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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그리스 경제위기가 발생한 지 3년을 넘어서는 가운데 위기는 스페인, 포르투갈, 이탈리아로 연착륙하고 프랑스도 위협하고 있다. 유럽 정부들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긴축을 펴며 위기에 대응했지만 오히려 이는 또다른 경기침체로 이어지고 있다. 남유럽 민중은 정부들의 수탈에 맞서는 한편 부상한 좌파는 정치적 대안들을 제시하지만 민중의 위기는 지속되고 있다.
이 같은 남유럽 민중의 위기에 대해 박석삼(진보전략회의)은 그리스를 중심으로 경제위기와 투쟁을 둘러싼 쟁점을 분석하고 세계적으로 경제위기가 확산되는 가운데 좌파의 과제를 살폈다. 진보전략 창간기획호 9월호에 실린 그의 글을 세 번에 나눠 연재한다.
(1) 그리스 부채위기의 원인과 본질
(2) 그리스 긴축정책과 민중의 고통 및 투쟁
(3) 그리스 총선과 좌파의 대응 및 쟁점
그리스 민중의 삶에 대하여 트로이카를 앞세운 세계자본가계급의 공격은 단지 빌려준 돈의 회수나 변제의 보장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다. IMF가 강요한 긴축정책에는 정부지출을 줄이기 위한 복지의 축소나 공공부문의 임금삭감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전체 자본가계급에게 수혜를 주는 해고수당과 최저임금의 삭감 그리고 단체교섭권의 무력화까지 들어있다.18)
[출처: http://www.manager-magazin.de 화면 캡처] |
이처럼 부채위기를 빙자하여 강행되는 트로이카의 공격은 독점자본의 도구인 EU와 유로존의 유지를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자본가계급의 착취율과 이윤율의 회복을 위해 노동자계급의 몫을 빼앗고 후퇴시키기 위해 진행되는 유럽을 비롯한 전 세계 자본가계급의 철면피한 공격의 일환이기도 하다.
자본은 부채의 완전한 회수만이 아니라 동물적 삶도 감수하고 묵종하는 규율 잡히고 순종적인 노동자계급을 만들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공격의 본질과 논리는 OECD 보고서에 잘 드러나 있다.
“그리스는 지속가능한 재정과 경쟁력과 건강하고 굳건한 장기적 성장을 위하여 야심찬 구조조정 정책에 착수하였으며, 2011년 7월 21일 발표된 IMF 패키지는 그리스 부채에 대한 합리적인 이자율이 보장돼야 하며19), 투자와 성장을 증진시킬 방안이 포함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 노동시장 개혁은 고용을 증가시키고 국제 경쟁력을 회복시킬 것이다. 경쟁에 대한 장벽을 없애는 것은 내외의 투자를 촉진할 것이다. 그리스 당국은 그들이 기본적인 경제적 구조조정을 수행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시장이 확신하도록 개혁과정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 재정적자 감소 노력을 지속하고, 부채부담과 부채비용을 줄이기 위해 공공재산을 개발하고 사유화해야 하며, 이러한 노력은 성장을 자극하고 경쟁력을 향상시킬 것이다. 복지와 소득을 증가시킬 노동시장과 상품시장의 구조개혁을 강화해야 한다.”20)
결국 임금수준과 노동환경 및 복지 등을 강력하게 억압하고 수탈하는 것과 공공재를 자본가계급에게 팔아넘기는 것이21) 수출경쟁력을 강화하고 성장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이처럼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논리 하에 강요된 트로이카의 구조조정 정책의 본질에 대하여 독일 사민당SPD 에베르트 재단FES의 국제정책보고서의 다음과 같은 지적은 핵심을 찌른다.
“IMF의 표준적인 처방은 화폐가치 절하에 의해 지탱되는 수출지향성장을 강조한다. 하지만 이것은 유로존에서는 사용할 수 있는 방안이 아니다. 그래서 이러한 처방의 역사적인 실패와 그것이 낳은 경기후퇴 그리고 사회정치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내적인 가치절하와 디플레이션이라는 무자비한 정책으로 그리스가 경쟁력과 수출을 촉진하도록 강요하여 왔다. 이러한 가치하락 정책의 최선봉은 직접임금의 삭감과 노동시장제도의 구조조정을 포함하여 임금을 억압하고 노동시장을 탈규제하고 유연화하는 것에 의한 노동의 평가절하이다.”22)
이러한 논리 하에 트로이카의 구제금융이 가혹한 구조조정을 조건으로 시행됐다.
