데 절대적인 조건임을 제삼 강조해왔는데, 이것은 외자에게 잉여가치 취득을 위한 조건을 마련해 준 것에 다름아닌 조치들 인 것이다.
정부는 외자에게 경영권을 넘겨주더라도 기업을 합리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것은 정부가 외자에 의존해서라도 GDP(국내총생산) 성장을 달성하겠다는 정책기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 다. 그 결과 99년 경제 예측에서는 플러스 성장이 가능할 것이라는 것과 함께 '경제회생 가능'성을 점 치는 낙관적인 전망들이 연초부터 쏟아졌다.
그런데, '외자유치'는 적어도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된다. 하나는, 이윤획득을 위해 '수출'된 자본 이 들어와서 어떻게 활동하겠는가?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다'는 것은 동서고금의 모든 자본에게 하나의 절대적 원칙이다.
60년대부터 박정희정권에 의해 시도된 '외자유치'로 인해서 외국자본에 의한 국내 노동력의 수탈체계가 어떻게 합주됐었는지를 우리나라 역사에서도 찾아낼 수 있다. 당시 정부는 외자기업에 관한 특례법을 두고 외자를 '보호'했다. 노동3권은 모두 뒷전으로 밀렸 고, 노동3권 관련 요구는 "조국근대화" "경제성장"을 위협할 뿐 아니라 국가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것 으로 철저히 불온시되었다.
지금 상황은 어떤가? 잘 생각해보면 외양만 바뀌었을 뿐 본질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말할 것도 없이 고도한 이윤실현 논리와 방법에 의하 여 노동조건의 저하와 노동강도의 강화, 시분초를 다투는 노무관리 등등이 따라올 것이다. 그러한 외 자의 요구가 충족되지 못할 때 그 외자들은 '철수'를 협박할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자획득을 위해 들 어온 자본의 경우도 이윤획득을 위해 들어온 자본과 이해관계를 같이 하지만, 이윤획득을 위해 들어 온 자본에 비해 훨씬 이동 속도가 빠를 수 있다. 또 이윤획득을 위한 자본의 이해가 충족되지 못할 조짐이 보이면 대부자본도 언제든지 자본을 회수하려 할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그토록 우려해마지 않는 경제의 안정화라는 것은 이러한 외자의 속성들에 의해 근본적으로 확보되기 어렵다고 할 수 있 다.
따라서 외자가 될 수 있으면 많이 유입되고, 될 수 있으면 빠져나가지 않기를 희망하는 정부의 정 책기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정부는 국내의 노동자·민중에게 외자의 요구에 항상 순응할 것을 강요 하지 않을 수 없게 되는 것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98년 한해 동안 외국인 직접투자액 은 80팔억5천만달러(신고액기준)였는데 그것은 97년 연간의 69억7천만 달러보다 27%가 증가한 규모이 다. 그 내역은 기존주식 취득 또는 사업부문 인수 등 대규모 인수합병(M&A) 투자가 대부분이다.
정 부는 기업구조조정에 따라, 99년도 외국인 직접투자규모는 98년보다 70% 정도 대폭 늘어난 1백5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따라서 이러한 추세대로라면 99년 이후에는 한국경제가 더욱더 외자의존도를 높여나갈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이 의미하는 것은 국내 노동자·민중의 고혈을 짜내 는 방식의 강화, 구조화이다.
재벌'개혁'의 내용도 문제이다. 정리해고제 등 노동시장 유연화조치를 노동측이 양보하는 대신 자본 측은 이른바 '5대개혁'을 약속함으로써 노자가 고통을 분담하는 듯한 외양을 갖춘 듯 하지만, 기실 그 '5대 개혁'이라는 것은, 국내의 독점자본이 '자본'으로서 자신을 유지하고 재생산하기 위해서 해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과제들일 뿐이다. 자본의 지구화와 세계경제의 통합성 강화, 그리고 정부의 적극적인 '세계화' 혹은 '세계자본주의에의 적극적 편입' 정책은 국내에서도 초국적자본들과 경쟁관계에 처하게 된 국내 독점자본이 더 이상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유지될 수 없는 조건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스스로 그동안의 안일한 착취방식이 형성시켜온 기득권의 일부를 내놓으면서 '자본'으로서의 미래를 약속받고자 하는 현시기의 자본의 운동양식에 불과할 뿐이다. 자본이 자신의 논리에 따라 수행하는 '자본의 합리화'를 '개혁'이나 '고통'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자본' 뿐이다.
자본에게 '고통'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들이 외자와 경쟁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 그리고 예전처럼 정부가 더 이상 국내 독점자 본에 의존하지 않고 초국적 자본에 의존하게 되었다는 사실인 것이다. 즉 정부권력은 이제 국내 자본 을 외국자본보다 우대하거나 특혜금융 등을 제공하여 보호하지 않게 된 것이다(MAI는 그 점을 잘 보 여준다).
그것은 초국적자본에 의하여 주도된 자본의 세계화가 초래한 결과이다. 때문에 소위 재벌들 은 세계적인 초국적자본과 버금가는 정도의 재무구조와 시장장악력 등을 갖추지 못할 경우 초국적자 본들과의 경쟁에서 탈락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 때문에 스스로 '기업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안되 게 된 것이고, 재벌들이 성공적으로 구조조정을 마치게 되었을 때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노동자 와 민중을 수탈하는 구조를 갖추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정부는 소위 '재벌개혁'을 추진하면서 자본에 비해 주도권을 발휘하는 듯한 외양을 드러내고 있지만, MAI로 정초되고 있는 초국적자본의 움직임을 통해 볼 때, 각국 정부가 주권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은 극히 제한적이다. 정부는 초국적자본의 이윤추구활동에서 장애가 되는 것을 제거해주는 정 도의 일을 할 수 있을 뿐이며, 초국적자본의 이해에 배치되는 정책을 구사할 여지는 거의 없다. 그래 서 현재 정부가 국내 경제구조'개혁'에서 발휘되고 있는 주도성은 내국의 경제구조를 초국적자본의 이 해에 맞게 재편하는 데서 그 종말을 고할 수밖에 없는 매우 과도적이고 불안한 것에 다름 아니다.
