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컬레이터 외 1편
이승권
이미 꺾인 계단의 등이 다시 굽는다
사람들이 지운 도깨비 머리의 뿔이
발바닥에서 솟아나며 부스스 일으켜 세우는 각
한꺼번에 쏟아지려는 물이
수차를 돌려 촤르르 펼치는 길
방금 알에서 깬 바다거북들 앞다투어 갈 길 서둘 때도
거기서 물 냄새 풍겨오는 것처럼
제각기 세운 뿔의 방향으로
굽은 등이 수평으로 펴질 때마다
사람들은 바쁘게 어디론가 가고 있다
살아온 무게 따위는 상관없이
종점의 방향도 모른 채
신의 어깨에 올라타려 하고 있었다
오르고 내려오는 모든 발이 접었다 펴지는
축지법에 돌입
뿔 위의 공중을 밀어 올리고 있다
매화의 길, 나의 길
아직 차가운 문밖 세상이
무에 그리 궁금한 건지
매화는 여린 얼굴로 빼꼼히 내다보고 있다
첫 출근길 소용돌이 속 들어가던
내 환상의 그날이 어김없이 올해도
툭툭 꽃으로 터지고 있다
동생을 등에 업은 맏딸 매화는
앳된 향내마저, 머지않아 땀내로 바뀔 햇살 속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그냥 그 자리에 홀로 우뚝 서서
눈빛만으로도 위안을 주던 매화가
손마디 검게 그을린 내게
하얀 손수건 건네며 미소 짓는 것인가?
쌀쌀하게 이른 날씨에도 떨고 있는
얇은 입술이 안쓰러워, 나 오늘 외투를 벗어
허리 아래를 묶어주기로 한다
목련보다, 개나리, 벚꽃보다 가난해서
일찍 일어나 꽃피워야 하는 매화는
제 갈 길 찾아 나서는 길에서
한동안, 고라니처럼 마주한 나를
뜨거운 눈빛 끝에 세워둔다
2021년 계간문장 시 부문 신인상, 2023년《수필과비평》등단
대구시인협회, 대구문인협회, 대구형상시학회, 수필과비평작가회의, 천마문인협회 회원
시집:《귀띔》 이 있음. shawn3765@naver.com
출처: 대구시인협회 원문보기 글쓴이: 겨울판화(박윤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