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신문사는 (주)싼타크루즈와 업무제휴해 '가톨릭 정통 크루즈 성지순례’를 시작한다고 지난 8월 1일 발표했다. 한국 가톨릭교회에서는 처음으로 시도되는 이번 크루즈 성지순례는 오는 10월에 배를 띄울 예정이라고 한다. 로얄캐러비안사의 8만 톤급 배를 이용해서 이집트·이스라엘·터키·이탈리아 등 3개 대륙 4개 국가, 5개 기항지를 동시에 돌아보도록 하는 성지순례인데, 아직 비용은 결정되지 않았다.
개신교에서는 이미 2007년에 극동방송에서, 2008년에는 기독교방송(CBS)에서 크루즈 성지순례를 시작했으며, 비용은 400만원 정도가 소요된다. 가톨릭신문사에서 추진하는 쿠루즈 성지순례 역시 350만원에서 450만원 선에서 결정되지 않을까 추측된다.
실제로 해외 성지순례는 가톨릭과 개신교를 망라해 붐을 일으킨지 이미 오래다. 사제들은 본당 차원에서 해외 성지순례를 주선하고, 사제, 평신도 할 것 없이 개인적으로도 휴가를 이용해 해외로 나가는 것이 다반사가 되었다. 이스라엘 관광청에 따르면 이스라엘을 찾는 한국인 관광객 수는 세계에서 여섯 번째로 많다. 아시아 국가 중 1위이며, 대다수가 '성지 순례'의 명목으로 여행하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한다. 이스라엘이야말로 성경의 무대이며, 예수의 발자취가 남아 있는 '거룩한 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성지 순례, 한국이 세계에서 6위, 아시아에서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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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기 씨는 예수의 고향 팔레스타인의 과거만 보지 말고 현재에 주목하라고 지적한다.(사진/한상봉 기자) | 현재 이스라엘 성지를 찾는 순례객을 포함한 국제 관광객의 수는 약 10억 명이며, 2020년에는 16억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그중에서 이스라엘은 전 세계 25억을 차지하는 가톨릭-개신교 신자들의 성지순례 패키지 여행의 최대 시장이다.
이스라엘 관광부에 따르면 2008년 한 해 동안 이스라엘을 찾은 관광객은 280만 명이다. 이스라엘 통계청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인구는 2008년 기준으로 733만7천 명인데, 유대인이 554만2천명(전체 인구의 75.5%), 아랍인이 147만7천 명(전체 인구의 20.1%)으로, 이스라엘 인구의 절반에 가까운 관광객이 매년 그 나라를 방문한다. 이스라엘의 주요 외화 수입원은 관광산업이며, 200여 개나 되는 키부츠들은 호텔과 각종 레저 프로그램을 개발해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다.
이매진피스와 한국아나뱁티스트센터 교육담당간사인 서정기 씨는 이스라엘로 떠나는 성지순례에 대해 조심스럽게 조언을 덧붙이고 있는데, "홀로코스트라는 집단적 상처로 고통을 받았던 이스라엘과 현지에 살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겪는 고통을 공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귀뜸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순례자들을 적극지원하고 있는데, 성지를 여행하는 이들은 이스라엘의 '과거'만 만날 뿐 '현재'에 주목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그리스도교인이 2%정도 있는데, 여행자들은 과거의 교회건물만 보고 돌아가며, 과거만 봄으로써 미래와 소통할 현재를 만날 수 없다."고 한다.
