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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증인이 되리라(2024년 5월 5일 오후 찬양 예배 설교)
성 경 : 사도행전 1:6-11(신약 187)
누가는 예수님께서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다음에 40일간 세상에 계시다가 승천하시는 장면으로부터 사도행전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의 삶을 마무리하시고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올라가시는데 올라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제자들과 대화를 하시는 장면과 승천하시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승천하시면서 사실은 제자들에 대해서 걱정하실 수밖에 없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 삶을 사실 때 제자들이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모든 것을 예수님께서 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실제로 별다른 일을 한 것이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말씀을 들었고, 예수님에게 배웠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치유와 축귀와 기적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을 뿐이지 실제로 제자들이 한 것은 없었고, 또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제자들이 할 자신도 없었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파송하셨을 때 귀신이 물러가고 병자가 치유되는 것을 경험하기는 했지만 그런 능력이 계속 제자들에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것에 대해서 앞으로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한 염려가 있었고, 예수님께서 앞으로 제자들이 교회를 세우고, 선교를 하고 해야 하는데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질문을 하고 예수님은 그들이 앞으로 사역을 잘 감당하게 되도록 성령을 받으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을 받으면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는 날 제자들은 모두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모인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은 제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신 말씀을 듣고 질문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중심으로 해서 “내 증인이 되리라” 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려고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것은
1. 제자들의 질문
6절을 보면 “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 여쭈어 이르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여기서 ‘여쭈어 이르되’ 라고 기록한 것은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반복해서 질문했다는 의미입니다. 한 번 질문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질문을 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질문한 내용은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하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1) 주님은 정말 이스라엘의 나라를 회복하게 하시겠습니까? 하는 것으로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4절)을 말씀하셨는데 사도들은 이 말씀에 대해 오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제자들은 아직도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에 대해서 이해하지 못하고 있고 그들의 관심은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는 것이었습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같은 역사를 통해서 로마로부터 해방되어 선민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때가 곧 다가오는 것일까요? 이것이 제자들의 질문입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린 것처럼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에 대한 기대가 있었는데 하나님 나라가 임한다는 것과 성령을 받는 것을 같은 의미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신 것과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에 대해서 제자들 중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이스라엘의 회복을 말씀하시는 것이냐고 질문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지상 사역 기간 동안 줄곧 제자들은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독립과 회복을 통하여 실현 되어질 하나님 나라를 보고자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었으며 나라가 회복되면 자신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런 제자들의 기대와 환상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되심과 동시에 기대는 산산이 부숴 졌지만, 이제 부활하신 주님을 보고서 다시금 정치적 회복에 관한 기대가 되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2) 때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이 시대에 유대인들이 갖고 있는 개념 중에 때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때의 개념은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종말의 때에 대한 예언과 중간사 시대를 거치면서 더 견고하게 하나님의 때가 이르렀다는 사상이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종말의 때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시자 제자들은 그럼 그 때 즉 종말의 때가 왔고,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것인가요? 라고 질문한 것입니다.
오늘날도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은 주님이 언제 오실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입니다. 국제적으로 어떤 일이 발생하면 기독교인들은 주님이 다시 오실 재림의 때가 온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하고 재림의 때가 됐다고 예언자처럼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게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증거되어야 주님이 오신다고 말씀했습니다.
제자들의 이 질문에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우리가 기대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 눈으로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은 우리가 보기에 화려하고 아름다운 것이 하나님 나라가 임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눅17:20-21절을 보면
눅 17: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눅 17: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조차 하나님의 은총과 축복을 외적인 화려함과 권력에서 찾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우선 되어야 할 것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신앙은 십자가 신앙으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은 결코 형통하고 복된 길로만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십자가의 고통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믿음 안에서 십자가 신앙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제자들의 질문에는 아직까지 유대주의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예수님은 복음을 땅 끝 까지 전하고 모든 민족에게 구원을 전하기 위해서 제자들의 유대주의를 깨뜨리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 유대주의를 완전히 벗어 버리지 못했습니다. 바울이 유대주의의 틀을 벗어나서 선교 사역을 감당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극단적인 민족주의를 벗어 버리지 못하면 복음이 세계화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기독교 민족주의에 빠지는 것을 결코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나라, 우리 민족의식도 물론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모든 나라를 향한 열려진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복음이 전 세계로 전해질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에 사해동포주의 ‘코스모폴리터니즘 [cosmopolitanism]’으로 인해서 가능했습니다. 사해동포주의는 어원적으로는 그리스어의 kosmos(세계)와 politēs(시민)의 합성어로, ‘세계시민주의’ 혹은 ‘세계주의’ 등으로 번역됩니다.