실업률은 2010년 11월 13.9%에서 2011년 11월 20.9%로 치솟았고(피고용자는 390만 명, 실업자는 103만 명, 비경제활동인구는 442만 명), 청년실업률은 48%, 여성 실업률은 24.5%에 달했다. 이러한 실업의 증가는 공공부문에서 해고된 15만 명을 포함한 중소회사의 도산에 기인한다.
임금은 2009년 이후 25%가 삭감되었는데, 공공부문과 공공관련 부문의 임금은 각각 15%와 30%씩 삭감되었다. 2012년 2월 트로이카가 강요하여 시행된 최저임금 삭감은 22%(청년노동자는 32%)이고, 공사 부문의 연금은 10~12%가 삭감되었고, 사회복지지출은 50%가 감소할 예정이고, 부가세는 23%로 치솟았다. Eurostat에 따르면 사회빈곤층은 28%(303만 명)에 달한다.23)
그리스 민중의 투쟁
이처럼 국제금융(투기)자본을 포함한 독점자본가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트로이카가 강요한 가혹한 구조조정은 그리스 민중이 감내할 수 있는 선을 넘었고, 이에 대한 저항이 2010년 5월부터 노동자계급과 민중들의 총파업과 점거투쟁으로 분출했다.
그리스의 경제위기가 신자유주의 세계화 축적체제의 모순의 폭발이듯이, 그리스 민중의 투쟁은 세계 자본가계급의 신자유주의적 공격의 최전방에서 벌어지고 있는 투쟁이다.
현 시기 세계경제 위기 시에 벌어지고 있는 가장 첨예한 반신자유주의 투쟁인 그리스 민중의 투쟁은 크게 2010년 5월 투쟁과 2011년 5월과 6월의 점거투쟁, 6월과 10월의 총파업과 10월 28일 거부투쟁 그리고 2012년 투쟁과 선거의 고비가 있고, 투쟁의 뿌리에 2008년 12월 항쟁이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는 이들 투쟁의 주된 계기와 동력 및 양상 등을 살펴본다.
2008년 12월 항쟁
2008년 12월 6일 아테네의 변두리에서 15세의 고등학생이었던 알렉산드로스 그리고로포울로스(Alexandros Grigoropoulos)가 순찰하던 경찰관과 사소한 말다툼 끝에 경찰의 총에 맞고 사망했다.
이 사건은 즉시 전파되었고 고등학생을 포함한 대학생과 시민들(도시하층민)이 연말까지 전국적인 항쟁을 계속했다. 경찰의 강력한 진압에 맞서 관공서, 은행, 상점 등의 방화가 계속됐고 수많은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했다. 항쟁의 양상은 폭동에 가까웠다.24) 전국적인 항쟁은 연말이 지나 동력이 소진했다.
이 사건은 단지 무도한 경찰에 대한 분노만이 아니라 지난 20여 년간 지속되어온 신자유주의의 공격으로 광범위한 청년실업 등 미래에 대한 절망과 교원평가와 일제고사 등을 비롯하여 경쟁만을 강요하는 사회에 대한 학생들의 반란이기도 했다. 이점은 2008년 촛불항쟁의 첫날 집회에서 청소년들이 절반을 차지한 한국과도 유사하다.
신자유주의 공격은 단지 노동자계급만을 공격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의 노동자계급까지 공격하여 그들의 삶을 질식시키고 있는 것이고, 이런 배경을 이해하여야만 전국의 고등학생들이 반란이라고 부를 만큼 치열한 항쟁을 계속한 사정을 이해할 수 있다.25)
2010년 5월 이전의 투쟁
2010년 2월 24일 총파업에는 민간부문의 70-100%, 공공부문의 20-50%가 참여했다. 이날 특징은 이민자 시민권에 관한 새로운 법률과 관련해 좌파의 동원도 있었지만 이주노동자들이 눈에 띄게 많이 참여했다는 것과, 상층부의 평화시위 호소에도 불구하고 대단히 전투적이었다는 점이다. 경찰과의 충돌, 은행과 상점의 습격 등은 2008년 12월 투쟁과 비슷했다.
