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실 한편에 놓인 수석 하나를 오래 바라봅니다. 이 수석은 마치 억겁의 세월을 견뎌온 거대한 수직 절벽의 단면을 화분 속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합니다. 전체적으로 묵직한 청회색과 국방색이 감도는 색조는 고풍스러우면서도 차분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돌 전체를 가로지르는 수평의 층상 구조는 자연이 빚어낸 정교한 조각처럼 뚜렷한 결을 보여줍니다. 특히 중간중간 날카롭고 얇게 뻗어 나온 계단식 돌출부는 험준한 산맥의 단애나 구름 위의 기암괴석을 연상시키며 입체적인 미감을 극대화합니다.
이 돌을 보면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데이비드 R. 호킨스 박사의 ‘의식 지도(Map of Consciousness)’를 떠올려봅니다.
나는 오래전 그의 저서들을 읽었습니다. 그때도 흥미로웠지만, 솔직히 말하면 머리로만 이해했을 뿐이었습니다.
최근에 다시 그의 저서를 접하면서, 그 뜻을 조금 더 깊이 음미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이론처럼 보이던 내용이, 이제는 내 삶의 경험과 겹쳐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호킨스는 인간의 의식을 1에서 1000까지의 수치로 설명합니다.
수치가 높고 낮음은 우열이 아니라, 의식의 에너지 밀도와 질적 차이를 의미합니다. 20은 ‘수치’, 30은 ‘죄책감’, 100은 ‘두려움’, 200은 ‘용기’입니다. 200을 경계로 파괴적인 에너지에서 건설적인 에너지로 전환된다고 그는 말합니다. 400은 ‘이성’, 500은 ‘사랑’, 600은 ‘평화’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700 이상은 성자적 의식의 영역으로 설명됩니다.
그는 또 하나의 개념을 제시합니다. ‘끌개장(Attractor Field)’입니다. 이는 단순한 심리 상태가 아니라, 그 사람의 지배적인 의식 수준이 형성하는 에너지의 장입니다. 우리는 그 장 안에서 생각하고 선택하며, 결국 그 장에 공명하는 사건들을 끌어들입니다.
사진 속 수석의 층을 다시 봅니다.
아래층의 퇴적물은 위층을 알지 못합니다. 성질도 다르고, 밀도도 다릅니다. 우리는 흔히 인생이 계단을 오르듯 선형적으로 변한다고 믿지만, 호킨스는 의식의 변화가 마치 양자도약(Quantum Leap)처럼 일어난다고 가르칩니다. 전자가 궤도를 건너뛰듯, 인간의 영혼 또한 어느 순간 질적인 비약을 통해 전혀 다른 차원의 존재 방식으로 이동한다는 것이지요. 물이 99도까지는 여전히 물이지만, 100도가 되는 순간 전혀 다른 상태로 변하듯, 의식의 변화가 점진적 축적 끝에 어느 순간 질적으로 ‘도약’한다고 설명합니다.
나 또한 그런 순간들을 경험했던 것 같습니다. 무거운 자책과 두려움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다 "이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한 배움의 과정이다"라는 강력한 '수용'의 의지를 낸 순간, 삶의 주파수는 순식간에 요동치며 상향 조정되었었지요. 맥락이 내용을 결정짓는다는 것이 그 말이지요. 수석의 하단부 거친 질감이 어느 지점에서 매끄러운 평면으로 급격히 전환되듯, 내 삶의 에너지 장도 그렇게 도약했습니다.
그러나 의식이 도약했다고 해서 현실이 즉시 바뀌지는 않습니다. 많은 이들이 묻습니다. 저또한 많이 의문을 가졌습니다.
“마음을 바꾸었는데 왜 여전히 힘든가?”
