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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봄 (2020년)
신 순 호
-1-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신종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세상에 처음 알려진지 3개월 만에 WHO에서 전 세계 팬더믹 선언을 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로 번져갔다. 캐나다의 온타리오 주정부도 임시로 학교를 닫고 지정된 필수업종 외에는 재택을 하라는 셧다운 명령이 떨어졌다. 토론토에서 한참 떨어진 중소도시에 살고 있는 미영은 곧 시작되는 임시 셧다운에 앞서 장을 보아야 했다. 이미 여기저기서 마트의 휴지가 동이 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있었지만, 직장 때문에 미리 장을 볼 수가 없었다. 집에 두루마리 휴지 여분이 몇 개 있기는 한데, 문제는 만약 지금의 셧다운이 한 달 이상 지속 된다면 결국 휴지를 사러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어렵사리 시간을 낸 미영도 일단 화장실용 휴지를 사야겠다는 생각에 대형 할인매장에 갔지만, 역시 두루마리 휴지는 매진 상태였다. 평소보다 두 배는 많아 보이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카트를 밀고 다니면서 바쁘게 물건을 주워 담고 있었다. 카트마다 꽉꽉 채워진 물건들 사이로 예외 없이 휴지류들이 들어차 있었다. 정말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아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게 쌓여있던 키친타월도 눈앞에서 금방금방 비어가는 것이 보였다. 그걸 보고 미영 역시 마치 주문에 걸린 것처럼 저도 모르게 2박스를 카트에 밀어 넣었다. 아직 집에 재고가 충분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1인당 2개로 구매 제한이 있다는 빨간 글씨의 경고문도 그제야 봤다. 쉴 틈 없이 부딪히는 카트들과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공포영화 속 넋 나간 주인공의 주변 소음 같았다. 두근두근 두려움이 밀려드는 사재기 행렬이었다. 게다가 창고형 대형마트 특유의 장식 없는 투박한 진열과 높은 천장에서 희미하게 내려오는 불빛도 회색빛 벽과 함께 분위기를 더욱 우울하게 만들고 있었다. 미영의 가슴도 함께 쿵쾅 거리고 귀가 멍멍해지면서 발걸음이 빨라졌다. 정신을 놓아버릴 것 같은 어수선함 속에서도 이 행렬에서 낙오해서는 안 된다는 굳은 결의가 함께 솟았다. 머릿속에선 쉴 새 없이 무엇을 집어 담아야 하는지 계산하며, 눈으로는 다른 사람들의 카트를 훔쳐보았다.
“화장실용 휴지는 언제 살 수 있어요?”
마침 지나가던 빨간 조끼를 입은 나이든 직원은 눈이 움푹 패여 고단해 보이는 얼굴로 어이없다는 듯이 소리쳐 답했다.
“아마 부활절은 지나야 들어올 것 같아요. 다들 제일 먼저 두루마리 휴지를 사갔는데 댁은 좀 늦었구려. 이게 뭔 난리인지. 내 평생 처음 봐요. 참 내.”
부활절이라면 지금부터 한 달 뒤이다. 다들 왜 그렇게 화장실 휴지에 목을 매고 난리인지 모르겠지만, 아마도 용변 후 뒤처리를 휴지로 깨끗하게 하는 것은 인간다운 존엄을 행사할 가장 기본이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했다. 휴지가 없으면 궁여지책으로 물로 씻어도 될 텐데… 하지만 이 사태가 얼마나 오래 갈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역시 집에 휴지가 넉넉하게 있어야 마음이 놓일 것이었다. 다행히 물은 많이 있어서 35개들이 5박스를 사고 고기류를 비롯하여 몇 가지 오래 두고 먹을 수 있는 냉동식품들을 샀다. 그런데 이 두려운 팬더믹 상황에서 정작 휴지보다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이는 마스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얼마 전, 친구가 마스크를 어디서 사야하는지 물어보더니, 정말 어디에도 마스크는 없었고, 온라인 쇼핑몰에서도 마스크 구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하지만 징글징글하게 긴 계산대에 줄을 서 있으면서 둘러봐도, 몇 몇 동양인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마스크를 끼고 있지 않았다. 이렇게 다닥다닥 붙어 있는데, 이 사람들 중에 혹시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오싹하니 소름이 돋았다. 또한, 마스크 쓴 사람들을 바라보는 다른 이들의 눈빛이 좋지 않음을 느낄 수 있었다. 