가장 큰 문제는 '노동시장 유연화'조치를 강행추진하고 있는 것인데, 이는 잘 알다시피 지난 96년초 -97년말 노동자들이 총파업투쟁으로 강력히 저항했음에도 불구하고 저지되지 못할 만큼 세계적인 초 국적자본 및 국내 독점자본의 완강한 요구였다. 김영삼정권 당시에 노동자들의 저항에 밀려 '2년유예' 단서조항을 달아 도입하였던 정리해고제와 도입기도를 좌절당한 노동자파견제를, 김대중정권은 단서 조항 삭제 및 노동자파견제도입을 전격 수행하였다. '경제위기'라는 상황 속에서 IMF의 '이행조건'(결 국 초국적자본)이 이를 뒷받침했으며, '노사정위원회'를 설치하여 노동자·민중을 '신자유주의적 구조 조정' 앞에 세우고 노동자·민중 스스로의 결정인 것처럼 외양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 결과는 앞에 서 살펴보았듯이,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측의 강제적 동의하에 수 만명의 노동자가 실업상태에 처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실업 그 자체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는 이 '노 동시장 유연화' 문제를 고리로 하여, 국내외 자본의 이해를 보장하기 위해 국내 노사관계 그 자체를 완전히 자본의 이해에 종속적인 것으로 재편하고자 하는 데 있다. 요컨대 국내 노동자와 민중을 이른 바 '국가경쟁력 확보' 혹은 '경제회생'이라는 미명하에 옴짝달싹 못하게 만들면서 무소불위의 '자본의 독재'를 완성시켜나가는 것이 현재 경제정책의 골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위와 같은 점들은, 현재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이 노동자와 민중, 나아가 한 국이라는 주권국가에게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인지를 시사해준다. 무엇보다도, '경제회생'의 지표로 거 론되고 있는 GDP 성장률이 결국은 빈껍대기에 불과한 것일 수밖에 없다는 점, 더욱이 그것이 내국 노동자·민중의 고혈을 외국자본이라는 깔대기에 걸러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점, 그래서 그 성장의 과실이라는 것이 초국적자본의 수중에 고이게 된다는 점, 초국적자본의 손아귀에 쥐어진 내국 노동 자·민중의 고혈 중의 일부분은 초국적자본이 휘젖고 다니는 전세계 노동자·민중의 단결을 가로막고 전세계 노동자·민중의 고혈을 더 한층 뽑아내는 역할을 수행한다는 점(이를테면 조지 소로스 같은 아무도 손대지 못하는 국제적인 투기꾼이 몇몇 사회복지기관의 유력한 후원자라는 점이 대표적인 예 라고 하겠다) 등등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점들 때문에 우리는 몇몇 경제지표가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바뀌고 일시 호전된다고 해 서 경제위기 상황이 사라지고 장미빛 미래가 열린다거나 하는 안이한 전망을 국민의 절대다수인 노동 자·민중은 정부 및 자본과 전혀 공유할 수가 없는 상황이다.
국내적으로는 경제성장률이나 외환보유고 무역수지 그리고 주식시장 동향 등의 몇몇 지표들이 '호 전'기미를 보이고 있는 와중에서, 실업사태와 소득감소로 인해 개인들이 갚지 못하는 은행빛이 눈덩이 처럼 불어나면서 가계대출 연체율은 사상최고치(98년 11월말 현재 7대 시중은행 가계대출연체비율은 10.9% 2조1천461억원. 97년말의 두배)를 기록했다.
동시에 실업률도 11월말 현재 서울의 경우 7.8%로 나타나는 등 노동자·민중 생활과 관련한 공식통계치들이 계속 기록갱신을 하면서 악화양상을 보여주 고 있다. 98년도의 정부정책이 더욱 가속화되면서 올해도 그 여파가 일상생활의 곳곳에서 문제점들이 심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실업문제는 구조화·내재화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더욱이, 한국경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국내의 몇몇 지표가 아니라 세계경제의 상황이다. 연초부 터 터져나온 브라질의 통화금융위기가 국제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 브라질경제의 위기는 무엇보다 도 98년까지 그럭저럭 세계경제를 떠받쳐왔던 미국경제에 완연한 적신호로 간주되고 있다. 초국적자 본들, 특히 브라질에 투자하고 있는 2천여개를 넘는 미국계 자본들이 투자위기(축적위기)에 직면하면 서 태풍의 눈으로 떠올라 있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자본의 대안'은 앞에서 간략히 언급한 MAI(다국 간투자협정) 같은 것이다.
(1) '금융구조조정' 문제
주지하다시피 97년 하반기의 기업연쇄도산과 엄청난 부실채권 발생은 금융기관의 채권 회수로 이어 지면서 자금흐름을 급격히 경색시켰으며 이로 인해 흑자도산이 속출하는 등 심각한 지경에 이르게 되 었고, 주가폭락과 환율 급등의 와중에서, (93년부터 본격 개방된 자본시장을 통하여) 이윤 혹은 이자 를 노리고 들어왔던 외국자본들이 급속히 유출되면서 외환고갈사태가 심화되어 한국경제위기가 본격 화되었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IMF에 의존하여 신자유주의적인 대응에 나섰던 정부는, 98년 상반기까지 '외 자유치'에 주력했는데, 금융기관을 정상화시키는 것은, 그렇지 않을 경우 경제가 통째로 붕괴될 정도 의 화급을 다투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선 운전자금을 구하지 못해 도산 우려가 있는 비은행 금융기관 들을 정리하는 한편 제일·서울은행 등에 대해서는 재정을 동원하여 자금수혈을 하면서 도산을 막아 놓고, 4월부터 본격적으로 금융구조조정에 착수하였다.
먼저 98년 4월에 '금융·기업 구조개혁 촉진방안'을 내고, 같은 달에 '금융감독체계 일원화' '예금보 험기구 통합' 등의 조치가 취해졌으며, 5월에는 '금융구조조정을 위한 재원조달방안'이 확정되어 "5월 이전에 발행한 14조원의 채권 외에 50조원의 기금채권을 추가로 발행하고 재정에서 채권에 대한 이자 를 부담"7)하기로 결정되었다.
