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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따스하게 품고 싶은 고슴도치가 있었습니다.
삶에 지쳐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해
자신을 품을 내어주고자 했습니다.
위로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인정이 있는 세상, 따뜻한 세상을 꿈꿨습니다.
“앗, 따가.”
“뭐야, 안아준다면서 왜 이렇게 따가워!”
“전보다 더 아프잖아!”
“믿었는데... 실망이야.”
고슴도치는 자신의 품을 내어주고 상대방을 안으면서 깨달았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가시로 뒤덮여있다는 사실을.
'이렇게 되면
나도 아프고 상대방도 아픈데 어쩌지...
그래, 내게 있는 이 가시들을 다 뽑아버리면
모든 사람들을 아프게 하지 않고
따스하게 품어주는 사람이 될 거야.'
가시를 하나하나 뽑아버리던 고슴도치의 몸에서는 피가 흘렀습니다.
가시가 뽑힌 곳에서는 깊은 상처가 남았습니다.
두 손도 가시에 찔려 이곳저곳 상처투성이입니다.
상대방을 볼 겨를도 없이,
세상을 품어보기도 전에
스스로 지쳐가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으로 살아가려 하니
시작도 해보기 전에 이미 더 나아갈 힘도, 의지도, 여력도 없어집니다.
문득 고슴도치는 깨닫습니다.
'이 가시도 나인데...
이 가시가 없다면 사람들은 나를 알아볼까?
인정이 살아있는 따스한 세상을 꿈꿨던,
지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어 했던
고슴도치였다는 걸 알까?
가시도 나구나.
없앨 수는 없어.
가시가 없다면 그건 더 이상 내가 아니야.
내게 있는 가시들도 품고 가자.
나는 이런 모습이지만
이런 모습으로도 세상을 품는 따스한 고슴도치가 되고 싶어.
그렇다면 상대를 안기에 느낄 수 있는 아픔은 감내해야겠구나.
아프다는 건, 그만큼 내가 상대방과 가까이 닿아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누군가의 삶을 그토록 가까이 마주할 수 있다는 건 큰 복이 아닐까.
사랑하니까 아픔도 참을 수 있는 거야.
사랑과 아픔은 함께 가는 것 같아.
감사해야지.'
아픔도 품는 것이라는 걸
고슴도치는 배워갑니다.
상처받고 아플 각오를 하고
고슴도치는 다시 사랑을 하러 떠납니다.
길을 걷다가 문득 고슴도치는 생각에 빠졌습니다.
‘그런데...
또 이렇게 아프다보면 내 스스로가 지쳐가지 않을까.
상대도 나의 가시를 받아줄 수 있을까.
과연 오래도록 아픔을 감내할 수 있을까?
내가 품을 수도 있지만
그건 서로를 아프게 할 수 있으니,
내가 쉽게 지칠 수 있으니
오래 가지는 못할 거야.
따스하게 품는 방법, 오래가는 방법을 생각해보아야겠다.
그렇지!
내가 모두 안을 수 없다면 서로를 안게 하도록 도울 수는 없을까?
내가 없어도 서로가 서로에게 따스한 존재가 되어가도록 도울 수는 없을까?
그래, 그렇게 도우면 나는 단지 거들었을 뿐
세상은 서로를 안으며 이웃이 있고 인정이 넘치는 사회가 되어 갈 거야.
그리고 그 따스함을 더욱 깊게 하는 방법은
진심을 담는 거야.
나는 진심을 담는 사람이 되어야지.
사소한 하나에도 마음을 담아야지.'
한껏 안아보았기에 알 수 있었습니다.
자신에게는 가시가 있다는 것을.
자신을 더욱 알게 되었으니
자신이 어떻게 품을지도 더 알 수 있지 않을까요.
고슴도치는 세상에 지쳐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웃이 있고 인정이 넘치는 세상을 전하려 계속해서 길을 떠납니다.
엇, 나 혼자가 아니었습니다.
길을 걷다보니 또 다른 내가 있었습니다.
내 안에 품었던 꿈들은 다른 누군가도 함께 바라는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25명의 고슴도치들을 만났습니다.
고슴도치들은 뜨거웠던 여름,
치열하게 고민하며 깨달아갔던 각자의 자리가
제 2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고민을 나눌 동료들이 생겼습니다.