미영은 앞줄의 마스크를 쓰지 않은 손님을 피해 자리를 넉넉하게 벌려놓았는데, 뒤에 서 있는 마스크를 안 쓴 백인 부부 역시 미영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며 멀찍이 서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마스크 쓴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모두 같은 이유로 상대를 경계하고 있었다. 이제껏 이 나라 사람들은 마스크란 의료진이나 환자들만 쓰는 것으로 알고 살았으니 이해를 해야지 하면서도, 지금 같은 상황에도 융통성을 갖지 못하는 아니,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그들의 습성이 못 마땅했다. 초조한 마음으로 계산을 마친 후 다른 슈퍼마켓으로 이동했다. 아무래도 두루마리 휴지를 사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슈퍼마켓은 대형 창고형 매장에 비해서는 덜 했지만, 여기도 어딘지 모르게 번잡하고 어수선했다. 들어서자마자 맨 안쪽에 있는 휴지코너를 건너보니 다행히 두루마리 휴지가 보였다. 그런데 점점 다가갈수록 보이는 휴지가 줄어드는 것이 재고가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았다. 카트를 밀고 가는 동안 2명이 카트에 휴지를 2개씩 집어넣는 것이 보였다. 발걸음을 빨리해서 가는데 중간에 어떤 사람이 또 2개를 집어넣었다. 초조해진 미영은 이젠 카트를 중간에 놓아 버리고 아예 달리기를 했다. 오로지 얼른 휴지를 집어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다. 막 도착하자 두루마리휴지는 정말 대여섯 뭉치 밖에 안 남아있었고, 미영은 얼른 2개를 양손에 움켜쥐었다. 미영이 휴지를 차지하자마자 뒤를 이어 누군가 또 바로바로 채어갔고, 결국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뒤늦게 다가온 누군가가 억울한 표정으로 근처에 있던 매장 직원에게 거세게 항의를 했다. 직원은 손사래를 치며 내일 아침 일찍 다시 한 번 와 보라고 했다. 하지만 장담은 못한다고… 온 세상이 마치 두루마리 휴지를 사는 것이 목적인 것 같았다. 미영은 뭔지 모를 안도와 뿌듯함을 느끼며 얼른 두 뭉치의 휴지를 질질 끌고 가서 카트에 옮겨 담았다. 몇 가지 필요한 다른 물건을 사려고 지나가면서 휴지코너를 힐끗 보니, 어떤 백인 할머니가 텅 빈 휴지 섹션 앞에 멍하니 서 있었다. 미영의 카트에 담겨있는 휴지 더미를 들지도 못할 것 같은 작은 체구의 노인이었다. 힘센 젊은 것들과의 경쟁에서 밀린 채 빈 카트를 앞에 둔 노인의 초라한 모습에 미영은 가슴이 저며 왔다. 아귀다툼 같은 이 상황에 약자들이 설 곳은 없었다. 약육강식이 판치는 정글 속 동물의 세계와 다를 바 없었다. 다른 게 있다면 그들은 생존을 위해 먹을 것을 두고 다투지만, 지금 이 상황은 똥 닦는 휴지를 두고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혹시 화장실 휴지 필요하세요?”
“다 팔렸대요.”
마스크를 쓰고 있는 낯선 동양인 여자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는 노인에게 미영은 조심스럽게 자신의 카트를 가리키며 물었다.
“제가 두개를 샀는데 괜찮으면 할머니께 한개 드려도 되요.”
“정말이요? 고마워요. 고마워요.”
“그래도 저한텐 한 개가 있으니까요. 어려울 땐 서로 도와야죠.”
감격해 하는 노인의 카트에 휴지를 옮겨 담은 뒤, 편한 마음으로 케첩을 사기 위해 진열대로 들어선 순간 미영은 또 한 번 화들짝 놀랐다. 케첩 코너가 텅 비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양 사람들에게는 한국의 된장 고추장 같은 격이랄까. 4칸이나 되는 진열대가 모두 비어있는 것을 보고 다시 뭔지 모를 두려움에 가슴이 두방망이질 쳤다. 그리고는 귀신에 홀린 듯 마요네즈, 설탕, 또띠아 칩 같은 예상하지 않았던 물건들도 마구 카트에 쓸어 담았다. 스넥류도 급할 땐 식사대용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다가, 그런 자신이 어이가 없어서 정말 전쟁이 난다면 이렇겠구나 싶었다. 다행히 오늘 쇼핑은 목적한 바를 다 이루었지만, 미영은 한층 더 어수선해진 마음을 끌고 마트를 나왔다. 들어올 때는 괜찮았던 입구에 줄이 길게 늘어선 것을 보고 또 한 번 탄식을 했다. 사람들의 표정은 날씨만큼이나 다들 을씨년스럽고 불안함이 가득했다. 폭풍이 몰아치기 전 하늘의 모습이었다. 미영은 쇼핑해온 짐들을 차 트렁크에 싣다가 문득 건너편 제인네 꽃가게에서 문 앞에 내놓은 화분들을 보았다. 요새 같은 상황에 꽃가게가 문을 열다니 뜻밖이었다. 이왕 본거 꽃 화분이나 사서 기분전환을 해야겠다고 다가갔더니, 역시 문은 닫혀 있었다. 대신 ‘무료’라고 써 있는 게시판 아래 히야신스, 튤립이 담긴 작은 화분이 열 댓 개 놓여 있고, 각 화분에는 고운 색깔의 메시지가 작은 막대에 꽂혀 있었다.
