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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에서 들리는 초(楚)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 상태에 빠짐을 이르는 말이다.
四 : 넉 사(囗/2)
面 : 낯 면(面/0)
楚 : 초나라 초(木/9)
歌 : 노래 가(欠/10)
(유의어)
고립무원(孤立無援)
낭패불감(狼狽不堪)
진퇴무로(進退無路)
진퇴양난(進退兩難)
진퇴유곡(進退維谷)
초가(楚歌)
출전 :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
장기에서도 초(楚)나라와 한(漢)이 싸우듯이 항우(項羽)와 유방(劉邦)이 격돌하는 초한(楚漢) 전쟁은 흥미진진하다. 초한을 몰라도 사면초가(四面楚歌)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5년 동안이나 일진일퇴하다 막판에 항우 진영이 세력을 잃었을 때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가 들려와 결정적으로 전의를 상실케 된 고사에서 나온 성어다.
여기에서 아무에게도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롭고 곤란한 지경에 이른 상태를 말하게 됐다. 적으로 둘러싸인 고립무원의 상태나 사방에서 빗발치는 비난 속에서 외톨이가 된 상태를 비유하기도 한다.
사기(史記)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실려 있다. 초나라의 항우 군대를 둘러싸고 사방에서 어떻게 초나라 노래가 들려왔을까?
초군은 범증(范增) 같은 유능한 책사도 떠나고 유방 휘하 한신(韓信)에 포위당해 해하(垓下)에 주둔하고 있었다. 몸은 고달프고 식량도 떨어져 사기는 말이 아니었다.
그 때 한의 장량(張良)이 심리전을 폈다. 포로가 된 초나라의 병사에게 노래를 부르게 했다. 고향을 그리게 하는 구슬픈 노래를 듣고 야음을 틈타 병사들이 하나둘 탈주하기 시작했다.
항우는 사방에서 들리는 노래 소리에 한나라가 이미 초를 점령하여 모든 것이 끝장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장막 안으로 들어가 결별연을 열고 끝까지 함께 한 총희 우미인(虞美人)을 생각하며 즉흥시를 지었다.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時不利兮騅不逝(시불리혜추불서)
騅不逝兮可奈何(추불서혜가내하)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내약하)
힘은 산을 뽑고 기는 세상을 덮었는데,
때가 불리하여 오추마도 가지 않네,
오추마가 가지 않으니 어찌하랴,
우야 우야 너를 어찌하리.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에서 들리는 楚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 상태에 빠짐을 이르는 말이다. 또한 사방에서 빗발치는 비난속에 외톨이가 된 상태를 비유하여 말하기도 한다.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의하면 초(楚)나라의 항우(項羽)가 한(漢)나라의 유방군(劉邦軍)에 패하여 해하(垓下)에서 포위되었을 때,
사방을 에워싼 한나라 군사속에서 초나라 노랫소리가 들려오자 크게 놀라, “한나라가 이미 초나라를 점령했다는 말인가, 어째서 초나라 사람이 이토록 많은가”하고 슬퍼하였다 한다. 이것은 한나라 고조(高祖)가 꾸며낸 심리작전으로, 사면초가(四面楚歌)라는 말도 여기서 유래되었다.
항우는 곧 초나라의 도읍인 팽성(彭城)을 향해 철군길에 올랐으나 서쪽의 한중(漢中)으로 철수하려던 유방은 참모 장량(張良), 진평(陣平)의 진언에 따라 말머리를 돌려 항우를 추격했다.
이윽고 해하(垓下)에서 한신(韓信)이 지휘하는 한나라 대군에게 겹겹이 포위된 초나라 진영은 군사가 격감한데다가 군량마저 떨어져 사기가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한밤중에 사방에서 초나라 노래 소리(四面楚歌)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심신이 지칠대로 지친 초나라 군사들은 전의(戰意)를 잃고 그리운 고향의 노랫소리에 눈물을 흘리며 다투어 도망을 쳤다.
항복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초나라 노래를 부르게 한 장량의 작전이 주효했던 것이다. 항우는 깜짝 놀라서 외치듯 말했다. "아니, 한나라는 벌써 초나라를 다 차지했단 말인가? 어찌 저토록 초나라 사람들이 많은가?"
이미 끝장이라고 생각한 항우는 결별의 주연을 베풀고는 사랑하는 우미인(虞美人)이 사면초가의 애절한 노래를 부르자, 비분강개한 심정을 다음과 같이 읊었다.
