룽포체와의 면담-2013.10.31 오후 2시30분~4시
장소: 태국 치앙센(Chiang Saen) 메콩강변에 있는 더리버 부띠끄 리조트(DeRiver Boutique Resort/이 호텔 주인 보살이 큰스님의 신도이다)
태국 통역자: 테라분(Teeraboon)
한국 통역자: 원담 스님
참석자: 원담스님, 아잔 탠(왓 풋카오 절 주지스님), 뚜밋스님(숲 속 수행자, 나이43세, 법랍 24년), 일광스님,
테라분, 문아보살, 와루니(Warunee, 태국불교도)보살
룽포체: 여기 아름다운 정원이 있습니다. 그 정원의 아름다움에 현혹된 사람은 그 곳으로 자꾸 자꾸 오게 됩니다. 정원의 아름다움에 집착하는 마음이 그 장소를 떠나지 못하게 합니다. 그런 사람은 그 정원을 끝없이 맴돌게 됩니다. 이것이 곧 윤회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과 같지 않습니까? 이 세상에 정말 변하지 않는 아름다움이 있습니까? 세상에서 아름답다고 하는 장소는 서서히 무너지고 변해서 마침내 사라지고 맙니다. 문아보살은 아직도 아름다운 경치에 마음을 빼앗깁니까?
문아보살: 오늘 아침 새벽안개 어린 메콩강을 보았습니다. 매우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그리고 그 강을 따라 한없이 올라가면 무엇이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그 강을 거슬러 올라 한 없이 가보고 싶었습니다.
룽포체: 저 강물의 끝에서 무언가 아름다운 것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느낌 말이죠? 저 강물의 끝에는 무슨 특별한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이 우주에 끝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이 아름다움에 이끌려 계속 그 쪽으로 간다면 날은 어두워질 테고 당신은 어둠 속을 헤매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실상은 무상, 고, 무아입니다. 세상의 아름다운 것에 집착하지 마세요. 그것이 당신을 이 세상 속으로 다시 불러들여 계속 태어나게 만들고 윤회를 하게 만듭니다.
일광스님의 수행에 대해서 계속 말하겠습니다. 게으름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네 가지가 필요합니다. 첫째, 인욕바라밀(khanti parami). 어려운 것, 하기 싫은 마음, 뭔가 마음에 저항이 생기는 것을 견디어 내고 이겨내야 합니다. 둘째, 정진바라밀(viriya parami). 지속적으로 수행을 밀고나가야 합니다. 수행에 조금 열을 내야합니다. 셋째, 싸짜바라밀(sacca parami). 자기가 수행하기로 약속한 것은 스스로 지켜야 합니다. 자기진실성이겠죠. 성실성이라 해도 되겠습니다. 넷째, 실라바라밀(sila parami). 지계를 말하죠. 5계를 지키는 사람은 어디를 가든 다르마(Dharma/法)의 보호를 받습니다.
일광스님은 수행하다가 조금 안락함을 느끼거나 환희를 경험하게 되면 그만 느슨해져서 각성이 희미해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 즉시 의식적으로 들이쉬고 내쉬면서 크게 호흡을 하세요. 그런 식으로 호흡명상을 하면 두뇌로 산소 공급이 원활히 되어 뇌 건강에도 좋습니다. 머리가 아플 때 의식적으로 호흡을 알아차리면 아픔이 가십니다. 수행할 때 앉아있는 자세만을 고수하지 마세요. 몸을 움직이세요. 걷기명상을 많이 하세요. 알아차리면서 몸을 천천히 움직이세요. 이렇게 컵을 잡고 뜨거움이나 차가움을 느끼세요. 들어 올릴 때 들어 올리는 동작을 알아차리세요. 앉아있거나 일어서거나, 눕거나, 걸어 다니거나 모든 동작을 알아차리세요. 행주좌와 네 가지 동작을 알아차리세요. 알아차림은 매우 주도면밀하게 수행하면 좋습니다. 나는 라오스에서 미천하게 태어나 부모님이 누구인지도 모릅니다. 어릴 적에 쓰레기 더미에 버려져 살았습니다. 라오스에서 중국까지 간 적이 있는데 그 즈음 소림사에 들린 적이 있었는데 그때 보니 소림사 스님들이 양동이에 물을 철렁철렁 넘치게 담아서 한 방울도 쏟아지지 않게끔 조심조심 걷는 수행을 하는 것을 본 적 있습니다. 그처럼 알아차림이 면밀해야 돼요.
