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39] 권우삼 (權佑三) - 말보다는 실천을 앞세우며 7. 강원도에서의 전도 생활
1 그때는 승공 강의를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던 초창기였기에 인원 동원이 잘 안되어서 몇 번씩 찾아간 후에야 강의를 하게 되는 곳도 있었다.
2 어느 곳은 한 반이 30여 리나 되는 먼 거리에 걸쳐 흩어져 있어서 한꺼번에 모아서 강의를 하기란 여간 힘이 드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3 또한 그 시절은 남녀가 한자리에 모이기란 대단히 어려운 때였지만, 하늘의 명령 따라 부지런히 찾아다니며 강의를 하였다. 4 그리고 그곳에서 옥수수밥을 처음으로 먹게 되었는데, 소화가 잘되지 않아 애로를 느끼기도 하였다.
5 이발할 돈 몇 십 원이 없어서 40여 리나 떨어져 있는 김동순 식구 집을 걸어서 찾아가 머리를 깎고 돌아와서는 저녁도 먹지 못한 채 자던 일도 있었다. 또, 스님 한 분을 전도하려고 3일 동안 금식을 하면서 강의를 하기도 했다. 6 부흥회 등의 활동을 하다가 양구로 옮겨가서 먼저 한 일은 4배가 운동을 위한 사진 촬영이었는데, 어느 때는 사진이 나오지 않아 세 번이나 다시 촬영하는 일도 있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힘과 지혜를 주신 하늘 앞에 감사를 드린다.
7 식구를 수습하기 위해 당시 김현철 지역장님과 하나 되어 부흥회도 하고, 중학교 과정의 학원 강의도 하였다. 그때 학원에 나오던 학생이 그 후 1800가정 축복을 받아 전남 화순 대원으로 와 활동하던 중에 만나게 되었는데, 그 기쁨이란 이루 측량할 수 없었다. 8 식구들과 함께 모를 심어 주고 번 돈으로 교회 펌프 우물을 해놓던 일, 생활이 어려워서 성미를 거두러 다니던 일, 배를 타고 나무를 해 가지고 오던 일, 모두가 지나간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9 양구에서 활동하다 고성 지역으로 가게 되었다. 40일 동안 고성에 있으면서 승공 강의를 많이 하였는데, 승공 강의가 끝난 후에는 혈서를 써서 주민들에게 감명을 주기도 하였다. 10 경제적으로 어려운 때 한인수 지구장님은 나를 고성 지역장으로 세우기 위해 교회를 얻으라고 전세금을 주셨다. 그 돈으로 다른 사람과 함께 집을 계약했으나 나의 실수로 인하여 교회도 못 얻게 되고, 돈도 못 찾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11 세상을 너무나도 모른 무지의 결과였던 것이다. 일을 다 수습하지 못한 채 고성을 떠나 강릉 지역에 갔다. 지교회에서 부흥회와 아울러 승공 강의도 하고, 해수욕장에서 하는 사격장을 돌보면서 생활하다가 경남으로 발령받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