‘내년에도 봄은 돌아와요.
이 작은 꽃이 당신에게 힘이 되길 바래요.
행운이 함께 하시길.
제인으로부터’
꽃가게는 필수업종이 아니라 강제로 영업이 중단되면서, 봄이 오면 팔려고 준비했던 화분을 주민들을 위해 내놓은 것 같았다. 어차피 그냥 두어봤자 시기를 놓쳐 올해는 팔수가 없겠지만, 두었다가 내년에 다시 팔면 될 것들이었다. 하지만 어두침침한 이 시국의 봄을 화사한 꽃향기와 함께 나누고 싶은 화원 주인의 마음씨가 너무 고왔다. 온 세상이 처음 보는 바이러스의 침략으로 전쟁터 같은 상황이었지만, 평범한 누군가는 이런 베품을 조용히 실행하고 있었다. 미영은 화원 주인의 따뜻한 마음에 위로를 받으며, 화분과 함께 옆에 있던 명함을 가지고 왔다. 영업제한이 풀리면 바로 가져갈 수 있도록 여름용 화분을 미리 주문할 참이었다. 겨우 보라색 꽃이 필거라고 알려주는 정도의 꽃 봉오리였지만, 이미 향기는 슬며시 피어오르고 있었다. 작은 차 안을 채우기 시작한 그 향기만으로도 미영은 저도 모르게 불안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콧노래마저 흘러나왔다. 무시무시한 전쟁을 치룬 마트와는 달리 길 거리는 마치 추석날 마포대로처럼 한산했다. 잔뜩 찌푸린 날씨와 함께 텅 빈 거리가 인류종말에 관한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해서, 슬며시 한기가 올라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 2 -
어제부터 내리던 비가 그치고 나자 봄기운 가득한 비릿한 냄새가 확 올라왔다. 전에는 봄비가 오면 왜 비린내가 날까 하고 궁금했는데, 뒷마당 텃밭을 돌보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바로 겨우내 흙 속에 숨어있던 지렁이가 밖으로 나오면서 풍기는 냄새였다. 그것은 봄이 왔음을 알리는 냄새였고, 이제 막 본격적으로 봄이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세상이 어떻든 미리 계획된 세월이라는 시간은 착착 예정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미영은 지난 수 주 동안 딱 한번 장을 보려고 차를 움직였을 뿐 꼼짝도 안하고 지냈다. 딸아이는 갑작스럽게 온라인수업이 진행되면서 말 그대로 인터넷 세상에 풍덩 빠져 지내느라, 이 상황을 오히려 즐기는 듯 했다. 남편은 필수직종이라 아침마다 사선을 넘어가는 사람처럼 비장함을 품고 다운타운으로 출근을 했고, 미영은 그나마 재택근무를 할 수 있어 집에만 머무를 수 있었다. 정말 이렇게 갇혀서도 사람이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인간의 적응력은 참 대단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강제로 두문불출하며 지냈는데도, 여전히 코로나는 더욱 확산되고 있어 요양원이나 양로원에서 노인들이 떼죽음을 당했다는 소식이 연일 들려왔다. 마스크를 구할 길이 없어 일회용 마스크를 빨아 쓰는 일까지 생겼고, 어쩌다 구할 수 있는 마스크도 평소의 2-3배 이상의 가격을 줘야만 했다. 그나마도 구하면 다행이었다. 미영의 가족은 일회용 마스크를 도저히 구할 길이 없어서 인터넷에 공개되어 있는 대로 천 마스크를 만들어 청소용 정전기 필터를 안에 끼워 사용했다. 그러나 마스크가 있다 한들 편하게 쓸 분위기는 아니었다. 평생 마스크라고는 써 본적이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 마스크 쓸 것을 권유하는 뒤 늦은 정부지침에도 강한 거부를 드러냈다. 답답하다고 가운데를 뻥 뚫은 마스크, 코에다 건 마스크, 턱에 대충 걸친 마스크, 하다못해 구멍이 뻥뻥 뚫린 망사 마스크 등 웃지 못 할 행태들이 등장했다. 왜 마스크를 써야하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간혹 미디어를 통해 들려오던 동양인들에 대한 폭행과 혐오발언 뉴스가 점차 주변 사람들의 경험담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미영 역시 보름 전 마트에 갔다가 어이없는 봉변을 당했다. 그저 간단하게 소소한 장을 볼 요량으로 문 밖을 나섰는데, 슈퍼마켓은 출입인원 제한으로 인해 길게 줄이 늘어서 있었다. 한참을 기다려서 순서대로 들어서는 순간, 입구에서 어떤 백인 남자가 미영을 제지하며 코로나 걸린 게 아니라면 마스크를 벗으라고 위협적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마스크는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서 쓰는 것이며 정부의 권고사항이라고 미영이 항변하자, 그 남자는 비웃음을 흘리며 매니저를 불렀다.