고슴도치들은 이제 각자의 삶으로 돌아갑니다.
7주간의 배움을 안고서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품으러 갑니다.
이웃이 있고 인정이 넘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당신들이 있는 자리에서 조금씩
세상을 변화시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쩌면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고슴도치들의 걸음 걸음이 기대됩니다.
이번 여름은 참으로 뜨거웠습니다.
제 삶에서도 배움에 있어서도 참 뜨거웠던 여름,
땀도 많이 흘렸고, 이곳저곳 참 많이 돌아다녀 까맣게 탔습니다.
거창을 신나게 돌아다니며 누리고 배웠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안에 있는 수많은 가시들을 보았습니다.
가시들도 나 자신임을...
가시들도 은혜임을...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백춘덕 아저씨와 함께 여름을 보냈습니다.
아저씨께서는 이사를 했습니다.
자취 생활의 첫 시작입니다.
오랜 기간 준비를 해온 이사였습니다.
덕원농장 아드님께서 하얀 트럭을 몰고 와서 함께 짐을 옮겨주셨습니다.
그동안 같은 집에 살았던 민철 씨가 배웅 나온 김에
함께 가서 이사 짐 옮기는 걸 도왔습니다.
아저씨의 이사는 둘레 사람들과 함께 하는 이사가 되었습니다.
말을 잃으셨던 아저씨께서는
이사를 하고 자취생활을 시작하며
말문이 트이셨다고 합니다.
월평빌라에서 사실 때는 한 번도 밥을 지어먹은 적이 없다던 아저씨께서는
자취생활을 시작한 첫 날, 직접 밥을 지어 드셨습니다.
아저씨께서는 시내에 나가 필요한 것들을 살 때마다
“혼자 살아도 살게 많네.” 하시며 두 손 가득 장을 보셨습니다.
집들이를 했습니다.
주민 분들에게 줄 이사 떡을 맞추면서 “떡만 해서 되겠어요.” 했습니다.
언젠가 마을 주민 분들이 신원막걸리를 좋아한다는 걸 들었다며
그 막걸리로 사야한다고 했습니다.
마을 어르신들은 아저씨를 “예쁜 총각”이라 불렀습니다.
“마을에 젊은 사람 한 명 더 이사 오니 참 좋다” 하셨습니다.
마을 주민 분들께서 한 사람 씩 전화하셨습니다.
이곳저곳에서 연락을 받은 마을 주민 분들이 마을 회관에 모였습니다.
동료 상희는 이 풍경이 마치 마을 잔치 같았다 했습니다.
가족에게 연락하여 식사를 대접했습니다.
북상에 계신 고모님과 누님 매형을 만나
맛있다는 식당에서 돼지갈비를 사주셨습니다.
아저씨께서는 가족에게 부족하지 않겠냐며 3인분을 더 시켰습니다.
식탁 위에서 서로 많이 먹으라며 그릇들이 오고 갔습니다.
이사 하신 집에 모셨습니다.
사모님께서 고모님과 누님, 매형을 반갑게 맞아주시고 수박과 참외를 내오셨습니다.
사모님께서는 아저씨의 가족에게 아저씨께서 일을 참 잘한다 하셨습니다.
고모님께서는 사모님에게 아저씨를 잘 살펴주어 고맙다 하셨습니다.
고모님과 누님은 이사하는데 챙겨줄 게 없다며 아쉬워 하셨습니다.
고모님은 수건과 휴지를, 누님은 새 그릇을 선물했습니다.
아저씨 집을 둘러보시며 눈시울이 붉어지던 고모님 얼굴이 생각이 납니다.
고모님과 누님을 모셔다 주는 길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 하셨습니다.
집이 참 좋다며, 사장님과 사모님도 참 좋은 분이라 하셨습니다.
아저씨께서는 당신의 집이 하나 더 생겼고,
가족이 인정한 좋은 이웃이 있는 곳에서 자취생활을 하십니다.
아저씨께서는 농부이십니다.
고추밭에서 고추를 따기도 하고, 콩밭을 매기도 하고,
복숭아 농장일, 사과 농장일을 하십니다.
농장일, 농사일에 관해서라면 모르는 게 없습니다.
늘 가곡마을 길을 걷다가 궁금한 게 있으면 아저씨에게 묻습니다.
