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 수 1천여 명이 넘는 교회에서 사역하다가 50명이 채 안 되는 교회로 옮긴 목사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보통 이런 경우는 담임 목사님이 ‘무슨 문제’를 일으킨 경우다. 그런데 담임으로 사역하는 동안 교인 수가 60% 이상 늘었고, 교육관을 건축했고, 다양한 문화사역들을 순조롭게 이어가고 있는 목사라면, 물론 재정이나 이성 문제 등의 스캔들도 없는 목사라면 이야기는 다르다. 5년 반 전, 서울시민교회에서 방학동 푸른숲교회로 옮긴 최한주(64) 목사 이야기다.
78세의 어느 노목사가 은퇴하면서 최한주 목사에게 후임자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친구 목사님의 소개로 헌신예배를 인도한 적이 있는 교회였다. 교단에 소속된 교회는 아니지만 교회 부지가 마련되어 있고 이미 수십 명의 성도가 있으니 괜찮다 싶었다. 사역하고 있는 교회의 부목사 중 한 명을 보내려고 했으나 가겠다는 사람은 없었다. 요즘 젊은 목사들이 도전정신이 부족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기도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최한주 목사에게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기도의 응답은 받았지만, 인간적인 고민은 있었다. 결혼을 앞둔 자녀의 아버지로서의 체면, 무슨 불미스러운 일로 쫓겨 가는 것 아닌가하는 괜한 오해를 살까 걱정하는 마음 등등. 가족회의를 열었다. 자녀들은 “저희들 때문에 주저한다면 우리 아버지가 아니다.”라고 말해주었다. 아내도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목회의 자산이 된 독일에서의 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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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공부를 인도하는 최한주 목사 |
최한주 목사는 한때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대구 경북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했다. 결핵에 걸려 죽음 직전까지 갔다. 50세까지만 살게 해주시면 하나님께 충성하겠다고 기도했다. 각혈은 멈췄고, 고신대 대학원에 진학했다. 1983년 목사안수를 받았다. 서울 등촌교회의 부목사로 일하다 이듬해 독일로 갔다. 당시 독일에는 목회자가 부족했다. 제대로 된 한인 교회도 찾기 힘들었다. 사륙제니 삼칠제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헌금이 나오면 7은 목사가 하고 3은 교회 경비로 쓴다는 게 삼칠제입니다. 제대로 된 교회가 없다보니 신학적 훈련을 받지 못한 사람들, 구원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이 그런 식으로 운영하는 교회들이 난무했지요.” 최한주 목사와 고신대 동기들이 독일 지역 곳곳에 교회를 세우면서 이해하기 힘든 방법으로 목회하던 교회들은 자취를 감췄다. 프랑크푸르트와 마인츠 등지에 4개 교회를 개척했다. 독일은 미국과는 달리 한 곳에 몇 천 명 이상 교민이 모여 사는 곳이 드물다고 한다. 200명에서 500명 정도의 규모가 대부분이다. 개척 초기에는 오전 9시에 마인츠에 있는 첫 교회에서 설교를 하고, 차례대로 네 교회를 다 돌아 집에 오면 새벽 1시였다. 주일 하루 주행거리가 620Km였다. 독일 다름스탓한인교회에서 5년 동안 목회를 했다. 힘들었지만 그만큼 보람도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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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선교 |
“목회자가 현실 안주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어디에서든지 복음을 위해 살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기쁨을 주시고 좋은 결과를 주신다는 사실을 아무 연고도 없던 독일에서 교회를 개척하면서 몸소 체험했습니다.”
귀국해서도 마산제일교회, 부산대신동교회, 서울시민교회 등 고신교단에서는 나름 규모있는 교회들의 청빙을 받아 큰 어려움 없이 목회할 수 있었다. 그런데 푸른숲교회에서는 청빙 제의를 받은 것도 아닌데 계속해서 목회자를 못 구하는 상황을 지켜보며 마음에 거룩한 부담이 왔다. 그 부담을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받아들인 것.
“당회를 소집해 장로님들에게 결심을 밝혔습니다. 다들 깜짝 놀랐지요. 만류하는 분들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제 결심이 확고한 것을 알고 더 이상 말리지 않았습니다. 다 내려놓으니 홀가분했습니다.” 주일날 예배시간에 성도들에게도 이야기했다. “포기하고 내려놓도록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르게 하고 싶다.”고. 성도들은 떠나고자하는 최 목사에 대한 아쉬움과 서운함을 눈물로 쏟아냈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어우러져 숲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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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요일마다 활동하는 전도대 |
“서울시민교회에서 사역할 때 친구인 정주채 목사가 있던 향상교회, 잠실중앙교회와 등촌교회가 매년 1억 씩 출자하고, 매달 생활비로 2백만 원을 지원해서 수도권 지역에 개혁주의적인 좋은 교회를 세우자는 의견을 함께 한 적이 있어요. 그렇게 탄생한 것이 수도권개척교회협의회입니다. 매년 교회를 하나씩 세워 나가기로 했지요. 첫 교회를 세우고 나서 제가 정주채 목사에게 두 번째는 우리가 나서자했는데 정말 제가 나서게 됐어요.”
서울숲교회는 최한주 목사가 부임하고 5년 반 동안 꾸준히 성장해 불혹(40주년)을 맞았다. 100여 명이 모이는 교회로 안정적인 목회를 펼치고 있다. 지역의 관공서와 연계해 이웃을 돌보는 데도 앞장서 도봉구 민간복지 거점기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최한주 목사는 20년 동안 인도의 한 지역을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 나갈랜드 지역에 학교를 세우고 현지인을 인재로 양성하는 사역이다. 그동안 6명의 인도 청년을 초청해 학비와 생활비 전반을 지원하면서 박사학위를 딸 수 있도록 도왔다. 이런 최한주 목사의 인도 선교 공로가 인정받아 지난해 5월, 칼빈신학교로부터 명예선교학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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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 노인 초청 점심 나눔 |
최한주 목사는 “광고에서 본 적이 있는 문구인데 ‘아무리 큰 나무라도 한 그루로는 숲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주목했으면 합니다. 목회자들이 큰 교회 목회자만 되려고 하고, 교회들이 하나의 큰 교회로만 성장하고자 한다면 결국 한국 교회는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어요.”라고 말한다. 아무리 걸출해도 한 사람만으로는 교회가 될 수 없듯, 아무리 큰 교회라도 교회 하나만으로는 숲이 될 수 없다는 것. 그러나 모든 교회가 다 작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큰 교회는 선교나 이웃 섬김 등을 규모 있게 할 수 있다. 단지 기형적으로 큰 교회 목회만 지향하고, 교회의 양적 성장에만 몰두하는 요즘 한국 교회 현상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다.
많은 사람들이 내려놓음을 이야기하지만 그 내려놓음이 화제가 되는 이유는 내려놓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건 알지만 내려놓기가 쉽지 않아서일 게다. 그리고 실제로 내려놓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일 게다. 큰 교회에 있을 때는 사찰집사님의 몫이었던 화장실 청소며, 도봉산 자락을 마당삼은 푸른숲교회에 떨어지는 낙엽들을 쓸어내며 그동안 느끼지 못했던 또 다른 기쁨을 느낀다는 최한주 목사.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돌아오는 길, 참 마음이 따듯했다. 지역과 함께하는 작은 교회들이 많아지고 큰 교회도 건강성을 회복해 그리스도의 ‘푸른 숲’이 올해는 한층 더 울창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푸른숲교회 www.purnsoop.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