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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진도초등학교 총동문회 원문보기 글쓴이: 56이세진
내연산, 청하골 은폭포를 찾아서 – 보경사,문수봉,삼지봉,청하골
1. 내연산 청하골 은폭포, 내연산 12폭 중 제8폭이다
靑壁三十仞 삼십 길 푸른 절벽에서
懸泉下冉冉 폭포가 하염없이 떨어지네
艶雪氣還凝 고운 눈기운이 엉기고
隱虹光復閃 은은한 무지개 빛 반짝이는구나
初潭紅樹重 첫 못에는 단풍나무 울창하고
中瀑白雲渰 가운데 폭포에선 흰 구름 피어오르는 듯
上淵杳幽深 상류의 못은 아득히 깊은 곳에 있고
巖洞信天嶮 골짝은 참으로 험준하구나
翠微有孤龕 푸른 산에 바위 외로운 절이 있는데
繡佛何其儼 수를 놓아 만든 부처 어찌 그리 장엄한가
ⓒ 이화여자대학교 한국문화연구원 | 박재금 이은영 홍학희 (공역) | 2014
―― 강한 황경원(江漢 黃景源, 1709~1787), 「내연산에 들어가 폭포를 보고 짓다(入內延山觀瀑作)」에서
▶ 산행일시 : 2024년 8월 3일(토), 맑음, 폭염경보
▶ 산행코스 : 보경사주차장,보경사,문수암,문수봉,거무나리코스(은폭포)갈림길,삼지봉,거무나리코스(은폭포)갈림
길,거무나리,청하골, 은폭포,선일대,관음폭포,삼보폭포,상생폭포,보경사,보경사주차장
▶ 산행거리 : 도상 13.1km(이정표 거리 14.7km)
▶ 산행시간 : 5시간 59분(10 : 56 ~ 16 : 55)
▶ 교 통 편 : 좋은사람들 산악회(27명) 버스로 가고 옴
▶ 구간별 시간
06 : 30 – 잠실역 3번 출구
08 : 43 – 화서휴게소( ~ 09 : 03)
10 : 56 – 보경사주차장, 산행시작
11 : 07 – 보경사(寶鏡寺)
11 : 24 – 문수봉(2.0km) 갈림길, 보경사 1.2km
11 : 48 – 문수암 입구
12 : 32 – 문수봉(文殊峰, 628m), 삼지봉 2.6km
13 : 10 – 삼지봉(三枝峰, 711m), 휴식( ~ 13 : 25)
13 : 41 – 거무나리코스(은폭포) 갈림길
14 : 00 – 조피등 499m봉
14 : 44 – 향로봉(3.9km) 갈림길, 은폭포 0.6km, 보경사 4.0km, 휴식( ~ 14 : 55)
15 : 03 – 은폭포(隱瀑布)
15 : 13 – 선일대(250m) 갈림길
15 : 31 – 선일대(仙逸臺)
15 : 50 – 관음폭포, 무풍폭포(無風瀑布), 잠룡폭포(潛龍瀑布)
16 : 13 – 삼보폭포(三洑瀑布)
16 : 19 – 상생폭포(上生瀑布)
16 : 41 – 보경사
16 : 55 – 보경사주차장, 산행종료, 휴식( ~ 17 : 00)
19 : 02 – 속리산휴게소( ~ 19 : 12)
21 : 32 – 잠실역
2. 내연산 지도. 은폭포의 위치가 잘못 표시되었다.
▶ 문수봉(文殊峰, 628m), 삼지봉(三枝峰, 711m)
포항 보경사가 멀다. 청송, 영덕을 거쳐 강구 해변을 지나간다. 차창 밖 여러 해수욕장이 한산하다. 날이 더워서도
너무 더워서다. 오히려 보경사주차장이 더 붐빈다. 버스에 내려 곧장 산행을 시작한다. 먹자거리에 들어선다. 먹자
거리가 꽤 길다. 진열해 놓은 탁주 등과 이곳 특산물을 곁눈질하며 간다. 눈이 덜 심심하다. 광천은 ‘廣川’이지 않을
까? 맞다. 너른 대천이다. 그런데 바짝 말랐다. 천변보도에 줄 이은 노거수 느티나무 볼만하다.
