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축년(1457, 세조3) 10월 일에 내가 밀양에서 경산을 거쳐 답계역에 이르러 하루를 묵었다. 꿈에 한 신인(神人)이 칠장복을 입고 헌걸찬 모습으로 나타나서 “나는 초나라 회왕*의 손자 심(心)인데, 서초패왕 항우에게 시해되어 침강(郴江)에 던져졌다.”라 하고는, 홀연히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나 놀라서, “회왕은 남초(南楚) 사람이고, 나는 동이(東夷) 사람이니, 거리는 만여 리가 넘고, 세월 또한 천여 년이 되는데, 꿈속에서 만나니, 이 무슨 조짐이란 말인가? 또 역사를 상고해 보면 강(江)에 던졌다는 말은 없는데, 혹시 항우가 사람을 시켜 몰래 격살하고 그 시신을 물에다 던져버렸던가. 알 수 없는 일이다.”라고 생각하며, 마침내 글을 지어서 조문한다.
하늘이 모두에게 본성을 주었으니 이 세상 누군들 삼강오륜 모를 건가. 중화라고 많이 주고 동이라고 적게 주며, 옛날엔 있었지만 지금인들 없겠는가. 이로써 동이 사람 나는, 천 년이 지난 뒤에 삼가 초나라 회왕을 조문하노라.
진시황 포학하여 사해 피바다 되니, 작고 큰 물고기들 살길 찾아 헤매었지. 산동 여섯 나라의 왕손이라 하여도 여기저기 유랑하는 무지렁이 백성일 뿐. 초나라 장수 후예 항우는 진승 따라 일어나 왕손 찾아내 끊긴 제사 이어줬네.
의제는, 하늘의 명을 받아 제위에 오르니 이 세상에 진실로 더 높은 이 없었으며, 유방을 보내어 관중에 먼저 들이니 또한 천자의 인의를 볼 수가 있었도다. 항우는, 발끈하긴 양과 같고 탐욕은 이리 같아 초나라 상장군 송의**를 죽였으니, 어찌 잡아들여 목을 치지 않았는가. 형세 어긋나니 왕 위하여 더욱 두렵도다.
끝내 배신한 자에게 참혹하게 죽으니, 과연 천운은 틀어지고 말았네. 침강의 산 우뚝하여 하늘을 찌를 듯하나 지는 해 잡지 못해 저물어가고 침강의 물 도도하여 영원히 흐를 듯하나 지난 물결 되돌리지 못하네.
한스러라 이 세상 언제나 끝이 나서 구천을 떠도는 왕의 영혼 쉬어보려나 나의 충심 뜨거워 금석을 꿰뚫으니 홀연히 왕께서 내 꿈속에 들어오셨네. 내 평소 주자 필법*** 사모하여서, 이제 제문 짓고 술잔 부어 제사 올리니, 바라건대 영령이시여! 부디 와서 흠향하소서.
* 회왕 : 회왕은 의제 심의 조부이나, 의제도 회왕으로 불렸으므로 맨 앞의 회왕을 제외하고는 모두 의제를 가리키는 명칭이다. ** 송의 : 의제가 상장군으로 삼은 사람이다. 여기서는 김종서에 비유한 것이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위하기 전에 그의 우익인 김종서를 죽인 것을 말한 것이다. *** 주자의 필법 : 필법이란 공자의 춘추필법으로 역사서술방식을 말하는데, 간단히 설명하면 역적을 역사에 분명히 기록하여 역사로서 심판한다는 뜻이다. 주희도 역시 이 방식을 이어 『통감강목』을 저술, 촉한정통론을 주장하여 위나라 조조를 윤통(閏統)으로 정리하였다.
丁丑十月日。余自密城道京山。宿踏溪驛。夢有神人。被七章之服。頎然而來。自言楚懷王孫心。爲西楚伯王項籍所弑。沉之郴江。因忽不見。余覺之。愕然曰。懷王。南楚之人也。余則東夷之人也。地之相去。不翅萬有餘里。世之先後。亦千有餘載。來感于夢寐。玆何祥也。且考之史。無投江之語。豈羽使人密擊。而投其尸于水歟。是未可知也。遂爲文以吊之。 惟天賦物則以予人兮。孰不知其遵四大與五常。匪華豊而夷嗇兮。曷古有而今亡。故吾夷人又後千祀兮。恭吊楚之懷王。昔祖龍之弄牙角兮。四海之波殷爲衁。雖鱣鮪鰍鯢曷自保兮。思網漏以營營。時六國之遺祚兮。沉淪播越僅媲夫編氓。梁也南國之將種兮。踵魚狐而起事。求得王而從民望兮。存熊繹於不祀。握乾符而面陽兮。天下固無尊於芊氏。遣長者以入關兮。亦有足覩其仁義。羊狠狼貪擅夷冠軍兮。胡不收以膏齊斧。嗚呼。勢有大不然者。吾於王而益惧。爲醢醋於反噬兮。果天運之蹠盭。郴之山磝以觸天兮。景晻曖而向晏。郴之水流以日夜兮。波淫泆而不返。天長地久恨其曷旣兮。魂至今猶飄蕩。余之心貫于金石兮。王忽臨乎夢想。循紫陽之老筆兮。思螴蜳以欽欽。擧雲罍以酹地兮。冀英靈之來歆云。 - 김종직(金宗直, 1431~1492), 「무오사화사적(戊午史禍事蹟)」, 『점필재집(佔畢齋集)』
글쓴이 : 서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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