於是項王乃悲歌慷慨, 自爲詩曰 :
力拔山兮氣蓋世(역발산혜기개세)
힘은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었는데,
時不利兮錐不逝(시부리혜추부서)
시세가 불리하여 오추마도 떠나려 하지 않는구나.
錐不逝兮可奈何(추부서혜가나하)
오추마가 떠나려 하지 않으니 어찌하리랴
虞兮虞兮奈若何(우혜우혜나야하)
우야, 우야 내 너를 어찌 할꺼나
항왕(項王)이 반복해서 몇 번 노래하자, 우미인도 이별의 슬픔을 가득 담고 애절하게 화답했다. 항왕의 뺨 위에는 굵은 눈물이 흘렀다. 가까이 모시는 신하들도 그 앞에 엎드려 소리없이 흐느끼며 쳐다 보지를 못했다.
歌數結, 美人和之.
項王泣數行下, 左右皆泣, 莫能仰視.
우희(虞姬)의 화답가이다.
汉兵已略地(한병이략지)
한나라 군사는 이미 우리 땅을 점령했고,
四面楚歌声(사면초가성)
사방은 온통 초나라 노랫소리네요.
大王意气尽(대왕의기진)
대왕께서도 의기가 다하셨는데,
贱妾何聊生(천첩하료생)
소첩이 어찌 살기를 바라겠어요.
우미인은 피를 토하듯이 탄식하는 항우의 아픈 마음을 헤아리고 이렇게 노래했다.
초패왕(楚覇王) 항우의 목숨에 자기의 목숨이 같이 달려 있어서 이제 대왕의 운세가 다하였는데 어찌 내가 구차한 목숨을 부지하리오 하고 노래를 마친 뒤 자기도 남장을 하고 힘껏 항우의 뒤를 따라 가겠으니 보검을 달라고 하여 항우가 옆구리에 찼던 칼을 뽑아 건네주고 떠나려 하자 우희는 그 순간 자신의 젖가슴에 칼을 꽂고 자진하고 말았다.
이별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한 한 여인의 무섭고 매몰찬 용단이었다. 어찌 여인을 약하다고만 하는가? 하여튼 이 노래를 마지막으로 우미인도 항우의 품에서 자결하고, 항우 역시 다음날 오강(吳江)에서 자결했으니, 그의 나이 31세였다.
고향이 그리워 오강까지 달려갔으나, 패군지장(敗軍之將)으로 고향에 돌아가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결한 것이다. 무면도강동(無面渡江東)이라는 고사성어가 여기서 나왔다.
또 삼국지(三國志)에서는 오(吳)나라의 여몽(呂蒙)이 형양전투(滎陽戰鬪)에서 사면초가의 계책을 써서 관우 군중의 장수와 병사의 가속(家屬)들로 하여금 산 위에서 높이 외치게 하여 군심(軍心)을 동요시킨 사실을 서술하였다.
형주(滎陽) 사병들의 형제가 서로 부르고 부자(父子)가 서로 찾아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군심(軍心)이 변하여 모두 그 소리에 따라 달려갔다. 관우(關羽)가 호통쳐도 불러 세우지 못하니 부하는 겨우 300여명이 남았다.
위풍(威風)을 천하에 떨친 관우도 항우와 마찬가지로 무리가 배반하고 친인(親姻)들이 떠나는 외롭고 구슬픈 사람이 되고 말았다.
후세 사람이 시(詩)를 지어 탄식했다.
人傑惟追古解良
인걸은 오직 옛날 해량땅이라
士民爭拜漢雲長
사람들 다투어 한나라 관운장을 추모하네
桃園一日兄和弟
도원에서 하루 아침 형님 아우 되었더니
俎豆千秋帝與王
만세토록 황제와 왕으로 제사 받네
氣挾風雷無匹敵
기개는 바람과 우레 같아 당할 자 없고
志垂日月有光芒
곧은 뜻은 해와 달처럼 밝게 비치네
至今廟貌盈天下
지금도 모신 사당 천하에 가득하니
古木寒鴉幾夕陽
고목에 앉은 까마귀 몇날 석양을 울었던가
사면초가(四面楚歌)
사방이 온통 초나라 노래라는 뜻으로, 완전 고립된 상태에 빠짐을 이르는 말이다.