보경사 일주문을 지난다. 일주문 현판 글씨가 힘차다. 서예가 운포 정병철(雲浦 丁炳哲)의 글씨다. 임오성하(壬午盛
夏)라고 하니 2002년 여름이다. 내가 오지산행에서 내연산을 처음 온 것은 18년 전 봄날이었다. 무박으로 왔다.
문수봉, 삼지봉, 향로봉, 매봉, 삿갓봉, 우척봉, 청하골, 보경사로 진행했다. 도상 20km. 9시간 21분 걸렸다. 그때
함께 산행한 얼굴들이 그립다. 18명. 썩어도준치, 배대인, 악수, 더산, 모아이, 가난한영혼, 산정무한, 도봉거사,
산소리, 사계, 메아리, 은호, 솔개, 하늘재, 도자, 지나, 신가이버, 대간거사. 이들 악우 중 절반 이상은 지금 어떻게
사는지 소식을 모른다.
그때는 보경사 경내로 들어가지 않고 입구 오른쪽 농로를 지나 능선을 향했다. 그때는 사찰입장료 2,000원을 내는
데 익숙하지 않기도 했지만(6시가 조금 넘은 이른 아침인데도 매표소 직원은 출근했다) 산을 길게 타려는 욕심이
더 컸다. 오늘은 이정표 안내를 따라간다. 보경사 주변의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볼만하다. 이곳이 송라면(松羅面)인
이유를 알겠다. 계곡은 광천이자 청하면(靑河面) 청하골이다. 계류 옆 숲속 너른 길을 간다. 계류는 바짝 말랐다.
한참을 가자 계류 너덜 군데군데에 물이 고였고, 물놀이를 즐기려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돌계단 오르고 문수봉
(2.0km) 갈림길이다. 문수봉을 오르는 산길을 간다. 날이 워낙 더워 더욱 가파르게 느껴지는 돌길이다. 때 이르게
만나는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다. 산행시작한 지 1시간이 채 되지 않았는데 눈 못 뜨게 흘리는 비지땀으로 속옷까
지 흠뻑 젖었다. 더하여 숨은 금방이라도 넘어갈 듯 가쁘다.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게 대단한 고역이다.
이 길을 가는 알지 못하는 젊은이들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간다. 그들도 죽을 맛이다. 서로 무언의 격려를 주고
받으며 오른다. 문수암 입구다. 문수암 가는 오솔길이 호젓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문수암인데 거기를 들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살았다. 나도 들르지 않는다. 한 걸음이 아깝다. 입구 공터에 널브러져 타는 목마름을 냉탁주로
달랜다. 그리고는 그 주력(酒力)으로 갈지자를 연속해서 그리며 기다시피 오른다.
조망이 살짝 트이는 데를 지난다. 깊은 청하골의 상생폭포가 내려다보인다. 고개 들면 향로봉과 삼지봉 연봉이 주눅
들게 높디높다. 이윽고 능선이다. 이정표에 문수봉 0.5km, 문수암 1.0km이다. 내쳐간다. 오르내리막이 없는 평탄
한 숲길이다. 문수봉을 몇 미터 남겨두고 왼쪽 사면을 우회하는 길과 직등하는 길이 나뉜다. 우회하는 길이 더 잘났
다. 그러나 직등한다. 괜한 욕심을 부렸다. 문수봉 정상도 사방에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아무런 조망이 없어서다.
3.1. 보경사 일주문 현판, 서예가 운포 정병철(雲浦 丁炳哲)의 글씨다.
3.2. 보경사 주변, 아름드리 소나무 숲이 아름답다
4. 문수봉 오르는 길에 조망, 상생폭포
5. 멀리 왼쪽은 향로봉, 오른쪽은 삼지봉
6. 문수봉 정상, 사방 나무숲 가려 아무 조망이 없다.
7. 삼지봉 정상, 사방 나무숲 가려 아무 조망이 없다.
문수봉에서 삼지봉까지 2.6km다. 이정표는 1시간 30분을 예상한다. 그러나 터무니없는 예상이다. 삼지봉 직전
0.4km 정도가 오르막이고 내내 평지이기 때문에 18년 전에는 30분이 걸렸고, 오늘은 38분 걸렸다. 대개 보통 걸음
으로 2km는 30분 걸린다. 삼지봉 정상도 조망이 없다. 주변의 평평한 숲속은 쉼터다. 나도 한 자리 차지하여 늦은
점심밥 먹는다. 하도 땀을 많이 흘린 탓에 도통 입맛이 없지만 이도 염천산행의 한 과정이라 먹어둔다.
