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북 두 분 하할(下喝)의 영연일구(靈然一句)
2026년 10월 16일
장기영 선생 : 참선이란 본래 나를 보는 것이다(2025년 12월 2일)
북극인 선생 : 본래 나를 볼 수 있을까? 눈이 눈을 볼 수 있을까?(2026년 10월 15일)
두 분 화두는 우리 모두에게 좋은 말씀입니다.
좋은 말씀 한마디는 모든 설명을 뛰어넘어 삼승도 넘어 수양공부 없는 부처에 이르렀습니다.(靈然一句超群象,迥出三乘不假修)고 찬양하는 말에 닿았습니다.
볼 수 없다면 눈은 있으나 없으나 뜨나 안 뜨나 똑같습니다. 눈이 눈을 볼 수 있을까 크고 좋은 의문입니다. 朱熹도 마음이 마음을 볼 수 없다고 의심하였답니다.(觀心說云分心爲二,言之謬矣) 주자도 눈을 뜨지 못하고 세상만사의 잘잘못을 따지고 사람들의 臧否를 따졌으나 늙어서야 후회하였답니다.
朱熹,「觀心說」︰
故以心觀物,則物之理得。今復有物以反觀乎心,則是此心之外,復有一心而能管乎此心也。然則所謂心者,爲一耶?爲二耶?爲主耶,爲客耶?爲命物者耶?爲命於物者耶?此亦不待教而審共言之謬矣。
불교에서는 포도알을 바꾸라고 몽둥이로 때리고 문밖으로 내쫓습니다. 중국 당나라 교종이나 당나라 중기부터 북송까지 선종에서도 중요한 公案입니다. 중국 도교와 성리학도 마찬가지로 새로운 눈을 떠보려고 先天이다 뭐다 서로 떠들면서 마음을 졸이며 살았습니다. 우리나라 삼국시기와 통일신라 또 고려시기 스님들께서도 발원하셨습니다.
여러 스님이 손끝과 팔을 燒香하고 울며불며 발원하기까지 어찌 쉬운가요? 또 어찌 소원을 쉽게 이루겠습니까? 저 멀리 숭산 달마 선사부터 높고 낮은 산 또 산속 작은 암자에서 발원하고 정좌하다가 이래저래 돌아가신 스님과 거사는 얼마나 많았습니까! 우리나라 높은 산과 낮은 산 또 들이나 바다를 바라보는 언덕에서는 얼마나 많은 스님이 발원하여 앉아있다가 돌아가셨겠습니까! 집에도 못 가고 여기저기 떠돌다가 명절에는 더욱 외롭던 浪子 스님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모두 대장부이셨습니다. 臨濟 義玄 스님의 심절한 방할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눈의 眼識이 허구한 날 순간(一念)마다 有染의 제6식과 俱生하여 分別하니까 사람도 산천도 實相이 보이지 않습니다. 인도 부처님도 法稱 스님도 중국 스님도 한국 스님도 모두 分別하는 제6식을 버리고 現量하는 法眼을 눈뜨라고 말합니다. 눈만이겠습니까? 나머지 네 덩어리까지 다섯 덩어리(五蘊, 五陰, pancaskandha)에서 分別을 버리면 나(神我, 假我, atman)도 산천(山川, 色法, dharma)도 사라진 뒤에야 눈은 無漏의 成所作智가 된다고 합니다. 오죽하면 능엄경에서는 耳根圓通까지 광고하였습니다.
나한이 되기 어렵고 보살 되기는 더욱 어렵고 멀고 부처 되라는 말은 꺼내기조차 어렵습니다. 卽生成佛은 사탕 발린 말이고 成佛하려면 몇 대겁 몇십 대겁 동안 수행하랍니다. 참선 하나뿐이겠습니까? 사념처와 오정심관은 무엇이고 선바라밀부터 육도의 온갖 수행은 어떻습니까? 보살도 般若의 自救와 慈悲의 普度衆生 두 과목을 잘하여야 한답니다. 마하지관은 어떻고 성유식론은 어떻겠습니까? 교종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말씀대로 북극인은 맹자가 칭찬한 北宮黝처럼 용감하시지요? 큰 용기를 내셔서 발원하시고 포도알 바꾸시기를 바랍니다. 보살도 중생도 누구나 법안을 타고났고 또 바꾸려는 의지도 타고났다(本具)고 말하니까 용기를 내보세요! 몸이 아프면 병원에 찾아가듯이 눈을 뜨시려면 공양미 갖고 좋은 스승을 찾아가시길 바랍니다.
장기영 선생이 몇십 년 信解한 말씀(參禪以求見劫前自己法身, 道在是矣)이 誤人欺世하지 않겠지요. 북극인 선생의 大疑는 大成就를 이루실 것입니다. 두 분의 말씀 모두 정말로 靈然一句입니다.
첫댓글 靈然一句 본래 뜻은 선종 어록에서 스님 말씀을 학생이 듣고 극진하게 찬양하는 아첨하는 말이었고 나중에는 칭찬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서로 心契하여야 話頭도 順口爆出합니다. 서로 心數가 다르면 어쩌겠습니까? 옛날 당나라 臨濟 義玄禪師(?-867)가 젊을 때 여기저기 다니면서 나누었던 도장 깨기 대화를 보면 처음에는 同道를 만나기 어려웠으나 겨우 善緣을 만났습니다. 龍光 선사를 만나 “不展鋒鋩,如何得勝?”이라고 말한 뒤에 떠나고 明化 선사를 만나 “老漢,話頭也不識”라고 말하고 떠나고 鳳林 선사를 만나 “路逢劍客須呈劍,不是詩人莫獻詩”라고 대화를 거절하고 눈치도 못 채는 鳳林 선사에게 “石火莫及,電光罔通。”라고 평론하고 떠났습니다. 스승 벌의 미친 普化 선사와 엄격한 克符 선사가 오히려 義玄 선사의 상좌가 되어 도와주었답니다. 돕는 데 무슨 師弟가 있거나 학술에 老娫이 있겠습니까? 여러분께서도 좋은 善緣를 만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