천하를 다투던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유방의 싸움은 유방 쪽으로 기울었다. 항우에게 마지막 운명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끼던 장수 범증마저 떠나가고, 한나라와 강화를 맺고 동쪽으로 돌아가던 해하에서 항우는 한의 명장 한신에게 포위당했다. 빠져나갈 길은 보이지 않고, 병사와 군량미는 하루가 다르게 줄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사방에서 처량한 초나라 노래가 들려왔다. 한나라가 항복한 초나라 병사들에게 고향 노래를 부르게 한 것이다. 한군에 포위된 초나라 병사들은 지치고 향수에 젖어 싸울 의욕을 잃었다. 항우가 외쳤다. "초나라가 이미 빼앗겼단 말인가. 어찌 초나라 사람이 저리 많은가."
그는 죽음을 직감하고 ‘최후의 만찬’ 진중의 주연을 베풀었다.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운은 세상을 덮을 만하다'는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를 지어 자신의 운명을 탄식했고, 그의 총애를 받던 우미인은 자결로 시에 답했다.
항우 역시 오강을 건너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어 천하의 꿈을 접었다. 사기 항우본기에 나오는 얘기다. 사면초가(四面楚歌)는 사방(四面)에서 들려오는 초나라 노래(楚歌)다. 아무리 둘러봐도 우군 하나 없는 고립무원의 처지다.
원인과 결과는 늘 붙어 다닌다. 애초 동네 불량배 유방은 귀족 가문 항우의 상대가 못 됐다. 한데 천하는 유방이 거머쥐었다. 유방은 나누고, 항우는 인색했다. 공신에게 땅 몇 리 내어주는 데도 옥새를 만지작 거리느라 모서리가 닳을 정도였다.
고립무원에 처한 사람은 흔히 세상을 탓한다. 인정의 각박함을 탓하고, 우정의 얕음을 탓하고, 속세의 무심을 탓한다. 한데 세상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그게 순서다.
당신은 고립무원에 처한 그 누군가를 마음을 다해 응원한 적이 있는가, 친구의 아픔을 우정으로 감싸준 적이 있는가, 선뜻 ‘예’라고 답한다면 살면서 사면초가에 내몰리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 四(넉 사)는 ❶지사문자로 亖(사)는 고자(古字), 罒(사)는 동자(同字)이다. 아주 옛날엔 수를 나타낼 때 가로 장대 네 개의 모양으로 썼으나 三(삼)과 혼동되기 쉬우므로 전국시대 무렵부터 四(사)를 빌어 쓰게 되었다. 四(사)는 코에서 숨이 나오는 모양을 본뜬 것이었으나 그 뜻으로는 나중에 呬(희)로 나타내고, 四(사)는 오로지 수의 넷을 표시하는데 쓴다. ❷상형문자로 四자는 숫자 '넷'을 뜻하는 글자이다. 그런데 四자의 갑골문을 보면 긴 막대기 4개를 그린 亖(넉 사)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러니까 갑골문에서는 막대기 4개를 나열해 숫자 4를 뜻했던 것이다. 그러나 亖자가 숫자 三(석 삼)자와 자주 혼동되었기 때문에 금문에서는 '숨 쉬다'라는 뜻으로 쓰였던 四자를 숫자 '사'로 쓰기 시작했다. 四자는 사람의 콧구멍을 그린 것으로 본래는 '숨쉬다'라는 뜻으로 쓰였었지만, 숫자 4로 가차(假借)되면서 후에 여기에 口(입 구)자를 더한 呬(쉴 희)자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四(사)는 ①넉, 넷 ②네 번 ③사방(四方)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네 사람을 사인(四人), 네 곱절을 사배(四倍), 넷으로 가르거나 갈라짐을 사분(四分), 사방의 경계를 사경(四境), 사방의 둘레를 사위(四圍), 사방을 돌아보아도 친척이 없다는 뜻으로 의지할 만한 사람이 도무지 없다는 말을 사고무친(四顧無親),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 