“이 여자 중국에서 온 거 아닌지 확인해 봐요. 아무도 안 쓰는 마스크를 혼자 쓴걸 보면 코로나에 걸렸을지도 몰라요.”
다가온 덩치 큰 흑인 매니저 역시 눈살을 찌푸리며 미영에게 마스크를 벗으라고 요구했다.
“당신 때문에 다른 손님들이 겁을 먹고 있잖아요. 코로나에 걸린 게 아니라면 떳떳하게 얼굴을 공개해요. 여기는 아무도 코로나에 걸린 사람이 없으니까.”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더니, 그 백인 남자는 의기양양한 채 더 큰소리로 외쳤다.
“여긴 캐나다야. 아시안 방식을 고집하지 마. 우리는 코로나에 안 걸려. 마스크 끼고 살거면 너희 나라로 돌아가서 해.”
고개를 돌려보니 주변에 있는 몇 몇 사람들 사이에서 마스크를 쓴 사람은 미영이 유일했고, 그들의 눈빛은 불쾌함 또는 앞으로 벌어질 사태에 대한 호기심을 분출하고 있었다. 적어도 미영의 편에 서줄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장 볼 때는 중국마트를 가라고 하던 친구의 말이 그제야 생각났다. 그 와중에 누군가 휴대폰을 들이대자 매니저는 당장 그만두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소리를 질렀다. 둘러선 사람들 사이에서 고립된 미영은 수치감, 두려움, 억울함이 교차하며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동네인지라 누군가 자신을 알아볼까봐 걱정이 되기도 했다. 아마도 오히려 경찰을 불러 인종차별을 받았다고 신고하면 미영이 유리하겠지만, 그래봤자 앞으로 사람들의 표적이 되기밖에 더 할까. 마켓 안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 쓰지 않고 자기들 쇼핑하는데 열중하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었다. 미영은 결국 마스크를 벗는 대신 뒤돌아서 나오는 것을 선택했다. 모두들 그녀를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낯을 드러내기가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나오기 전에 미영은 매니저에게 또박또박 말했다.
“마스크를 끼는 것은 정부의 권고사항이고, 나는 그것을 지켰을 뿐이에요. 지금 이일에 대해서는 회사에 정식으로 항의할 거예요.”
“마음대로 해요.”
매니저는 쌀쌀맞게 대꾸하며 미영이 빨리 나갈 것을 눈빛으로 재촉했다. 어쩌면 미영에게 시비를 걸었던 그 남자는 그냥 재미삼아 일을 벌였을 수도 있었고, 매니저는 매장이 시끄러워지는 것을 막으려고 그랬을 수도 있다. 아무튼 미영이 혼자 온 동양인 여자라서 만만했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리라. 미영이 뒤돌아서자 사람들이 아무 일 없다는 듯 흩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팔짱을 끼고 있는 덩치 큰 매니저 앞에서 그 우악스러운 백인남자는 더 이상 소동을 벌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은 두방망이질로 쿵쾅거렸고, 눈에서 뭔가가 주르륵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등을 꼿꼿이 편 채 빠른 걸음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면서 걸었다. 주차장으로 나와서 차까지 걸어오는 50미터도 안 되는 길이 수만리도 더 되는 것 같았다. 간신히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운전해 집에 와서도 마음은 진정되지 않고, 미영을 알아본 누군가 나중에 해코지라도 하면 어쩌나 사뭇 걱정이 되었다. 또한 견딜 수 없는 치욕감이 밀어 올라 온 몸이 화끈거렸다. 미영이 집안에만 있던 사이 세상은 감춰졌던 인종차별의 이빨을 드러내며 어떻게든 핑계거리를 찾아 코로나에 대한 분노를 동양인에게 풀고 있었다. 자신이 통제 할 수 없는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두려움 외에 모든 생활에서 불편함을 주었고, 사람들은 이 불편함을 참기가 너무 힘든 것이었다. 화는 나는데 그것을 풀 수 없자, 자신들보다 키나 몸집이 작은 동양인들 특히 여성이나 노인을 상대로 치사한 분풀이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런 사람들은 일부 소수라지만, 그들의 목소리와 행동은 너무 파괴적이었다. 바이러스의 비말 전파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마스크가 필수라는 사실을 서양 사람들은 아직 받아들이지를 못한다. 