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고, 말은 나면 제주도로 보내라!
우리 격언에 이런 말이 있죠?
그래야 성공할 수 있고, 제대로 대접받을
수 있고, ….
여기서 성공의 조건에 짐승으로서 "말"이 있고, "제주도"가 있다. 이 "말·제주도"가 한반도인지, 아닌지를 가름해보자.
(1) 아침에 가라말[加羅馬]·가라월라말[加羅月羅馬]·간자짐말[看者卜馬]·월다짐말[ 卜馬]의 네 편자가 떨어진 것을 갈아
박았다.[난중일기. 1597년 6월 10일]
이 글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충무공 리순신이 쓴『난중일기』에 나오는 말이며,
여기에 "가라말[加羅馬]·가라월라말[加羅月羅馬]·간자짐말[看者卜馬]·월다짐말[ 卜馬]"이 나온다.
충무공은 말을 잘 다루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여기에 "가라말·가라월라말·간자짐말·월다짐말"은 무슨 뜻을 가진 말일까?
(2) 우리가 그냥 조랑말이라고 생각하는
몽골 말들을 그들은 엄청나게 다양한 종류로 분류한다. 가라말, 가라 오류말, 간자말, 고라말, 공골말, 구렁말, 담가라말, 별박이 오류말,
부루말, 샤르가말, 워라말, 절따 간자말, 절따말, 오류말, 총이말 등. … 몽골을 이해하는데 아주 유용한 내용들을 만나게 된다. 한참 읽다보면
내가 말을 타고 몽골 초원을 여행하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다.[차드라발 로도이담바 지음, 유원수 역,『맑은 타미르강』1, 2 (서울:
민음사, 2007)][http://blog.daum.net/cordblood/11159518]
여기에 말의 종류가 무려
15개가 나온다. 이 인용문에서 내가 고친 것은 "조류말"이라고 한 것을 "오류말"고 고쳤는데, 그 한자말은 검다는 말의 까마귀 "烏"(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 나오는 말들은 무슨 뜻일까? 위의 (1)과 (2)로써는 알 수 없다.
그런데 "가라말"은 "온몸의 털빛이
검은 말[黑馬]"을 가리킨다. 한자로 "철려(鐵驪)"라고 하는데, "鐵"자가 "검다"는 뜻이 있다. 그러면 "가라"는 "검다"는 뜻이며, 이것은
아랄해 주변에 있었던 "카라-키타이[西遼(서료)]"의 "카라"와 같고, 북위 60도 선상의 시베리아 북쪽 바다를 "카라해(Kara Sea)"라는
"Kara"와 같은 말이다. 물론 시르 다르여 남쪽 유역의 "카라쿰 사막(Karakum Des.)"이나,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 서쪽의
"카라코럼(Karakoram)"의 "Kara"와 같다. 이 말은 사실 한반도 북쪽, 동경 120도 이동쪽의 말은 아닌 것이다.
충무공
리순신이 다루었던 말이 그런 "가라말"이 있었다. 특이한 것은 현재 제주도 사람들 가운데서 이 "가라말"을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제주도에는 이런 많은 종류의 말-문화가 있지 않았다는 말과 같다. 이 가라말 가운데서 갈기와 꼬리의 빛깔에 따라 그 이름을 약간 달리하는데,
달가라·표가라·청가라가 그것이다. 달가라는 온몸의 털빛이 검지만, 옅어서 진회색을 띠고, 갈기와 꼬리가 검은 말이며, 표가라는 갈기와 꼬리가 흰
말이며, 청가라는 오류말이라고도 하는데 온몸이 짙은 밤색이며, 갈기와 꼬리가 검은 말이다.
그리고 "고라말"은 그냥 "고라"라고도
하는데, "온몸은 털빛이 마른 흙[Khaki]처럼 누른데, 등어리만 검은 말"을 가리킨다. 특히 이 "고라"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싯담어/범어]에서는 "gaura"라 하여 "whitish, yellowish, reddish"[백색, 황색, 적색의 아름다운]의
뜻이며, 때에 따라서는 그냥 "백색"이나, "황색"이라고도 쓰기도 한다.