일광스님: 큰스님, 저는 어둠에 대한 공포가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죠?
룽포체: 그것은 당신의 카르마(karma/業)때문입니다. 빛이 어둠을 부숴버리듯, 밝게 빛나는 마음이 두려움을 사라지게 합니다. 마음에 빛이 생겨나도록 수행하세요. 두려움이 일어날 때 즉시 알아차립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봅니다. 두려운 마음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게 되면 거기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두려움’이란 것이 항상 있는 것이 아니고'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임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죠. 이해하게 되면 벗어납니다. 이해가 밝음이고 곧 지혜입니다. 지혜의 빛은 어둠을 꽤 뚫어 사라지게 합니다. 지혜가 당신을 두려움에서 자유롭게 하지요.
어떤 것이 일어나든 일어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지켜보세요. 그렇게 수행해가면 모든 현상이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알면 그것과 자신을 동일시 하지 않게 됩니다.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자기 것'이라 할 수 없기 때문이죠. 저 혼자 저절로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을 붙잡고 ‘자기 것’이라 할 수 없다는 말이죠. 자기 것이 아니니 그냥 일어났다 사라지게 내버려두는 것입니다.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죠. 자기 몸조차 집착하지 않는데 두려워 할 일이 무어 있겠어요.
일어나는 즉시 알아차리게 되면 그 알아차림은 ‘경계가 없는 앎’이 됩니다. 경계가 없는 무한한 앎을 야나(yana)라고 하죠. 수레라는 말이죠. 수레를 타면 저 언덕, 고통이 사라진 경지로 데려다 줍니다. 그래서 일상에 ‘알아차림’ 수행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죠.
무엇을 볼 때 다만 볼 뿐. 무엇을 들을 때 다만 들을 뿐. 무엇을 맛볼 때 다만 맛볼 뿐. 무엇을 감촉할 때 다만 감촉할 뿐. 그것이 무집착이며, 알아차림이고, 해탈입니다.
아잔탠: 여기에 대해 아잔차(Ajhan Cha/태국의 숲속 전통을 지켜오신 위대한 고승, 많은 수행자들에게 영감을 불러이으켰다. 서양인 제자가 많았다. 아잔 브람스님도 그분의 제자이다. 지금은 열반에 드셨다)스님이 재미있는 예화를 들은 것을 책에서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한 사나이가 매일 같은 길을 지나는데 그 길 건너편에 모르는 어떤 한 사람이 자기가 지나갈 때마다 큰소리로 무언가 자꾸 욕설을 퍼붓는 것입니다. 그 욕설을 듣고 지나가자니 화가 났습니다. 그런 일이 매일 되풀이 되자 지나가는 사람은 화가 쌓여갔습니다. 쌓인 화가 언젠가는 폭발하고 말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차에 한 사람이 다가와 ‘저 사람은 미친 사람입니다. 정신이 돌아서 매일 저렇게 지나가는 사람을 보고 큰소리로 욕을 퍼붓는 것입니다. 그러니 그것에 신경 쓰지 마세요.’ 이 말을 듣자마자 그동안 쌓였던 화가 저절로 스르르 풀어졌습니다. 욕설을 퍼붓는 사람의 정체를 몰랐을 때는 정말로 화가 났지만, 그 사람이 미쳤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 그 화에서 자유로워진 것이죠. 욕을 하는 사람의 정체를 몰랐을 때를 ‘무명’이라 합니다. 욕을 하는 이유와 원인을 알게 되었을 때 이것을 ‘이해’라고 합니다. 이해함으로써 화에서 풀려났습니다. 이해가 지혜입니다. 지혜는 밝음입니다. 밝은 지혜가 당신을 두려움이라는 어둠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일광스님: 오늘처럼 아잔탠과 뚜밋스님, 원담스님 그리고 우리가 만나 법담을 나누는 것으로 보아 과거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 것은 분명한데 큰스님이 보시기에 어떤 관계이며 어떤 인연을 지었습니까?