내연산(內延山)은 원래 내영산(內迎山)이었다. 이설(異說)이 있지만 다음의 설이 설득력이 있다.
“신라 진평왕 때인 603년에 보경사가 창건되면서 이 산이 신라의 유학승들이 수행하던 중국불교의 명산인 종남산을
닮았다 하여 종남산이라 불렀다. 후백제 견훤(甄萱, 867~935)이 신라 왕경 금성(지금의 경주)을 침공하자 신라
51대 진성여왕(眞聖女王, 재위 887~897)과 신하들이 이곳으로 피란온 뒤로 종남산은 임금을 맞이했다 하여 내영산
(內迎山)으로 불렀고, 후대로 내려오며 내연산(內延山)으로 음이 변한 듯하다고 했다.”(석재 블로그에서)
다음은 구암 이정(龜巖 李楨, 1512~1571)의 「내영산에서 놀며(遊內迎山)」이다.
川回谷轉路層層 시내 굽고 골은 돌며 길은 끝이 없는데
盡力躋扳次第登 온 힘 다해 끌어당기며 차례차례 오른다.
十二瀑流流不息 십이폭포 흘러내려 그치지 않으니
源泉一脈本淸澄 한 줄기 원두의 샘물 본래 청징(淸澄)하였네
(김희준, 박창원, ‘인문학의 공간 내연산과 보경사’, 포항문화원, 2014)
이제 내연산의 백미이고 경북팔경의 하나이게 한 청하골을 간다. 삼지봉에서 청하골로 곧장 남진하는 길은 오래전
에 폐쇄하였다. 향로봉을 가는 도중에 미결등 직전에 골로 가는 길이 있지만 산악회에서 추천하지 않은 코스다.
산악회에서는 온길을 0.6km 뒤돌아 거무나리코스를 추천한다. 내 욕심으로는 내연산 주봉인 향로봉을 올랐다가 그
남동릉인 고메이등을 타고 내려 청하골로 가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시간과 체력이 허락하지 않는다.
온길 뒤돌아 조피등을 타고 거무나리골에 이어 청하골로 가려고 한다. 내리막의 연속이다. 줄달음한다. 금방 거무나
리코스(은폭포) 2.6km 갈림길이다. 조피등을 내린다. 숲속 잘난 돌길이다. 쭉쭉 내린다. 내리막이 잠시 주춤한
499m봉을 넘고 ┫자 갈림길이 나온다. 산악회에서는 지정등로인 직진하는 능선 길로 청화골에 내린 다음 계류를
0.5km 거슬러 오르면 은폭포를 볼 수 있을 거라 했지만, 나는 오른쪽 사면 도는 길로 가서 거무나리골에 이어 청하
골로 간다. 그러면 청하골을 내리는 길에 은폭포를 보게 될 것이다.
오른쪽 사면 도는 길은 송이채취구역이라고 막았지만 송이 철이 아닌 지금은 괜찮지 않을까 하고 간다. 가면 갈수록
인적이 흐릿해지고 거무나리골에 이르러서는 그나마 낙엽에 묻히고 만다. 낙엽이 깊다. 무릎까지 빠진다. 등로 개척
한다. 상류라 계류는 말랐으나 이내 잴잴거리더니 암반 훑는 옥수로 발전하고 그 아래는 명경지수의 소다. 차마
그냥 두고 갈 수 없어 알탕을 할까 망설이는데 새까맣게 떼로 몰려드는 하루살이를 견디지 못하고 물러난다.
8. 은폭포, 음폭포(陰瀑布)라고 불렀는데, 은폭포(隱瀑布)로 고쳐 부른다고 한다.
10. 선일대, 주등로에서 250m 떨어져 있다.
11. 선일대에 있는 삼용추(三龍湫)를 그린 겸재작품
화제는 겸재의 10년 후배로 만년에 30여 년을 이웃해 살며 조석상봉으로 겸재와 함께 화도(畵道)에 정진하였다는
관아재 조영석(觀我齋 趙榮祏, 1686∼1761)이 썼다.
화제에 두 가지 해석이 있어 이를 소개한다.