여행자들은 이른바 '관광객'이 되어 성지를 구경만 하고 올뿐, 지금 그곳에서 고통받는 팔레스타인을 보지 못한다. 한국 그리스도교인들은 대체로 '친이스라엘'적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기왕에 성지순례를 할 요량이라면, 왕창 가서 "사진을 찍어보겠다"는 생각보다 현지의 팔레스타인 사람들과 며칠이라도 함께 살아보겠다는 마음을 내라고 서정기 씨는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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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레스타인 사람들 역시 예수의 친척들이었다. 그 마을 사람들을 외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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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순례, 이스라엘 정부의 의도대로만 운영... 팔레스타인 참상 모르쇠
이스라엘 성지순례의 핵심인 예루살렘성과 베들레헴의 예수탄생교회 등 주요 성지는 이스라엘 유대인 지구가 아니라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에 속해있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통계청에 따르면 2008년 상반기 서안지구를 찾은 관광객은 76만9천 명이며 이중 베들레헴 방문율이 66%이다. 그럼에도 순례객들이 지출하는 주요 경비는 모두 이스라엘에게 돌아간다.
성지순례 여행자들이 머무는 곳은 대부분 예루살렘의 오성급 호텔이나 키부츠의 리조트 같은 이스라엘의 숙소들이며 이스라엘 관광회사의 전용버스를 타고 이스라엘만의 전용도로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현재 대부분 이스라엘 버스는 언제든지 서안지구를 오갈수 있지만, 팔레스타인 여행사들의 버스는 예루살렘이나 이스라엘 지역으로 들어가 관광객을 픽업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오슬로 협정이 진행되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팔레스타인의 상업과 관광업은 경제활동 인구의 18%를 차지할 정도로 큰 수익원이며, 이스라엘의 잦은 도로봉쇄와 이동통제, 팔레스타인 물품의 유입통제 등으로 팔레스타인은 자체생산기반을 마련할 수 없었다. 협정 결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세워졌으나 여전히 이스라엘 화폐가 통용되고 세금도 이스라엘 정부가 거둬 자치정부에 넘겨주고 있다.
더구나 2000년 2차 인티파다 이후에는 이스라엘이 2002년 8m 높이의 750킬로미터의 고립장벽을 설치하고 장벽엔 철조망, 전기 울타리, 감시탑과 전자센서, 열감지카메라, 비디오카메라, 무인비행기, 저격탑, 순찰차용도로 등을 완비해서 팔레스타인을 고립시켰다. 그래서 팔레스타인 관광은 고사되고 있으며, 베들레헴의 주요 호텔 객실은 텅비기 시작했다.
그러나 성지순례를 하는 대부분의 여행자들은 이러한 팔레스타인의 현실을 보거나 들을 수 없다. 이스라엘 정부가 이들의 만남을 적극 차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공항에 내려서 이스라엘 정부가 제공한 버스를 타고 이스라엘 정부가 허락한 성지를 둘러보며 이스라엘이 지원하는 유대인 가이드에 의한 설명만을 듣고 돌아오는 성지순례 프로그램이 대부분이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여행자들은 이스라엘 정부의 친절과 환대만 기억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지닌다. 결국 이스라엘 정부가 주선하는 패키지 성지순례는 이스라엘 경제를 지원하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을 정당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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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빠, 내 친구가 왜 죽은 거죠?” 2008년 겨울 1,400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침공이 있었습니다.공습이 멈추고 아이들은 학교로 돌아왔지만같이 웃고 떠들던 많은 친구들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사진출처/이매진피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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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군인의 티셔츠.과녁 한가운데 팔레스타인 임산부의 둥근배를 맞춰놓은 그림에히브리어로 ‘총 한 발로 두명 사살’,팔레스타인 어린이를 조준한 그림에 ‘작을수록 죽이기 어렵다’고 적어놨다.(사진출처/이매진피스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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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대안 성지순례
그래서 나온 말이 '대안 성지순례'다. 여행지인 팔레스타인 현지인들의 필요에 응답하는 방식으로 순례하자는 제안이다. 이천년 전 로마지배아래서 예수의 혈족인 유다인들이 겪었던 고통을 알려면 지금 그곳에서 이스라엘의 지배를 받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만나보면 된다. 자유로운 여행자로서 그들을 만나서 느낀 것, 그리고 그들이 전하는 목소리를 자기 나라에 전하는 것이다. 여행자/순례자가 '현실'에 대한 증언자/메신저가 되는 것이다.