어떻게든 그들의 문화관습을 이해하려고 해보았지만 방금 당한 모욕과 공포는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너무 억울했다. 캐나다에서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잡고,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투표까지 하는 캐나다 시민으로 살아온 지 어느덧 20년째인데, 이제 와서 동양인이라고 너희 나라로 가라니. 인생의 절반을 아니, 젊은 시절을 통째로 보낸 곳이 여기인데. 어찌할 수 없는 분노, 서러움이 교차하며 더 되받아 치지 못하고 그대로 후퇴하고 만 것이 못내 후회되었다. 곧바로 그 마켓의 본사 소비자상담실에 방금 당한 일에 대해 장문의 이메일을 보냈다. 그 매니저의 태도와 마스크 착용을 권고한 정부방침을 지키지 않는 매장 운영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시정하지 않으면 경찰과 언론에 제보하겠다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마음은 좀 풀렸지만, 별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어차피 정부조차도 마스크 사용을 의무화하지 못하고, 단지 권고만 하고 있지 않은가.
- 3 -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뒷마당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제 할일을 하며 봄을 준비하고 있었다. 땅속에서 겨울을 난 튤립, 수선화의 알뿌리들이 긴 추위를 뚫고 나와 어느새 기특하게도 꽃봉오리를 맺고 있었다. 미영은 담장 너머로 어른어른 보이는 옆집 뒷마당을 흘낏 쳐다보았다. 옆집 노인 메리가 나와서 역시 작은 텃밭을 손보고 있었다. 그녀와는 10년 전 처음 이 동네로 이사 왔을 때부터 이제껏 제대로 눈조차 맞춰 본 적이 없을 만큼 서로 상관하지 않는 이웃이었다. 처음부터 별로였다. 이사 왔다고 인사를 하러 초인종을 눌렀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분명히 방금 뒷마당서 보았는데 말이다. 그러다 집앞에서 마주친 김에 반갑게 인사를 했더니, 희끗희끗 은발머리를 한 메리는 무뚝뚝하게 한마디 툭 내쏘았다.
“난 동양인을 좋아하지 않아요. 당신들이 이 동네에 나타나서 집값을 올리는 바람에 내 친구들이 이곳을 떠났어요. 그러니 서로 조용히 살았으면 좋겠어요.”
첫 대면 인사치고는 별꼴이다 싶을만한 환영인사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 심통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미영의 집도 처음 이사 왔을 때보다 가격이 크게 올랐고, 그에 따라 재산세도 함께 올라가서 매년 봄, 가을 고지서를 받을 때마다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메리의 주장처럼 동양인들이 집값을 올리는 게 아니라 동양인들은 대체로 집을 잘 관리하고 깨끗하게 사용하기 때문에 가격 경쟁력이 있는 것이다. 한 가지만 봐도 동양인들은 실내에서 신발을 벗고 생활하지 않는가. 또 노령사회에 진입한 캐나다에 젊은 이민자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주택수요 증가로 자연스럽게 가격이 올라갈 뿐이다. 사실, 메리의 주 수입원은 각종 연금일 텐데 그 연금이 제대로 지급되는 것은, 미영을 비롯한 젊은 이민자들이 열심히 경제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집값이 떨어지는 것보다는 올라가는 것이 좋긴 하지만, 어차피 정착해서 오래 살 사람들은 집값 보다는 세금 올라가는 것이 더 신경 쓰이는 것이다. 은퇴하고 특별한 소득 없이 연금에 의존해서 살고 있는 노인들에게 현재 살고 있는 집을 유지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재산세는 가장 큰 지출 항목일 것이다. 오르는 세금을 감당 못하게 되면, 결국 집을 팔고 더 싼 곳으로 이사를 가던지 아니면 노인아파트나 양로원으로 가는 것을 선택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정든 친구들 곁을 떠나야 하는 문제에 맞닥뜨리게 되는 것이다. 자식들이 모두 독립하고 홀로 사는 외로운 노인들에게 익숙한 주거환경과 친구들이야말로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이기도 할 것이다. 메리도 자주 오가던 친구들 중 대부분이 양로원에 들어가거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야했다. 하지만 그것을 동양인들 탓으로 돌리는 것은 말도 안 되는 핑계일 뿐이다.