경북일보 21.4.21.자 진복규 박사의 기고문에서는,
“지금 원백(정선)의 붓을 따라, 비로소 내연산을 알게 되었네.
저 세 유산객에 방해되지 않고, 한 번 늙은 나로 볼 수 있게 하네.
이거용을 위해 지어 씀. 종보” 라 하고,
오똑이 블로그에서는,
“今從元伯筆 오늘 원백(정선)의 그림을 접하니
水淺內延山不妨 물이 얕은 내연산이 괜찮은데,
彼三客正老我看 내가 보기에 저 세 사람은 올바르게 늙었네.
爲 李居庯題 이거보를 위해 적었다.
宗甫 종보(조영석의 자)”
라고 한다.
12. 선일대에 있는 삼용추(三龍湫)를 그린 겸재작품, 내연산폭포
규격 : 25.8×36.3cm.
간송미술관 소장
13. 선일대에 있는 삼용추(三龍湫)를 그린 겸재작품, 내연삼용추도
규격 : 21.1×29.8cm.
견본수묵담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4. 선일대에서 전망, 왼쪽은 삼지봉, 오른쪽은 문수봉
15. 선일대에서 내려다본 구름다리와 관음폭포
16. 소금강전망대
17. 선일대
▶ 청하골, 선일대(仙逸臺)
마침내 내연산 주골인 청하골에 다다른다. 향로봉 3.9km을 오가는 길이 잘났다. 갈 길이 멀지만 오가는 사람이 없
어 알탕하기 적당하다. 그늘지고 널찍한 암반 하나 차지하여 휴식한다. 물이 따스하다. 버들치들과 한참동안 함께
논다. 이정표는 0.6km 내려가면 은폭포가 있다고 한다. 서둔다. 은폭포 가는 길에 학생일 듯한 앳된 여자 등산객과
마주친다. 이제 향로봉을 오르려고 하나요? 묻자 문수봉 갈림길을 가는 중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훨씬 지나쳤으니
온길 뒤돌아야 한다고 하자, 지도를 꺼내어 보고는 깜짝 놀라며 큰일 날 뻔했다고 한다. 몇 번이나 감사하다고 고개
숙여 사례하고는 나는 듯이 뒤돌아간다.
은폭포다. 수량이 적지만 은밀히 아름다운 모습이다. 폭포 아래 소는 깊이를 가늠하기 어려워 한창 때 폭포의 위용
을 짐작케 한다. 은폭포는 ‘隱瀑布’일 것. 맞았다. 처음에는 음폭포(陰瀑布)라고 불렀는데, 은폭포(隱瀑布)로 고쳐
부른다고 한다. 은폭포를 보고 내려가는 도중에 이번에는 2명의 학생인 앳된 여자 등산객과 마주친다. 그들에게
은폭포를 보러 가느냐고 물었다. 은폭포가 아니라며 구름다리와 구름다리 아래 쌍폭포의 사진을 내게 보여준다. 이
위에는 이런 다리와 쌍폭포가 없다고 하자, 자기들이 길을 잘못 들었나 보다 하고 바쁘게 뒤돌아간다. 내가 계곡산
행의 교통정리 한다.
소금강전망대 0.8km와 선일대 0.6km 갈림길이다. 어디로 갈까? 소금강전망대는 계류와 멀어지고 선일대는 계류
가까이 간다. 선일대를 갔다가 뒤돌아 와서 소금강전망대를 갈까? 일단 선일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너덜 돌길이
다. ┣자 선일대 갈림길이 나온다. 왼쪽 암봉은 비하대(飛下臺)인데 금줄 치고 가지 못하도록 막았다. 오른쪽이 선일
대 250m이다. 간다. 가파르고 긴 데크계단 오르막이다. 암벽에 막히고는 왼쪽의 데크잔도를 지나 길지 않은 데크계
단을 또 오른다. 250m를 대단한 거리가 아닌 대단한 고도처럼 오른다.
선일대(仙逸臺). 신선이 학을 타고 비하대에 내려와 삼용추(三龍湫)를 완성한 후 이곳 선일대에 올라와 오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일대 조망처다. 겸재 정선이 삼용추를 그린 작품과 실경을 대조한다. 아까 두 명의 여자 등산객이 나
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물어보던 구름다리와 쌍폭포가 바로 저기가 아닌가. 쌍폭포는 관음폭포이다. 건너편 소금강
전망대도 전망한다. 신선도 겸재도 그랬을 것. 정자에 앉아 주변의 절경을 둘러보며 탁주 독작한다. 비하대와 선일
대 아래가 삼용추다. 선일대 갈림길에서 사면 돌아 그리로 가는 데크계단이 있다.