이러한 조치들 속에서 98년 8월까지 종합금융사(종금사) 16개, 증권사 4개, 투신사 2개, 생명보험사 4개, 상호신용금고 17개, 신용협동조합 36개 등을 포함하여 총 79개 금융기관에 대한 인가취소 혹은 영업정지 조치가 이루어졌고, 시중은행 5개가 6월에 퇴출명령을 받아 9월까지 다른 은행에 흡수합병 되었다. 이를 포함하여 98년 하반기에는 금융권 자체 통폐합이 가속화되어 대규모화8)되었다. 연말에 는 외자에 의한 은행소유도 제일은행9)을 통하여 가시화되었다. 한편 외환은행은 독일 코메르츠 은 행으로부터 98년 7월말에 2억7천3백만 달러를 출자받아 BIS(국제결제은행) 기준을 충족시키고, 연말에 다시 2억1천8백만달러를 추가출자 받기로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금융노동자는 대거 해고되었다. 퇴출된 5개 은행만 하더라도 경기은행 2,270명, 동 남은행 2,180명, 대동은행 1,860명, 동화은행 1,840명, 충청은행 1,450명 등 총 9,600명이 유동화되어 그 중 극히 일부만이 통합은행에 재고용되었을 뿐이다. 또한 조흥은행 등 '조건부 승인' 7개 은행의 34,000여명도 '구조조정'의 진행방식에 따라, 흡수합병으로 인한 정리해고, 외자의 경영합리화요구에 따 른 정리해고에 직면하였다. 이런 사태는, 이미 인가취소 혹은 영업정지된 종금사, 투신사, 생보사, 신용 금고, 신협 등 제2금융권의 경우 더욱 심각한 지경에 있다.
이와 같이 금융구조조정은 강제퇴출, 흡수합병, 외자유치를 축으로 하여 진행되고 있으며, 99년도에 는 서울은행 해외매각과 함께, 특히 제2금융권의 '2차 빅뱅'10)이 예고되어 있다. 제2금융권 구조조정 에 대한 정부의 입장은, 생명보험사의 경우 7개사(동아 두원 조선 태평양 한덕 한국 국민)에 대해 외 자유치를 통한 자체회생, 해외매각, 자체합병 등을 유도하되 여의치 않을 경우 몇 개사를 묶어서 제일 은행과 마찬가지로 해외매각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고, 25개 리스사와 2백여개의 신용금고에 대해서도 금감위 평가를 통해 합병 혹은 정리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98년도에 가장 먼저 구조조정 대상에 올랐던 종금사 중 나머지 부분들에 대해서도 6월말까지 다시한번 정리작업을 예고하고 있다.
이렇게 진행되고 있는 금융구조조정에서 가장 먼저 지적될 수 있는 것은 금융권의 외자의존도 심화 문제이다. 이와 같은 외자의존도 심화는,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이 외자에 의 해 좌우되게 되는 상황의 심화를 의미하기에 문제가 심각하다. '초국적기업의 권리 헌장'이라고 불리 우는 MAI를 구상하고 있는 초국적자본이 바야흐로 한국의 금융 지배를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11)
(2) '기업구조조정' 문제
정부·자본의 구획에서 '기업구조조정' 대상은 금융부문을 제외한 민간 사기업이다. 그러나 기업구 조조정은 금융, 공공과는 달리 구조조정의 일반성을 표현해주고 있다. 그것은, 사회 전체로 보아 사적 기업의 자금줄이 되는 금융과, 사적 기업의 광범한 보조물로서의 공공 등 특정분야의 구조조정의 뒷 받침을 받는 의미에서의 일반성, 그리고 포괄범위에서의 일반성이다. 또한 구조조정 문제에서 노동자 계급에게 일반적이고 직접적인 문제는 실업문제, 생존권 문제이다.
98년에 노동자계급에게는 '정리해고'가 직접적으로 다가온 현안문제였다. 정부와 자본이 대량실업사 태 발생을 전제로 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본격적으로 착수하기 전에 소위 '노동시장 유 연화' 조치에 먼저 착수해서 노동자계급의 저항을 가두어놓을 법·제도를 구비해 놓으려 했기 때문이 다. 그래놓고 분야별(금융, 기업, 공공)로 구조조정 세부계획 실행에 들어갔던 것이다. 요컨대, '정리해 고'는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에서 전제를 이루는 것이었는데, 반면 노동자에게는 생존권 박탈을 의미하는 것이었다.12) 그래서 노동자들의 정리해고에 대한 저항을 어떻게 무마시키 느냐 하는 문제가 98년도에 자본과 정권에게 핵심적인 과제였다고 할 수 있다.
98년도에 일어난 노동자계급의 정리해고 반대투쟁은 그런 점에서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 조정에 대한 철저한 거부를 본질로 하는 것임과 동시에 생존권을 지켜내고자 하는 노동자계급 대중의 기본요구투쟁이기도 했다. 정리해고 반대투쟁의 이 두 가지 측면은 이미 노동자들의 98년 투쟁과정에 서 "정리해고제 철폐"라는 슬로건으로 명백히 표현된 내용이었다.
반면,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반대투 쟁을 단지 생존권투쟁이라는 한측면에서 사고하면서 좁은 틀에 가두고, 그런 협소한 시각에서 정리해 고자수를 '줄이는' 것에 골몰한 나머지 종국에는 노동자계급의 정리해고를 통째로 인정해버리는 우를 범한 견해들(이를테면, '노사정위 전략적 참여론', 혹은 '정책참여론', 혹은 소위 '사회적 조합주의론', '산별 교섭주의', '구조조정 불가피론' 등등등)이 '구조조정 거부와 생존권 방어'를 본질로 하는 노동자 들의 정리해고 반대투쟁 발목을 끊임 없이 잡아채면서 결국에는 김대중정권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추진대열에 노동자계급을 묶어세우는 역할을 톡톡히 해왔고, 반대로 99년도에 노동자계급이 직면하고 있는 '구조조정 대응투쟁'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즉, 정부가 98년 과정을 거치면서 99년 에 더욱 세차게 '구조조정'을 완수하겠다고 나서게 만들었던 것이다. 그것은 정부가 99년도 경제정책 의 기본방향에서 '지금까지 마련된 구조개혁의 기본적 틀을 바탕으로 구조개혁을 내실화'(재정경제부, [99년도 경제정책방향],1998.12.29.)하겠다는 계획을 낼 수 있었던 중요한 배경요인 중 하나이다.
정부는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98년 2월부터 관련 법·제도를 정비했는데, 2월에 공정거래법을, 5월에 증권거래법을 개정하고, 4월에는 뮤추얼펀드 시장 개방,13) 기업구조조정기금 설치, 자산담보부채권 (ABS) 발행, 3조원규모의 토지공사채권 발행을 통한 기업보유 부동산 매각 촉진 방안 등 [금융·기업 구조개혁 촉진방안]을 내놓았다. 동시에 기업분할제도 도입, 기관투자가14)의 의결권 행사 허용, 지주 회사15) 허용 등을 통해 M&A를 촉진시키겠다는 계획도 발표하였다.