그녀의 심술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나타났다. 처음 집 장만을 한 미영은 집 안팎을 정성들여 가꾸었고, 특히 뒷마당은 자신만의 정원으로 꾸며놓았다. 담장 울타리를 타고 도는 빨간 줄 장미와 계절마다 바뀌어 꽃이 피는 화단 외에도 쑥갓, 깻잎, 부추, 상추, 도라지, 더덕 같은 채소가 자라는 텃밭도 있었다. 그중 한국서 씨앗을 가져와 애지중지하며 키운 더덕은 무럭무럭 잘 자라 쭉쭉 뻗어간 덩굴이 옆집과 공유하는 담장에서 줄을 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 종 같은 더덕 꽃들이 이파리들과 함께 축 늘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얼기설기 엉켜서 옆집 담장 기둥을 끼고 돌아간 더덕덩굴이 모두 잘려져 있었던 것이다. 정말 심술궂은 할망구 같으니. 미영도 화가 나서 그 다음부터 담장 사이로 넘어오는 그 집의 나뭇가지나 꽃 들을 가차 없이 잘라 버렸다. 하다못해 식물조차도 자신의 영역을 건드리는 것을 용납 못하는 그 고약한 심보가 못마땅했다. 그렇게 이사 온 이래 두 집은 서로 담장을 마주한 이웃이지만, 어쩌다 마주쳐도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않는, 그렇다고 사이가 나쁜 것도 아닌 서로 무관심한 관계였다. 그녀와 함께 살고 있는 남동생도 어쩌다 마주치면 간단히 눈인사로 아는 체를 할 뿐 대화를 해본 적이 없는데, 건너편 집 여자 말로는 심장병이 있어서 꼼짝도 안한다고 했다. 여름철 잔디를 깎거나, 한겨울 수북이 쌓인 눈을 치우는 것은 모두 메리의 몫이었다. 메리네 집은 어쩌다 손님이나 찾아와야 사람 사는 집이구나 할 정도로 조용했다. 담장 틈새로 보이는 메리는 대부분 뒷마당 벤치에 앉아 책을 읽거나 화단 손질, 또는 잔디에 난 잡초를 뽑고, 새 모이통 주변에 모이는 새들을 감상하곤 했다. 그 집에서 들려오는 유일한 소음은 새들의 지저귐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간간이 친구들을 만나러 근처 커피숍에 가거나 식료품 사러 가는 것이 그녀의 화려한 외출이었다. 차가 없는 그녀는 작은 손수레를 끌고 1km 정도 떨어진 마트에 다녀오곤 했다. 한여름 체감온도가 40도를 넘어가는 날 손수레를 끌고 장에 다녀오는 그녀와 길에서 마주하면, 집까지 태워다 줄까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말 꺼내는 것 자체가 무슨 오해라도 불러일으킬까 싶어 접어버리고는 했다.
그렇게 상관 안하는 이웃이었지만, 연일 들려오는 노인들의 코로나 피해소식은 자연스럽게 담장너머로 메리가 보이는지 살펴보게 되었다. 얼마 전, 미영은 멍한 얼굴로 힘없이 뒷마당 벤치에 앉아 있는 메리를 보았다. 무슨 일이 있나 염려가 될 만큼 힘들어 보였지만, 그렇다고 왜 그런지 물어볼 만큼 살 가운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궁금증은 다음날 바로 풀렸다. 반대편 옆집 여자와 오랜만에 딱 마주쳤는데, 모처럼 만나서 반가 왔는지 동네 소식꾼답게 이런저런 소식들을 전해주었다. 바로 그때 메리의 친구가 얼마 전 양로원에서 코로나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메리와는 소꿉동무였고 평생을 이 타운에서 살아왔는데, 동양인들의 등쌀에 밀려 집을 팔고 양로원에 들어갔다는 그 친구였다. 코로나 사태로 작별인사도, 장례식도 못 간 메리가 큰 상실감에 그렇게 넋 나간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서로 무관심했어도 오랜 기간 조용한 이웃인 메리의 슬픔에 미영도 마음이 아팠다. 신문기사에서 읽던 노인시설의 대규모 코로나 확진과 죽음 소식이 머나먼 남의 일만은 아니었다. 잠시 망설이던 미영은 가족이 쓰려고 만들어둔 천 마스크 4장에 청소용 정전기 필터를 끼워 넣은 다음 작은 쇼핑백에 담아 메리의 현관문 앞에 두고 왔다. 마스크를 쓰든 안 쓰든 그녀의 자유지만, 특히 노인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거라도 전해주어야 인간적인 마음의 짐이 덜어질 것 같았다. 코로나는 비말을 통한 감염이라 서로의 침방울 차단이 제일 중요하다고 써 넣은 문구를 메리가 눈여겨볼지 어쩔지는 잘 모르지만… 문앞에 놓아둔 쇼핑백이 없어진 것을 보면 가지고 들어간 것 같기는 한데, 그 뒤에도 한두 번 마주친 메리는 마스크를 쓰고 있지 않았다. 조금 서운하기는 했지만 신경 안 쓰기로 했다. 어차피 그런 사이였는데 공연히 오지랖을 떨었을 뿐이었다.