3월 3일 정부가 국가의 구조조정을 위한 첫 번째 조치를 발표하자 3월 5일 양대 노총인 ADEDY(공공부문노조 총연맹)과 GSEE(민간부문노조연합)는 3시간 작업거부26)를 발표했고, 초중교사노조와 공공운수노조는 24시간 총파업을 선언했다. 의회 근처의 신타그마 광장에서 시작된 이날 집회는 처음부터 긴장감이 돌았다. 이날은 아나키스트와 청년학생들도 많이 참여했는데 GSEE 위원장이 발언하려다가 참가자들에게 두들겨 맞으면서 의회 입구 쪽으로 도망쳤다. 아나키스트 300여명이 투석전을 시작하였고, 노조는 의회 앞의 긴장을 풀기 위해 노동부 쪽으로 행진을 하다가 경찰과 충돌했다.
3월 11일 ADEDY와 GSEE는 24시간 파업을 선언했다. 이날 집회는 2월 24일보다 두 배나 많이 참가하였고, 이주노동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 반면 대학생들과 젊은 노동자들 그리고 아나키스트들이 많이 참가했다. 이날 경찰은 시위대를 양측에서 압박했고 노조집행부는 노골적으로 경찰과 협동해 충돌을 막았다. 5월 5일 전까지 총회에 참가하는 대학생들의 수가 갈수록 많아졌지만 비정규직이나 도시 하층민들의 참가는 적었다.27)
2010년 5월 투쟁
2010년 5월 1일 정부는 1,100억 유로의 1차 구제금융을 받는 대가로 EU와 IMF가 요청한 긴축안을 밝히고 의회에 승인을 요청했다. 그 내용은 공공부문 15만개 일자리 삭감, 임금 15% 삭감, 연금 삭감, 소득세 증세, 기업이윤에 대한 세금 신설, 사치세와 죄악세(주류세나 담배세), 부가세 인상으로 연간 300억 유로(그리스의 GDP는 2,300억 유로밖에 안 된다!)를 절감하는 계획이었다. 긴축안은 5월 5일 통과되었다.
한편 메이데이 행진에는 노조와 아나키스트, 공산당 지지자 등 수천 명이 참가해 “우리들의 권리에서 손 떼라! IMF와 EU위원회 꺼져!” 등을 외치며 아테네 시내를 행진하면서 경찰과 충돌하였고, 경찰은 최루가스로 진압하였다. 중심가의 호텔이 파괴되기도 하였고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도 비슷한 양상이었다.28)
5월 5일 새로운 긴축안 표결을 앞두고 사상 최대의 시위대가 참가했다. 분위기는 2008년 12월과 비슷했고 후드를 입은 청년들도 있었다. 슬로건은 ‘매춘굴인 의회를 불태우자’부터 ‘IMF는 떠나라’, ‘도적놈들’, ‘인민은 사기꾼들을 감옥으로 보내길 원한다’까지 다양하였다.
전국적으로 운송(항공, 열차, 여객선), 교육, 병원 등을 포함한 총파업이 시작되었고, 1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아테네를 행진했다. 시위대는 신타그마 광장 옆에 있는 의회로 들어가려고 하였고 경찰과 충돌하였다. 경찰은 최루가스, 섬광탄, 연막가스, 후추 스프레이를 사용하였다. 일부 시위대가 근처에 있는 재정부 건물과 마핀 은행을 화염병을 던져 방화했고, 이 화재로 마핀 은행 안에서 갇혀서 일하던 은행원 3명이 질식사했다. 이날 밤 거대한 진압작전이 개시되었고, 정부는 시위대의 정치적 무책임성을 비난하면서 “시위대는 사람들을 죽음으로 이끌고 있고 긴축정책은 삶을 촉진하는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투쟁으로 12명이 부상하고 37명이 구속되었다. 5월 5일이 정점이었다. 다음날 의회는 긴축법안을 통과시켰고 이날 밤 노조와 좌파가 소집한 집회에는 겨우 수천 명이 의회 앞에 참가했다.30)
2011년 5월 이후의 투쟁
6월에 들어 모든 운송부문에서 파업이 일어났다. 아테네 지하철에서 해고에 반대하는 3일간의 파업이 있었지만 PASOK계열 지도부가 타회사로 재고용하겠다는 모호한 약속을 받아들이면서 끝났다. 6월 10일 OSE(국영철도)는 임금삭감과 적자노선 폐지 및 자회사 매각에 항의하여 24시간 파업에 들어갔고, 6월 22일 다시 48시간 파업을 벌였다. 아테네 국영버스회사 노동자들은 임금삭감과 보조금 축소에 항의해 6월 3일 24시간 파업에 이어 6월 17일 작업거부에 들어갔다. 7월 1일에는 임금이 지연되자 다시 24시간 파업에 들어가기도 했다. 중등교사들은 수당삭감에 항의하여 대학입학자격시험 채점을 거부하려 하였으나 교사노조가 학생들을 희생시킬 수 없다면서 무산시켰다.