상태에 빠짐을 이르는 말을 사면초가(四面楚歌), 주위에 사람이 없어 쓸쓸함을 일컫는 말을 사고무인(四顧無人), 길이 사방 팔방으로 통해 있음이나 길이 여러 군데로 막힘 없이 통함을 일컫는 말을 사통팔달(四通八達), 이리저리 여러 곳으로 길이 통한다는 뜻으로 길이나 교통망이나 통신망 등이 사방으로 막힘없이 통함을 일컫는 말을 사통오달(四通五達), 사면이 봄바람이라는 뜻으로 언제 어떠한 경우라도 좋은 낯으로만 남을 대함을 이르는 말을 사면춘풍(四面春風), 사해란 곧 온 천하를 가리키는 말로 천하의 뭇사람들은 모두 동포요 형제라는 뜻을 이르는 말을 사해형제(四海兄弟), 네 갈래 다섯 갈래로 나눠지고 찢어진다는 뜻으로 이리저리 갈기갈기 찢어짐 또는 천하가 심히 어지러움 또는 질서 없이 몇 갈래로 뿔뿔이 헤어지거나 떨어짐을 일컫는 말을 사분오열(四分五裂), 네 가지 괴로움과 여덟 가지 괴로움이라는 뜻으로 인생에 있어 반드시 받지 않으면 안 되는 온갖 괴로움을 이르는 말을 사고팔고(四苦八苦), 사철의 어느 때나 늘 봄과 같음으로 늘 잘 지냄을 비유하여 일컫는 말을 사시장춘(四時長春), 사주의 간지로 되는 여덟 글자 또는 피치 못할 타고난 운수를 이르는 말을 사주팔자(四柱八字), 천하의 풍파가 진정되어 태평함을 이르는 말을 사해정밀(四海靜謐), 갓마흔에 첫 버선이라는 뜻으로 뒤늦게 비로소 일을 해 봄을 이르는 말을 사십초말(四十初襪), 404 가지 병이라는 뜻으로 인간이 걸리는 모든 질병을 이르는 말을 사백사병(四百四病), 네 마리 새의 이별이라는 뜻으로 모자의 이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사조지별(四鳥之別), 천하를 제 집으로 만든다는 뜻으로 천하를 떠돌아 다녀서 일정한 주거가 없음을 이르는 말을 사해위가(四海爲家), 사궁 중의 첫머리라는 뜻으로 늙어서 아내가 없는 홀아비를 이르는 말을 사궁지수(四窮之首), 사방의 지세가 견고하고 험한 자연의 요새로 되어 있는 땅을 이르는 말을 사색지지(四塞之地), 사방으로 흩어져 서로 따로따로 떨어짐 또는 그렇게 떼어놓음을 일컫는 말을 사산분리(四散分離), 어떤 주창에 응하여 모든 사람이 함께 행동함을 이르는 말을 사방향응(四方響應) 등에 쓰인다.
▶️ 面(낯 면/밀가루 면)은 ❶상형문자로 麵(면)과 麪(면)의 간자(簡字)이고, 靣(면)은 속자(俗字)이다. 面(면)은 사람의 얼굴과 그 윤곽을 나타낸다. 나중에 물건의 거죽이나, 얼굴을 그 쪽으로 돌리다 따위의 뜻으로도 쓰인다. ❷상형문자로 面자는 사람의 ‘얼굴’이나 ‘평면’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面자는 사람의 머리둘레와 눈을 특징지어서 그린 것이다. 面자의 갑골문을 보면 길쭉한 타원형 안에 하나의 눈만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面자가 단순히 ‘얼굴’만을 뜻하지는 않는다. 사람의 얼굴에서 비롯되는 ‘표정’이나 ‘겉모습’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面(면)은 (1)겉으로 드러난 쪽의 바닥 (2)입체(立體)의 평면(平面), 또는 겉면 (3)검도(劍道)나 야구(野球)에서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얼굴에 쓰는 제구(諸具) (4)향하고 있는 어떤 쪽 (5)신문 따위의 페이지 (6)낯이나 체면(體面) (7)인쇄한 책장이나 종이장의 한 쪽, 또는 이것을 세는 단위(불완전 명사). 쪽. 페이지 (8)몇 개의 이(里)로 구성된, 군(郡)의 관할에 딸린 지방 행정 구역 단위의 하나. 종래 하급 보통 지방자치단체의 하나이었으나, 하급 보통 지방자치단체인 군의 단순한 행정 구역으로 되었음. 