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03. 25
감염병을 종식시키려면 일단은 감염원을 최대한 빨리, 많이 찾아내 차단해야 한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는 확산 속도가 빠른데다 무증상 감염이라는 특성 때문에 전통적인 봉쇄 방식이 잘 먹혀들지 않고 있다. 그러자 최근엔 ‘집단면역 활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국내 감염병 전문가들이 그제 “국민 60%가 감염돼야 집단면역이 생겨 유행이 끝날 것”이라고 했다.
▶ 확진자 진단에 소극적인 일본 정부가 이 전략을 머리에 두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고 있고, 영국 존슨 총리도 잠시 비슷한 구상을 했던 듯하다. 신종 코로나는 백신이 없다. 개발에 빨라야 1년 걸린다고 한다. 그러니 코로나와 맨몸으로 싸워 집단면역을 획득하자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 성인 가족이 백일해 백신을 맞으면 아이의 감염이 줄어들고 어린이들이 폐렴구균 관련 백신을 맞으면 폐렴으로 인한 노인들의 병원 입원을 줄인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감염병 확산 차단이 가능한 집단면역의 수준은 질병마다 다르다. 바이러스 전파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한 감염자가 만들어내는 재생산 지수(R0)가 1명 미만이 돼야 감염 확산이 중단된다. 신종 코로나는 2.5~3명 수준인데 R0를 1 미만으로 낮추려면 국민 60~67%에게 면역이 생겨야 가능하다.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인 메르스는 0.4~0.9명, 사스는 4명 수준이다. '옷깃만 스쳐도 걸린다'는 홍역은 R0가 12~18명으로 90% 이상 면역이 필요하다.
▶ 신종 코로나는 감염자 80%가 감기 앓듯 가볍게 지나가고 20%가 경증~중증으로 진행된다고 한다. 신종 코로나 국내 치사율은 1.3% 수준이다. 80대 이상이 13%대, 70대 6%대인 반면 40대, 30대 미만은 0.08%와 0.11%다. 독일은 코로나 치사율이 0.4%로 매우 낮다. 감염자 가운데 상당수가 청년인데 이탈리아에 놀러갔다가 감염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청년들이 자기들끼리 감염됐다가 완치되면 사회 전체적으로 면역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 이렇게 자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면 모를까, 집단감염은 의도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은 결코 아니다. 5178만 국민의 60%인 3100만명이 감염돼 면역을 획득하려면 치사율 1.3%에서 40만명 넘는 사망자가 발생한다. 작년 한 해 국내 전체 사망자(31만명)보다 많다. 전 세계 평균 치사율이 4%를 넘는 만큼 다른 나라 사정은 말할 것도 없다. 영국 정부가 “집단면역이 목표가 아니다”라고 서둘러 해명한 것도 그런 이유다.
박은호 논설위원 unopark@chosun.com
조선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