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 10일 주일 묵상(딤후 3:1-9)
[경건의 모양은 자기사랑에서, 경건의 능력은 자기부인에서 온다!]
1.시작 기도
아버지, 알람 소리에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 말씀 앞에 머무릅니다.
오늘 생애 처음 있을 설교 때문인지 마음에 부담이 옵니다.
바른 복음을 전하여 생명에 이르게 하는 목회의 본질을 생각하며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합니다.
나는 없고 오직 아버지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크신 일만 드러나게 하소서.
이 아침 나의 참 안식처 되시는 주를 바라보며 말씀 앞에 엎드립니다.
나의 나됨은 오직 아들 안에서 아버지 품에 있는 것입니다.
밤새 오염된 영혼을 주의 보혈로 정케 하사 새영과 새 마음이 되게 하소서.
오직 아들을 힘입어 가오니 아버지 집에 이르러 안식하며 구원의 참된 기쁨을 노래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2.본문 내용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고난 받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은 영원한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주와 함께 죽었으면 주와 함께 살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복음으로 인해 당하는 고난을 초월하며 로마의 압제하에서 배도자들이 속출하는 에베소교회의 디모데를 향하여 복음 안에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한다.
디모데는 복음에서 떠나 망령되고 헛된 말을 따르는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 것이다.
오히려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하나님 앞에 인정받는 자가 되기를 힘쓸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으로서 진리의 기둥과 터이다.
하나님의 집을 이루고 있는 주의 백성들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며 중보자인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내어주어 값으로 사신 자들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주의 백성들을 다 아시고 지키신다.
이에 주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자가 되기 위해 경건하기를 힘쓸 것이다.
디모데는 오직 진리의 말씀에 착념하여 생명에 이르는 복음으로 살아내고 가르칠 것이다.
하나님께서 오래참고 기다려주셔서 이 진리의 말씀을 알게 하셨듯이 디모데 역시 아직 무지와 불신앙 가운데서 대적하는 자들을 온유함으로 대하고 가르칠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회개할 은혜를 주셔서 진리를 알게 하실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모데는 이것을 주목하여 알아야 한다.
마지막 날에 끔찍한 일이 있을 것이다.(1절)
여기서 마지막 날은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십자가 사건을 통해 마귀의 일을 멸하셨으나 아직 죄의 세력이 실재하는 ‘이미와 아직’사이의 긴장시대를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한다.(2-4절)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이다.
원래 사람은 말씀에 순종하여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존재이다.
이는 창세전 약속인 영생을 주시는 은혜를 알고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앞에 나아갈 때 가능하다.
창세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출현을 통해 드러났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죄사함과 영생을 주는 구원과 새언약을 성취하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영원한 사랑이다.
자신의 생명까지 다 내어주는 자기부인의 사랑, 아가페이다.
그 사랑을 알 때 먼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사랑을 아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로만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 사랑을 알고 날마다 말씀 앞에 머무르며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사는 자는 경건의 능력이 있는 자이다.
그러나 말씀 앞에 머무르지 않고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나아가지 않는 자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한다.
이들은 ‘이미와 아직’ 사이의 긴장 속에서 죄의세력에 자신을 내어주며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삶을 따라간다.
이런 자들의 삶은 모두 19가지로 특징지어지는데 모두가 하나님을 덜 사랑함으로서 나타나는 것들이다.
말세의 고통은 철저한 자기주의를 따른다.
자기를 사랑하고 자기를 높여 결국 자기를 우상으로 삼는다.
자기를 사랑하여 자기를 과시하고 그것을 위해 돈을 사랑한다.
자기 만족을 위해 쾌락을 추구하고 자기를 중시하기 때문에 부모도 거역한다.
무정하고 원통함을 풀지 않고 자기에게 손해가 되면 야수처럼 사납게 변한다.
경건의 능력이 없는 그들은 감사도 없으며 거룩도 없고 조급하고 자만하다.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 경건의 모양을 내지만 경건의 능력이 없다.
오직 자기 만족을 위해 종교활동을 할 뿐이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말씀 앞에 나아가 자기를 부인함이 없다.
경건의 능력은 자기부인에서 시작된다.
경건의 능력은 복음을 통해 생명으로 살아내는 것으로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영생의 삶이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런 자들에게서 떠날 것을 명한다.(5절)
그들 중에 남의 집에 들어가서 어리석은 여자들을 유인하는 자들이 있는데 유혹받은 여자들은 여러 가지 정욕에 이끌려 죄를 거듭하여 짓는다.(6절)
이런 여자들은 항상 배우나 진리를 깨닫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한다.(7절)
남의 집에 들어가는 자들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저한 것과 같이 진리를 대적한다.
그들은 이성이 부패해지고 믿음에 낙오자가 된 자들이다.(8절)
그러나 그들이 더 이상 나가지 못할 것은 그들의 어리석음이 모든 사람 앞에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9절)
남의 집에 들어가는 자들은 경건의 모양을 내되 경건의 능력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거짓교사들로서 진리를 외면하고 무지하고 어리석을 여자들을 미혹한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에서 생기는데, 그들이 진리의 말씀을 말하지 않고 듣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경건의 능력은 진리의 말씀으로 살아내는 것이다.
그럴 때 진리의 말씀을 전하여 생명을 얻어 하나님과 함께하는 경건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경건의 능력은 생명의 삶으로 증명된다.
그것은 무엇보다 자기를 부인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서 시작된다.
예수님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하셨다.
아담 안의 모든 인간은 자기를 사랑함이 본성이기 때문에 자기부인을 할 수 없다.
자기 부인은 삼위 하나님의 속성이다.