특히 6월 15일 시위에는 아테네에서만 30만 명이 참가했고, PASOK의 파판드뢰우 총리는 거국내각을 제안하였지만 트로이카의 긴축안을 거부해 온 ND의 사마라스가 거부했다.31)
7월에는 의사노조연맹이 공공병원의 예산삭감과 일부 서비스의 민영화 및 임시직 채용확대에 반대하면서 5일간의 파업에 들어갔다. 은행노조는 농업은행의 매각에 반대하여 24시간 파업에 들어갔다.
공공운송트럭 소유자들은 공공운송의 자유화에 반대하여 파업에 들어갔다. 화물트럭 소유자, 의사, 변호사, 건축가들은 클로즈드 샆이었는데 이들 부문을 자본이 자유롭게 진입할 수 있도록 자유화하려는 것이었고 그 첫 번째가 화물트럭 분야였다. 파업은 휴일 피크 시간에 시작되었고 연료운송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 정부는 화물회사와 군용차량, 해군함정까지 동원하여 파업을 깨려고 하였고, 화물트럭 소유자들은 교통부 청사, 테살로니키의 석유저장소 앞에서 경찰과 격심하게 충돌하고 도로를 봉쇄하고 파업 이탈자들을 응징하였다.
화물트럭 소유주노조의 집행부는 파업 9일째에 정부와 협상하겠다며 파업을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재파업 18일째였던 9월 말 관련 법안이 표결에 붙여졌을 때 경찰이 파업 이탈자들을 조직적으로 동원하고 파업 참가자들을 구속하자 투쟁파들이 고립되면서 파업은 끝났다.
공무원들은 태업을 광범위하게 벌였다. 7월 24일 항공관제사들은 준법투쟁을 통하여 비행기의 이착륙을 방해하였다. 초중고 교사 지역노조는 교육부가 강요한 자기평가과정을 거부하였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공무원들의 투쟁은 미지근하였다. ERT(국영라디오TV회사)의 임시직들은 계약갱신이 되지 않자 방송국의 점거파업에 들어갔지만 PASOK이 관리하는 노조 상층부와 회사와의 협상 끝에 소득 없이 끝났다. 9월 내내 OSE(국영철도) 노동자들은 구조조정계획에 반대하면서 파업과 작업거부를 계속하였다.
OSE는 110억 유로에 달하는 적자를 핑계로 임금과 잔업수당과 연금을 삭감하고 감원과 노선폐지, 유휴설비 매각 등 사유화를 위한 조건을 만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PASOK 계열인 OSE노조는 제대로 된 투쟁을 벌이지 않았다. 그리고 PASOK 계열의 지하철노조는 7월 8일의 총파업 때 노선을 완전히 봉쇄하여 다른 노조원들이 시 중심가에 접근하는 것을 막았다.32)
2011년 분노한 시민들의 운동과 노동자계급의 투쟁
2011년 2월 23일 메르켈이 요청한 대출 재협상에 대해 10만 명이 넘는 시위와 파업이 재개되었다.
그리스와 IMF 사이에 체결된 협정memorandum(긴축안 혹은 양허안이라고 한다)은 2011년 10월 7일부터 시행되었다. 그리스 정부가 긴축안을 달성하지 못하자 네덜란드, 독일, 스웨덴에서는 IMF가 대출하지 않으면 자신들도 더 이상 대출할 수 없다면서 그리스의 자산을 매각할 것을 요구했고, 유로 위원회는 주요 정당에게 새로운 협약안에 동의해줄 것을 요청했다. 2011년 6월 1일 대중그리스정교당이 연정에서 탈퇴하면서 의회정권이 붕괴되었다. 5월 25일-26일 사이에 15억 유로가 이탈하였다.
