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나쁜 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해★
몇년 전 나는 "운을 읽는 변호사" 라는 책을 쓴 일본의 변호사 니시나카. 쓰토무 선생을 인터뷰한 적이 있다.
50년간 1만 명의 의뢰인의 삶을 분석한 이 '운의 현자' 는 "운을 하늘의 사랑과 귀여움을 받는 것" 이라고 정의했다.
나의 운은 항상 남의 운과 연결되어 있기에,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살면 예외 없이 좋은 운이 들어 온다는 것.
어미 제비가 새끼 제비 입에 먹이를 넣어줄 때, 어떻게 먹은 놈, 안 먹은 놈을 구별해서 주느냐예요.
우리 집 처마 밑의 제비집을 보면 새끼들이 다 똑같이 입을 쫙쫙 벌리는데, 어미는 무슨 기준으로 새끼들에게 벌레를 나눠줘요?'
선생님은 버럭 소리를 질렀어. '지금 장난해? 선생님을 놀려?' 나는 그게 정말로 궁급했다네, 40년 동안 풀지 못한 수수께끼였지.
그런데 40년 후에 우연히 신문의 과학 킬갈럼을 보고 그 의문이 풀렸어. 새들을 관잘해 보니, 안 먹은 놈, 배고픈 놈이 가장 입을
크게 벌린다는거야. 어미는 입 크기를 보고 배식 순서를 안다는 거지.
제비뿐만 아니라 모든 새가 다 그렇대. 아! 40년 만에 무릎을 쳤어. 환희지! 그 얇의 기쁨을 선생님이 가르처주지 않았네.
학교가 가르처주지 않았어."
- 아직도 '모르는 게 많다는 즐거움
"물음표와 느낌표의 거리가 40년이나 걷린 셈이군요.
선생님의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는 지적 환희와 외로움이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었고요."
고백건대 생각하며 산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야.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사는 사회에서 얼마나 불편한지 모르네.
그러나 그게 나의 운명이었던 거지. 사람들은 말끝마다 '가타부타 따질 거 없다'고 해.
질문을 하면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거야?' 공격 신호로 오해를 한다고, 나는 상대를 비방하려는 게 아니라 납득이 안 가면
질문을 하는 본능을 따라갔어. 그런데 질문을 받으면, 다들 자기를 무시하고 놀린다고 착각하는 거야.
질문 없는 사회에서 자라는 게 그렇게 무서운 거라네. 그런 문화속에서 나는 사랑받지 못했네.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어"
-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받지 못했다... 지금도 그게 그렇게 사무치세요?"
"허허. '저 사람은 : 남들이 그냥 패스하는 것을 패싱 안하는구나. 하나하나 생각을 하는구나.
그러다 결국 남이 모르는 것을 발견했구나. 인류는 저런 사람들에 의해서 발전하고, 창조되고, 새로운 세계가 열리는구나'
이런 눈빛을 기대했네만....."
"질문 없는 사회에서 질문자로 시는 건 형벌이지요." "알아도 모른 체하고 몰라도 아는 체하며 사는 게 습관이 된 사회는,
삐걱거리는 바퀴를 감당 못 해. 튕겨내고말지. 나뿐이 아니네. 글을 쓰는 사람들, 한 치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고통을
겪게 돼 있어. 요즘엔 더하지 않나? 생각이 자랄 틈을 안 주잖아. 인터넷에 물어보면 다 나와. 이름 몰라도 사진 찍어서 올리면
다 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 머리로 생각한다네"
" 시간이 걸려도요?"
그럼, 모르는 시간을 음미하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