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중국선교(3) (11/1/2003년)(3/4/22)
오전 성경공부 후에 오늘은 오후 성경공부를 쉬고 모두 목욕을 단체로 가는데 달러로 하면 25센트인데 샤워장이라고 한다. 걸어서 왕복 1시간 논두렁길을 걸어오고 가면 먼지는 도로 다 뒤집어쓰겠지만 모두 좋아서 가는데 그곳도 중국사람들은 별로 안 다닌다고 한다.
우리는 차로 시내에 있는 한국 사람이 하는 목욕탕에 갔는데 아주 얇은 수건을 한 장 빌려주며 목욕비가 2불 50센트인데 사람이 너무나 없어서 어떻게 운영이 될까가 걱정이 될 지경이었다. 그곳에 있는 손님도 한국여인으로 조선족 여자아이를 안내자로 데리고 왔다. 저녁은 돼지고기로 바베큐를 해서 먹는데 마당의 여러 곳에 벽돌을 쌓고 둘러앉아 숯불을 피워서 구워 먹는데 모두 축제 분위기로 손님이 오시면 그렇게 한 번씩 잔치를 한다고 한다.
고기 굽는 냄새와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조용한 돌산에 진동할 때 나는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시 42:1)라는 말씀을 떠올리며 이곳 사슴목장에서 사슴같이 순진하고 영육이 가난하고 갈급한, 초라하지만 때 묻지 않은 저 청년들을 위해 이곳에 신학교를 세우시고, 일꾼들을 기르시는 오묘한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였다.
저녁이 늦어서 한 시간만 공부하고 밤에 저들 중 일부 찬양팀은 내일 예배를 위해 시내 교회로 간다고 떠났다. 저들은 돌아가며 식사 당번을 했고 화장실 청소며 마당을 깨끗이 쓸고 부지런히 일하며 땅콩, 옥수수, 고구마, 감자 농사를 지어 수북이 쌓아놓았고 밭에는 아직 무와 여러 가지 채소가 있었다.
내일은 이곳 70만 중국인이 사는 곳에 유일하게 당에서 인정하는 삼자교회에 가서 예배드리기로 되어 있다. 미국 목사님이 설교하면 잡아가는 무서운 중국이라고 조심하라고 했는데 설레는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다.
11/2(주일)
아침 식사 후 7시, 미니밴에 가득 타고 1시간쯤 걸려 70만 명이 살고 있는 이 도시에 당에서 인정한 유일한, 제일 크다는 삼자교회에 도착하니 밖에 성도들이 타고 온 자전거가 잔뜩 줄지어 서 있고 큰 교회당은 사람들이 가득 차서 강대상 앞과 밖에는 낚시할 때 쓰는 조그만 접이 의자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먼저 중국 목사님이 간단히 예배를 인도하고 다음에는 우리 목사님이 소개를 받아 올라가서 말씀을 전하는데 그때에는 ‘설교’라고 하지 않고 ‘교통’이라고 한다고 한다. 그러나 소개할 때도 미국에서 목사님이 여러분을 사랑해서 오셨다고 했고 설교는 뜨거웠고 사람들의 아멘 소리도 우렁차고 뜨거웠다.
이 나라가 세계의 중심이 되는 나라라고 해서 중국(中國)이라고 하였는데, 과연 지금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냐고 하니 아니라고 대답했다. 미국이 참 좋은 주님을 친구 삼아 세계의 중심이 되었는데 중국이 주님을 진정한 친구로 모셔서 세계의 중심이 되라고 하니 모두 좋아했다. 이곳에서 오전에 모여 예배드리고 각 처소로 돌아가서 오후에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이 교회 목사님이 그곳 지교회에 빚이 5만 원(위안)이 있어서 허덕이는데 선교사 목사님이 목요일에 3만 원을 보내주겠다고 하시다. 설교를 시켜준 비싼 대가인지도 모르겠지만 교회당 안과 밖에 구름같이 가득 모인 성도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할 수가 있어서 너무 감사했다.
모두 돌아간 후 목사님과 남은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시내의 아파트에 가서 학생들이 서둘러 밥을 먹고 오후에 다른 지역에 있는 삼자교회의 지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데 강대상도 강사 의자도 하나 없고 모두 낚시 의자에 촘촘히 앉아서 집안과 밖에 사람들로 가득 찼다. 초라하고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이곳에서는 신학생들이 나와 찬양과 율동으로 뜨겁게 인도한 후에 목사님이 나와서 교통이 아닌 설교를 하는데 성전 앞에 앉아 고침 받은 앉은뱅이에 대한 설교를 뜨겁고 간절하게 하며 모두 통성 기도를 시키고 일일이 안수하니 눈물을 흘리고 사모하며 안수를 받는다.
끝난 후 대야에 물을 떠와서 손을 씻고 포도와 귤을 대접하는데 오전에 예배드렸던 교회의 사모님이 와서 내 손을 꼭 잡으며 고맙다고 공손히 치사를 한다.
50불을 손에 쥐어드렸는데 자기의 아들이 학비가 없어서 고민하고 있었는데 학비가 해결되었다고 하니 너무나 좋아했다고 하며 앞으로도 꼭 또 오라고 하는 것이다. 이곳 400명 모이는 교회의 목사님 사례비가 한 달에 50달러라고 한다. 부목사는 30달러로 사모님들이 직장에 다니지 않으면 살 수가 없다고 한다. 모두가 초라했고 검고 우중충한 색깔의 옷에 하나같이 바지를 입고 있었다.
나만 치마에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어서 눈에 뜨이는 것이 불편했다. 다음에 올 땐 바지만 입고 오리라고 마음먹었다. 러시아에서는 모스크바는 물론 시골 모즈독에 갔을 때에도 여자들은 모두 치마를 입고 있어서 스타킹을 선물로 사다 준 적이 있었다.
주택가 교회에서 이렇게 큰 소리로 예배를 드려도 당에서 모른 척하고 있는 것이 참으로 기적이다. 오전에 예배드린 교회에서는 한 달에 한 번 이곳 선교사 목사님이 설교하시도록 되어있다고 한다. 오후 지교회에서는 사방에서 초청하지만 다 갈 수가 없어 신학생을 보낸다고 한다.
오늘 통역한 학생은 한국말은 잘 못하는데 설교만큼은 너무나 정확하게 성령에 이끌려 강사의 뜻을 전하는데 중국의 조용기 목사님이 될 꿈을 갖고 있다고 한다. 나이도 20살에 장래가 촉망되는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이곳 신학교는 한국말 설교는 중국어로, 중국말 설교는 한국어로 통역을 하기 때문에 모두 이중 언어자로 훈련을 받고 있었다.
2022년 미국에서 편안하게 사는 나는 그 당시가 너무도 생생하고 지금 중국에서 교회를 부수고 박해받고 있는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있는 것을 아는지라 그들을 눈동자처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기를 새벽에 간절히 눈물로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