2011년 5월 25일 스페인 투쟁에 자극받아 ‘신타그마의 분노한 사람들’이란 페이스북 페이지에 9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연대를 표시하고 수천 명이 모였다. 제2의 도시인 테살로니키에서는 ‘백탑의 분노한 사람들’이란 페이스북 페이지에 35,000명이 지지를 표시했다.
전국의 주요도시에서 시위와 점거가 일어났다. 이들 시위에서는 정당친화적인 발언을 하는 사람들이나 폭력이 시위대의 다수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스페인 투쟁에서 나온 ‘쉿! 그리스인들은 자고 있다’는 비꼼에 대해 아테네의 스페인 대사관에는 ‘우리는 깨어났다. 지금은 그들(그리스 정치인과 IMF)이 떠날 때야!’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또 다른 현수막에는 ‘조용! 프랑스는 잠자고 있어! 그들은 68혁명을 꿈꾸고 있는 중이야!’, 이탈리아어로 된 현수막에는 ‘조용! 당신들이 이탈리아 사람들을 깨울거야’라는 현수막도 있었다.
시위는 장대비에도 불구하고 다음날인 5월 26일까지 14,000명이 의회 앞에 모였다. 테살로니키에는 2,500명이 시위에 참가했는데, 시위대는 누구나 자유롭게 발언하고 토론하는 등 직접 민주주의적인 양상을 보였다. 5월 27일 수천 명이 장대비에도 평화적인 시위를 계속하였고, 경찰을 비난하는 시민이 시위대에 의해 격하게 비난받았다. 부패한 정치인과 불평등한 세금을 비난하면서 매일 6시에 집회하고 밤 9시에 총회를 연다는 민중총회people’s assembly 의사록이 ‘Real Democracy Now!’ 운동에 의해 발간되기도 하였다.
시위는 6월말까지 상승했다. 특히 5월 29일(범유럽 평화시위의 날) 10만 명이 모였고, 전 계층이 참여하였다. 시위는 전국적이었고, 5월 28일 7,000명이 모였고 광장에 텐트가 세워졌다. 의사, 통역, 음식공급 등이 조직되었다. 민중총회도 계속되었고 다양한 사람이 발언하였다. 의회가 아닌 인민에 의한 신헌법, 부정한 부채의 거부, IMF협약 폐기, 부자에 대한 중과세 등이 주장되었다.
6월 5일(12일째, 제2차 범유럽 시위의 날) 20만 명이 광장에 모였고, 민중총회에서는 스페인 점거대와의 교신도 이루어졌다. 경찰은 물대포와 철책으로 신타그마 광장을 막다가 약간의 충돌이 있었다.33)
6월 28일 새로운 긴축조치가 의회에서 통과되었다(300명 중 찬성 155명). 의료, 운송, 교육, 공공 부문 노동자들의 48시간 파업과 시위가 시작되었고, 국회 앞과 시내 중심가에서 경찰과 충돌하였다. 경찰은 막대한 최루탄과 섬광탄으로 진압하였고, 심지어 음식점에 있는 시민까지 구타하고 의료진의 접근을 가로막았다. 이틀 동안 370명의 중상자가 발생했다. 500여명이 지하철역의 의료소를 찾았다. 경찰은 심지어 불량배들까지 동원하여 상점을 파괴하였다. 이 과정들은 Alter라는 TV에서 생생하게 중계되었다.
6월 30일 광장에서 쫓겨난 수천 명은 의회 앞에서 평화적으로 시위하였다. 7월 2일 긴축조치가 통과되었지만 시위대의 숫자는 줄어들었다.
7월 29일 EU의 긴축요구를 수용하려는 의회의 투표에 항의하는 시위대와 강력한 충돌이 일어났다. 이 과정에서 진압경찰은 최루가스와 발암물질을 사용했다. 점거투쟁은 8월 7일 테살로니키 백탑광장에서 경찰에 의해 해산되고 7명이 구속되었다.
8월 23일 범노동자전선이 신타그마 광장의 유명 호텔에서 점거농성을 시작하였다. 관광노조도 24시간 파업과 시위에 들어갔다. 호텔점거는 다른 노조로부터 비난받았다.
9월 6일 재정부장관이 새로운 조치를 발표하자 10월 5일 항공과 여객선 등 공공부문과 관광부문 노조에서 24시간 총파업을 벌였다.34)
10월 15일에는 7,000명이 ‘월가점거운동Occupy Wall Street’에 연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10월 17일에는 선원들이 48시간 파업을 시작하고 여객선 노조와 세관원들도 24시간 파업에 돌입하였다. 파업 때문에 연료와 소비재의 부족이 나타났다.