전문가에게 우리가 쉽게 사 먹었던 농장물들이
농부의 얼마나 많은 땀과 노고가 들어간 산물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농작물을 보니 마음이 경건해집니다.
얼마나 많은 손을 거쳐야 하나의 복숭아, 사과가 나오는지 알게 되었으니까요.
앞으로 음식 먹을 때 한 번 더 음식들을 바라보게 되고,
그러니 더 귀하게 느껴집니다.
되도록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먹어야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요일은 아저씨께서 농장 일을 쉬는 날입니다.
교회를 마치고 함께 만나서 머리를 자르기로 했습니다.
아저씨께서 교회 장로님에게 여쭈어 미용실 추천을 받기도 했습니다.
미용실에 다녀와서 아저씨 댁으로 가는 버스를 탔습니다.
잘못 타서 한 시간이 넘게 길을 걸었습니다.
저녁 무렵 노을을 등지며 걷는 길,
아저씨께서 어머니 이야기도 해주셨고,
저희 부모님께 잘 하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아저씨께서는 강아지풀을 뜯으며 간지럼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버스를 잘못 탄 덕에 아저씨와 함께 한 추억이 늘었습니다.
한 시간이 넘게 돌아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은 덕원농장 아드님은
다음부터는 걸어오지 말고 언제든 연락하라 했습니다.
데리러 가겠다고 했습니다.
버스를 잘못 탄 덕에 아저씨를 도울 이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가곡마을엔 아저씨께서 필요할 때면 도움을 구할 이웃이 있습니다.
아저씨 직장의 동료는 덕원농장 사장님과 사모님입니다.
덕원농장 사장님께서는 아저씨를 보며
"우리 백 군, 우리는 이미 가족이지."
"백 군아, 우리 끝까지 한번 가보자." 하십니다.
낮은 자세로 살아가는 삶, 사장님 가족을 보며 배웠습니다.
사장님께서는 저희를 딸이라 불러주시며 문자해주셨습니다.
"딸들이 있었기에 올 여름이 많이 행복했고 즐거웠단다.
어디서든 건강하고 낮은 자세로 세상을 보며 살아라.
아빠는 너희들을 항상 마음에 담아두고 지금보다 더 열심히 살게.
건강하고 행복해라."
옆에서 직접 보고 감동하고 깨달았으니,
제 삶도 그렇게 닮아가길 바랍니다.
자연스럽게 천천히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다른 사람들 어떻게 사는지 보면서 욕심 부리지 말고
자연스럽게 살길 바라셨습니다.
남 속이거나 빨리 가려하지 말고 정직하게 베풀면서 살라 하셨습니다.
농장 일을 하면서 삶으로 느낀 것이라며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 주어지는 대로
속도에 맞춰 살아가라 하셨습니다.
사장님의 삶이 곧 배움이었습니다.
'아,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삶의 교훈을 아저씨와 사장님 사모님에게 농사일을 배우며 깊이 느꼈습니다.
늘 뒤쳐지기만 했던 나의 느림은
세상을 품을 강점이 될 수 있겠구나.
제가 살아온 날보다 배의 시간을 살아오신 스승님들께서는
“천천히.” 하라 하십니다.
그러니 제가 가는 그 속도가 결코 뒤쳐지는 것이 아님을 알았습니다.
저의 길을 묵묵히, 우직하게 걸어가겠습니다.
배움의 과정에서 만난 모든 인연들이 참 귀하고 복됩니다.
거창에서의 나날들이 마무리되어 갈 날,
덕원농장 사장님께서는 저희에게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백군도 학생들 가고 나면 적적할거야.
학생들 오고 나서 백군이 말문이 트였다.
오늘 아침에는 내가 새벽에 일 하러 가니까 " 다녀와요." 하더라니까.
또, 밭 매러 가는데 이웃들한테 백군이 인사하니까
"저 사람 말 할 줄 아네요?" 하는 거라.
학생들 왔을 때 처음에는 말도 안하는 저 사람 붙잡고 계속 묻는 것 보고
속으로 저 사람이 뭘 안다고 자꾸 물어볼까 했는데 지금 보면 그게 맞는 기라.
말을 할 수 있도록 유도를 하고, 저 사람이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잘했어.
저번에 많이 얻어먹었으니까 이번엔 자기가 산다고 이야기 한 것처럼,
생각해보면 저 사람이 말로 표현을 안 한다 뿐이지,
마음으로는 다 생각하고 있는 거라.