개신교에는 '공정무역'의 방식을 닮은 '공정교회(fair church)' 운동이 있다.
공정무역이 '착한 소비'를 선택하는 것이라면, 공정교회란 환경생태적 가치를 선택하고 실천하겠다는 의지를 공표한 교회이며, 사회적 민감성을 지니고, 현지인들의 삶에 공감하는 여행/순례을 실천하는 교회다. 이런 점에서 fair family, fair life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대안 성지순례'란 지역개발과 여행/순례를 연결시키려는 노력이다. 지속적으로 일정한 곳에 방문하면서 지역민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한국 천주교회나 개신교에서 몽고나 우즈베키스탄, 네팔 등지에 지속적으로 방문하면서 학교를 세우고, 지역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것과 궤를 같이 한다.
서정기 씨는 "여행이란 '전환적 경험'을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행을 통해 평화와 정의, 공정함을 배우고 돌아와 내 삶을 그러한 가치를 중심으로 다시 짜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 일상 생활이 전세게와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즉, 내 일상 속에서 공정하고 착한 소비, 친환경적인 삶, 손수 물건을 만들어 쓰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일반 여행객들도 여행사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 원칙을 세우고 여행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
'대안 성지순례'를 준비하고 있는 서정기 씨는 "우리가 이스라엘 성지순례를 간다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직접 만나고, 우리가 현지에서 쓰는 돈이 그들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여행 일정조차 "현지인들이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서, 기존의 관광처럼 이스라엘의 착취구조를 강화시키지 않는 방향으로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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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는 여행 중에 만난 사람들의 사정을 듣고, 연민의 정을 느꼈다. 그는 단순한 구경꾼으로 갈릴래아를 돌아다니지 않았다. 예수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의 성지순례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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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는 '구경꾼' 아닌 '여행자'였다
지난해 '공정여행 가이드북'인 <희망을 여행하라>(소나무)라는 책을 펴낸 이매진피스의 임영신 씨는 "예수도 여행자였다."며 "예수의 공생애 자체가 여행이었고, 그 여행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들의 삶을 변화시킨 여정이었다"고 말한다. 서정기 씨는 "예수는 우물가에서 만난 여인의 삶에 관심을 가졌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해서 장사치들이 들끓는 성전 현실에 분노했다."며 "그처럼 여행은 남의 일 보듯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필요에 민감하게 응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임영신 씨는 <복음화 상황>(2009년 7월호)과 나눈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제가 팔레스타인에 갔을 때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공격해서 4000명 이상이 죽고 있었는데 순례를 오는 사람이 끊이지 않았죠. 하지만 심지어 예루살레멩서는 가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뉴스도 나오지 않을 만큼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어요. 가자에 폭격이 진행되고 있는 그 순간, 이스라엘 텔아비브 바닷가에서는 사람들이 요트를 타고 산책을 하는 일상이, 성지순례 여행자들의 관광행렬이 그치지 않고 있었어요. 결국 우리가 이스라엘에 간다 해도 진실을 보고 고통에 귀 기울이는 마음이 없다면 우리는 이스라엘에 성지순례 패키지 관광을 간 것이지 평화의 순례자가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여행이지요."
그렇다면, <평화방송. <평화신문>, '그리스도 우리의 평화' 등 유난히 '평화'에 대한 관심을 표명해 왔던 가톨릭교회는 개신교의 '크루즈 성지순례'를 따라가기에 앞서 먼저 개신교의 '대안 성지순례'도 함께 고민해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성지순례가 이천 년전의 신앙선조의 유적을 탐사하는 '거룩한' 여행이 되려면, 지금 팔레스타인에서 고난받는 이들 속에서 참 평화를 구현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대안 성지순례'에 대해서도 고민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구경꾼이란 소리 대신에, 예수의 여정을 따라 밟는 '여행자/순례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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