그리고 "부루말"은 "온몸의 털빛이 흰 말[白馬]"을
가리키는데, "눈처럼 온몸이 하얀 말"을 "센말"이라고 한다. 한글표준어에서는 아마 "센말"을 제외시켜버렸다.
이 "부루말"에서 말의
부위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는 것을 이름도 약간 다르게 불리는데, "황부루·적부루·청부루"가 그것이다. 황부루는 누른빛의 털이 섞여있는 말이고,
적부루는 붉은빛의 털이 섞여있는 말이고, 청부루는 푸른빛의 털이 섞여있는 말이다.
그리고 "간자말"은 "이마와 뺨이 흰 말"이며, 비슷한
말로 "천간자"가 있는데, 이것은 온몸의 털빛이 푸른데, 얼굴과 이마만 흰 말이다.
그리고 "구렁말"은 온몸의 털빛이 적갈색인 말이다.
위의 (2)에서도 나오지는 않았지만, 우리『한글 사전』에는 이보다 더 많이 나온다.
(3) 가리온 = 가리온말: 온몸의
털은 흰데, 갈기와 네 발굽이 검은 말.
공고라 = 공골말: 온몸의 털빛은 누른데, 주둥이가 검은 말.
담가라: 털빛이 완전히
검지 않고 거무스럼한 말.
돈점총이 = 돈점박이총이: 갈기의 털빛은 검고, 온몸의 털빛이 진회색인데 돈짝만한 크기의 흰 점이 박힌 말.
별박이: 이마에 흰 점이 박힌 말.
부절따 = 부절따말: 온몸의 털빛은 붉은데, 갈기가 검은 말.
절따 = 절따말: 온몸의
털빛이 벽돌색처럼 연하게 붉은 말.
표절따 = 驃절따: 온몸의 털빛은 흰데 갈기와 꼬리가 흰 말.
총이말 = 청총이 = 청총마:
온몸의 털빛은 흰데, 갈기와 꼬리가 푸른 말.
돗총이 = 철총이 = 털총이: 몸에 검푸른 무늬가 장기판처럼 박힌 말.
은총이:
불알이 흰 말.
오총이: 검고 흰 얼룩말. 또는 흰털이 섞인 거무스레한 말.
오추마(烏 馬): 온몸이 검푸른 털인데 흰털이 섞인
말.
월다말: 온몸의 털빛이 검은데, 갈기가 흰 말.
워라말: 털빛이 얼룩얼룩하며, 주둥이 가장자리가 검은 말.
쌍창워라:
엉덩이만 흰빛을 띤 가라말.
여기서 어떤 사료에는 "절라"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赤多馬"라고 하는 것으로 보아 정확히
"절따"가 맞지만, "월다"와 "워라"의 관계는 아직 밝히지 못했는데, 일단 그 설명은 다르게 되어있다.
말의 종류가 무려 30가지나
된다는 것은 한반도에서 이렇게도 많은 말들이 존재했을 수 있지만, 그 말-문화가 참으로 다양하다.
한반도 제주도엔 요즘에 와서는 외국에서
수입하여 키우고 있지만, 옛날엔 겨우 "조랑말"을 가지고 이렇게 많은 이름을 붙여서 사용하였다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매우 떨어진다.
"가라"는 한자로 "加羅"라고 음차했을지라도, 본디 "카라(kara)"이며, 그 뜻이 "검다"인데, 이 말은 중앙아시아를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서 사는 지역의 언어이다. 대개 몽고말이라고 한다. "부루"는 "희다"는 뜻이며, 그 사용지역은 마찬가지다.
다만 "고라"는
백/황/적색의 세 가지의 빛깔을 뜻하는데, 산스크리트[싯담어/범어]에서 찾을 수 있으므로, 역시 중앙아시아 지역을 벗어날 수 없다.
물론
한반도에 말이 없었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다양한 말에 관한 언어의 문화는 그만큼 조선의 생활에 차지한 비중이 컸음을 말해준다. 조랑말로써
몽골에 바쳤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런 말이 싸움에서 쓰일 리도 없겠지만.
또한 말은 초원지대를 떠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