등의 뜻으로 ①낯, 얼굴 ②표정(表情), 얼굴빛 ③모양, 모습 ④겉, 표면 ⑤겉치레 ⑥탈, 가면(假面) ⑦앞, 면전 ⑧방면(方面), 쪽 ⑨평면 ⑩면(행정 구역 단위) ⑪면(물건의 세는 단위) ⑫밀가루 ⑬보릿가루 ⑭국수 ⑮만나다 ⑯대면하다 ⑰등지다, 외면하다 ⑱향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한 면의 관할 구역 안을 면내(面內), 얼굴에 있는 잔털이나 수염을 깎는 일을 면도(面刀), 대하여 보고 있는 앞을 면전(面前), 얼굴을 마주 대함을 면접(面接), 얼굴을 대하여 만나봄을 면회(面會), 면에 사는 주민을 면민(面民), 일정한 평면이나 구면의 크기를 면적(面積), 면담(面談)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눔을 얼굴을 서로 알고 있음을 면식(面識), 바로 그 사람앞에서 잘못을 책망함을 면책(面責), 얼굴을 마주하여 꾸짖거나 논박함을 면박(面駁), 물체의 상하나 전후 이외의 좌우의 면을 측면(側面), 물체의 뒤쪽에 있는 면을 이면(裏面), 어떠한 사실과 반대되거나 다른 방면을 반면(反面), 일이 되어 나가는 상태 또는 그 장면을 국면(局面), 밖으로 나타난 모양 또는 대면하기를 꺼려 얼굴을 다른 쪽으로 돌려 버림을 외면(外面), 어떤 범위의 전체를 전면(全面), 바깥 면이나 겉모양을 표면(表面), 어떤 지역이 있는 방향 또는 그 일대를 방면(方面), 얼굴을 씻음을 세면(洗面), 눈 코 입 등이 있는 머리의 앞쪽 또는 사람끼리 서로 아는 것을 안면(顔面), 일이 바로 눈앞에 닥침을 당면(當面), 얼굴 생김새가 밉살스러움을 이르는 말을 면목가증(面目可憎), 서로 얼굴을 통 모른다는 말을 면목부지(面目不知), 얼굴이 아주 새로워졌다는 말을 면목일신(面目一新), 벽을 향하고 아홉 해라는 말을 면벽구년(面壁九年), 얼굴빛이 흙빛과 같다는 말을 면여토색(面如土色), 겉으로는 순종하는 체하고 속으로는 딴 마음을 먹는다는 말을 면종복배(面從腹背) 등에 쓰인다.
▶️ 楚(초나라 초/회초리 초)는 형성문자로 옛 모양은 도끼로 작은 나무를 베고 있는 모양을 나타낸다. 楚(초)는 많은 나무를 뜻하는 林(림)과 음(音)을 나타내며 동시에 많은 뜻(叢; 총)을 가지는 疋(필)로 이루어지며, 잘라 모아진 작은 나무의 뜻이다. 그래서 楚(초)는 (1)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나라. 양자강(揚子江) 중류의 유역에 근거한 나라로, 춘추 초엽에 무왕(武王)이 이웃 지역을 정복한 뒤부터 발전함. 장왕(莊王) 때, 제(齋)나라의 환공(桓公), 진(晉)나라의 문공(文公)에 이어 패자(覇者)가 됨. 한때 오(吳)나라의 공격을 받아 쇠했으나 다시 세력을 회복하여 전국칠웅(戰國七雄)의 하나가 됨. 후에 진(泰)나라에 멸망됨 (2)중국 5대십국(五代十國)의 하나. 호남(湖南)과 광서(廣西)를 영토로 하여 마은(馬殷)이 세움. 차(茶)의 재배로 거부(巨富)가 되었는데, 뒤에 내분으로 분열하여, 남당(南唐)에 망함. (3)중국에서 북송(北宋)이 망한 후 1127년에 금(金)나라가 세운 나라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초(楚)나라, 나라의 이름 ②회초리 ③가시나무 ④매(사람이나 동물을 때리는 막대기, 방망이 따위) ⑤아름다운 모양 ⑥우거진 모양 ⑦매질하다 ⑧아프다 ⑨괴롭다 ⑩늘어놓다 ⑪산뜻하다 ⑫곱다 ⑬우거지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초나라의 노래를 초가(楚歌), 어떤 범위의 밖에 존재함을 초재(楚在), 가시나무가 무성한 거친 땅을 초지(楚地), 아프고 괴로움을 초통(楚痛), 꼬리가 긴 초나라의 닭으로 변변치 못한 물건을 이르는 말을 초계(楚鷄), 초나라와 월나라라는 뜻으로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아무 상관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초월(楚越),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림을 초달(楚撻),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는 벌을 초벌(楚罰), 사람이나 짐승을 때리는 데 쓰는 매를 추초(菙楚), 간난과 고초로 고생이 심함을 