10월 18일 공산당과 아나키스트들이 의회로 진입하려다가 큰 충돌이 일어났고, 공산당원 1명이 죽었다.35)
10월 19일과 20일 48시간 총파업은 계급투쟁의 질적 도약을 보여주었다. 아테네에서만 30만 명, 나머지 지http://www.businessweek.com/ap/financialnews/D9QG3LKG2.htm시켰다. 시위에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만이 아니라, 실업자, 청년, 자영업자, 소기업가, 연금수령자까지 참여하였다. 시위의 규모와 폭과 참여자의 다양성은 사회구성원의 대다수의 지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또한 시위는 공공건물과 정부청사의 점거, 새로운 조세에 대한 지불거부 등 수많은 자발적 행동을 포함하였다. 그리스 급진좌파의 가장 큰 조직인 KKE와 KKE의 노동조합조직인 PAME는 10월 20일 의회봉쇄를 조직했다.36)
10월 27일 트로이카와의 협정이 이루어지자, 1940년 무솔리니의 최후통첩을 거부하는 국경일인 10월 28일 테살로니키와 아테네 등 전국에서 트로이카 반대와 대통령 퇴진 등을 외치며 행사를 방해했다. 테살로니키에서는 행사에 참석한 대통령이 도망쳤고 군대행진은 취소되고, EU와 그리스 국기가 불태워졌다.37) 파판드뢰우는 거국내각을 다시 제안했고, 신자유주의 신봉자이고 유로존 가입의 주역이자 전 그리스중앙은행 총재인 파파데모스Papademos가 수상이 됐다.38)
11월 17일 5만 명이 아테네에서 행진하였다. 12일 6일 수천 명이 행진하였고 화염병을 던졌다.
2012년의 투쟁
2012년 2월 7일 그리스 정부가 3월 20일까지 1,300억 유로의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공공과 서비스 부문의 일자리 축소 등의 긴축조치를 발표하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양대 노조가 24시간 전국적 총파업을 시작했다.
의회 표결을 앞두고 2월 12일 50만 명이 의회 앞으로 집결하였다. 경찰의 최루탄과 섬광탄에 맞서 돌과 화염병을 던졌고, 45개의 빌딩이 불에 타고 수십 명이 부상당하였다. 긴축법안은 2월 13일 통과됐다.
4월 4일 약국을 경영하다 은퇴한 77세의 연금수령자가 국회 앞 신타그마 광장에서 긴축에 절망하여 자살하자 다시 시위가 시작됐다.39) 이날 밤 1,500명의 시위대는 투석전을 벌이며 경찰과 격렬하게 충돌했다. 시위대는 ‘자살이 아니라 정부가 자행한 살인이다’, ‘긴축이 사람을 죽였다’라는 슬로건을 외쳤다.
이상으로 살펴볼 때에 2010년 5월 투쟁은 긴축안에 대한 전체 노동자계급의 첫 도전이었는데, 은행원 3명의 질식사 이후 운송 등 각 부문의 파업은 계속되었지만 투쟁의 동력을 회복하지 못했다. 의도하지 않은 우발적 사고였지만 보수 우익들의 비난 앞에 운동은 유효한 반격을 하지 못한 채 대중이 위축된 것이고 그만큼 운동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한편 2011년 5월의 분노한 사람들의 점거투쟁은 전통적인 동원과는 새로운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즉 조직적인 노동운동의 동원과는 다르게 SNS를 통한 선동과 동원이 이루어지고, 구성원의 측면에서는 노동자계급이라기보다는 (소)시민이 주를 이루고, 과격한 투쟁보다는 비전투적이고 평화적인 시위양상을 보였다. 이러한 동원과 투쟁 양상은 2008년 한국의 촛불항쟁, 2011년 초 이집트의 시위, 2011년 가을 오큐파이 운동 등40)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난 바 있는데, 이 투쟁들은 노동자계급의 조직적 투쟁과는 결을 달리하는 것이다. 이것은 노동조합이 정규직에 의존하고 따라서 그만큼 현실 안주적이고 투쟁회피적인 상황에서 새롭게 열린 SNS라는 공간과 도구를 통해 신자유주의에 수탈받고 소외받는 대중이 진출한 것이다.41)