이는 '적대적 M&A'를 허용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고, 초국적자본 및 IMF에 의하여 요구된 자본자유화 조치의 일환이자 '외자유치'의 한 방책이기도 했다. 또 98년 5월까지의 금융기관 부실채권 실사작업을 통해서 정리대상 부실채권 규 모 및 정리방법16)을 내놓았다(재경부, 1998.5.20).
이런 과정을 거쳐 정부는 6월18일 5대재벌의 20개 계열사를 포함한 총 55개 기업에 대한 부실판 정·퇴출결정을 발표했고, 자체적인 워크아웃(기업재무구조 개선작업)과 빅딜17)을 촉구·독려·지원 하였다.
하반기에는 채권은행단에 의한 6-64대 기업에 대한 워크아웃 대상 선정, 5대 재벌에 대해서는 스스 로 워크아웃과 빅딜을 수행하여 "핵심역량의 강화를 통해 국제경쟁력을 재고"(재경부, [98 하반기 경 제정책 운용방향], 1998.8.27)해야 한다고 요구하였다. 12월 중순에 '5대그룹 재무구조 개선 약정'이 주 채권은행들과 5대재벌간(외환-현대, 한일-삼성, 상업-LG, 제일-SK, 제일-대우)에 체결18)되었다.
이 계획이 나오면서 '한국에 이제는 재벌이 없어진다'는 등의 해석도 나왔지만, 그 와중에서 5대 재 벌은 98년 동안 금융기관으로부터 대폭적으로 자금을 조달 받았다. 98년 11월말 현재까지 5대재벌의 총여신 규모는 161조원으로 97년 12월말에 비해 12.7%가 오히려 늘었다. 거기에서 문제는 지금까지 한국경제를 주물러왔던 독점재벌이 기업의 존재방식 여하에 상관 없이(즉 그것이 계열사를 선단식으 로 거느리고 있는 것이건, 상호지급보증금지 및 연결재무재표 등을 통하여 별도의 독립된 회사로 계 열사를 분리하건, 지금 그런 '형식'이 문제가 아니라 내용적으로 그들이 경제지배력을 더욱 공고히 유 지해 나가고자 하는 것에 있다.
정부와 자본은 공공연하게 '재무구조 개선 약정' 체결의 의미는 '국가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라고 바라본다. 그보다 더 문제는, 조금 복잡하고 긴 설명이 필요하지만, 저러한 주장들 속에는 노동자·민중, 즉 자본을 제외한 절대다수의 실재 국민이라는 개념이 들어가 있지 않 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하면, 저런 주장은 결국, 자본이 이익을 많이 올려야 국가경쟁력이 높아진다는 것이고 따라서 자본의 이윤추구를 위해 노동자·민중이 절대로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논리가 흐 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선단'식으로, '불투명 경영'을 해온 자본이 지금 이윤생산의 위기에 직면해 있으므로 정부가 지원을 하고 온 국민이 지원을 해서 살려내되 좀 더 강한 기업으로 가꾸어내야 한다 는 의미 이상이 되지 않는다. 더욱이 그것은 '세계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고 때문에 '국민', 그 절 대 다수인 노동자·민중은 외자의 지배까지 받아서 '국가경쟁력'논리에 복종해야 하는 이상한 지경에 처해 있다.
위에서 살펴본 것과 같은 과정 속에서 98년 동안 전개된 '기업구조조정'에서는, 크게 보아 세 가지 정도가 드러나고 있다.
첫째, 뮤추얼 펀드 시장 개방을 포함하여 자본시장의 개방과 함께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외자유치') 를 위한 적대적 M&A 허용 등은 기업구조조정에서 핵심내용을 이루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98년도 상반기 기업결합동향 분석], 1998.9.3)에 따르면, 98년 상반기 중 외국기업 또는 100% 외국인 자회사 에 의한 기업결합은 총 51건으로 97년 상반기에 비해 10배나 늘어났고 그에 따라 도입된 외자도 3조4 천억원(24억9500만 달러)으로 97년 상반기의 40 팔억원에 비해 무려 5백배나 늘어났다. 외국인의 M&A 전면 허용, 외국인의 부동산 취득 허용 등이 병행되면서 이후에 외자는 더욱 급속히 유입될 전망이고, 이에 수반하여 노자관계의 새로운 차원이 조성될 것으로 볼 수 있다.19)
둘째, 워크아웃과 빅딜을 포함하여 국내외 자본이 한데 엉켜서 자본의 집중이 강화되고 있다. 일례 로 공정거래위원회(상동)에 따르면, 98년 상반기 중 기업결합 동향을 보면, 총 219건으로 97년 상반기 의 210건과 비슷한 건수이나, 97년과 달리 "기업결합 유형별로 볼 때 전년동기에 비해 수평·수직결합 의 비중은 크게 증가(34%에서 54%로)하고 혼합결합의 비중은 크게 감소(66%에서 46%로)"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기업결합 수단별로 볼 때, 주식취득 비중이 대폭 감소(41%에서 16%로)하고 영업양수 와 합병의 비중이 크게 증가(21%에서 46%로)"했는데, 계열사간 결합의 경우 영업양수, 합병, 임원겸 임 비중이 크게 늘고 주식취득의 비중이 감소한 반면, 비계열사간 결합의 경우 영업양수 비중은 늘었 지만 주식취득과 합병의 비중은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본의 집중에 따른 거대자본의 형성은 '경 쟁력' 및 '약육강식·적자생존' 논리에 의한 자본간 유혈적 경쟁이 외자까지 포함하여 진행될 조건을 조성하고 있으며, 대·소자본간 격차가 현저해지고, 대자본의 지배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볼 수 있으며, 그 와중에서 등터지는 것은 '노동시장 유연화'에 의해 이리저리 거리에서 일자리를 찾아야만 하는 노동자와 민중일 것이다.
셋째로, '기업구조조정' 방식에서 특히 M&A '활성화'를 위해 정부는 "고용조정(정리해고 같은 - 인 용자)이 실제적으로 가능한 환경을 조성하고(특히 노조운동을 무력화하고 - 인용자), 독과점은 방지하 되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기업결합 심사기준을 개선"(한국개발연구원, [금융·기업의 구 조조정과 한국산업의 미래상], 1998.5.16)해 왔다. 그리고 99년도에도 기업퇴출의 '원활화'와 함께 인수 합병(M&A) 문제가 이러한 차원에서 가속화될 것이 명확해지고 있다. 이미 금융구조조정 과정에서 소 위 P&A(자산인수) 방식을 적용하면서 고용승계의무를 면제시켰던 것이 기업구조조정 과정에 재도입 될 가능성이 높다.