관음폭포가 기경이다. 주변의 하늘벽과 깊고 어두운 동굴, 짙푸른 소 등이 한데 어울렸다. 관음폭포와 무풍폭포,
잠룡폭포, 비하대, 선일대에 홀린 나머지 미처 연산폭포를 찾아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구름다리를 오르면 연산폭포
와 학소대를 볼 수 있다는 것을 까맣게 몰랐다. 두고두고 아쉽다. 아까 두 명의 여자 등산객이 나에게 보여준 사진에
연산폭포가 있었더라면 당연히 가서 보았을 것이다.
용주 조경(龍洲 趙絅, 1586~1669)의 「내연산 용추(內延山龍湫)」를 빌려 다시 바라본다.
峭壁削成恒萬丈 깎아 세운 듯 가파른 절벽 만 길 솟아 있고
飛流霆擊挂千尋 벼락 치는 듯 날리는 폭포 천 길 걸려 있네
洞門物色非人世 골짜기 입구의 물색은 인간 세상이 아니요
壺裏樓臺鎖古今 호로 속 누대는 오랜 세월 갇혀 있었네
抉眥雲隨高鶴影 눈 들어보니 구름이 높게 나는 학 그림자 따르고
劈潭風送老龍吟 연못이 열리자 바람이 늙은 용의 울음소리 보내네
茲遊定勝天台夢 이번 유람이 천태산을 꿈꾸는 것보다 나으니
顧笑興公擲地金 흥공이 땅에 던진 쇠가 도리어 우습구나
‘호로병 속’은 한 구역에 있는 별세계를 뜻한다. 호공(壺公)이란 신선이 저잣거리에서 약을 팔고 있었는데, 모두
그저 평범한 사람인 줄로만 알고 있었다. 하루는 비장방(費長房)이란 사람이 호공이 천장에 걸어 둔 호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비범한 인물인 줄 알고 매일같이 정성껏 그를 시봉하였다. 하루는 호공이 그를 데리고 호로
속으로 들어갔는데, 호로 속은 완전히 별천지로 해와 달이 있고 선궁(仙宮)이 있었다고 한다.
‘내연산 용추를 구경하는 것이 천태산을 꿈꾸는 것보다 나으니’는 흥공(興公)이 지은 〈유천태산부(遊天台山賦)〉가
도리어 우습다는 말이다. 흥공은 진(晉)나라 문인 손작(孫綽)으로, 자가 흥공이다. 땅에 던진 쇠는 〈유천태산부〉를
가리킨다.
ⓒ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 최예심 이라나 장유승 (공역) | 2015
이다음은 물길이 원래는 세 갈래였다는 삼보폭포다. 수량이 조금만 더 받쳐준다면 장쾌한 미폭이겠다. 보현폭포는
다가가도 계류 저쪽 바위에 숨어 있어 잘 보이지 않을 것 같다. 그냥 간다. 마지막 폭포는 상생폭포다. 지금은 ‘상생
폭(上生瀑)’이란 명칭이 통용되고 있지만, ‘쌍둥이 폭포’란 의미의 ‘쌍폭(雙幅)’이란 명칭이 오래 전부터 쓰였다고 한
다. 문수봉 오르는 길에 굽어본 폭포가 상생폭포였다.
보경사에 오자 119 구급차가 요란하다. 산행하다 탈진한 등산객의 구조요청이 있어 왔다고 한다. 우리 버스는 17시
정시에 출발한다. 산행대장님의 산행소감 첫 마디가 수십 년 산행 중에 오늘 무더위와 고역이 열 손가락 안에 든다
고 한다. 나도 그렇다. 주차장 근처 매점에서 환타 500ml 한 병을 사서 단숨에 들이켰다. 그래도 목마르다.
18. 관음폭포
20. 관음폭포 옆 비하대(飛下臺)
21. 무풍폭포
23. 잠룡폭포
24. 선일대
25. 삼보폭포
26. 상생폭포
27. 보경사 주변, 소나무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