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나라 민왕(湣王)은 연나라 장군 악의에게 쫓겨 거성(莒城)으로 도망가 수년 동안 갇혀 지냈다.
이무렵 전단(田單)은 자신의 친족들을 이끌고 피난을 갈 때 수레 축의 끝 부분에다 튼튼한 쇳조각을 대었다.
이렇게 하여 돌에 부딪혀도 깨지지 않고 아무리 빨리 달려도 망가지지 않도록 한 것이다.
제나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권하였다.
연나라 군대가 추격을 하자 제 나라 사람들은 피난을 가기에 바빴다.
전단의 말을 듣지 않은 제 나라 사람들은 수레의 축이 부서지고 바퀴가 빠져 연나라 군사들에게 짓밟혀 죽었다.
그러나 전단과 그의 일족은 수레 축에 붙인 쇠붙이 덕분에 무사히 탈출하여 목숨을 구하였다.
전단 일행은 즉묵(卽墨)으로 안전하게 피신하였다.
그런데 연나라 군대가 곧 즉묵으로 들이닥쳤다. 즉묵의 대부(大夫)는 성을 열고 나가 싸우다 전사하였다.
대부가 죽고 나서 그 후임자를 찾을 때 제나라 사람들이 모두 전단을 추천하였다.
“전단은 수레 축에 쇠붙이를 붙여 안전하게 피난을 할 정도로 머리가 좋은 인물이다.
그의 용병술은 능히 즉묵을 지킬 만하다.”
전단은 장군이 되어 즉묵의 땅을 지켰다.
한편 연나라에서는 소왕(昭王)이 죽고 혜왕(惠王)이 즉위하였다. 전단은 즉시 간첩을 보내
연나라 명장 악의가 연나라를 배반하고 스스로 제나라의 왕이 되려고 한다는 소문을 퍼뜨렸다.
연나라 혜왕은 악의를 소환토록 하고 대신 기겁(騎劫)을 장군에 임명하였다.
악의는 자신의 목숨이 위태롭다는 것을 눈치 채고 조나라로 도망쳤다.
모든 것이 전단이 예상한대로 되었다.
그는 곧 성안에 있는 사람들을 시켜 음식을 먹을 때 반드시 뜰에서 그 선조에게 제사를 지내도록 하였다.
그러자 나는 새들이 모두 성안으로 몰려들어 제사 음식을 먹었다.
당연한 일인데도 사람들은 모두들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그때 전단이 말하였다.
“신이 내려와 나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제 곧 신인이 나타나 나의 스승이 될 것이다.”
그때 한 사나이가 농담 삼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도 스승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전단은 곧 그 사람을 데려다 진짜 스승으로 모셨다.
“이제부터 저의 스승이십니다.”
겁을 먹은 사나이가 전단에게 말하였다.
“저는 농담을 하였을 뿐입니다. 장군의 스승이 될 수 없습니다.”
“아니오. 그대는 그저 입만 다물고 내 스승 노릇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전단은 그 이후 자신의 명령은 바로 신사(神師)의 말씀이라고 선언 하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이끄는 병사들로 하여금 ‘신군(神軍)’이라 칭하여 사기를 높였다.
“지금 연나라 군사들은 제나라 군사를 사로잡을 경우 코를 베어서, 그들을 앞세워 성을 공격한다!”
전단의 말에 제나라 군사들은 모두들 떨고 성의 수비를 더욱 굳건히 하였다.
한편 이러한 전단의 말은 연나라 군대에 곧바로 전해져,
그들은 정말 제나라 포로들의 코를 베어 앞세우고 공격을 감행하였다.
성을 지키던 제나라 군사들은 그 모습을 보고 피가 끓어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신사의 말씀인즉 연나라 군사들이 성 밖에 있는 우리 조상의 무덤을 파내어 욕보인다고 한다.
정말 천인공노할 놈들이로다!”
전단은 제나라 군사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한편으로는 간첩을 풀어 ‘연나라 군사들이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불태우면 즉묵성이 곧 무너질 것’이라는 말을 퍼뜨리게 하였다.
연나라 군사들은 곧 그대로 실행하였다. 그러자 조상의 묘를 파헤쳐 시체를 불태우는 모습을
성안에서 지켜본 제나라 군사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은 자가 없었다. 분노는 열 배나 더 치밀어 올랐다.
이때서야 전단은 제나라 군사들도 드디어 싸움에 임할 태세가 갖추어졌다고 생각하였다.
“자 이제부터 갑옷 입은 병사들은 성루에 올라가지 말고, 그 대신 노약자와 아녀자들만 올라가라.”
이렇게 한 후 전단은 사자를 보내 연나라 장군에게 항복할 것을 청하였다.
또한 다른 사자 한 명을 즉묵의 부자로 가장시켜 밤을 틈타 은밀히 연나라 장군 막사로 찾아가게 하였다.
부자로 가장한 그 사자는 금은보화를 내놓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만약 즉묵성이 항복을 하거든 저의 가족들을 포로로 삼지 말아 주십시오.”
연나라 장군은 좋아서 입이 찢어졌다.
“그렇게 하겠다.”
한편 전단은 성안에 있는 소 1천 마리를 모아 비단으로 만든 붉은 옷을 입히고,
그 위에 오색의 용무늬를 그려 넣었다. 그리고 소의 뿔에 칼과 창을 묶어 매고,
꼬리에는 기름을 부은 갈대를 다발로 묶어 놓았다.
밤이 되었다. 성벽의 1천여 곳에 비밀의 문을 뚫어놓고, 전단은 군사들로 하여금
소의 꼬리에 불을 붙이게 하여 소떼들로 하여금 연나라 진지로 한꺼번에 내닫게 하였다.
소들은 꼬리의 기름 묻은 갈대에 불이 붙자 기겁을 하고 앞으로 내달아 연나라 진지를 삽시간에 짓밟아 버렸다.
붉은 옷을 입은 소떼들을 본 연나라 군사들은 무슨 괴물인가 싶어 놀라자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전단은 정예군사 5천을 선발하여 입에 나무토막을 물어 소리를 내지 못하게 한 후,
소떼들에게 쫓겨 도망치는 연나라 군사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넘겼다.
이렇게 한 번 무너진 연나라 군대는 계속 패주를 하여 마침내 제나라 북쪽 변경의 하상(河上)까지 쫓겨 갔다.
전단은 그리하여 연나라에 빼앗겼던 제나라의 70여 개 성을 되찾을 수 있었다.
민왕에 이어 즉위한 제나라 양왕(襄王)은 전단을 안평군(安平君)에 봉하였다.
-《인물로 읽는 史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