한국개발연구원(상동)은 아예 "법정관리 기업의 인수·합병시 고용승계의무를 명시 적으로 폐지하여 기업의 매각가능성을 극대화"함으로써 기업퇴출 부분을 보완해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실업증가를 회피하려 하기보다는 이를 구조조정의 경제비용을 받아들이고 신속한 구조조정을 통해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이 덧붙여졌다. 동시에 그들은, 정리해고 요건을 "단순화"시켜 기업구조조정을 촉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요컨대 '60일전 사전통고의무'를 완화하라는 것이다.
98년도 2월에 노동조합운동이 '정리해고제' 등 이른바 '노동시장 유연화' 조치를 언론의 입에 발린 칭송을 들으면서 "대타협"한 대가는 실로 크고도 무겁게 다가오고 있다. 동일한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 기 위해서는 98년도를 냉정하게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3. 노동자계급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위와 같은 와중에서, 노동자계급의 대응은 어디에서 출발되어야 할 것인가? 말할 것도 없이 가장 기본은 '생존권'일 것이다.
현재의 세계적인 경제공황의 시대에 큰 틀에서 생각해볼 때, 그 지점은 우선 '대량실업사태'에 대한 대응이 될 것이며, 대응의 큰 축은 '생활임금 보장과 노동시간 단축'에 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현시기의 한국을 포함한 세계 각국의 '심각한' 대량실업문제는, 과학기술혁명에 의한 급속한 생 산력 발전이 자본주의에 내재한 구조적 요인, 즉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과잉축적의 심화)를 통 해 노동자를 대량으로 과잉화하여 축출하고 있기 때문임과 동시에, 세계적으로 산업순환의 '공황기'에 접어들어 있기 때문에 발생하고 있다. 이 두 요인의 결합으로 현시기 대량실업 사태가 빚어지고 있는 것이다.
(2) 그런데, 실업은 그것이 어떠한 형태를 띠고 있든지 간에 자본주의적 생산이 이루어지는 곳이면 어디서건 있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에 고유한 것이며, '상대적 과잉인구'의 형 태로 그 생산양식에 내재하는 구조적인 것이다. "각 노동자는 부분적으로 취업하고 있거나 또는 전혀 취업하고 있지 않는 기간에는 상대적 과잉인구에 속한다." 즉 실업자·반실업자는 모두 상대적 과잉 인구이다.
(3) 생산력의 발전은 본래, 노동자 1인당의 노동을 경감시켜 노동의 양을 줄여줌으로써 '자유시간'을 확대시킬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을 제공한다. 요컨대 노동생산성의 증대는 노동에 의하여 움직여지는 생산수단의 양에 비해 노동량을 감소시키는 작용을 한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생산에서 생산력의 발전 은 노동자 1인당 노동을 줄여주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을 뿐 아니라, 노동자의 일부를 끊임없이 노동 으로부터 축출함으로써 상대적 과잉인구를 점점더 큰 규모로 생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써 생산 력의 발전이 이루어짐에 따라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는 더욱더 많은 노동을 하게 되고 축출되는 노동 자는 노동시장에서 배제되어 생활수단을 확보할 기회마저 잃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상대적 과잉인구 문제(실업·고용 문제)의 본질은, 본래적으로는 당연히 노동의 절약을 의미하는 생산력의 발전이, 노 동자 1인당의 노동을 경감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를 통하여 노동력 수의 절 약, 가변자본의 절약으로서 나타나는 데에 있다.
(4) 생산력 발전과 상대적 과잉인구의 누진적 양산의 문제는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좀 더 명확 하게 나타나고 있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노동자들은,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지금과 같은 상황을 이미 1970년대 후반기부터 경험해왔다. 거기에서 국가와 자본측은 강약의 차이가 있을지언정 대체로 '신보수주의·신자유주의'적 전략으로 20년 가까이 대응해왔다. 소위 케인즈주의적 계급타협의 산물들 로서의 사회보장과 사회복지지출을 축소삭감하면서, 주지하다시피 '작은정부, 탈규제, 민영화' 등을 주 요 담론으로 하여, 자본의 이윤추구운동을 제약하는 모든 요소들에 대해 이른바 '시장원리'를 앞세워 공격해왔다.
그 결과는 거대한 초국적 자본의 형성과 그들의 운동을 필두로 한 자본의 지구화 (globalization of capital)와 세계시장의 통합성 강화, 따라서 각국 자본주의의 상호의존성 증대, 동시 에 자본간 경쟁의 격화 따라서 세계자본주의의 불안정성 심화이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오늘날 세계자 본주의의 현실은 불안정성의 극을 달리고 있다.
이와 같이 선진자본주의 각국들에서 1970년대 말부터 자본주의적 축적 위기에 대한 대응전략으로 채택하고 '지구적으로' 확산된 '신자유주의'전략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중반기를 거치면서 그동안 증 폭된 위기를 폭발시키고 있으며, 특히 실업문제는 각국에서 더욱 더 심각해지고 있다. 미국이 실업률 5% 이하라고 선전되고 있지만, 미국 역시 실질적인 실업률은 유럽지역의 약 15%씩에 달하는 실업률 에 버금가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차이는 단지, 실업자가 실업수당을 지급받는 형태 로 존재하느냐 아니면 실업수당에도 못미치는 '취업'이라는 형태로 존재하느냐의 차이일 뿐이다. 더욱 이 그마저도 최소한의 실업률이라고 할 수 있고, 실제 최저생계비 이하의 소득수준으로 살아가는 인 구를 포함하면 실업률은 당연히 그보다 훨씬 높을 것이다. 즉 20년 가까이 세계적으로 자본측이 추구 해온 신자유주의 전략이 파산지경에 빠져 있는 것이다.
