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 표본관
한의학연 10년 이상 준비…다양하고 알찬 콘텐츠
분류별 약초 원형부터 한약재까지 체험 가능
'오가피, 어성초, 산수유, 녹용, 우황….
예로부터 몸에 좋기로 소문난 약재들이다. 한약재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서적으로는 조선시대 허준의 동의보감을 꼽는다. 동의보감은 한의학 관련서적까지 꼼꼼히 기록, 한의학에 대한 완성도를 높인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해외에서도 이미 입증됐다. 동의보감은 2009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되었고 중국과 일본에서도 발간됐다. 그래서인지 400여년이 지난 지금도 한의학계의 바이블로 손꼽힌다.
동의보감 속 귀한 약재들을 직접 보고 체험할 수 있는 전시관이 문을 열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의기술표준센터 1층에 위치한 향약표본관(이하 표본관)이다.
한의학 관련 전시관은 표본관이 처음은 아니다. 국내 최초의 산청한의학박물관을 비롯해 서울약령시한의학박물관, 대구한약박물관 등이 이미 문을 열고 약초 체험기회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해 왔다. 그런데도 표본관이 주목을 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기존의 박물관들이 국내외 한약재 전반을 다뤘다면 표본관은 국내에서 채취 가능한 약재만을 다뤘다. 이는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생물자원 확보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8월에 문을 연 향약표본관은 면적이 276.1m²(약 84평)로 식물성 약재 107품목 500여점, 동물성 약재 40여점, 광물성 약재 30여점 등 약재 600여점이 전시 돼 있어 현장체험 학습장으로 손색이 없다. 무엇보다 원형그대로 전시된 약재들로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한의학연은 향약표본관 마련을 위해 2000년부터 표본을 채취하고 정리 해 왔다. 10년 이상 준비한 만큼 콘텐츠들이 다양하고 알차다.
◆ 향약의 중요성, 나고야 의정서 채택으로 더욱 중요
전시관을 둘러보기 전 한약재의 용어와 역사부터 알아보자. 한약의 역사는 선사시대에 인류가 질병에 걸려 어떤 약초를 먹고 질병이 치료되는지에 대한 경험을 문자로 기록하면서 시작 된 것으로 알려진다. 최초의 약물서적으로는 중국 진한시대의 ‘신농본초경’을 들 수 있다. 아쉽게도 저자는 알 수 없다. 이 책에 고구려, 백제, 신라 등의 지명이 언급되는 것으로 보아 중원과 동북아시아 여러 민족의 약물 경험이 집약된 서적으로 짐작된다.
국내에서는 고려시대 이후 자주의식이 발달하면서 구하기 어려운 중국산 약재보다 우리나라에서 구할 수 있는 약재, 즉 향약(鄕藥)을 활용하는 방안이 모색했다. 이처럼 '향약'은 국내에서만 자라는 약재를 이른다. 예전에는 중국산 약재는 '당약'이라고 했다. 그러나 값이 비싸 서민들은 의료혜택을 거의 받을 수가 없었다. 이에 나라에서는 '향약프로젝트'를 통해 국내에서 생산되는 약재들의 생산시기, 건조, 가공방법들을 기록해 국산약재를 적극 활용하도록 했다. 관련 서적으로는 세종지리지, 향약채취월령, 향약집성방이 있으며 세종 대에 완성된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적극 추진됐음을 알 수 있다. 한의학연이 향약표본관이라 명명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향약의 중요성은 2010년 각국이 나고야 의정서를 채택하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 나무, 곤충, 꽃 등의 생물유전자원이 화장품, 의약품 등에 적극 사용되면서 이들이 가지는 가치가 국가경제에 미치는 영향도 커졌다. 이에 따라 과거에는 인류의 공동자원이라고 여겨졌던 생물유전자원을 둘러싸고 각국의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생물주권’이라는 개념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한의학연의 ‘향약표본관’도 그런 의미에서 중요한 가치의 보고(寶庫)인 셈이다.
◆ 분류별 약재들, 원형부터 약재모양까지 상세히 전시
'한약'의 용어는 다양하다. 우선 자연에서 얻어지는 천연산물인 식물, 동물, 광물 중에서 질병 예방과 치료에 사용되는 약재로 '한약재'라고도 한다. 한약재 중 70%는 식물인데 식물 약재는 '본초'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또 약재의 성질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절단, 파쇄, 건조, 추출해 사용하는 약재는 '생약'이라고 일컫는다. 즉, 한약, 한약재, 본초 등 같은 의미로 보면 된다. 기본 용어를 익혔으면 표본관 투어에 나서보자.
