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흥민씨는 고려시대 상의봉어(尙衣奉御)를 지낸 민칭도(閔稱道)를 시조로 하고 있다. 민칭도는 공자(公子)의 제자인 민손(閔損)의 후손으로, 고려 중엽 사신으로 왔다가 귀화하여 여흥(현 경기도 여주)에 정착하였다. 고려 말기부터 명문의 지위를 굳히기 시작한 여흥민씨는 다수의 뛰어난 인물을 배출하였다. 민칭도의 증손 민영모(閔令謨)는 고려 인종 때 문하시랑평장사와 태자태사를 지냈다. 민영모의 두 아들 중 민식(閔湜)이 신종 때에 형부상서를 지냈고, 민공규(閔公珪)가 판병부사와 태자소보(太子小保)를 지냄으로써 여흥민씨를 크게 중흥시켰다.
1400년대 영유현령을 지낸 민종원(閔宗元)이 경기도 반월(안산)에서 부천시 작동(鵲洞)에 입촌한 후 여흥민씨의 가세는 날로 번창하였다. 민종원의 둘째 아들인 민자방은 성종의 다섯째 딸인 경숙옹주와 혼인하여 부마가 되었다. 민자방의 아들인 민희열은 단양군수를 지냈으며, 민희열의 두 아들 민홍준과 민수경은 각각 광홍군수와 정선군수를 지냈다. 민희열의 손자 민만의 다섯째 아들인 민이승은 효릉참봉을 지냈고, 민칭도의 29세손인 민정식은 금부도사를 지냈다. 부천시 작동을 중심으로 세거한 여흥민씨는 13세손인 사헌부 장령을 지낸 민효환(閔孝懽)을 파조로 하여 장령공파(掌令公派)로 칭하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묘역은 14기 21위로 여흥민씨 장령공파종중의 소유로 관리되고 있다.
본관이 여흥(驪興)인데 여흥이란 지명으로 보이는데 남쪽지방은 아닌 것 같네요. 함경도 지방에 있는 것 같군요. 묘의 사진을 보니 다른 곳보다 석물이 다소 많아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