(5) 현재의 세계적 위기를 불러온 것이 자본의 신자유주의전략인데 바로 그 신자유주의적 방식을 통하여 한국경제위기를 '단기간'에 끝내겠다는 것이 정부·자본측의 위기처방이다. 경제 '회생'이 정부 당국의 정책에 의해 일국적으로 해결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김대중정권이 크게 기대고 있는 IMF나 미국 혹은 일본 혹은 유럽 나라들이 모두 자신들이 쳐 놓은 그물에 걸린 형국으로 '신자유주의' 전략 을 통하여 결국은 공황을 준비해왔다고 볼 수 있는데, 정부·자본은 바로 그러한 신자유주의적 기조 에 입각하여 노동자에게 '노동시장의 유연성'과 임금삭감을 강요하고 대량해고가 전제된 '구조조정'을 하고 있으며, 노동자·민중에게 내핍을 요구하면서 소위 '재벌개혁' 이라는 이름 하에 독점자본의 '경 쟁력'과 '효율성제고'를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그간 선진자본주의 각국에서 20여년에 걸쳐 해왔던 프로그램들이었고, 그 결과가 현재의 세계적 위기라는 사실은, 역으로 김대중정권과 자본측의 전략이 노동자·민중의 생존권은 물론이거니와, 그 누구(우리가 걱정할 일도 아니겠지만 현실에서 우 선 노동을 장악하고 있기에 무관하지는 않은 존재인 자본가까지도)의 미래도 보장될 수 없을 것임이 보다 명백해지고 있다.
(6) 한편 자본측은 '기업의 잉여인원이 30%에 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마치 그 인원들 때문에 경 제위기가 오기라도 한 것처럼, 그리고 그 인원을 정리해고할 수 있다면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식으 로 정리해고 조건이 완화되어야 함을 강변해왔다. 그들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현재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의 30% 정도를 정리해고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노동생산력의 발전에 의하여 경감되었어야 할 노동자 1인당 노동이 경감되지 않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에 다름 없다. 따 라서 이는 지금당장 노동시간을 30% 줄일 수 있는 생산력 수준에 있음을 그들 스스로 자인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본측은 추호도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으며, 오히려 노동시간을 단축하려면 임금삭 감이 전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7) 자본측은 우리나라 기업의 잉여인원이 30%라고 떠벌임으로써 노동자들의 '일자리 불안감'을 더 욱 증폭시켜 고용되어 있는 노동자의 1인당 노동을 더욱 강화시키고, 고용노동자와 실업자 사이를 더 욱더 이간질하고, 노동자의 결코 녹녹치 않은(자본측이 가장 인상 깊었을 최근의 경험은 1996년말 -1997년초의 총파업투쟁이었을 것이다) 투쟁력을 분산시켜 파괴하고, 그럼으로써 '변동하는 자본의 가 치증식욕을 위하여 언제나 착취할 수 있게 준비되어 있는 인간재료'(= 산업예비군 = 상대적 과잉인구 = 실업·반실업자)를 '사회적으로 안전하게' 그리고 '풍부하게' 확보하고자 의도하고 있는 것이다.
1997년 3월에 입법화된 '변형노동시간제'는 그것을 위한 법적 포석이다. 경기호순환기였다면, 아니면 적어도 공황상태로의 급격한 돌입만 아니었다면 노동자들의 투쟁 때문에 자본측이 2년 유예 '당하기' 는 했지만 법제화된 정리해고제와 함께, 그리고 이번 98년 2월에 도입된 노동자 파견제와 함께 변형 노동시간제를 통하여, 자본측은 자신들의 '독재' 계획을 '순조롭게' 추진했을 것이다.
단, 노동자의 조직적 투쟁만 없다면. 그랬을 것이 뻔한 것들을 경제위기(결국은 자본의 위기지만)와 IMF관리체제 도래 에 의해 다만 겉모양만 조금 다르게 해서 그대로, 또 일부는 더욱 급속하고 폭력적으로 추진하고 있 다. '국가경쟁력 강화' 이데올로기는 '나라가 위태롭다'는 식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8) 사태의 본질이 이러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노동자계급의 대응도 그에 상응하는 수준에서 모색 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그 점에서 당연하지만, 노동자계급의 대응'전략'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생산력의 발전에 의하여 물적조건이 마련된 '노동자 1인당 노동의 경감' 즉 현재의 노동강도 및 생산성 수준에 서 실질임금 삭감 없는 노동시간의 단축이 구조적인 상대적 과잉인구문제를 해소할 만큼 획기적으로 명실상부하게 이루어지는 데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이 갖는 의의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로, 이 요구투쟁은 당면한 '정리해고' 위협을 실질적으로 무력화시킴으로써, 지금 진행되고 있는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에 따른 더 이상의 추가실업사태를 막아낼 수 있다.
둘째로,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 요구투쟁은, 실업문제(상대적 과잉인구 문제)의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해결 전망을 담고 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내용이 포함된다. 하나는 구조적 실업의 해 소, 다른 하나는 불완전취업자 해소를 통해 고용불안정성을 해소하는 것이다.
전산업에 걸쳐 상대적 과잉인구가 확장경제활동인구의 최소한 43%에 달하므로 1998년 7월 현재 전 산업 주당 평균노동시간인 48.9시간은 적어도 약 27.87시간 이하로 단축되어야 상대적 과잉인구를 최 소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상대적 과잉인구를 최소화시키는 작업은, 지난한 투쟁을 통하여 확보되어야 할 장기 적인 과제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험난한 투쟁이 없으면 불가능하다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탈 리아 자본가단체 '콘핀두스트리아'의 총재가, 최근 이탈리아에서의 주35시간 노동제 투쟁을 겨냥하여 "주당 노동시간을 40시간에서 35시간으로 바꾸기 위해선 80∼1백년이 걸릴 것"이라고 선언했다는 것 은 자본측이 얼마나 '임금삭감 없는 노동시간 단축'에 대해 반대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가르쳐준다.