간초(艱楚), 억울하게 당하는 고초를 원초(冤楚), 슬프고 가슴 아픔을 비초(悲楚), 몹시 슬프고 괴로움을 통초(慟楚), 말쑥하고 조출함을 청초(淸楚), 심히 아프고 괴로움을 통초(痛楚), 뭇사람 가운데에서 뛰어남 또는 그 사람을 교초(翹楚), 종아리채 또는 종아리를 침을 추초(箠楚), 초나라 왕비가 부를 지킨다는 뜻으로 명분에 사로잡혀 실을 잃음을 이르는 초비수부(楚妃守符),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뜻으로 적에게 둘러싸인 상태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고립 상태에 빠짐을 사면초가(四面楚歌),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라는 뜻으로 약한 자가 강한 자들 사이에 끼여 괴로움을 받는다는 간어제초(間於齊楚), 나릇을 북쪽으로 향하게 해 놓고 남쪽인 초나라로 가려 한다는 뜻으로 의도하는 바와 행하는 바가 서로 어긋난다는 북원적초(北轅適楚) 등에 쓰인다.
▶️ 歌(노래 가)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하품 흠(欠; 하품하는 모양)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에 소리를 길게 빼서 노래함의 뜻을 가진 哥(가)가 합(合)하여 노래를 뜻한다. 歌(가)는 본디 哥(가)가 나타내는 말의 다른 글자이다. ❷회의문자로 歌자는 ‘노래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歌자는 哥(노래 가)자와 欠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言(말씀 언)자와 可(옳을 가)자가 결합한 訶(꾸짖을 가)자가 ‘노래하다’라는 뜻으로 쓰였었다. 하지만 소전에서 訶자가 ‘꾸짖다’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면서 哥(노래 가)자에 欠(하품 흠)자가 결합한 歌자가 따로 만들어지게 되었다. 哥자에 이미 ‘노래하다’라는 뜻이 있지만 입을 벌리고 있는 모습의 欠자를 응용해 본래의 의미를 더욱 강조하고 있다. 그래서 歌(가)는 일정한 명사(名詞) 뒤에 붙어 노래의 이름이나 종류(種類)를 나타내는 말로 ①노래, 가곡(歌曲), 가사(歌詞) ②시체(詩體)의 이름 ③악기(樂器)의 이름 ④노래하다, 읊다 ⑤노래를 짓다 ⑥칭송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굽을 곡(曲), 노래 악(樂), 노래 요(謠), 노래 구(謳)이다. 용례로는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을 가객(歌客), 노래를 잘 부르는 여자를 가녀(歌女), 노래를 부르거나 짓는 사람을 가인(歌人), 노래를 부름을 가창(歌唱), 여자 가수를 우아스럽게 이르는 말을 가희(歌姬), 노래 부르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을 가수(歌手), 노래와 음악을 가악(歌樂), 노래와 춤을 가무(歌舞), 가극이나 가곡 등에서 노래 내용이 되는 글을 가사(歌詞), 노래 부르는 소리를 가성(歌聲), 승리하여 기뻐서 부르는 노래를 개가(凱歌), 사랑하는 이를 그려 부르는 노래를 연가(戀歌), 슬픈 가락의 노래를 비가(悲歌), 곡조에 맞추어 노래를 부름 또는 그 노래를 창가(唱歌), 큰 소리로 노래를 부름 또는 그 노래를 호가(浩歌), 찬미의 뜻을 표한 노래를 찬가(讚歌), 축하하는 뜻으로 부르는 노래를 축가(祝歌), 노래와 춤과 음악을 가무음곡(歌舞音曲), 사방에서 들리는 초나라의 노래라는 사면초가(四面楚歌), 온 천하가 태평함을 칭송한 노래를 강재지가(康哉之歌), 비장한 노래로 심하게 탄식한다는 비가강개(悲歌慷慨), 큰소리로 떠들고 마구 노래 부름을 고성방가(高聲放歌), 아침으로는 노래하고 밤으로는 거문고를 탄다는 조가야현(朝歌夜絃)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