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들이 기억해야 할 한국교회 위인들 [29]
엄귀현(1876-1951)①
1904년 미국감리회 선교사 하운셀(C. G. Hounshell)과 몇 명의 신자들에 의해 세워진 봉화현교회는 1909년 미국북장로회 클라크(곽안련: Charles Aleen Clark, 1878-1961) 선교사가 담임목사가 되면서 대한예수교장로회에 속하게 되었고, 1942년 경동제일교회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현재 12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교회(현 예장통합)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양주군 남면에 속했고, 일제강점기에는 양주군 구리면에 속하게 되었습니다. 1963년 서울 동대문구 중화동으로 편입되었다가 1988년에 지금의 중랑구 중화동이 되었습니다. 바로 이 지역 봉화산 자락에서 엄귀현이라는 사람이 태어났고, 그는 1942년 10월 12일 경동제일교회 영수로 임명되었습니다. 영수(領袖)는 장로와 집사 사이의 직분으로 교회당 관리부터 교회 행정, 그리고 목사 부재 시에 설교까지 하기도 했던 봉사직이었습니다. 그는 1940년에 서리집사가 되었는데, 그때 나이가 64세였습니다. 영수가 된 나이는 66세였습니다. 그는 성실하게 신앙생활을 했고, 열심히 기도하면서 예배드리는 일에 충실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어린 시절에 대해 알 수 있는 자료가 없습니다. 그는 지식인도 아니었고 독립운동가도 아니었습니다. 훗날 역사에 기록될만한 주목받는 인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는 평생 천한 직업이었던 마부로 살았습니다. 비록 천한 직업이었지만 그는 늘 기도하면서 교회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엄귀현은 28세가 되던 1904년 어느 날 왕손 이재형(1871-1947)의 견마(牽馬)잡이로 충주에 가게 되었는데, 이재형의 이야기를 듣다가 “나리, 황송하오나 오늘부터 예수를 믿으소서. 그래야 나리도 죄 사함을 받고 영생을 얻을 수 있사옵니다.”라고 말하며 이재형을 당혹스럽게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