-4-
‘딩동’
갑자기 초인종이 울렸다. 이미 집과 집을 서로 오고가는 것이 단절 된지 두 달이다. 올 사람이 없는데 누구일까 하면서 마스크부터 찾아 쓰고 현관 유리문으로 빼꼼이 내다보았다. 뜻밖에도 문 앞에는 메리가 서 있었다. 메리가 미영의 집을 방문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별일이다 하면서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여러 색깔의 천과 청소용 필터가 담긴 상자가 있었고, 메리는 한발 뒤로 물러서 있었다.
“실례가 안 된다면 지난번에 준 것 같은 마스크를 10개만 더 만들어 줄 수 있나요? 내가 돈은 지불할게요. “
이미 전에 준 마스크조차 안하고 있으면서 새 마스크를 만들어 달라니… 당황한 미영이 상자를 집어 들면서 물었다.
“마스크는 어디에 쓰시게요?”
너는 지금도 마스크를 안 하고 있잖아 하듯 딱딱한 말투의 미영에게 메리는 수줍으면서도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 마스크는 양로원에 있는 친구에게 줬어요. 어제 그 양로원에서 확진자가 여럿 나왔는데 내 친구는 감염이 안 되었어요. 그 마스크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거기서 마스크 쓴 사람은 내 친구밖에 없었어요.”
“어머, 그래요?”
“그래서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스크를 나눠 주고 싶어요. 요새는 마스크 구하기가 너무 힘들어서요. 그리고 덴탈 마스크보다 천 마스크는 보기에 더 좋아서… 아무래도 덴탈 마스크는 환자 같이 보여서 싫어요. “
“다른 친구분들이 마스크를 쓸까요? 다들 마스크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던데요.”
얼마 전, 슈퍼마켓에서 당했던 일이 떠오르자 미영은 저도 모르게 볼멘 목소리가 되었다. 백인 노인들이 마스크를 쓰기는커녕 마스크 쓴 사람들을 비난하지나 않으면 다행일터였다.
“쓰게 해야죠. 마스크가 중요하다잖아요. 내 친구들에게는 내가 그렇게 할 거에요.”
메리는 자신 있게 말했다. 메리는 양로원의 집단 감염사태에서 친구가 피해를 입지 않은 것은 정말 마스크를 썼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제일 친했던 친구가 코로나로 사망한 다음, 더이상 친구를 잃지 않으려는 간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뭐가 되든.
“내가 그때 봐둔 대로 한번 만들어 보았는데 좀 이상해요.”
미영이 상자 안을 보니 서툰 솜씨로 만든 마스크가 보였다. 어쨌든 나이가 70이 넘은 할머니가 침침한 눈으로 그것을 손바느질해서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더구나 사용해 본적도 없는 마스크였기에 어디에 중점을 두어서 재단해야 하는지 전혀 모르고 그냥 모양만 본떠서 만들었을 것이다. 보기에는 간단해 보여도 천 마스크는 양쪽 끝에 고무줄을 넣어야 하는 자리가 있어야 하고, 안쪽에 필터를 넣기 위해서 이중 재단을 하여 주머니처럼 만들어야 한다.
“예쁘게 잘 하셨네요. 그래도 저한테는 재봉틀이 있으니까 더 빨리 만들 수 있을 거예요.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 “
“고마워요. 거기 청바지 조각천은 내 친구를 위한 거예요. 청바지를 즐겨 입는 친구라 잘 어울릴 것 같아서요. 저 빨간색 땡땡이 천도 친한 친구 줄 거에요.”
“알겠어요. 조금 더 신경 써서 만들게요.”
“얼마 드리면 될까요?”
“음. 일단 이걸로 천은 될 것 같고 고무줄은 저한테 있으니까 10개는 문제없겠네요. 그 정도는 제가 만들어 드릴게요. 이렇게 대화를 하니 너무 좋네요.”
“정말 고마워요.”
메리는 진심어린 표정으로 미영을 바라보다가 멋 적은 듯 말을 추가했다.