이러한 사상은 BC 4세기 그리스에서 나타났으며, 그 후의 헬레니즘 세계의 사상, 특히 스토아학파의 사상의 기조가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철학적인 사고가 그 시대 기독교에 영향을 끼쳐서 신의 섭리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는 우주국가주의 개념을 바탕으로 복음의 세계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세계화 시대에 복음 안에서 우리도 민족주의를 뛰어넘는 사해동포주의의 즉 하나님 안에서 모든 나라와 민족이 하나라는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며 그런 믿음이 선교의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우리의 기도는 국가와 민족을 넘어 세계 선교를 위한 기도로 확장되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보이지 않는 유대주의적 기독교 믿음을 벗어야 합니다. 모든 열방을 가슴에 품고 기도하는 진정한 기독교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2. 예수님께서 질문을 막으셨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에 대해서 예수님은 7절에 “이르시되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의 질문을 막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말씀하신 것은 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에서도 재림의 때를 주장하면서 교회 뿐만 아니라 사회에도 안 좋은 영향을 끼쳐서 복음을 전하는데 어려움을 겪은 일들도 있었습니다.
다미 선교회로 인해서 많은 교회와 성도들이 혼란을 겪었었습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때가 아니라 지금 여기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이곳에 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성경을 내 마음대로 해석하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나 때와 관련해서는 더더욱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하고 때는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3장16 “또 그 모든 편지에도 이런 일에 관하여 말하였으되 그 중에 알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니 무식한 자들과 굳세지 못한 자들이 다른 성경과 같이 그것도 억지로 풀다가 스스로 멸망에 이르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 권한에 두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 제자들이 생각하는 때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때이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는 로마로부터 해방되어 선민 이스라엘 공동체 국가를 세우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제자들의 생각을 아셨기 때문에 하나님 나라의 임함에 대해서 말씀하지 않고 그 때 즉 너희가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때는 오직 하나님의 권한에 있다고 대답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아야 올바른 판단과 올바른 길을 갈 수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 더 이상 언급하지 않으신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아버지의 약속하신 성령을 받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때와 시기라는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생각과 하나님 나라의 임하심의 때에 대한 잘못된 개념을 버려야 한다는 것과 올바른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알기 위해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임무를 주셨습니다.
8절을 보면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제자들은 때와 시기에 대해서 질문했는데 예수님은 때와 시기는 아버지의 권한이라고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때와 시기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면서 제자들과 오늘 우리들이 가져야 할 관심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임무 즉 사명을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명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직 그들은 복음을 전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현재 제자들의 모습은 예수님의 증인이 될 만한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제자들이 세상의 증인들과는 다른 기적과 초월적인 은사로 인해서 증인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증인이고 복음의 증인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가 증인이 되기에는 부족한 것이 많고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 말씀을 하셨을 때 제자들은 인생의 최악의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직업과 가족과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라 다녔는데 예수님은 무기력하게 잡히시고 죽으셨습니다. 물론 부활하시기는 했지만 제자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 말씀을 받는 이 시간은 인생 최악의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생각하기에 주님의 증인이 되기는커녕 당장에 먹고 사는 것이 문제라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예수님은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상황이 최악의 상황일 수도 있습니다. 아무런 희망도 보이지 않고, 내가 예수님을 믿으므로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헷갈릴 수도 있고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예수님을 전할 수 있지 어떻게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어떤 상황인지 아시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임무를 위해서 능력이 임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그 일을 위해 그들 자신의 능력이 있었던 것도, 지혜나 용기가 많았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너희가 너희에게 임할 성령의 능력을 받으리니, 너희가 복음을 전할 능력을 얻고 기적과 고난으로 복음을 확고히 세울 능력을 얻으리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상황을 아셨지만 성령이 임하시고, 권능을 받으면 너희가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내 증인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증인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이 성령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현재 그들은 주의 일꾼이 되고 복음을 전할 만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하시면 능히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우리의 부족함을 성령으로 채우시기 위함입니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을 받고 성령의 능력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성령의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면 너희 영향력이 크고 광범위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8절을 현대어 성경으로 보면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권능을 받게 될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죽음과 부활을 증거하는 증인이 될 것이다."
여기서 증인이 되리라는 말씀을 의역하면 "너희는 증인이 되리라.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하여 너희의 빛이 온 유대에 비치게 되며 또한 사마리아까지 미치리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전 세계에까지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고 사도들을 통해서 오늘날 온 세계에 복음이 전해졌고 우리가 그 복음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것은 그 은혜가 오늘 우리에게도 임하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전 세계에 영향력을 펼치는 능력의 참빛 교회와 능력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원래 12절까지 말씀을 살피려고 했는데 오늘은 8절까지 말씀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9절 이하 예수님의 승천이야기와 제자들이 모여서 기도하기를 힘쓴 이야기는 다음 주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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