신자유주의적 공격으로 인한 노동자계급 내의 위계화와 분절화는 그리스나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느 곳에서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정규직 노동자의 수동적이고 타협적인 자세를 가져왔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처지에 있는 비정규직을 비롯한 온갖 불안정 노동자와 실업노동자들은 조직되어 있지 않거나 미비하다. 강력한 조직된 투쟁을 벌여야할 노동운동은 수동적이고 방어적이며 부문적인 투쟁을 벌일 뿐 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저항과 투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 전 세계적인 현상인 것이고, 이처럼 조직노동자들의 투쟁이 미흡한 공간에서 도시하층민들 혹은 중류 이하의 대중들이 새로운 도구와 공간인 SNS를 통한 동원에 의하여 비조직적인 저항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촛불항쟁이나 2011년 초 아랍민중항쟁은 물론이고 2011년 가을에 시작된 오큐파이 운동의 본질도 이런 것이다. 이것은 노동자계급 중심성을 주장하는 혁명세력이 노동운동의 복원이라는 임무와 함께 광범위한 대중의 분노를 조직해야 할 과제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시리자(Syriza)의 승리란 이들에게 기인한 바가 크다. 분노를 가지고 있지만 조직되어 있지 않고 때로는 순진하고 때로는 낭만적인 비조직적 대중을 동원하고 조직할 프로그램이 요청되는 것이다. 2012년은 다시 조직노동자계급의 대응을 가져왔다. 이것은 타협적인 노조상층부에도 불구하고 노동자계급의 처지가 투쟁에 나서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투쟁은 선거 국면을 맞아 상층부의 대리전으로 수렴된 측면이 있다.
[발행처]타흐리르(02-2278-8828)
[편집인]진보전략 편집위원회
[각주]
18) Zoe Lanara, 2012, Trade Unions in Greece and the Crisis, (International Policy Analysis 2012-04), Friedrich Ebert Stiftung, p. 6.
19)트로이카는 거의 0%로 조성한 구제금융자금을 무려 5%의 이자율로 지원하였다. “그리스 재무부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그리스 정부는 2014년까지 2,450억 유로를 트로이카로부터 지원받을 예정인데, 2012년 5월21일까지 1,476억 유로가 집행되었다. T. Papadopoulos가 웹사이트 iskra.gr에 밝힌 바에 따르면 이 돈 중 130억 유로만 정부에 들어가고 750억 유로는 원리금 상환, 그리고 595억 유로는 채권소유자나 은행으로 분배되었다.” Marxistiki Foni Editorial Board in Athens, “Greece: Ten programmatic points for a Left government – our proposal – Part Three”, (20 Jun. 2012) at http://www.marxist.com/greek-elections-fragile-victory-of-ruling-class-part-three.htm.
20) OECD, OECD Economic Surveys: Greece 2011, (2011. 8), p. 8.
21) 국가독점이었던 OTE(그리스 통신회사)는 발칸 반도 4개국에 지사를 가지고 있는 남부유럽 최대의 통신회사인데, 민영화되어 국가지분은 10%로 축소된 반면 Deutsche Telekom이 40%의 지분을 인수했다. OTE, “About us” at http://www.ote.gr/portal/page/portal/OTEGR/TheCompany/OTEToday/OURCOMPANY.
22) Zoe Lanara, Trade Unions in Greece and the Crisis, (International Policy Analysis 2012-04), Friedrich Ebert Stiftung, p. 3.
23) 긴축으로 인한 그리스 노동자계급의 고통은 앞의 Zoe Lanara의 보고서에 잘 서술되어 있다.
24) 항쟁이 격렬한 양상을 띠게 된 데에는 아나키스트들의 선도적인 역할이 컸다. 한편 KKE는 항쟁의 첫날밤부터 집회를 조직하고 앞장섰으나 며칠 후 방화와 파괴 등 폭동의 양상으로 바뀌자 “Syriza가 후드를 입은 폭도를 고무하고 있다”고 비난하였고, 치프라스는 “공산당이 보수적 세력이라고 비난하면서 청년들이 처한 절망이 그들을 거리로 자발적으로 나오게 한 것”이라면서 맞받아 쳤다. Wikipedia, “2008 Greek riots” at http://en.wikipedia.org/wiki/2008_Greek_riots#cite_note-meeting2-247.
