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속의 한국문화를 찾아서
1, 다까마쯔 고분
2013년 6월 17일
오사카 간사이 공항에 발을 디뎠다.
간사이 공항은 1991년에 건설되어 1994년에 개항했다.
당시 아시아의 허브로 출발했으나 10년이 지난 지금
인천공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초라하게 느껴졌다.
간사이 공항은 인공섬에 만들었는데 섬이 가라앉는 것을 대비해
터미널을 지탱하는 기둥 맨 밑에 두꺼운 금속판을 깔고
가라앉은 만큼 금속판을 고이는 방식으로 수평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의 인천공항도 같은 방식으로 침하를 막는다고 한다.
공항 밖으로 나오자 일본에 살고 있는 은춘옥 선생이 우리를 맞았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supil.or.kr%2Fessay%2Ftalkbox%2Ftalkbox2_files%2F4%2F2013063.jpg)
첫 번째로 찾아간 곳이 다카마쯔(高松塚)고분이었다.
이 고분은 일본에 남아있는 확실한 고구려계 고분으로
죽순을 캐던 농부에 의해 발견되었는데 일본 전후 최대의 발굴로 평가 되었다.
1972년에 근처에 있는 가시하라 고고학 연구소에 의해 발굴되었는데
이 고분은 직경 18M 높이 5M의 원형으로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당시 일본학자와 남북한 학자들까지 발굴 결과를 놓고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현장에는 진짜 고분은 폐쇄해놓고 전시관에 무덤 내부를 그대로 재현해 놓았는데
부장품들은 거의 도굴되어 유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supil.or.kr%2Fessay%2Ftalkbox%2Ftalkbox2_files%2F4%2F20B69D1.jpg)
그러나 고분의 천장과 벽에 그려진 그림들을 보는 순간
탄성이 절로 나왔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supil.or.kr%2Fessay%2Ftalkbox%2Ftalkbox2_files%2F4%2F028.jpg)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supil.or.kr%2Fessay%2Ftalkbox%2Ftalkbox2_files%2F4%2F20B18C1.jpg)
천장에는 흰 점으로 표시된 북두칠성등 성수도가 있고
사방 벽에는 우리 눈에 너무도 익숙한 사신도(四神圖)가 뚜렷하게 보였다.
2011년 내가 국내성을 찾았을 때 5회분묘에서 본 사신도보다 색감이 훨씬 선명했다.
현무, 주작, 백호, 청룡은 물론 삼족오, 무용총에서 본 여인도 등 모든 벽화들이
천손강림 신화를 가진 고구려인들의 기상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supil.or.kr%2Fessay%2Ftalkbox%2Ftalkbox2_files%2F4%2F20CDE713r.jpg)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supil.or.kr%2Fessay%2Ftalkbox%2Ftalkbox2_files%2F4%2F20B585sf.jpg)
벽화에 그려진 남자들은 고구려인들처럼 머리에 모자를 썼고
바지 위에 긴 두루마기를 입은 모습이었다.
여자들은 머리를 뒤로 묶고 소매가 긴 상의에
땅에 끌릴 정도로 긴 치마에도 허리띠를 맨 모습인데 색동주름이 선명했다.
이는 덕흥리 수산리 고분 그리고 쌍영총 고분의 벽화와 너무도 똑같았다.
이 고분의 벽화를 그린 사람은 분명히 고구려 화가집단일 것이다
![](https://img1.daumcdn.net/relay/cafe/original/?fname=http%3A%2F%2Fwww.supil.or.kr%2Fessay%2Ftalkbox%2Ftalkbox2_files%2F4%2F206E431.jpg)
610년 고구려가 야마토 정권에 보낸 승려집단 가운데
호류지 (法隆寺)의 금당에 벽화를 그린 담징도 그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이들은 다까마쯔 고분 외에도 다른 고분들을 축조했을 것이고
근처의 능선에는 고분처럼 보이는 곳들이 많이 있었다.
언젠가 그 고분에서는 또 어떤 우리 문화가 고스란히 살아서
과거 우리의 선조들이 일본땅에 남긴 흔적들을 우리에게 선물할 것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