마음에 상처를 받은 것 같아.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을까 싶어.”
서툰 우리를 귀히 여겨주셨습니다.
우리가 거창에서 보낸 한 달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다시금 깨닫게 해주셨습니다.
사모님에게 인정을 배웠습니다.
사모님 댁에 갈 때나 아저씨 댁에 갈 때면 늘 간식을 내어오시던 인정.
밭일을 하러 갈 때면 그냥 보내지 않으시고 늘 푸짐한 새참을 챙겨주시고
장화, 팔토시, 모자 등 바리바리 싸주시던 인심.
아저씨 댁에 갈 때면 문 주변에 비어있는 냄비를 보며
아저씨께서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나누어주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실수나 잘못을 할 때면
늘 아무도 보이지 않게 허리를 쓰다듬어 주시거나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줍니다.
백 마디 말보다 그 따스한 손길이 마음을 녹입니다.
사모님에게 상대의 실수나 잘못을 너그러이 받아들이는 관용을 배웠습니다.
묻는 법도 배웠습니다.
사모님과 이야기할 때면 늘
“아저씨와 함께 의논해 봐요.”
“내가 아저씨에게도 한번 물어볼게요.” 하셨습니다.
당사자에게 묻는 법, 글로 먼저 배운 저보다
삶으로 살아오신 사모님께 더 깊이 배웁니다.
덕원농장 사장님과 사모님께서는 이제 저를 딸 이라고 불러주십니다.
거창에 엄마 아빠가 생겼습니다.
종종 문자도 보내주었습니다.
“앞으로는 지연이라고 불러보고 싶네.
나도 딸이 하나밖에 없어서 딸처럼 좋았는데.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려면 힘들고 고달픈 일들이 많을 거야.
그래서 그 인내심을 길러주려고
더운데도 고추도 따게 하고, 콩밭에 풀도 매고, 깨도 가리고,
사과나무 끈도 묶고 여러 가지 일을 시켜서 우리 마음도 아팠어.
지연이는 앞으로 사회생활 잘할 것 같더라.
앞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서로 연락하면서 살자.
그동안 너무 고마웠다.
나도 어제 밤에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눈물이 나올 것 같아 말을 못했네.
지연아 사랑해.
앞으로 열심히 살아라.
우리 지연이 화이팅.“
네 자매와 함께 하는 여행 중 사모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집에는 잘 들어갔는지
건강한지, 아픈데는 없는지,
밥은 먹었는지,
지금은 뭐하고 있는지...
“이쁘네 딸.
의젓한 우리 딸,
고맙고 또 고마워.
건강하게 잘 지내야 다음에 만나겠지.
우리 딸 사랑해.“
한 달간의 짧은 인연도 소중히 여기며
마음을 나누는 분들이십니다.
이러한 이웃이자 직장동료가 있다는 것이
아저씨의 참 큰 강점이 아닐까요.
부럽습니다.
백춘덕 아저씨와 함께하며 참 많은 것들을 배웠습니다.
아저씨에게 농사일과 농장일을 배우며 인내를 배웠습니다.
아저씨를 도와 밭일을 하며 시골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생각이 났습니다.
‘굽은 등은 그간 열심히 성실히 살아오셨다는 삶의 흔적이시구나.’
아저씨와 함께 한 여행에서는 엄마 아빠가 생각이 났습니다.
저 넓은 바다에서 그늘도 없이 일하시는 부모님,
더우면 덥게, 추우면 춥게,
그래도 딸이 당신들의 삶의 행복이라며 미소 짓던 부모님 모습과
이렇게 고된 일을 그간 아무 말 없이 해왔구나 하는 마음에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엄마 아빠의 피나고 퉁퉁 부은 굳은 손은 몸에 새긴 훈장이구나.’
아저씨께서는 눈시울을 붉히며
이미 하늘나라 가버리면 보고 싶어도 못 보니,
지금 있을 때 부모님에게 잘 하라며 조언해 주셨습니다.
제 삶에 가장 가까이 닿아있는 가족들에게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가족이라는 존재를 떠올리고
그들에게 더욱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으니
백춘덕 아저씨는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귀한 스승입니다.
아저씨에게 인생을 살아가는 법에 대해 배웠습니다.