룽포체: 과거에도 꼭 이렇게 이런 법의 모임을 가졌었지. 과거에 심은 대로 지금 되풀이 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인 관계와 인연은 말씀하시지 않는다)
일광스님: 저는 올 한 해 해인사 보현암(비구니 선원)의 살림을 도맡아 보는 도감 소임을 살고 있습니다. 소임을 잘 보기 위해서는 자비심이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룽포체: 대중에는 여러 가지 다른 성향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에 항상 자비심을 가지고 스님들을 대해야 합니다. 자비심을 계발하여 쌓아야 합니다. 자비심이 쌓이면 활력이 생기죠. 활력이 있으면 자비심을 쓰기가 쉬워집니다. 그런데 어떤 계기로 한 번 화를 내게 되면 쌓였던 자비심이 다 날아가 버립니다. 주의해야 할 점이죠.
아잔탠: 저는 왓 푹카오 절의 주지 소임을 살고 있습니다. 주지는 찾아오는 신도들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사는 스님들의 마음도 역시 기쁘게 해드려야죠. 변덕을 부리지 않고 항상 여일한 자비심을 써야죠.
장소를 옮겨 다시 큰스님의 처소(꾸띠/kuti)로 함께 오다.
오후 5시~7시 사이에 법문답이 이어지다.
룽포체: 수행을 하는 데는 반드시 스승이 필요합니다. 혼자 수행하다가 굉장하게 여겨지는 경지를 체험하거나 열광하게 만드는 경계를 보게 되면, 마음이 허황해지거나 방만해져서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이때 스승이 있으면 바른 길로 들어설 수 있게 도와줍니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들을 때 우리의 마음은 대상을 향해 쏘아진 레이저 광선과 같습니다. 레이저가 맞혀진 곳에서 무언가가 튀어나옵니다. 그와 같이 마음이 대상을 향해 비추이면 그 반사작용으로 탐진치 삼독심이 튀어나옵니다. 무엇을 보고 들을 때, 맛보고 촉감을 느낄 때 한번 반조해 보세요. 무엇이 튀어나옵니까? 탐심, 질투심, 시기심, 미움...이런 감정이 튀어나옵니까? 그것이 모두 탐진치 삼독심 아닙니까? 이렇게 항상 삼독심이 튀어나오니까 늘 같은 패턴, 같은 작용과 반작용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똑 같은 방식의 삶이 계속 되풀이 되는 것이죠. 이것이 한 생도 아니고 다음 생, 또 다음 생, 끝없이 반복되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죠. 이것을 기계에 비유해봅시다. 반복되는 삶은 기계와 같습니다. 그냥 자동적으로 굴러가니까 기계 같은 삶이라고 할 수 있죠. 기계가 잘 돌아가기 위해서는 기름을 쳐야 되는데, 그 기름이란 게 바로 탐진치 삼독심입니다. 우리는 기계 같은 삶이 계속 잘 돌아가게끔 끊임없이 탐진치라는 기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러니 기계라는 삶이 잘 돌아갑니다. 한 기계가 수명이 다하도록 끝까지 쓰이다가 망가지면 끝나야 되는데, 우리는 다시 기계를 만들어냅니다. 그리고 또 기계 같은 삶을 반복합니다. 이게 윤회입니다. 지긋지긋 하지 않으십니까? 얼마나 오랫동안 기계처럼 살아야 직성이 풀리겠습니까? 기계에 기름을 치지 않기 위해서는 내면을 들여다보아 탐진치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것이 알아차림의 수행이죠. 알아차림의 수행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행입니다. 모든 성인들이 다 권하는 바입니다.