여기서 우리는 호킨스가 말한 사건의 수렴과 끌개장의 역학을 이해해야 합니다. 사건은 내가 현재 머물고 있는 지배적인 의식 수준, 즉 끌개장에 반응하여 서서히 모여듭니다. 내가 400의 '이성'이나 500의 '사랑'에 머물기 시작하면, 그 주파수에 공명하는 사건들이 내 삶의 영역으로 수렴됩니다. 그러나 즉시 이루어지지는 않는데 사건이 바뀌는 속도는 '의도의 순도'와 '항복(Surrender)'의 정도에 비례하며, 여기에는 세 가지 명확한 시간 지연(Time-lag)의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첫째, 물질 세계의 밀도와 관성입니다. 거대한 유조선이 키를 꺾는다고 즉시 방향을 틀 수 없듯, 과거의 의식에서 비롯된 선택과 사건들이 일정 시간 지속됩니다. 이미 과거의 낮은 의식 수준에서 던져놓은 사건의 부메랑들이 돌아오는 시간이 필요한거지요.
둘째, '카르마적 상쇄'입니다. 새로운 높은 수준의 장에 안착하기 위해, 그동안 내면에 쌓여있던 낡고 낮은 에너지의 찌꺼기들이 빠져나가는 정화의 진통입니다. 더 높은 장으로 이동할 때, 낮은 주파수의 감정과 사고는 표면으로 떠오르며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그것은 퇴보가 아니라 정리일 수 있습니다.
셋째, '임계 질량의 법칙'입니다. 물이 끓기 직전까지는 아무 변화도 없는 듯 보이지만, 에너지는 계속 축적되고, 내 의식의 에너지가 새로운 단계에서 충분히 농익어 임계점을 넘어서야 비로소 외부 현실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재편되기 시작합니다.
이 수석의 단단한 층들을 다시 봅니다. 수억 년의 시간 지연 끝에 만들어진 저 층위들은 결국 '맥락(Context)이 내용(Content)을 결정한다'는 진리를 웅변합니다. 똑같은 돌의 성분(내용)일지라도, 어떤 압력과 열(맥락) 속에서 형성되었느냐에 따라 보석이 되기도 하고 평범한 흙이 되기도 하는거지요.
내 삶에 닥친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을 ‘재앙’이라는 맥락에 놓으면 상처가 되고, ‘성장통’이라는 맥락에 놓으면 훈련이 됩니다.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해석하는 의식의 층위가 더 근본적일지도 모릅니다. 이런 면에선 어떠한 나쁜 것도 좋은 것으로 둔갑할 수밖에 없지요.
결국 진리는 단순합니다.
내가 '옳은 일'—즉, 생명을 지지하고 사랑과 진실을 선택하는 높은 의식 수준—을 행하고 있다면, 그 결과로 나타나는 사건이 당장 고통스러울지라도 그것은 '좋은 일'의 범주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반대로 내면이 원망과 파괴라는 나쁜 에너지에 침잠해 있다면, 겉보기에 화려한 행운이 찾아온들 그것은 필연적으로 나쁜 결과를 향해 수렴할 수밖에 없지요.
호킨스는 의식 수준이 안정될수록 삶에 ‘동시성(Synchronicity)’이 증가한다고 말합니다. 억지로 밀어붙이지 않아도 필요한 만남이 찾아오고, 생각하던 길이 우연을 가장해 열립니다. 그것은 운의 문제가 아니라, 장의 정렬 상태라는 설명입니다. 내 끌개장의 주파수가 그만큼 정교하고 명료해졌기 때문이지요.
이 수석은 젖었을 때 더욱 선명한 녹색 빛과 층의 결을 드러냅니다. 우리의 의식도 눈물과 고난이라는 습기를 머금었을 때 비로소 그 도약의 층층이 더 선명해지는 것은 아닐까요.. 나는 이 돌을 보며 다짐합니다. 당장 눈앞의 사건이 휘청거린다고 일희일비하지 않기로.
내 의식의 층위를 높게 유지하며 묵묵히 옳은 맥락을 창조해 나간다면, 시간의 지연이 끝나는 어느 날, 내 삶 또한 이 수석처럼 견고하고 아름다운 자태로 수렴될 것임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나는 내 안의 끌개장을 정돈합니다.
도약은 이미 시작되었고, 결과는 정해진 길을 따라 내게 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