백춘덕 아저씨가 사는 가곡마을은 따뜻한 인심,
착한 사람들이 있는 곳입니다.
‘아, 나라도 이곳에서 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을 주민 분들에게 감사인사 드리러 다닐 때,
“거기 사장님, 사모님들 참 좋은 사람이야.
총각도 참 사람이 좋아.
서로가 잘 만났어.“
아저씨께서 사장님과 사모님을 만난 것이 복이 되고,
사장님과 사모님께서도 아저씨를 만난 것이 복이 된 것 같습니다.
거창을 떠나는 날,
아저씨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음이 터졌습니다.
“지연이가 우니까, 나도 눈물이 난다. 지연이 보고 싶다.” 하셨습니다.
전화기 너머로 아저씨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정 많은 분들입니다.
그런 따스한 분들에게 참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언제든 놀러오라 합니다.
거창 올 땐 꼭 들르라 하셨습니다.
이번 여름을 지내오면서
한 사람의 삶에 가까이 닿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사회사업가가 흘릴 수 있는 눈물은
사회사업가만이 누릴 수 있는 기쁨이자,
얼마나 귀한 것인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묻는다는 것과 선택한다는 것.
사회사업가의 재주 없음은 사회사업 할 때
큰 강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고 낮아지니 묻게 되고
물으니 당사자는 선생이 되고 높아집니다.
선택한다는 것은 “내가 한다.”
나를 찾는 과정, 내가 되어가는 과정임을 알았습니다.
내가 한다는 것의 가치, 더욱 깊이 깨달았습니다.
한 사람의 삶의 색깔이 생기기 시작하고 더 깊어진다는 것.
내가 살아가고 싶은 모습이 앞으로 만나게 될 당사자의 모습이길 원합니다.
그렇게 거들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거창에서의 여름을 함께 보냈던 네 자매.
동료와 함께였기에 더 빛났습니다.
저의 기준이 동료에게 잣대가 되진 않았는지 염려가 됩니다.
저의 부족함으로 인해 혹여나 상처가 되지는 않았을까 되돌아보게 됩니다.
그 시간들을, 함께하는 그 순간들을 더 소중히 할 걸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저의 부족함을 함께 나누고,
서로를 강점으로 바라보고 품으려는 마음을 가지고
한 달 동안 서로를 잘 다독여준 동료들.
저의 가시들을 잘 보듬어 주었습니다. 고맙습니다.
함께여서 더 귀한 여름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두고두고 떠올릴 좋은 경험들도 많이 쌓았습니다.
쏟아질 것 같이 밤하늘을 가득 채웠던 반짝이는 별들
마음마저 잔잔해지던 시원한 강, 저수지.
잘 다져진 흙길
소각소각 들리는 흙 소리
바위에 앉아 흐르는 계곡 물에 다함께 발 담그며 도란도란 이야기하던 추억
노을 지는 풍경을 바라보며 느꼈던 경이로움
자연이 지친 마음을 위로해주던 곳, 거창.
선생님들께서는 추억이 담긴 곳에 데려다주셨습니다.
제가 귀하게 대접받는 기분이었습니다.
소중한 곳, 보물 같은 곳을 많이 알았습니다.
함께했던 풍경.
함께했던 사람.
함께했던 추억.
꿈을 꾼 것 같습니다.
긴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자는 동안에 꾸었던 꿈으로 인해서
깨어서도 마음에 그 여운이 남는 것처럼,
거창에서의 여름은 마무리 되었지만
아직도 여운이 남습니다.
아쉬움은 있으나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돌아가고 싶지도 않습니다.
매 순간들을 충분히 누렸다 생각합니다.
아쉬움이 있으면 있는 대로 그것도 가치가 있습니다.
아쉽기에 더 소중합니다.
거창에서 보낸 여름이 두고두고 생각날 것 같습니다.
2015.08.21.
첫댓글 사회사업 하며 당사자로 인해 흘리는 눈물은 사회사업가가 누릴 수 있는 가장 큰 복이라 했습니다.
올 여름, 지연이는 그 복을 참 많이 누렸지요.
풍경, 사람, 추억이 늘 지연이 곁에 있었지요.
지연이는 복 받은 사람입니다.
지연이를 알게 된 나도 복 받은 사람입니다.
참 잘했어요.
지연이 눈물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거야. 애썼다.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