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조기 교육, 이래서 반대한다
박거용(상명대 영어교육과 교수)
최근 한 인터넷 조기영어교육 사이트 설문조사에 따르면, 총 1218명의 응답자들 가운데 절반 이상인 53%의 부모들이 만 3세 이전에 영어교육을 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에서 태교부터 시작한다고 답한 응답자도 20대에서 3%, 30대에서는 11%나 차지하고 있다. 이에 반해 초등학교 취학 이후에 영어교육을 시킨다는 응답자는 겨우 4%에 불과했다.
유아들 대상 영어학원의 월 평균 수강료는 40만~70만원 선이고 심지어 원어민 강사의 집중레슨은 100만원을 훨씬 웃도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영어 학원 수는 지난 10년간 2배 가량 늘었고, 시장 규모는 10배 정도로 뛰었으며, 영어 사교육 시장 규모는 연간 10조원 가까운 수준(우리나라 2006년 교육부 예산은 약 32조원 정도)으로 파악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서 최근 영어 발음을 원어민처럼 유창하게 하기 위해서 서울의 부유층 거주 지역에서 혀 수술이 유행한다는 사실이 외국언론에서 ‘믿거나 말거나’ 식으로 보도된 사실까지 고려하면, 우리 국민 모두가 조기영어 교육열풍으로 이런저런 면에서 피해를 입고 있는 셈이다.
이 모두가 10년 전 1997년부터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를 의무적으로 거의 준비없이 가르쳤기 때문에 생겨난 세계적으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진기한 현상들이다. 최근 미국으로의 원정 출산이 늘어난다는 현상을 접하게 되면, 이제 우리 교육부가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는 나라에 태어나지 못한 것을 원통하게 만드는 외국어교육정책을 펴고 있음이 분명해진다.
교육부는 지난 1월 11일 발표한 ‘제2차 국가인적자원개발 기본계획(2006-2010년)에서 초등학교 3학년 이상 받고 있는 영어 교육을 올 하반기부터 1,2학년에도 시범 실시하고 2008년 후반기부터 1~6학년에 전면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이번에도 교육부 식으로 여전히 사전 의견 수렴 없이 발표되었다. 실시 이유는 어차피 유치원부터 영어교육에 열을 올리고 있고, 이미 30%의 초등학교에서는 1~2학년에게도 방과 후 특기적성 교육을 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더 나아가서 이러한 조기영어교육확대가 사교육의 사각 지대인 농어촌이나 도시 빈곤층 학생들에게 영어교육의 기회를 제공해서 양극화 현상을 줄일 수 있다고까지 억지 춘향격 주장을 하면서 10년 전에 준비되지도 않았고 바람직하지도 않았던 초등 3년 영어교육실시의 실패를 합리화하고 있다.
그러나 조기영어 확대는 ‘오히려’ 계층간 격차를 심화시킬 것이다. 왜냐하면, 영어 교사와 교재가 제대로 준비 안된 영어 교육은 사교육 의존도를 높이고, 그래서 부모의 재력이 자녀의 영어 실력을 세습하고, 결정하는 상황을 확대 재생산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영어 조기 교육에 반대하는 더큰 이유는 그것이 우리 미래 세대의 자기 정체성과 주체성 형성을 방해하여 국적없는 인간을 만들어 낼 것이기 때문이다. 세계화 시대에 필요한 것은 생각은 세계적으로 하더라도 발은 우리 땅을 딛고 일어서는 태도이다. 세계화시대일수록 영어의 세계 지배를 막아내면서 다양한 언어 즉 다양한 삶의 형태를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더욱 더 필요하다. 의사 소통 중심의 영어는 중학교 3년이면 충분하고, 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는 자신의 전공에 관련된 전문 통역가나 번역가 양성을 위해 심화된 영어를 집중적으로 연습하도록 하는 교육체계를 구축하면 된다.
위에 든 여러 가지 비언어적인 이유들을 무시하더라도, 언어학자들간에도 외국어 학습 이론에 대하여 의견이 대체로 3가지로 구분되어있으며, 그 어느 것도 과학적으로 완전히 입증된 것이 없는 상태이다. 예를 들어서 행동주의자들은 언어습득을 습관 형성으로 여기며, 그래서 빨리 외국어를 시작하면 더 빨리 습관이 든다고 믿는다. 그러나 생득주의자들은 인간이 천부적으로 언어 습득 능력을 가지고 태어나서 인지적 과정을 통해 언어를 배운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구성주의자들은 언어는 표현하기 원하는 언어의 기능을 중심으로 발달하기 때문에, 학습자는 필요에 따라 입력된 정보를 재구성하여 사용한다고 본다. 행동주의 이론을 제외하고는 어느 이론도 조기교육을 강조하고 있지 않다.
언어학적으로도 판명되지 않은 통념에 휘둘리지 말고 우리는 더 이상 온 국민을 영어에 주늑들게 만들지 말고, 영어 실력이 신분 차별의 기준이 되는 사회 풍토를 바꾸어야 한다. 2004년 문화관광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 국민의 국어실력은 100점 만점에 30점도 안되며 해마다 그 점수도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어떤 교육에 강조를 해야 할지 논의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