“내가 좋은 이웃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아요. “
“어머, 아니에요. 얼마나 조용한 이웃인데요. 아이 키우기에 딱 좋죠.”
“전에 우리 집 담장으로 넘어온 식물을 잘랐던 것 미안하게 생각해요. 처음 보는 건데 스컹크 냄새가 나서 그랬어요.”
미영은 ‘아하’하고 이마를 쳤다. 정말 심술궂고 예의 없는 노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나름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더덕 특유의 매캐한 냄새가 메리에게는 고약한 스컹크 냄새로 느껴졌나 보다. 그건 미처 생각을 못했다. 어쩌다 로드킬 당한 스컹크를 스치기만 해도 차안에 스며든 구역질나는 냄새가 빠지지 않아 고역을 치룰 정도니 이해할만 했다. 역시 사람은 대화를 해야 했다. 메리가 그게 뭐냐고 물어보기만 했어도, 아니면 미영이 메리에게 따지기라도 했으면 이렇게 오래도록 데면데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에게 아무리 좋은 것도 익숙하지 않은 누군가에겐 별로 일 수 있다는 것을 왜 전혀 생각하지 않았는지... 무조건 비난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아, 그랬군요. 제가 어릴 때 할머니 댁에서 키우던 거라 심어봤어요. 냄새가 스컹크와 좀 비슷하긴 하네요.”
아무튼 심술 맞았던 그녀의 수줍은 사과와 뜻밖의 부탁은 최근 움츠려들었던 미영을 다시 살아나게 했다. 그녀가 건네준 상자에는 알록달록한 천부터 청바지를 잘라낸 것까지 다양했다. 메리는 10장만 만들어 달라고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할 것이었다. 어쩌면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오기 전까지는 마스크를 제대로 사용하는 것만이 코로나에 대응할 유일한 방법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정말 더 많이 만들어 주어야겠다. 집에 가지고 있는 천들을 모아보니 그런대로 20장 정도는 더 만들 수 있을 것 같았다. 미영은 뭔가 중요한 일을 하게 된 것 같아 오랜만에 뿌듯하고 가슴이 뛰었다. 마스크 한 장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마스크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늘어난다면, 방역이든 동양인에 대한 편견이든 좀 나아지지 않겠나. 익숙하지 않은 것에 대한 반감도 점점 주변에서부터 익숙해지면 사라질 것이다. ‘뉴 노멀’ 이라고 부르는 시대가 올 거라는 우울한 전망도 있지만, 그래도 시간이 좀 걸릴 뿐이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고 싶었다. 그때까지는 서로 도우며 이 어려움을 잘 견뎌내야 한다. 세월이 지난 후에는 지금 보내고 있는 이 힘든 봄을 ‘그해 봄’ 이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몇 년 뒤에는 ‘그해 봄’에 겪었던 많은 일들을 군대 다녀온 이야기하듯 무용담으로 떠벌리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미영은 지역 맘 카페에 글을 남긴 후, 책상위에 펼쳐진 천들 위에 마스크 본을 놓고 초크로 정성들여 그리기 시작했다. 가능한 한 빨리 만들고 싶었다. 그 사이 책상 구석에 있는 핸드폰이 부르르 떨면서 부지런히 메시지들을 보내오고 있었다.
‘마스크를 만들어서 기부하다니 정말 좋은 생각이에요. 저도 동참할게요.’
‘저도 참여할게요.’
‘응원합니다.’
‘우리 동네 노인아파트에도 기부하고 싶어요. 만드는 방법좀 알려주세요.’
‘저도 함께 해요.’
(미주 한국소설 2023년 통권13호)
첫댓글 순호님의 소설을 단숨에 읽고
아~ 하는 소리를 나도 모르게
했네요.
오랜만에 문협 카페에 들어 와
보니 순호님의 소설이 눈 들어
와서 읽기 시작했어요.
저녁 먹은게 소화가 다 됐네요.
지난 주,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냉방 목 감기로 몸이 나른
했었는데 순호님 소설 덕분에
가슴이 확 후련해져 오늘 밤
잠을 푹 잘것 같아요.
내일 아침엔 뛰고 와야겠어요.
편안한 밤 되세요.
새미와 함께
Happy Birthday Canada!
이 미숙 회원.
안녕하세요. 잘 지내시죠?
팬더믹때 느꼈던 그 극심한 공포가 이젠 전혀 기억이 안나요.
그당시 이건 꼭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몇가지 에피소드들을 일기처럼 써놓았다가 나중에 이어붙인 작품이에요.
그때 감정을 끄적끄적 써놓길 잘한것 같아요.
우린 참 너무 빨리 잊고 사는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