문아보살: 한국 스님들이 저를 보고 전생에 스님이었다는 소리를 많이 합니다. 그렇다면 제가 전생에 무슨 불선업을 지었길래 스님이 아닌 여자로 태어나 세상에 묶이게 되었을까요?
대승불교에서는 발원을 하라고 하는데 태국불교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나요?
룽포체: 임종 때 마지막 일념이 매우 중요합니다. 마지막 숨을 내쉴 때 어떤 사람이나 어떤 장소를 생각하면 즉시 그곳으로 재생하게 됩니다. 이것이 당신이 지금의 당신으로 태어나게 된 연유입니다. 그리고 내생에 스님이 되고 싶다는 원을 간절하고 깊게 세우세요. 이생에서 만들 수 있는 만큼 시간을 내어 수행을 계속하세요. 조금씩 수행을 쌓아서 진보를 이루세요.
일광스님: 큰스님, 서가에 책들이 꽂혀있는데 스님께서 다 보셨어요?
룽포체: 내가 처음에는 삼장(經律論 三藏)을 보기 시작했지. 그러다가 쩨타시카(cetasika/마음부수)라는 대목에 와서 더 이상의 경전 공부하기를 그만 두고 실제수행으로 뛰어들었어요. 그리고는 책을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실제 수행체험으로 자연스레 불교교리를 통달하게 되었습니다.
룽포체가 일광스님이 작년에 미국에 간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일광스님이 물었다.
일광스님: 어떻게 제가 미국 간 것을 알고 계셨어요? 제가 미국 간 것을 알려드린 적도 없고 소식을 드린 적도 없는데.
룽포체: 수행할 때 일광스님이 어떻게 지내나 하고 한 생각을 일으키면 저절로 알아지게 되는 것이지.
밤이 늦었어요. 너무 늦으면 저녁도 못 먹고 목욕할 시간도 없어지겠죠. 자, 내일 아침 다시 만나요.
룽포체가 대중을 위해 축원하면서 법문을 끝내다.
사두 사두 사두!
문아 보살, 원담스님, 큰스님,아잔탠, 뚜밋 스님, 일광스님 & 앞에 앉은 테라분
첫댓글 롱포체라는분이. 노스님이셔요.?
예, 태국 노선사 스님입니다. 룽포체는 태국말 입니다. '룽포'라는 말은 큰스님이란 뜻이고, '체'는 채식주의자를 뜻합니다. 그래서 노스님의 제자들은 애칭으로 '룽포체'라고 합니다. 티벳불교에서 환생자로 쓰이는 '린포체'와는 다른 말입니다.
저는. 일광스님한테 들었으때는. 초야에 묻힌. 노사라 생각했는데 교학도
출증하시네요 . 잘 읽고 있습니다.
또. 담마톡을. 하신다면. 여쭈어 봐주세요
우리가. 임종할때. 재생연결식 .오온이. 다음 몸으로. 통과하는. interval 시간들을
그분의. 견해는 어찌생각하시는지요...?
물론. 경전에. 자세히. 붓다께서. 설명하셨지만요. ..부탁드립니다
다음 기회에 물어봐야겠어요. 이미 작별인사를 드리고 방콕으로 돌아왔어요. 내일 귀국을 앞두고 방콕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 있지요.
녜. 스님 행복한. 시간 갖으세요
천축으로 법을 구하려 가신 스님이 기다려집니다 스님, 여기는 모두 본래의 자리에서 잘~ 있습니다 ^ ^
사두사두사두
롱포체스님의 한마디 한마디에서 깊은 지혜와 평정심을 느꼈습니다. 수행에 대해 강한 동기를 불러일으키는 말씀들입니다. 글로나마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_()_
사두. 사두. 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