25) 2008년 12월 항쟁의 분석은 Antonis Vradis and Dimitris Dalakoglou(ed), Revolt and crisis in Greece, 2011, AK Press & Occupied London, 특히 이 책에 들어있는 Yiannis Kaplanis, “An economy that excludes the many and an ‘accidental’ revolt”와 Vaso Makrygianni & Haris Tsavdaroglou, “Urban planning and revolt: a spatial analysis of the December 2008 uprising in Athens” 등을 참조하라.
26) 총파업이 아닌 3시간 작업거부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요구를 억제하기 위한 타협적 지도부의 술책으로 비난받았다.
27) TPTG, op. cit., pp. 260-62.
28) BBC News, “Greece police tear gas anti-austerity protesters” (1 May 2010) at http://news.bbc.co.uk/2/hi/europe/8655711.stm.
29) 은행원들이 파업에 동조하지 못하도록 밖에서 셔터를 잠근 상태였다.
30) TPTG, op. cit. pp. 262-64.
31) ND는 본래 중도 우파 혹은 신자유주의 우파라고 할 수 있는데, 노동에 대한 공격을 주장하면서도 트로이카의 긴축안 강요에 대하여는 주권에 관한 것이라며 완강하게 반대했다.
32) TPTG, op. cit..pp. 264-68. 양대 노총은 노동자계급의 실질적인 저항을 무력화시키는데 최선을 다했다. 2010년에 들어 여름까지 GSEE는 6번의 24시간 파업, ADEDY는 8번의 24시간 파업과 작업거부 등을 선언했지만 노동자계급을 동원하고 총파업을 하기 위한 준비를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에 참여자의 수가 점차 감소하고 사람들을 지치게 만들고 한마디로 김빼기 역할만 하였다. 거대조직의 상층부는 말할 것도 없고 하부관료들까지 대부분 PASOK계열이고 그리스의 유명한 정치적 연고주의는 노조에도 작동하고 있고 출세를 위한 사회적 사다리나 법률적 도움을 받는데 이용된다. 노조관료들은 공공부문에서 느슨한 위계제를 만들고 있고 현재의 공격을 자신들에 대한 위협으로 느끼지 않고 있다. ibid.
33) Wikipedia, “The ‘Indignant Citizens Movement’ (May–August)” at http://en.wikipedia.org/wiki/2010%E2%80%932012_Greek_protests#The_.22Indignant_Citizens_Movement.22_.28May.E2.80.93August.29.
34) BBC, “Greece strike: Police and protesters clash in Athens”, (5 Oct 2011) at http://www.bbc.co.uk/news/world-europe-15177457.
35) Businessweek, “1 dead in Athens demonstration clashes” (20 Oct. 2011) at http://www.businessweek.com/ap/financialnews/D9QG3LKG2.htm.
36) Stathis Kouvelakis, op. cit., p. 18.
37) 이 투쟁은 노동자들이 조직한 투쟁이 아니라 ‘분노한 사람들의 투쟁’의 연장이다.
38) 유로화의 가입조건을 맞추기 위해 Pasok 정권의 수상인 Simitis와 중앙은행 총재인 Papademos가 수십억 유로의 부채를 숨겨주는 대가로 골드만 삭스에게 3억 유로를 지급한 사실이 2004년 폭로되었다. 그럼에도 국제신용평가기관들은 그리스의 투자등급에 AAA를 유지하였다. Kouvelakis, op. cit., p. 21.
39) ‘신타그마에서 모이자’는 페이스북에 2,000여명이 공감하였고, 이날 오후 수백 명이 시위에 참가하였다. Rt, “Pensioner shoots himself at Greek Parliament, refuses to ‘search for food in garbage’ (PHOTOS)” (04 Apr. 2012) at http://www.rt.com/news/greece-suicide-218/.
40) 2008년 한국의 촛불항쟁, 2011년 초 이집트의 시위, 2011년 가을 오큐파이 운동에 대해서는 박석삼,『2008년 촛불항쟁 : 배반당한 개미떼들의 꿈』, 2010, 문화과학사; 박석삼, “아랍민중항쟁의 분석과 평가”,『진보전략 준비호』, (2012년 1월) 타흐리르, pp. 127-201, 그리고 이 책에 실린 원영수, “월가점거운동(Occupy Wall Street Movement)”을 참고하라.
41) 박석삼, 앞의 책, p. 117-32 등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