창세전 삼위 하나님은 철저히 자기부인을 통해 생명을 내어주고 사랑하여 기쁨이 충만한 복종과 사랑의 존재법으로 존재하신다.
아버지는 자기 속의 생명을 아들에게 주어 아들을 낳으셨다.
생명으로 태어난 아들은 아버지를 사랑하여 온전히 복종함으로 아버지의 기쁨 안에 거하였고 아버지만을 드러내었다.
하나님은 이 사랑과 기쁨 안에서 사람에게 아들 안의 생명인 영생을 주시기로 약속하시고 사람을 지으셨다.
그러나 아들이 생명을 주시러 오기전에 아담이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떠나 자기를 사랑하는 고통에 빠지게 되었다.
사람은 불의하여 하나님을 떠났으나 불의하실 수 없으신 하나님은 창세전 약속인 영생을 위해 아들을 보내시고 죄사함과 영생을 위해 십자가 사건을 허락하셨다.
아들을 믿고 십자가 사건을 통해 아버지를 아는 것이 진리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말씀, 진리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생기며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게 된다.
진리를 깨닫고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은 자는 더 이상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다.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여 아버지를 사랑하신 그 사랑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게 된다.
3.나의 묵상
나는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이 없는 자였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였으나 결국 내 자신의 만족을 위해 사는 자였다.
교회를 섬기고 봉사하고 사역하는 모든 일들이 결국 나의 만족이었다.
사실, 경건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교회 안에 있었으나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을 아는 진리가 없었다.
나를 위해 십자가에 아들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은 알았으나 그 사랑과 깊이가 얼마나 큰지는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말씀을 들었으나 여전히 내 인생을 얻기 위해 사는 자였다.
참으로 어리석은 자가 되어 세상에 미혹되는 자였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인생은 갈수록 멀어져 갔다.
마침내 아간이 처한 아골골짜기가 나의 주소가 되었다.
깊은 고통과 절망 가운데 부르짖는 자가 되었다.
그 부르짖음이 나의 목마름이 되어 하나님을 아는 참된 기쁨을 구하였다.
항상 있고 살아있는 말씀으로 살며 자족하는 삶을 구하였다.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한채 방황하며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었다.
그 목마름의 끝에 생수의 복음을 들고 오신 그리스도를 만났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 속에서 영생에 이르는 생명이 되는 진리임을 깨닫게 하셨다.
비로소 진리의 말씀 앞에 나아갔다.
나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고,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로 부르면서 모든 경건의 모양을 내었으나 아직도 아담 안의 실존으로 사는 옛사람이었다.
여전히 자기 인생을 위해 살며 자기 만족을 구하고 하나님을 덜 사랑하는 자였다.
종교적 위선으로 가득한 자를 말씀 앞에서 발견하며 십자가에 죽기에만 합당한 자였다.
탕자와 같이 염치없이 아버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런데 이미 문어귀에 나와 기다리시는 아버지는 이미 아들 안에서 나를 용납하시고 나를 품어주셨다.
만물보다 크신 아버지의 사랑이 내게 실재가 되었다.
내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나를 위해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주시고 이제껏 나를 기다려주신 아버지의 사랑에 감격하며 날마다 말씀 앞에 엎드리게 하신다.
아~내가 무엇이기에 그리 하시는가?
아무것도 아닌 자로되 오직 창세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은혜가 아들을 통해 드러났음이다.
철저한 자기부인을 통해 생명을 내어주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감격한다.
이제 그 사랑이 날마다 나를 살게한다.
오늘 생애 처음으로 교회에서 설교를 한다.
신학원 목회실습 과제로 설교하여 평가받는 것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두렵고 떨림으로 엎드리며 준비하였다.
그런데 내 안 깊숙한 곳에 나를 드러내려고 하는 자기사랑이 꿈틀거린다.
아~주님은 완전한 자기부인을 통해 생명을 주셨음을 기억하라 하신다.
여전히 아담 안에서 자기만족을 위해 자기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덜 사랑하는 나를 본다.
이모습 이대로 십자가로 나아간다.
그런 나를 위해 이미 십자가에 오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죽고 장사된다.
완전히 자기를 내어주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살게 하시고 아버지 품에 안겨 눈을 뜬다.
4.묵상 기도
아버지, 심히 어리석고 미련한 자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였으나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나의 만족을 위해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런 나를 공의대로 심판하시고 생명에 이르는 진리의 말씀을 알게 하셨습니다.
이제 날마다 아버지의 성실을 힘입어 말씀 앞에 머무르며 나의 나됨이 오직 주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나의 만족을 버리고 오직 나를 위해 생명까지 내어주신 그리스도 안에서 주를 사랑하며 아버지 품에 거하게 하소서.
그리하여 오늘 하루 살아가는 동안 나를 통하여 그리스도만 드러나게 하소서.
내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나를 위해 아들을 보내시고 십자가에 내어주신 하나님의 크신 일을 증거하게 하소서.
아버지, 자기부인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음을 아나이다.
아담 안에서 죄의 종노릇하면서 사망을 삯으로 받을 운명에서 건져내어 생명 가운데 거하게 하시는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는 한날 되게 하소서.
오늘 주일입니다.
온 성도들이 함께 모여 예배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복된 날 되게 하소서.
하나님을 사랑하여 진리의 말씀 안에 거하게 하소서.
자기를 사랑하여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오니 완전히 자기를 부인하신 그리스도 안에 온전히 거하게 하소서.
아버지, 오늘 부족하고 미련한 자가 설교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압니다.
주께서 행하셔서 성령으로 하나님의 크신 일을 증거하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