셋째로, 나아가 만일 노동강도와 노동생산성이 불변임에도 노동시간이 단축된다면 그것은 지금까지 타인의 노동으로 살아온 특수한 계층이 사회적 노동에 더 많이 참가하게 되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요컨대, 진정한 의미에서 노동시간단축은 노동생산성과 노동강도가 불변인 상태에서 일어나야 한다. 그것은 모든 계급·계층으로 노동을 보편화시킨다. 즉 이 경우, 노동시간 단축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잉여노동시간의 단축이다. 잉여노동시간의 단축은 노동자의 노동이 생산한 잉여가치(즉 부불노동)로 살아가는 특정한 사회계급의 수를 줄어들게 할 것이며, 따라서 그만큼 전 사회적으로는 일하는 사람 이 많아지는 대신에 1인당 일하는 시간은 줄어들게 되므로 그 사회에서는 각 '개인의 자유로운 정신 적·사회적 활동을 위해서 쓸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노동의 보편화'가 의미하는 내용이며, 그것은 노동시간 단축의 '절대 한계' 즉 사회적으로 얼마만큼까지 노동시간을 단 축할 수 있는지를 규정한다. '노동의 보편화'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노동시간 단축의 목표이자 의의라 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러한 요구는 (1) 단위사업장 차원에서만 요구해서는 획득불가능한 전계급적 요구라는 점, (2) 현시기 자본의 요구와 정면으로 대치된다는 점, (3) 노동운동 내부 조건 등에 의하여 현시기에 적 극적으로 투쟁이 조직되고 있지 못하다.
위 (1) 및 (2)와 관련해서는 앞에서 모두 서술된 것이므로, (3)에 대해서만 간략히 말하면 다음과 같 다. 고용불안이 심해지고 대량의 정리해고까지 예고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 '임금삭감 없는 노동 시간 단축' 요구는 노동조합의 총연맹 차원은 물론 단위사업장 노조들에게도 '정당한 것'으로서 일부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측에 '씨알도 안먹히기 때문' '현실성이 없음' 등등의 이유 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그것은 결국 자본측과 노동자계급의 너무나도 격차 큰 입장 차이를 반영하는 것일 따름이다. 혹은 '조합원의 동력을 끌어내기가 너무 힘든 싸움'이라는 '현실'도 토로되고 있다.
그 러나 단사 차원에서 해볼 건 다 해보았지만 고용불안과 실직위협에 별다른 대응력을 갖지 못하고 있 는 것도 '현실'이다. 단위사업장 차원에서 현시기에 고용문제는 물론이고 임금 등 모든 노동조건에 대 하여 별로 대응할 수 있는 여지가 없다는 사실은, 오히려 더욱더 '실질적인 임금의 삭감 없는 노동시 간의 단축' 투쟁이 전국적·전계급적 차원에서 조직되어야만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역으로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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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주>
1) 이글은 졸고, ['구조조정'과 노동자계급의 대응방향](1)(2)({노동전선} 99년 1월호 및 2월호 <노 동과 경제>란 수록) 및 ["노동시간단축과 생활임금 보장"투쟁의 현재적 의의](한국노동이론정책연구 소 창립3주년 기념심포지움, 1998.9.)를 토대로 수정한 것이다.
2) '과잉축적'이란 자본의 유기적 구성(불변자본과 가변자본의 구성비)이 높아져서 자본이 자기 재 생산을 위해 확보해야 할 이윤율 수준을 시현하지 못하는 상태로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의 근본을 이룬다.
3) '신자유주의·신보수주의' 프로그램이란 '탈규제' '민영화' '사회복지지출축소' '조직된 노동자계급 세력 무력화' 등을 골간으로 하여 각국 혹은 세계적 수준에서 전개되고 있는 자본의 '위기극복'전략이 다.
4) 이를테면 미국의 신용평가회사인 스탠더스 앤드 푸어스(S&P)는 지난 1월4일(미국시간) 한국의 신용전망을 상향조정했는데, "한국경제가 지난해 위기 수습에서 괄목할만한 진전을 이룬 것으로 평가 된 데 따른 것이라고 밝혔다. …… 그러나 S&P는 한국의 신용등급이 높아지려면 ▲재벌 구조조정 ▲ 금융개혁 ▲재정적자 개선 등에서 보다 구체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동아일보, 1999.1.5.) 또 IMF의 피셔 부총재도 최근 몇 개월간 한국에서 이뤄진 진전에 "만족하고 있다"고 했다.(동아일보, 1999.1.3.)
5) 핵심적으로는 정리해고제 2년 유예 조항 삭제, 노동자파견제 도입이다.
6) 그것은 '기업투명성 제고, 상호채무금지, 재무구조개선, 핵심기업 설정과 중소기업 협력, 지배주주 와 경영자의 책임성 확립' 등이다.
7) 재정경제부, ['98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방향], 1998.8.27.
8) 대표적으로는 퇴출된 대동은행을 흡수하고 장기신용은행과 통합한 국민은행, 상업은행과 한일은 행의 합병이다.
9) 제일은행은 미국의 '뉴브리지-GE캐피털' 컨소시엄에 주식지분 51%를 매각하기로 결정되어 바야 흐로 외자의 국내은행 소유가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는 서울은행에 대해서도 동일한 방식의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데, 제일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GE캐피털' 컨소시엄은, 미국의 대형 투자 금융사인 텍사스퍼시픽그룹의 자회사인 뉴브리지와 제너럴일렉트릭(GE)의 금융 자회사인 GE캐피털서 비스로 구성된 것으로, 뉴브리지의 경우 해외에서의 적대적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가치가 올라가면 지 분을 되팔아 투자수익을 챙기고 철수하는 행태를 보이는 전형적인 투기자본으로 알려져 있다.
10) 동아일보, 1999.1.2.
11) 초국적자본의 움직임은, 1995년에 성립한 WTO(세계무역기구)의 이면에서 전개된 다국간투자협 정(MAI) 비밀교섭을 통해서 그 가공할 만한 내용을 알 수 있다. MAI는 1995년부터 OECD(경제협력 개발기구) 참가국들만이 비밀리에 교섭해왔으며, 세계적인 반대투쟁과 각국 이해의 충돌로 인해 그 체 결이 97년 5월, 98년 5월로 연기되면서 98년 10월부터는 WTO로 장을 옮겨 교섭이 재개될 예정으로 있다. WTO 사무국장은 이 협정을 '통합된 세계경제의 헌법을 정한 것'이라고 했지만, MAI는, 외국으 로부터의 모든 투자에 대하여 국경개념이 들어간 모든 규제를 철폐할 것을 강요하고, 세계적인 규모 로 이윤을 추구하는 초국적기업에게 국가보다도 우월한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지구상 어느 나라에서건 마음대로 이윤을 탐할 자유를 보증하는 것이다.
MAI에는 '초국적 자본의 권리헌장' '위험하고 철면피 한 권력강탈' '민주주의의 심장을 뚫는 단검' '전대미문의 더 없이 위험한 통상조약' 등등의 별명이 붙 어 있다. 이 비밀교섭협정 초안은 1996년에야 일반에 알려지게 되었는데, MAI는 모든 수준의 정부(중 앙, 지방)에게 외국으로부터의 투자를 제한하거나 냉대하는 법령을 폐지할 것을 강제한다. 그때 투자 란, '투자가에 의해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소유 혹은 관리되는 모든 재산'을 포함하는 것으로 정의 되며, 이하 항목들에 대한 투자를 모두 포함한다.