표본관에 들어서면 원형 그대로 투명한 유리병에 보관된 본초들을 만날 수 있다. 꽃부터 뿌리까지 완전한 형태로 유리병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 액침표본 덕분이다. 붉은 보라빛의 할미꽃은 금방이라도 구부정한 줄기를 펴고 인사를 할 태세다.
액침표본약초 유리병을 살짝 돌아가면 일송정 푸른 솔이 푸르른 미소로 반긴다. 소나무는 사계절 변치 않는 한민족을 상징하기도 하지만 잎부터 뿌리까지 약재로 쓰이지 않는 부위가 없다. 이곳에서는 소나무의 뿌리까지 자세히 볼 수 있다. 소나무 뿌리에 자라는 송이버섯도 그대로 재현돼 있어 사실감을 더한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소나무 앞에 설치된 터치스크린을 터치하면 소나무의 부위별 쓰임새도 낱낱이 알 수 있다. 소나무는 뿌리부터 솔방울, 송진 등 10가지 이상이 약재로 사용된다.
소나무를 공부했으면 쓰임새에 따라 분류된 약재들을 살펴 볼 수 있다. 원래 모습부터 사용되는 약재 형태까지 상세히 전시돼 있다. 또 외국산 약재와 비교돼 있어 향약을 구별할 수 있는 안목도 키울 수 있다. 사용 부위에 따라 뿌리만 사용하는 지하부, 줄기와 나무껍질만 사용하는 목질부, 열매와 씨앗, 꽃, 잎과 지상부를 사용하는 약재를 비롯해 광물, 동물까지 진귀한 약재들이 총망라 돼 있다.
지하부를 사용하는 약재는 40여종에 180점이 전시돼 있다. 지하부 약재란 식물의 뿌리가 대표적이지만 뿌리줄기, 덩이줄기, 비늘줄기 등 땅속줄기도 포함된다. 이는 식물의 생장에 필요한 물과 무기질을 흡수하고 영양물질과 약효물질을 담아두는 곳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한약재로는 인삼, 황기, 도라지, 당귀 등이 있다. 또 모란과 가시오가피 등도 지하부를 사용한다. 뿌리부분을 사용하는 약재는 보통 다년생이다. 2~3년이상 생장이 완료된 후에야 약효물질이 축적되기 때문이다.
잎이나 지상부를 사용하는 약재는 대부분 일년생이다. 잎은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영양물질을 만들어 내는 곳으로 식물의 호흡기관이기도하다. 대표적인 식물로는 측백나무, 비파나무, 석위, 어성초, 배초향, 제비꽃, 민들레, 구절초 등이며 16종 70여점이 전시돼 있다.
줄기나 나무껍질 등 목질부를 사용하는 약재는 오가피 등 8종 30점, 잎이나 지상부를 사용하는 약재는 어성초 등 16종 70점, 열매나 씨앗, 열매껍질을 사용하는 약재는 24종 74점, 꽃봉오리나 꽃가루를 사용하는 약재는 8종 25점이 전시돼 있다.
본초이외에도 동물성과 광물성 약재도 만날 수 있다. 동물성 약재는 익히 알려진 녹용, 우황, 사향 등 30종의 실물을 만날 수 있다. 광물성 약재는 살균이나 소독의 용도로 사용되며 금박, 은박, 유황 등 이 전시 돼 있다.
◆ 약재 감별부터 한약 조제까지 체험하는 재미 쏠쏠~
약재들을 둘러봤으면 이젠 직접 체험하는 시간. 우선 터치스크린을 통해 향약의 역사를 상세한 설명으로 들을 수 있다. 또 세종실록지리나 동국여지승람 등에 소개된 조선시대 약재의 특산지와 최근의 주산지를 간편한 터치만으로 속속들이 알아보고 비교가능 하다.
약재 감별체험 코너에서는 디지털 현미경과 확대경을 이용해 국산과 수입산 약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압착 표본을 통해 본초의 모습까지 자세히 살펴 볼 수 있다.
지금까지 투어를 마쳤으면 장금이와 함께 처방에 따른 십전대보탕을 만들어 볼 시간. 십전대보탕은 열 가지 주요 약재가 들어가는 처방으로 인삼, 감초, 복령, 백출의 사군자탕과 당귀, 청궁, 작약, 숙지황으로 이뤄진 사물탕에 육계와 황기가 첨가돼 이뤄진다.
화면에 올라온 약재들 중 십전대보탕 재료만을 골라 주면 장금이가 조제 과정까지 애니메이션으로 상세히 보여준다. 이외에도 경옥고, 우황청심원의 처방 약재의 조제과정 한눈에 파악할 수 있다. 투어를 마칠 무렵이면 한의학에 얽힌 설화들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 영상을 시청할 수 있어 학습과 재미를 더한 체험코스로 인기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