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 파른
비탈에 집채만 한 바위를 끼고 들어선 정혜사.
겉에서만 봐도 비범한 기운이 감돈다.
단풍길 천연 동굴은 전율을 일으킬 정도다.
만공 스님이 자연석을 다듬어 만든 석문.
산사의 길모퉁이를 서성이며 디카 한 장
남겼다.
열린 빗장 문으로 살그머니 몸을 밀어 넣었다.
평화로운 절 마당이다.
졸졸 흐르는 약수 한 종기 들이키니 왜 이리
시원하고 달콤하더냐.
599년 지명법사가 창건한 정혜사는, 덕숭산
수덕사의 말사다.
만공선사가 선풍을 진작시킨 정진처.
매철마다 수 십 명의 스님들이 용맹정진 하는
우리나라 대표적인 선원이다.
정혜사 앞마당은 덕숭산 최고의 조망처로 꼽
히지만, 스님들의 하안거, 동안거 동안에는 일
체 출입이 금지된다.
툭 트인 풍광을 못보고 민망스러이 올랐던 산
을 다시 내려가는 불상사가 생긴다면 어쩔 것
인가.
침묵沈黙 !
우연히 찾아 왔던 신선神仙도 감도는 정적.
홀연히 태초太初 로 돌아가려는가.
누구도 무엇 하나 간섭할 수 없는 정적만 바
람에 흘러 다닐 뿐.
넓은 뜰엔 고요만 가만가만 흩날린다.
세상살이 굴곡이 있다지만 무엇이 두려울 손가.
단정한 기와너머로 연신 기웃대니 어깨 맞댄
단풍 사이로 수덕사가 펼쳐진다.
폭 들어앉은 수덕사가 한 폭의 산수화로구나.
조선시대 서거정은 수종사(경기 남양주) 뜰에서 보이는 두물 머리와
피어오르는 북한강의 운무를 동양 최대의 조망처라 했지만, 나는
덕숭산(충남 예산) 정혜사 절 마당에서 내려다보이는 수덕사와 저 겹
겹이 싸인 산 정상의 운무를 일품이라 일러두고 싶다.
어찌 신비롭지 아니할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