△국영 또는 민영의 공장, 광산, 호텔, 은행, 병원, 대 학 등 △주식 △채권 △계약에 기초하는 권리(건설, 경영, 제조) △지적재산권 △인허가, 기타 법률 및 계약에 의하여 주어지는 권리 △재산 및 재산권 - 대차권, 저당권 등. 국영 혹은 공영을 포함하여 해 당되지 않는 분야가 없다. 수도, 전력, 도로, 공황 등이 100% 외국자본의 소유가 될 수 있고, 100% 외 자은행이 설립될 수 있으며, 환경파괴 우려가 있는 제품에 대한 정부의 규제는 협정위반이 되어 그 제조원 기업에 배상금을 지불해야 하고, 파업에 대해서도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또 노동자들은 전 세계의 노동자들과 일자리를 위해 경합해야 하게 되므로 노동조건은 최악의 수준으로 저하될 것이다. MAI 위반혐의가 있다고 간주할 경우 투자자는 언제든지 정부를 직접 제소할 수 있게 되어 있으며, 협정에 정부가 일단 조인하면 5년 동안은 철회할 수 없고, 철회통고시 진행중인 투자에 대해서는 15 년 동안 협정이 효력을 유지하므로, 실제 효력은 20년간이나 계속된다.
12) 그래서 노동자 입장에서 보면 사실 금융, 기업, 공공 등의 구분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금융분 야건 공공분야건 노동자에게는 사업장의 구획일 뿐이고, 생존권을 파괴하는 구조조정의 여파라는 것 은 어차피 동일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13) 뮤추얼 펀드(Mutual fund)란, '추가형 투자신탁'(=오픈형 투신. open-end investment trust = 미 리 일정액을 정하고 거기에 도달할 때까지 수시로 수익증권을 발행하여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서 이를 처음에 마련한 신탁재산에 추가해 가면서, 당초의 설정분과 추가설정분을 하나의 신탁재산으로 서 운용하는 것이다. 유니트(unit)형과 대비되는 것으로서, 유니트형은 예컨대 1구좌당 1만원으로 모집 하고, 투자자가 매각할 때만 매각시점의 시가에 따르며, 모을 때마다 매회 독립된 신탁재산으로 운용 하는데, 오픈형은 매각과 매입시에 모두 그때의 시가에 따른다)의 미국에서의 통칭이다.
뮤추얼 펀드 에는 주식회사형의 것과 트러스트형의 것이 있어서, 전자의 경우에는 투자신탁이 주식회사 조직으로 경영되어 회사가 발행하는 주식을 투자자가 매입하는 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고, 후자의 것은 개개의 투자자와 경영자간에 신탁계약이 체결되어 경영자 자신이 주탁자가 되고 수탁자가 발행하는 수익증권 을 투자자가 매입하는 방식으로 되어 있다({경제신어사전}, 매일경제신문사 참조).
뮤추얼 펀드 시장 을 개방한다는 것은, 단기자금을 운용해서 투자수익을 올리려는 회사(이를테면 투자신탁회사)를 개방 하는 의미와 외국인 투자자에게 단기자금시장에의 참여를 개방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정부는 뮤추 얼 펀드 시장을 개방하면서 뮤추얼 투자 수익자들에게 금융소득과세 면제 혜택을 주었다가 최근에 다 른 금리소득자들과의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면서 금융소득과세 대상에 포함시키기로 한 바 있다.
14) '기관투자자'란, "투자가로부터 자금을 모아 그것을 일괄하여 오직 투자수익만을 목적으로 주식 등의 금융자산으로 운용대행하는 운용전문기관"({金融辭典}, 東洋經濟新報社), 혹은 "기관투자가(보험 회사, 투자회사, 연금기금)는 저축의 중요한 집금인(컬렉터)이며 금융시장에의 자금의 공급자" ({Institutional Investers Statistical Year Book 1997}, OECD), 혹은 "유가증권에의 투자로부터 발생하 는 수익을 주요한 수익원으로 하는 법인 형태의 투자자"({경제신어사전}, 매일경제신문사), 혹은 "투자 신탁, 연금기금, 특정금전신탁, 펀드 트러스트 등 증권투자를 주된 업무로 하는 법인을 말하고, 광의로 해석하여 개인 이외의 투자자 모두를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經濟辭典}, 有斐閣) 등으로 다양하게 정 의되어 있다.
15) '지주회사(持株會社. holding company)'란, 지배회사 혹은 모회사라고도 하는데, 그 산하에 있는 자회사의 주식을 전부 또는 지배가능 한도까지 매수하고 이를 자사의 주식으로 대위(代位)시켜 기업 합동에 의하지 않고도 기업을 지배하는 회사를 말한다. 지주회사에는 '순수지주회사'와 '혼합지주회사 (=사업지주회사)'가 있는데, 전자는 타기업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그 기업을 지배·관리하는 것을 유 일한 업무로 하는 것이고, 후자는 직접 어떤 사업을 하면서 타기업의 주식을 보유함으로써 지배관리 하는 것을 말한다({경제신어사전}, 매일경제신문사).
16) 그 내용은, '요주의 여신까지 포함한 불건전 여신'을 총 118조원 규모(그 중 98년3월말 현재 전 금융기관의 부실채권 규모는 68조원)로 추정하고 정리대상 부실채권을 약 100조원으로 예상해서 그 중 50조원은 금융기관 손실 처리, 25조원은 담보매각을 통해 금융기관이 회수하고, 나머지 25조원은 정부가 성업공사 채권발행을 통해 매입정리한다는 것이다.
17) '워크아웃과 빅딜'에 대해서는, 졸고, [소위 '기업구조조정'에 대하여 - '워크아웃'과 '빅딜']({노 동전선} 1998년10월호, pp.70-74) 참조.
18) 12월15일 확정된 5대재벌 구조조정 계획은 2000년까지 각 재벌들이 부채비율을 200% 이하로 낮추는 것, 상호지급보증 해소가 핵심이다. 이를 위해 재벌들은 45조 4251억원의 자본을 확충하고 296 억8671억달러의 외자를 조달하겠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